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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I

댕디의 프랑스 산 사람들의 노래에 의한 교향곡 op.25

Symphony on a French Mountain Air, Op.25

Symphonie Sur Un Chant Montagnard 'Cévenole'

댕디 / 프랑스 산 사람들의 노래에 의한 교향곡

Vincent d’Indy 1851~1931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별칭 '세벤느 교향곡'으로 불리는 이 '프랑스 산사람들의 노래에 의한 교향곡'은 그가 소년 시절에 깊이 사랑하던 비바레 지방 사람들의 민요를 바탕으로 하여, 그의 나이 25세 때 작곡한 것입니다. 1886년 여름 세벤느의 아름다운 산들을 바라볼 수 있는 페리에(Périer)에서 인상적인 목가를 듣고 이것을 채보했는데, 이것은 뒤에(1892년) 간행된 민요집(정식 명칭은 '비바레와 베르코르의 민요집 Chansons populaires du Vivarais et du Vercors'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 목가의 아름다움에 이끌린 댕디는 처음에는 그 노래를 주제로 삼아서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을 작곡할 계획이었으나, 구상이 완성되고 보니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교향곡이 되었습니다. 그가 산을 제제로 하여서 쓴 작품으로는 이 밖에도 교향시 '매혹의 숲' '산의 여름날', 피아노곡 '산의 시'등이 있는데, 이것들을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자연을 깊이 사랑했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전곡 연속듣기
Catherine Collard, Piano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 Marek Janowski, Cond

제 1악장 잉글리시호른의 연주로 산(山) 사람의 노래가 나타난다. 험한 산과 깊은 골짜기, 숲과 자연등의 정휘가 떠오른다.


I. Assez lent
Catherine Collard, Piano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 Marek Janowski, Cond

제 2악장 Assez modere masissans lenteur 조용한 산의 새벽이다.


II. Assez modere
Catherine Collard, Piano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 Marek Janowski, Cond

제 3악장 세반느 지방의 무곡. 산사람의 노래가 특수 리듬을 타고 나타난다.


III. Anime
Catherine Collard, Piano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 Marek Janowski, Cond

뱅상 댕디 (Vincent d’Indy)

1851년 3월 27일 파리에서 태어나 1931년 12월 1일 파리에서 죽은 프랑스 작곡가, 이론가, 교육자, 저작가인 댕디는 남프랑스 고원지대의 비바레 지방 귀족 가문 출신인데 그가 백작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죽기까지 거의 아무도 몰랐다.

어려서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마르몽텔에게 피아노를, 다시 14세 때부터는 후에 드뷔시의 선생이 된 알베르 라비냑한테서 화성법을 배웠다. 16세 때 베를리오즈의 「관현악법」과 그 책에 인용되어 있는 위대한 교향작품의 스코어에 전광과 같은 충격을 받은 댕디는 그때까지 별로 열중하는 일 없이 공부해온 예술에 정열을 가지게 되어 작곡가가 되겠끔 운명지워져 있음을 느꼈다.

보불전쟁이 끝나고 평화조약이 조인되자 곧 그는 파리의 음악생활에 투신하여 작곡가, 비평가, 연주가 등 음악 전문가와 친하여졌다. 그는 지휘자 파들루와 가까워져 파들루 연주회의 리허설에 참석하여 당시 최고의 음악가들인 프랑크, 생상스, 마스네, 비제, 알렉시스 드 카스티용 등과 만났다.

그는 또한 전승국 독일의 걸작에 비견할 만한 음악적 지위를 프랑스에 되돌리기 위해 1871년에 창립된 국민음악협회에도 참가하였다. 파들루의 리허설에서는 그가 야심적인 계획을 가지고 전쟁 중에 착수한 「이탈리아 풍의 교향곡」이 연주되었는데 비제, 마스네 등은 이 대담한 시도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1872년 세자르 프랑크의 학생이었던 친구 앙리 뒤파르크의 충고로, 댕디는 국민음악협회를 위해 쓴 몇몇 작품을 프랑크에게 보였다. 프랑크의 답은 “자네는 아이디어를 가졌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냉엄한 것이었다. 댕디가 음악원에서 프랑크에게 대위법, 푸가, 작곡법을 오르간과 마찬가지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그 결과이다. 댕디는 파리의 음악 생활 속에 완전히 융합하였고 1873년에는 콜론느 연주회에서 팀파니 주자의 지위를 정식으로 맡게 되었다.

