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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정치냐, 공천 혁신이냐… 비주류 당대표 ‘이준석 딜레마’

wind11 2022. 6. 12. 10:15

자기정치냐, 공천 혁신이냐… 비주류 당대표 ‘이준석 딜레마’

[주간조선]

곽승한 기자
입력 2022.06.12 05:30
 
 
 
 
photo 뉴시스

이준석은 ‘자기 정치’를 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다녀온 걸까. 결과적으로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와의 대화 내용보다 같은 당 중진 의원과의 소셜미디어(SNS) 설전이 더 주목받았다. 20시간 가까운 비행 끝에 우크라이나까지 건너갔지만, 정작 이 대표의 입과 귀는 여의도에 묶여 있는 상황이 연이어 벌어졌다.

“당을 위하기보다 혼자 튀려고 한다”

정치가 직업인 정치인에게 “자기 정치를 한다”는 지적은 어딘가 어색하다. 운동선수에게 “자기 플레이를 할 줄 안다”는 표현은 줄곧 칭찬으로 쓰인다. 그런데 유독 국민의힘 내부에서 이 대표를 비판하는 측은 ‘자기 정치’라는 키워드를 들고나온다. 이 대표를 향한 비판에 단골로 등장하는 ‘자기 정치’란 “당대표가 당을 위하기보다 혼자 튀려고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는 이 대표가 지난해 당대표에 취임한 이후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지적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내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히 나뉘는 인물이다. 기존 정치권의 문법에 맞지 않게 ‘튀는’ 행보를 보이는 만큼 평가가 갈릴 수밖에 없다.

이 대표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의 상당수는 국민의힘 지지자들로부터 나온다. 이들의 이준석 비토는 때로 민주당 지지자들보다 강하다. 대통령선거, 지방선거까지 연승한 당의 대표에 대해 내부에서도 이렇게 비난 여론이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국민의힘 전통적 지지자들 사이에 도사리고 있는 바른정당(유승민) 계열 정치인에 대한 불신 △대선 기간 이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측의 갈등 △‘싸가지 없다’는 비판을 받는 이 대표의 언행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 대표를 비판하는 쪽에선 ‘이핵관’이라는 표현을 쓴다. 대선 기간 이 대표의 ‘윤핵관’ 비판에 대응 격으로 만든 것이다. 다만 ‘이핵관’으로 꼽히는 인사들 중 현역 의원은 사실상 없다. 대부분 당대표실에서 보좌를 맡고 있는 당직자들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큰 스피커를 갖고 있는 중진 의원들인 ‘윤핵관’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긴 어렵다. 지난 대선 기간, ‘윤핵관’들과 이 대표의 여론전이 한창 벌어질 때 이 대표는 사실상 혼자 싸웠다.

이 대표를 옹호하는 쪽에선 이렇게 말한다. “이 대표의 ‘튀는’ 캐릭터 때문에 36살 0선 출신임에도 당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대표가 혼자 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당 안에 그의 우군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메시지에 맞춰 비슷한 주장을 하는 현역 의원을 찾기 힘들다. 그래서 이 대표가 뭘 하든 ‘튀어 보이는’ 것이다.”

이는 당내에 ‘이준석 세력’이라고 할 만한 그룹이 없다는 의미다. 당 지도부에도 이 대표의 측근이라고 꼽을 수 있는 사람은 딱히 없다는 평가가 많다. 취임한 지 1년이 된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까지 2연승을 거뒀지만 당내 지위는 여전히 비주류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이준석의 자기 정치를 저지하려는 쪽과 저지당하지 않으려는 이 대표의 갈등이 반복되어 온 것이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지난 6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오른쪽)와 권성동 원내대표(가운데), 정진석 의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photo 뉴시스

“그동안 참던 것들이 터지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 내에서 ‘이준석 대 정진석’의 구도로 벌어지는 갈등 양상에는 이런 배경들이 얽혀 있다.“선거도 이겼는데 왜 싸우지”라는 의문보다는 “선거가 끝났으니 그간 참던 것들이 터지고 있다”는 분석이 더 합리적이다. 당내 주류로 자리 잡은 친윤계 그룹과 비주류인 이 대표 사이에 쌓여온 갈등이 표면 위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특히 당내 중진 의원들 사이에는 이 대표에 대해 우려심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았다.

