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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선진화 막는 낡은 의료법. 돈 쓰러 오겠다는 아랍 부호 환자 까다로운

의료 선진화 막는 낡은 의료법 ④·끝 의료관광, 출발

은 좋았지만 [중앙일보]

2009.12.18 03:27 입력 / 2009.12.18 04:11 수정

돈 쓰러 오겠다는 아랍 부호 환자 까다로운 비자 절차에 발길 돌려

경기도 가평군 청심국제병원은 올 4월 외국인 환자 입국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뇌 질환으로 안면근육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러시아 환자가 입국이 거부됐기 때문이다. 이 환자는 관광비자로 입국했는데, 영어가 서툰 탓인지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지 못했다. 병원 직원이 인천공항에 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입국할 수 있었다. 이 환자는 “한국에서 유명한 병원인 줄 알고 왔는데 속았다”며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비자 문제가 외국인 환자 유치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고자 5월 장기(1년), 단기(90일) 의료용 전문 비자를 도입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가 많다. 불법체류 비율이 높은 나라에 대해 비자 발급이 매우 까다롭다. 5~8월 발급된 장기 비자는 43건, 단기 비자는 483건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는 올해 5만 명 정도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중 의료 비자를 받은 사람이 1~2% 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외국인 환자 유치 업체인 닥스투어 우봉식 대표는 “장기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 대부분의 환자가 관광비자로 들어온다”며 “건강검진을 받고 이상이 발견됐을 때 한국에서 비자를 연장하는 게 쉽지 않아 본국에 갔다가 재입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조홍석 과장은 “미국이나 일본 환자는 비교적 쉽게 비자를 내 주지만 중동이나 동남아 환자에게는 그렇지 않다”며 “가족들과 함께 치료 겸 쇼핑을 오려던 아랍 부호들이 까다로운 비자 발급 절차에 실망해 태국과 싱가포르로 발을 돌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나 태국은 출입국관리소가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으로 출장 가 비자를 연장해 준다는데 우리가 경쟁이 되겠느냐”고 덧붙였다.

정부는 2013년까지 20만 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목표 달성은 미지수다. 손발을 묶는 규제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으로 유치 대상을 제한한 점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해외 동포 중 영주권자는 대상이 아니다. 이들을 알선하다 적발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전체 병실의 50%를 다인실로 제한한 규정도 문제다. 외국인들은 1인실을 주로 이용하는데, 1인실을 늘리려면 다인실도 같이 늘려야 한다. 또 몇몇 병원이 외국인 전용 병원을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는데 여기에다 필요도 없는 다인실을 만들어야 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또 44개 대학병원이 전체 병상의 5% 이내에서만 외국인 환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조항이 앞으로 걸림돌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인하대병원 건강검진센터 윤동훈 과장은 “외국인 진료 특성을 무시하고 국내 병원과 똑같이 4~6인실을 절반 이상 갖춰야 한다거나 병상 수가 일정 기준을 밑도는 병원은 자기공명영상촬영(MRI) 장치 등을 설치할 수 없게 한 규정을 외국인 전용 병원에는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권용진 교수는 “해외환자 유치에 앞서 외국인 의사를 먼저 데려와야 하는데 외국인 의사들은 국내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며 “초청기관에서만 제한적으로 진료를 하는 임시 면허 발급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대 의대 선경 교수도 “외국인 교수가 병원을 오가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홍보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안혜리·강기헌 기자, 박태균 식품의약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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