인간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세자르 프랑크가 가지는 희구는 압도적으로 댕디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댕디와 프랑크와의 공통점은 높은 예술에 대한 의사뿐이지 다른 점에서는 전혀 달랐다. 프랑크가 베토벤에 힘입은 바가 많았는데 비해 댕디는 바그너에게 심취하였다. 그는 직접 바그너의 가르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리스트, 브람스 등과도 사귀었다. 그리고 평생토록 독일 예술에 대한 커다란 관심을 감추지 않았다.

작곡가로서의 댕디의 데뷔는 1874년 1월 25일, 파들루 연주회에서 초연된 실러의 「발렌시타인」을 위해 쓴 3곡의 서곡중 제2곡으로써였다. 1876년에는 그의 몇몇 소규모의 작품이 국민음악협회에서 연주되었다. 그해에는 새로 지은 바이로이트 극장에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를 들었다. 이 경험은 그에게 깊이 영속하는 인상을 주어 열광적인 바그너주의자로 만들었다.

그의 초기 작품 중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는 피아노 조곡 「산의 시」로, 그는 후에 이것을 「피아노를 위한 교향시」라 부르고 있다. 1880년으로부터 83년에 걸쳐, 성악과 관현악을 위한 대규모의 작품 「종의 노래」가 작곡되어 파리시 주최의 콩쿠르에서 수상하였다.

이즈음까지 댕디의 음악은 아직 정신적으로는 독일적이었으나, 각 지방 민요의 요소와 농민이 부르고 있는 옛노래의 발견은 댕디에게 의식적이면서 계통있는 애국주의를 가르쳐주었다. 댕디의 가장 뛰어난 작품인 「세벤느 교향곡-프랑스 산사람의 노래에 의한 교향곡」(1886)은 아르데슈에서 수집한 민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즈음에는 또 이교적 신앙을 기독교 윤리에 대조시킨 극적이면서 음악적인 서사시 「페르발」(1881~95)도 작곡되었다. 그는 조사의 영지인 파르그 지방의 상부 아르데슈에 여름 별장을 지어놓고 여름에는 그곳에서 작곡에 전념하였다. 그의 예술은 깊은 바그너풍의 신념과 세자르 프랑크의 교육과 전통 위에 뿌리박고 있다.

독일 시인들의 시에 작곡하는 등 독일예술에 대한 깊은 경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에 내포된 프랑스적 요소의 중요성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쉴러의 시에 의한 독창, 합창, 관현악을 위한 극적고담 「종의 노래」로부터 3년 후에 씌어진 「프랑스 산사람의 노래에 의한 교향곡」의, 청징함이 깃든 주제와 상쾌한 관현악법에는 영낙없는 프랑스인과 베를리오즈의 관현악법의 전통을 찾아볼 수 있다. 관현악 「산의 여름날」「지중해 다면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차차 프랑스적이 되어가면서 100곡을 넘는 작품을 썼다. 처음에는 다소 생경하고 딱딱하기는 했지만, 항상 마음의 청징을 나타낸 그의 음악은 해를 거듭할수록 단순하고 보다 힘차게 되었다. 솔직함과 함께 늙지 않는 젊음이 여기에 있다. 현악4중주곡, 피아노3중주곡, 관악기와 피아노를 위한 5중주곡, 갖가지 소나타, 그밖의 실내악, 피아노곡, 가곡, 종교적 합창곡 속에 그것을 찾아볼 수 있다.

댕디는 이윽고 국민음악협회 감독을 맡게되어 프랑스 음악에 깊고도 장기간에 걸친 영향을 주었다. 다시 그가 오르가니스트인 길만과 작곡가 샤를르 보르도와 함께 창설한 사립음악원 스콜라 칸토룸의 관리를 맡고부터는 그의 영향력은 더한층 커졌다.

이론가로서는 「작곡법 강의」, 저작가로서는 「베토벤」등의 뛰어난 저술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가장 주의해야 할 그의 일면인 학구로서의 진면목은 모두 이 「작곡법 강의」속에 구체화되어 있다. 그리고 공상이나 꿈이 없는 그의 음악이 한 면으로서는 이 학구적인 정신과 태도의 귀결임을 알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