친윤계 맏형으로 통하는 정진석(5선) 의원은 지난 6월 6일 “집권당 대표가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간 저간의 사정을 알아봤다”면서 “정부와 청와대의 외교 안보 핵심 관계자들은 대부분 난색이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그러면서 “보름 전쯤 이 대표가 우크라이나행을 고집해서 하는 수 없이 외교부가 우크라이나 여당 대표의 초청장을 받아준 모양”이라며 “이준석 대표의 우크라이나 방문이 자기 정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된 논쟁은 지방선거 공천과 혁신위원회로 번졌다. 이를 두고 차기 당권을 위한 당내 주도권 다툼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정진석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내가 이 대표에게 악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당권 투쟁을 한 것도 아니다”라며 “명색이 최다선인데, 산송장이 아닌 이상 필요할 때 필요한 이야길 하는 것”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정 의원은 혁신위에 대해“(혁신위의) 최재형 위원장, 천하람 위원으로 보면 ‘이준석 혁신위’로 시작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지방선거 바로 다음 날인 지난 6월 2일 2024년 총선을 대비하기 위한 혁신위원회 출범을 알렸다.

이 대표는 정 의원을 향해 강한 수위로 맞섰다. 이 대표는“3일 뒤면 (당대표) 취임 1년이다. 1년 내내 흔들어놓고는 무슨 싸가지를 논하나”라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흔들고 가만히 있으면 더 흔들고, 흔들고 반응하면 싸가지 없다 그러고. 자신들이 대표 때리면 훈수고, 대표가 반박하면 내부총질이고”라고 반박했다. 이 대표는 또 “당대표를 몰아내자고 대선 때 방에서 기자들 들으라고 소리친 분을 꾹 참고 우대해 공천관리위원장까지 맡기고 공관위원 전원 구성권까지 드렸으면 당대표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예우는 다한 것 아니냐”라고 했다.

30대의 비주류 당대표는 오롯이 ‘당의 대표’로서 자신의 리더십을 보이고 싶어 한다. 두 차례의 선거 승리 그 이상, 당의 본질적 변화를 일으키고 싶은 욕심이다. 정당의 본질적 변화는 결국 공천의 변화다. 이 대표는 이 제도를 바꾸고 싶어 한다. 이 대표가 지방선거를 준비하며 도입한 ‘PPAT(공직 후보자 기초자격 평가)’, 그리고 최근 발표한 혁신위원회 출범이 이에 속한다. 이 대표의 리더십은 그의 대학 전공(컴퓨터과학)처럼 산술적·공학적이다. 권력자의 ‘자의’에 의한 전략 공천이 아니라 시험 친 점수로, 계량화된 시스템으로 정치인을 선발해야 한다는 의도다. 이것이 더 공정하다는 것이 이준석의 명분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추경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 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오른쪽)와 악수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모호한 ‘시스템 공천’, 독인가 약인가

혁신위의 인선을 두고 ‘이준석 혁신위’라는 비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최재형 의원과 이 대표가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라디오 방송에서 “선거 때는 이 대표의 이슈 주도권이 도움이 되니까 쪽쪽 빨아먹다가 선거 끝나고 나서는 ‘자기만 주목받는 거 아니냐’ ‘자기 정치하는 것 아니냐’라며 앞뒤가 안 맞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옹호한 천하람 위원 역시 이 대표와 사적인 친분이 두텁지 않다. 천 위원 스스로도 “우리 당의 리더십 중에 현재로선 이준석이 최선의 옵션이라고 생각하는 것뿐,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는 아니다”라며 “이 대표의 방법론에 항상 찬성하진 않는다”고 말한다.

