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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Leasure I

절벽 끝 바다 위를 달리는 길, 헌화로

넘실대는 파도를 감싸 안고 바위 병풍을 두른 길. 한반도 땅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도로인 헌화로는 아름다운 여인의 아주 오래 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강릉의 아담한 포구 심곡항과 금진항을 찾았다. 작은 고깃배가 드나드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 사이로 꼬불꼬불하게 나 있는 길이 헌화로란다. 한쪽은 무너져내릴 듯 아쓸아쓸한 기암절벽이고, 다른 한쪽은 금방이라도 파도가 길 위로 올라올 듯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바다이다.



바위 병풍을 두르고 바다를 감싸 안다

한반도 땅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도로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실제로 굽이굽이 해안선을 따라 난 길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마치 바다 위를 달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헌화로의 진수를 맛보기 위해 정동진 해변에서 모터보트를 탔다. 자동차를 타고 스치면서 보았던 해안의 암초와 기암절벽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암초 사이를 아쓸아쓸하게 지나는 동안 자연이 빚어놓은 멋진 예술품에 빠져 평소에 많던 겁도 상실(?)해 버렸다. 정동진에서 헌화로까지 이어지는 해안단구가 유명하다는 것은 이곳에 와서야 알았지만 금방 고개가 끄덕여졌다. 각기 다른 시대를 품은 다양한 지층이 하나의 몸을 이뤄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아쉬운 점은 헌화로의 길이가 2.4km밖에 안 된다는 것이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헌화로를 걸어서 둘러보는 것도 또 다른 맛이기 때문이다. 심곡항에서 걸어서 헌화로로 들어서니 입구에 절벽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돼 있었다. 나무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찼지만 한숨을 돌리고 싶을 즈음에 확 트인 전망과 함께 아담한 정자가 나타났다. 헌화정이다. 숨을 크게 쉬면 헌화로와 동해를 한꺼번에 안아보는 느낌! 직접 와 보지 않으면 맛볼 수 없을 것이다. 헌화정은 특별한 일출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는다고 한다.


수로부인의 미색에 바다도 반하다

다시 심곡항으로 내려와 헌화로로 들어섰다. 길 양쪽으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좋을 듯하다. 주변의 경관도 아름답지만 아기자기한 얘깃거리도 많아서다. 절벽 쪽에 있는 자포암과 합궁골은 일출을 보며 자녀를 구하는 기도를 올리던 곳이라고 한다. 합궁골 꼭데기는 옛날 기우제를 지낸 곳이란다. 합궁골의 신력이 자녀를 점지하고 비를 내려준다고 믿었던 터다.

동해 앞바다의 신령한 힘은 삼국유사의 <해가>와 <헌화가>에도 나와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신라 성덕왕 시절 강릉 태수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이다. 빼어난 미인이었던 수로부인은 강릉으로 오던 바닷가 길에서 물신에게 납치를 당한다. 순정공과 일행이 수로부인을 되돌려 받기 위해 물신에게 부른 노래가 <해가>이다.

삼국유사의 <해가>와 마찬가지로 <헌화가>의 배경도 강릉으로 올라오는 바닷가 길이다. 수로부인을 위해 한 노인이 절벽 위의 철쭉 꽃을 따다 주면서 <헌화가>를 불렀다는 기록이 남았다.

원래 헌화로는 군사 지역이라 민간인이 드나들 수 없던 곳이었다고 한다. 1998년 바다를 메워 도로가 생기자 관동대학교의 정인화 교수가 제안한 ‘헌화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장엄하게 드리운 기암 절벽과 마치 바다에 떠 있는 듯한 도로가 <헌화가>의 배경과 꼭 들어맞기 때문이다.

헌화로에서 정동진역까지 가는 길은 차로 15분.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인 정동진역만큼 바다와 가까운 길인 헌화로는, 동해의 설화를 품고 있어 더욱 매력적이었다.

<경향닷컴 이윤정기자 yyj@khan.co.kr>

<가는 길>
헌화로에 가기 위해서는 영동고속도로로 가다가 동해고속도로로 진입해야 한다. 동해고속도로에서 옥계 IC로 나와 강릉방면 7번 국도를 탄다. 낙풍교를 통과한 후 금진항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헌화로에 오를 수 있다.

<숙박>
금진항 맞은 편에 e블루팬션빌리지(033-534-0138)에서는 방에서 바다 일출을 직접 볼 수 있다. 가격은 시기에 상관 없이 평당 만원을 받는다. 팬션 형식으로 운영되고 시설이 좋기 때문에 주말 숙박을 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맛집>
금진항 맞은 편 오르막길을 끝까지 올라가면 금진온천(033-534-7397) 건물이 보인다. 미네랄이 다량 함유된 해양심층수로 온천을 한 뒤, 2층에 자리한 스톤커피(033-534-7398)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다과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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