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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무기 필요하다”… 폴란드 국방장관이 한국 방산업체 찾은 이유는 [박수찬의 軍]

wind11 2022. 6. 4. 09:03

“K-무기 필요하다”… 폴란드 국방장관이 한국 방산업체 찾은 이유는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22.06.04. 06:00
© 제공: 세계일보 한화디펜스의 신형 보병전투차 레드백이 지난달 31일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부장관의 방문을 맞아 시운전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폴란드 국방부 홈페이지

손재일 한화디펜스 사장. 1990년 한화그룹에 입사한 이래 방위산업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인물이다. K-9 자주포와 K-21 보병전투차, 천무 다연장로켓과 호주 보병전투차 사업 후보인 레드백 등을 만드는 한화디펜스를 이끄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국 육군의 핵심 장비 생산을 맡는 손 사장의 행보가 최근 방산업곙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29일 방한한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부장관은 이종섭 국방부장관보다도 먼저 손 사장을 만났다. 

 

브와슈차크 장관은 31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현대로템 등 국내 방산업체를 둘러보는 과정에서 한화디펜스 공장을 방문, 손 사장과 함께 K-21과 천무 등을 살폈다. 길지 않은 방한 기간 동안 손 사장을 두 번 만난 셈이다.

 

인접국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도 한국을 찾은 브와슈차크 장관이 손 사장과 한화디펜스 관련 일정에 상당한 비중을 둔 것은 자주포와 보병전투차 등 국산 무기에 폴란드 내 관심과 수요가 급속히 커진 데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 제공: 세계일보 한화디펜스의 K-21 보병전투차가 지난달 31일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부장관의 방문을 맞아 시운전 도중 포탑을 선회해 표적을 겨누고 있다. 폴란드 국방부 홈페이지

◆우크라이나에 무기 보낸 폴란드…재고 급감

 
 

폴란드는 독자적인 방위산업 기반을 갖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력증강 계획이 빨라지고 군의 장비 수요도 커서 자체 역량만으로는 단기간 내 전력증강이 어렵게 됐다. 다른 나라의 무기 도입이나 연구개발 등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폴란드 측이 관심을 보이는 국산 무기는 보병전투차와 자주포(한화디펜스), K-2전차와 K-808 차륜형장갑차(현대로템) 등 지상 장비다.

 

폴란드는 K-9 자주포 차체에 자국산 155㎜ 곡사포 포탑을 얹은 크랩 자주포를 2014년부터 배치해왔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에 일부 수량을 지원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포격전 위주로 진행되면서 먼 거리에 있는 적군을 정확히 타격하고 신속히 이동하는 자주포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폴란드가 크랩 자주포 생산량을 늘린다면, K-9 차체 추가 수출도 가능할 전망이다.

 
© 제공: 세계일보 우크라이나군이 사용중인 T-72M1R 전차가 시가지를 지나고 있다. T-72M1R은 폴란드가 러시아산 T-72 전차를 개량한 것이다. 트위터 캡쳐

보병전투차 교체는 시급한 과제다. 폴란드군 보병전투차는 구소련 시절인 1966년에 등장했던 BMP-1이다. 현대전에 쓰기엔 노후한 장비다. 

 

반면 러시아군은 100㎜ 주포를 갖춘 BMP-3 보병전투차, 대전차미사일과 30㎜ 기관포로 무장한 BMPT 화력지원전차를 운용중이다. 폴란드 육군 장비 중 조기 교체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40㎜ 기관포를 장착한 K-21은 서방측 보병전투차 중에서 최강 화력을 갖춘 영국산 CV-90과 동등한 수준이다. 부교가 없는 상황에서도 자체적으로 도하가 가능하다. 

 

호주 수출이 추진되는 레드백 보병전투차는 복합소재 고무궤도,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이용한 능동방어체계, 상태감시시스템(HUMS) 등 신기술을 대거 적용했다.

 

대전차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포탑과 30㎜ 기관포, 7.62㎜ 기관총을 탑재하며 열상 위장막을 두르면 열상 감시장비와 열추적 미사일을 피할 수 있다.

 

K-2 전차는 수년전부터 폴란드 수출이 거론됐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성사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다. 

 
© 제공: 세계일보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부장관(왼쪽 세번째)이 지난달 31일 한화디펜스 공장을 방문해 손재일 사장(왼쪽 네번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폴란드 국방부 홈페이지

브와슈차크 장관은 현대로템을 방문한 직후 “폴란드군이 현대로템의 현대식 전차를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폴란드 산업과의 협력에도 매우 좋은 제안”이라며 “M-1A2와 K-2 전차의 상호운용성이 중요하다. K-2 전차가 곧 폴란드군에서 사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브와슈차크 장관은 “러시아산 미그-29와 SU-22 전투기를 신형으로 교체하기를 원한다. 한국은 F-16과 호환되는 항공기를 생산하고 있다”며 KAI의 FA-50 경공격기에도 관심을 보였다.