현재 혁신위의 정체성과 구체적인 목표 등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국민의힘 인사는 사실상 없다. 혁신위 소속 인사들조차 “이제부터 해봐야 안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의 그간 발언을 종합해보면, 혁신위는 ‘시스템 공천’을 위한 룰 세팅에 심혈을 기울일 가능성이 크다. 이 대표는 혁신위 출범에 대해 “여당으로서 어떻게 하면 당원 민주주의를 더 효율적으로 구현하고 공천 제도를 더 적절하게 할지 연구하는 정당 개혁을 목표로 하는 혁신위를 출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천 위원은 통화에서 “당 일각에선 이준석이 사심을 갖고 혁신위를 출범시킨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데, 그들은 ‘사심 없는’ 이준석도 부담스러울 것”이라면서 “이준석이 사심 없이 당을 개혁한다고 해도 그 자체가 그분들께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천 위원은 “슬프게도, 이준석은 ‘알박기’를 할 만한 사람도 (주변에) 별로 없다”고 덧붙였다.

혁신위는 국정감사 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9월까지 1차적 결과물을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당 상황에서 혁신적 공천룰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만들어낸다고 해도 당내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올 상황 역시 뻔하다. 최재형 위원장은 혁신위가 제대로 출범하기도 전에 당내 반발부터 나오자 우려감을 주변에 표했다고 한다. 혁신위원으로 합류 요청을 받은 국민의힘 인사들도 부담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혁신위를 출범시켜서 혁신하겠다는 건 좋은데, 구체적으로 뭘 하겠다는 건지 알려진 바가 없다”면서 “아무래도 가장 예민할 수밖에 없는 공천에 관한 문제이다 보니 여러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혁신위가 앞으로 중점적으로 다룰 ‘시스템 공천’의 요지는 대략 이런 것이다. “공천을 하기 위해 살펴보면 이 사람이 어떤 감투를 써왔는지에 대한 자료만 있을 뿐, 실제로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에 대한 자료가 너무 빈약하다. 이렇게 되면 결국 당협위원장들의 추천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천하람) 즉 지역과 당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보다 당협위원장 등 유력 인사에게 ‘줄서기’가 공천을 좌우해왔는데, 이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혁신위 출범에 대해선 주호영, 조해진 등 몇몇 중진 의원들이 찬성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당내 ‘중재자’가 없다

이에 대해 우려를 가진 쪽에서는 “시스템 공천이 오히려 혁신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반응을 내놓는다. 특히 ‘인물’이 주목받는 총선 공천의 경우 시스템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논리다. 당내 구심점이 분산되는 결과를 야기해 갈등이 반복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다. 이 대표가 주장하는 시스템 공천이 “결국 자기 사람을 심겠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이들도 있다.

이 대표를 둘러싼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당내 ‘중재자’ 역할을 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당의 최고 구심점이 되어야 할 윤석열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를 경험하지 않은 인물로, 당내 상황에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당의 일은 당이 알아서’라는 기조를 가진 만큼 당내 교통정리가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이럴 때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선배 의원’이 앞장서 이 대표를 비판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지난 6월 9일 라디오에서 “당내 구성원들의 비판을 권력투쟁, 차기 당권 싸움으로 몰아가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자 억측”이라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양측의 갈등이 쉽게 봉합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이 대표의 정치적 자산은 2030 청년층, 이른바 ‘이대남’들이다. 이들을 국민의힘으로 끌어온 것이 이준석의 기본 자산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세대포위론’의 선거 전략이다. 다만 이 대표는 청년들이 국민의힘의 고정적 지지층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민의힘 지지층(당원)을 두 집단으로 분류하면, 전통적 보수 이념의 ‘애국보수’와 최근 들어 유입된 ‘젊은 보수’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집단은 온라인상에서 이준석 대표의 언행을 두고 사사건건 충돌하며 서로를 비난한다. 이는 이 대표 본인도 “화학적 결합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우려했던 점이다. 이 양상이 당내에서도 그대로 옮겨져 벌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에 회부된 이준석 대표의 ‘성 상납·증거인멸교사’ 의혹의 징계 여부도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국민의힘 윤리위는 경찰의 수사와는 별개로 이 대표의 도덕적 책임과 당의 명예를 훼손한 점에 대해 징계 여부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리위는 오는 6월 24일 회의를 열고 이 대표 징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다만 ‘도덕적 책임’이라는 잣대가 모호한 만큼, 윤리위의 결정도 당내 헤게모니 다툼의 일환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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