화마 상처 안고 컨테이너 사는 울진 주민들 “삶의 터전 모두 탔다”
화마 상처 안고 컨테이너 사는 울진 주민들 “삶의 터전 모두 탔다”
울진 화재 한 달, 현장 찾아가 보니…
성황제 지내던 소나무, 30년 된 기와집 화재로 잃어
집 무너졌어도 보상금은 ‘최대 1600만원’
70·80대 이재민들 “여생 편히 눈 감을까”

지난 11일 오후 12시쯤, 경북 울진군 신화2리 마을 입구에 서자 불에 탄 잔재에서 올라오는 매캐한 냄새부터 한 달 전 화마가 마을을 덮쳤다는 사실을 알렸다. 검게 그을린 토양과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민둥산은 처참했던 화재 현장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었다. 마을 주민 전남중(84)씨는 벌거벗은 산골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씨는 “산을 수놓던 울창한 소나무림이 모조리 잿더미가 됐다”며 “매년 정월대보름 때마다 성황제를 지내던 장소였는데, 올해가 마지막 기념일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느냐”고 했다.
지난달 4일 경북 울진군 두천리의 한 야산에서 발화한 울진·삼척 산불은 같은 달 13일까지 이어지며 역대 최장 화마로 기록됐다. 화재 기간이 길었던 만큼, 이재민들이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산불 진화 한 달째, 화마로부터 가장 크게 피해를 입었던 지역인 신화2리와 바로 옆 동네인 고목 1리에서 만난 이재민들은 “삶의 터전뿐만 아니라, 마을의 ‘역사’도 새까맣게 타버렸다”며 “화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28가구 중 22가구가 집 잃은 마을, 주민들은 임시 컨테이너행
이날 찾은 신화2리는 화재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신화2리는 지난 산불로 28세대 중 22세대가 집을 잃었다. 마을 입구에는 ‘이재민 여러분 힘내세요! 함께라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굴착기 4대가 마을 곳곳을 누비며 철거물을 옮기고 있었다. 임시컨테이너 15동이 들어와 주민들을 위한 간이 보금자리도 마련됐다. 그러나 화마를 겪은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달 27일 덕구온천 호텔리조트에서 컨테이너로 왔다는 장영동(85)씨는 “임시 거처라도 마련해줘 고마운 마음”이라면서도 “언제쯤 재해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몰라 불안하고 답답하다”고 했다.

마을 한 가운데 위치한 회관에서는 화재 이후 뿔뿔이 흩어졌던 할머니 10여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7평짜리 임시컨테이너는 답답하고 적막한 탓에, 회관에 모여 낮잠도 자고 밥도 같이 지어 먹는다고 한다. 마을 주민 엄섭(82)씨는 “20살에 시집 와 5남매를 키우며 꼬박 60년을 보낸 공간이 컨테이너촌이 됐다”며 “2년 전 돌아간 영감을 볼 면목이 없다”고 했다.
◇”28년된 기와집이 10분 만에 타버려…가문 족보도 없어졌다”
이날 오후 3시쯤 찾은 신화2리 바로 옆 고목1리에도 임시컨테이너 3동이 들어와 있었다. 고목1리는 총 50여 세대 중 10여 세대가 지난 화재 당시 집을 잃었다. 고목1리 주민 남두호(68)씨의 집이었던 장소에는 새까맣게 그을린 나무 밑동과 판자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주변으로 유리와 철근들이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남씨는 “지난 1994년에 소나무 목재와 50년 경력의 목수를 동원해 지은 기와집이 10분만에 타버렸고, 가보인 ‘영양 남씨 족보(族譜)’도 잃어버렸다”며 “언제쯤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암담하다”고 했다.

3년간 고목1리 마을 이장을 역임했던 김경숙(71)씨는 “검게 그을린 산들이 내 마음 같다”고 했다. 그의 집은 화재로 전부 타버렸다. 주민들이 이해해준 덕분에 마을회관을 임시 거처로 두고 작은아들 가족과 지난달 9일부터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45년 동안 이어 온 양봉업을 화재 이후 제대로 관리조차 못 하고 있다”며 “아직도 손자가 땅으로 주저앉은 우리 집을 보면 눈을 찡그리며 손으로 가린다”고 했다.
◇집 완전히 무너져도 보상금은 1600만원…이재민들 “막막하다”
두 마을 외에 울진의 다른 곳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울진군 울진읍 정림2리에 사는 송경자(71)·남계순(71)씨 부부는 “3~4억짜리 2층 목조 집을 잃었고, 재산은 소 19마리가 전부”라며 “법에 따른 보상은 최대 1600만원이라고 들었는데, 이번 여름 집을 새로 지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울진군 북면 나곡2리에서 세입자로 살던 홍성희(54)씨는 “군수가 지난달 9일 이재민들을 상대로 향후 대응 방안에 관한 설명회를 진행했는데, 그 이후 진척이 없다”며 “무엇을 물어봐도 아직 모른다, 확인 드리고 알려주겠다고 한 이후에 계속 묵묵부답”이라고 했다.
울진의 이재민들은 임시컨테이너, 마을회관, 친척 집에서 봄을 맞이했다. 이들이 주로 거주하는 임시컨테이너는 7평 남짓한 공간에 생필품을 보관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 이재민들은 실버카와 농기구를 세워 둘 공간도 마땅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보상에 대한 걱정도 크다. 국토교통부의 ‘자연재난 복구비용 산정기준 및 사회재난 생활안정지원 항목별 단가’ 고시에 따르면 산불과 같은 자연 재난에 대해 정부는 주택 전파(완전 파괴)시 1600만원, 반파(절반 파괴)시 800만원의 주거비를 지원한다. 신화2리에서 만난 한 이재민은 “여생은 여유롭게 보내나 했더니 편하게 눈이나 감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