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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Leasure I

꼭꼭 숨은 꽃구경 명소

쉬엄 쉬엄… 봄꽃들의 수다 들어보세요
꼭꼭 숨은 꽃구경 명소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parking@munhwa.com

지리산 자락 구제봉 중턱에 자리 잡은 산간마을인 경남 하동의 먹점마을은 이즈음 매화로 꽃대궐을 이루고 있다. 먹점마을의 매화는, 잘 정비된 매실농원에 빽빽하게 꽃을 피우는 섬진강 건너 전남 광양 쪽의 매화와는 달리 휘어진 길과 오래된 집, 그리고 다랑이밭이 꽃과 함께 어우러진다. 먹점마을에 사는 한 초등학생이 매화꽃 흐드러진 길을 따라 하교하고 있다.
상상해오던 것과 실제 당도했을 때의 느낌이 다른 곳이 간혹 있습니다. 아름다운 풍광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기대하고 찾았던 여행지가 막상 도착하고 보니 상상과는 달라 실망스러웠던 경험, 아마 몇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그럴 때의 허탈함이라니…. 그중 짜증스러운 게 조용한 풍경을 기대하며 찾아갔던 여행지가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는 것입니다. 한적한 봄 여행을 꿈꾸다가 온통 밀려드는 차량들로 도로 위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을 만나는 것만큼 짜증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요.

이렇듯 인파로 뒤덮인 여행지는 대개 ‘시간을 딱 맞춰서’ 찾아가야 하는 곳들입니다. 피크 시즌의 여름 휴가지도 그렇고, 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룬 내장산도 그렇습니다. 봄꽃 여행도 마찬가지지요. 봄이면 매화와 산수유, 벚꽃이 순서대로 화려하게 피어나는 섬진강 일대의 이름난 관광지들은 북새통을 이룹니다. 밀려든 관광객들로 거리는 붐비고, 길은 온통 주차장이 됩니다. 장사치들의 좌판이 어지럽게 펼쳐지고, 귀에 거슬리는 트로트 음악까지 쿵작거립니다.

그건 사람들이 다들 관성처럼 이름난 관광지만을 찾아가기 때문입니다. 산수유라면 죄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 상위마을을 찾아가고, 매화라면 전남 광양시 다압면 청매실농원 앞에 줄을 길게 서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디 꽃이 그곳에만 있으려고요. 인파로 미어터지는 이런 곳들보다 산수유와 매화가 더 아름답게 피어나는 고즈넉한 마을이 있습니다.

그런 마을들을 돌아봤습니다. 호젓하게 봄꽃을 보러 섬진강에 간다면 다들 바쁘게 가닿는 지름길을 놔두고 지리산 도로를 따라 넘어가는 것이 낫지 싶습니다. 바쁘게 달려가는 쭉 뻗은 고속도로나 국도를 버리고 연두색 봄이 막 당도한 지리산의 품으로 들어 쉬엄쉬엄 가는 길. 꽃구경이란 잰걸음보다는 이렇듯 느긋하게 걷는 것이 더 맞춤하답니다.

그렇게 당도한 섬진강변에서 꽃구경인지 사람 구경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몰리는 곳 말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의 고즈넉한 정취를 호젓하게 만끽할 수 있는 그런 곳들을 찾아봤습니다. 산수유 꽃들이 마치 수채화물감처럼 번지는 마을. 전남 구례군 원촌리 현천마을입니다.

지리산 온천 부근의 상위마을은 산수유 구경을 나선 행락객으로 북적북적합니다만, 지척에 있는 현천마을은 가득 고인 봄만 출렁거릴 뿐 고요합니다. 마을 앞 저수지는 노랗게 핀 산수유꽃을 거울처럼 비추고, 황토흙을 이겨 바른 토담집 처마에는 봄나물이 볕을 받아 말라가고 있습니다. 이뿐인가요. 대숲 울창한 마을 뒤 언덕 위의 전망대에 오르면 노란 산수유꽃이 안개처럼 마을을 휘감은 모습을 볼 수 있답니다.

경남 하동의 먹점마을은 자연스럽게 마을과 어우러진 매화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좌판에다가 트로트 가락으로 흥청거리는 광양 쪽의 매실농원들은 산자락을 다 매화나무로 뒤덮은 과수원에 가깝지만, 먹점마을의 매화는 오래된 집들과 굽어진 길, 누추한 계단밭과 함께 산수화 같은 풍경을 빚어냅니다. 광양의 매화가 화려한 도시처녀 같다면, 이곳 먹점마을의 매화는 깊은 산골의 순박한 시골처녀 같은 느낌입니다.

이즈음 봄꽃들로 꽃대궐을 이룬 남도에 간다면 이렇듯 발길이 덜 닿은 곳들을 찾아보시지요. 북적거리는 관광지에서 벗어나 조용한 시골마을 돌담을 기웃거리며 봄꽃들의 수런거림을 들어보시지요.

구례·하동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