 

브와슈차크 장관은 방한 기간 이종섭 장관과 만나 국방연구개발과 무기 생산 등과 관련한 의향서(LOI)에 서명했으며, 관련 전문가를 한국에 보낼 것으로 알려져 양국간 국방교류협력이 확대될 전망이다.

 
© 제공: 세계일보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부장관(왼쪽)이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이종섭 국방부장관과 국방 및 방위산업 협력 의향서(LOI)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폴란드 국방부 홈페이지

◆전면전 위협 대비·방산 협력 증진 효과

 

러시아와 서유럽 사이의 폴란드는 동유럽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최대 회원국이자 우크라이나와 534㎞의 국경을 맞대고 있다. 

 

폴란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러시아산 T-72M1R 전차 등 대규모 군사지원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무기 재고가 급감했다. 

 

재고를 채우고 첨단 전력을 늘리기 위해 폴란드는 무기 구매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에서 M-1A2 전차 250대를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도입하기로 했고,  M142 고속기동 포병 로켓 시스템(HIMARS) 500대 도입도 추진중이다.

 

하지만 폴란드군을 신속하게 확장하고 강화하려는 상황에서 미국에만 무기 구매를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나토 규격을 사용하는 서방 국가 무기도 도입해야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으로 중화기 수요가 줄어들어 선진국 방산업체의 중화기 생산능력은 감소한 상태다. 도입 수량도 많지 않아 대당 가격도 비싸다. 

 

반면 북한과의 전면전에 대비하는 한국은 전차와 자주포 등 중화기를 신속하게 대량생산할 능력이 있다. ‘규모의 경제’를 이룬 덕분에 도입비와 후속군수지원비도 낮다.

 
© 제공: 세계일보 한화디펜스의 K-21 보병전투차가 지난달 31일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부장관의 방문을 맞아 자체 수상도하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저수조를 지나고 있다. 폴란드 국방부 홈페이지

한미 연합방위태세 유지를 위해 미군과의 상호운용성도 갖췄다. 나토 군사규격을 사용하는 폴란드로서는 상당한 이점이 있다.

 

실제로 브와슈차크 장관은 지난달 31일 이종섭 국방부장관과 회담 직후 “한국은 우수하고 검증된 무기를 가지고 있다. 미국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제작돼 우리(폴란드)가 가진 무기와 상호 운용이 가능해 짧은 시간 내 폴란드 군대를 크게 강화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양측 간 방위산업 협력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폴란드는 전차와 헬기 등을 제작, 수출한 경험이 있다. 독자적인 방위산업 기반을 유지·발전시키려는 의지도 있다. 

 

K-2나 K-21의 현지 생산을 포함해 크랩 자주포처럼 폴란드와 한국 무기체계를 결합해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제3국에 판매하는 방안 등을 추진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현대로템은 폴란드 국영방산업체 PGZ그룹에 K-2 전차를 기반으로 차세대 K-2PL 합작개발을 제안, 현지 생산하는 방안을 계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는 성능이 높아진 무기를 쉽게 확보할 수 있고, 한국은 유럽 방위산업 시장에 교두보를 만드는 효과가 있다.

 
© 제공: 세계일보 한화디펜스의 천무 다연장로켓이 지난달 31일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부장관의 방문을 맞아 시운전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폴란드 국방부 홈페이지

폴란드에 국산 지상장비와 관련된 교두보를 마련하면, 한국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유럽에 신속한 후속군수지원을 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극복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이스라엘에 T-50 훈련기를 판매하려 했을 때, 경쟁기종이었던 이탈리아 M-346 측은 지리적으로 이스라엘과 인접해 단기간 내 후속군수지원과 부품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변수는 미국과 유럽 방산업체의 반격이다. 나토 회원국 간 유대관계 등을 앞세우거나 정부 간 거래 방식을 제안할 경우 한국 측이 밀릴 위험이 있다. 폴란드와 인접한 독일, 스웨덴, 핀란드 방산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 

 
© 제공: 세계일보 한화디펜스의 K-21 보병전투차가 지난달 31일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부장관의 방문을 맞아 경사지를 올라서는 등판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경사로를 오르고 있다. 폴란드 국방부 홈페이지

이에 맞서 국내 업체들도 유럽 방산시장에서의 활동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달 중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국방 및 보안 전시회인 ‘유로사토리 2022’에는 한화디펜스, 현대로템, 풍산을 비롯한 20개 업체가 참가해 홍보 및 수주 활동을 펼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럽 방산시장에서 후발주자인 한국이 수주에 성공하려면 정부와 군의 종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정부 당국의 후속 대응에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