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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Gallery

사군자의 멋을 찾아서 ....




홍매 대련(紅梅 對聯)
우봉 조희룡(又峰 趙熙龍, 1789∼1866)
조선, 19세기 중엽
종이·담채
각145.0×42.2cm


조희룡의 대표작으로, 지그재그로 구부러진 굵은 매화 줄기의 일부를 클로즈업하여 화면의 세로 방향에 따라 배치하는 대담한 구성이 돋보인다. 무수히 핀 붉은 매화 송이 외에도 줄기 곳곳에 많은 태점을 찍어 다소 번잡한 느낌을 주는데, 이렇게 꽃이 많고 구도가 복잡한 것은 중국 청대(淸代) 매화도의 영향 때문으로 짐작되지만 확실치는 않다. 화면 내에 조희룡의 관지는 없지만 근대 서화가이자 대수장가였던 김용진(金容鎭, 1878∼1968)이 1947년에 쓴 후제(後題)에서 조희룡의 그림임을 밝히고 있다.

 

 





묵란(墨蘭)
옥산 이우(玉山 李瑀, 1542∼1609)
조선, 16세기 말∼17세기 초
종이·수묵
43.6×30.0cm

이우는 신사임당(申師任堂)의 넷째 아들이자 율곡 이이(李珥)의 동생이다. 시·서·화·금(琴)을 다 잘하여 사절(四絶)이라 불렸으며, 그림은 어머니의 화풍을 따라 초충(草蟲), 사군자, 포도 등을 그렸다. 농담의 변화가 능숙한 필치로 유려하게 그린 난초는 이파리가 방향을 바꿔 꺾이지 않고 길게 뻗어나갔다. 이러한 난법은 중국 원(元)·명대(明代)의 전통을 따른 것으로, 조선중기 묵란도는 대부분 이러한 방식으로 그려졌다. 유례가 적은 조선 중기의 묵란도로서 회화사적 의의가 큰 작품이다.

 

 





향란독무(香蘭獨茂)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조선, 19세기 전반
종이·수묵
26.0×36.0cm


향기로운 난초가 홀로 무성하게 피어 있음을 탄식한 공자의 이야기 가운데 충신(忠臣)에 비유된 난초를 주제로 하여 그린 상징성 강한 작품이다. 김정희는 난초를 치는 것이 가장 어려운데, 그것은 인품이 고고(高古)하여 특별히 뛰어나지 않으면 쉽게 손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김정희 스스로도 배우려고 열심히 노력했으나 남김없이 할 마음을 잃어버려서 그리지 않은 것이 이미 이 십여 년이나 되었으며, 사람들이 요구하지만 일체 못하는 것으로 사절하였다고 말한 바 있듯이 그의 묵란도는 얼마 되지 않지만 모두 고담한 운치가 느껴진다.

 

 





노근묵란(露根墨蘭)
운미 민영익(芸楣 閔泳翊, 1860∼1914)
조선, 20세기 초
종이·수묵
128.5×58.4cm

민영익의 난 그림은 당시 유행하던 대원군의 석파난(石坡蘭) 스타일과는 달리 짙은 먹을 써서 난 잎의 끝을 뭉툭하게 뽑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노근란’이라 하여 뿌리가 드러난 난초를 그렸는데, 이것은 나라를 잃으면 난을 그리되 뿌리가 묻혀 있어야 할 땅은 그리지 않는다는 중국 남송말(南宋末) 유민화가(遺民畵家) 정사초(鄭思肖)의 고사(故事)에서 따온 것으로, 당시 나라를 잃은 민영익 심경이 그대로 토로되어 있다. 화면 곳곳에 안중식(安中植), 오세창(吳世昌), 최린(崔麟, 1878∼1950이후), 이도영(李道榮)이 그림 감상 후에 쓴 글이 빽빽하게 적혀 있다.





국화와 잠자리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1707∼1769)
조선, 18세기
종이·淡彩
22.0×16.0cm

사군자 가운데 가장 늦게 유행한 국화는 18세기가 되어서야 널리 그려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남종화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심사정의 묵국도(墨菊圖)가 가장 이른 예이며, 심사정이 그린 사군자 그림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국화이기도 하다. 심사정은 당대부터 산수보다는 화훼(花卉)와 초충(草蟲)에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이 작품 역시 자신의 장기를 살려 밝고 부드러운 화훼초충도의 분위기를 냈다. 국화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황국(黃菊)과 함께 구기자와 잠자리를 화사한 담채로 그렸다.

 
 


기국연령(杞鞠延齡)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 1861∼1919)
조선, 1913년
종이·담채
143.5×45.5cm

'구기자와 국화가 사람의 목숨을 연장한다’는 제목의 이 작품은 조선시대의 화원(畵員) 가운데 마지막 대가인 안중식이 그린 것이다. 안중식은 조석진(趙錫晋)과 함께 장승업의 화풍을 계승하여 산수, 인물, 화조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기량을 과시하였으며, 구한말과 근대 화단을 이어 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8폭의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에 포함된 이 작품은 상서로운 상징성을 지닌 여러 소재들을 그린 것으로, 대범한 필묵의 효과와 색다른 소재의 구성이 눈길을 끈다.
 

 
 


묵죽(墨竹)
탄은 이정(灘隱 李霆, 1541∼1622)
조선, 17세기 초
비단·수묵
122.8×52.3cm

이정은 세종의 현손(玄孫)으로 시·서·화에 모두 뛰어난 삼절(三絶)로 일컬어졌는데, 특히 묵죽을 잘 그려 조선 제일의 묵죽화가로 칭송되었다. 댓잎의 끝이 가늘고 날카로우며 꼿꼿하게 마무리져 있어 대나무의 고결한 기상이 느껴지는 한편, 가까운 곳의 대나무는 농묵(濃墨)을 써서 분명하게 그리고, 뒤쪽의 대나무는 안개에 싸인 듯 담묵(淡墨)으로 은은하게 표현하여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이정 이후의 조선 묵죽화는 거의 그의 양식을 토대로 하여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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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죽(墨竹)
수운 유덕장(岫雲 柳德章, 1675∼1756)
조선, 1747년
종이·수묵
각119.5×67.5cm

유덕장은 조선초기의 신잠(申潛), 신사임당(申師任堂) 등과 함께 최고의 묵죽화가로 이름이 높았던 유진동(柳辰仝)의 6대손으로, 가문의 전통에 따라 묵죽화에 전일(專一)했던 사대부화가이다. 가전(家傳) 화풍보다는 탄은 이정의 영향을 크게 받아 이정의 화풍을 계승하였으며, 이정, 신위(申緯, 1769∼1847)와 더불어 조선시대의 3대 묵죽화가로 꼽힌다. 유덕장의 묵죽은 이정에 비해 좀더 부드러운 필치를 보여주며, 추사 김정희가 평한 대로 창경(蒼勁)하고 고졸(古拙)한 맛이 있다. 이 작품은 유덕장이 73세 때 그린 만년작으로, 전체는 8폭이지만 일부만 전시하였다.

 
 
 


청죽(靑竹)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
1922년
비단·채색
190.0×143.0cm

김규진은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활동한 대표적인 서화가로, 젊은 시절 8년간 청나라에 머물며 서화를 수련하였고 귀국 후에는 어린 왕세자였던 영친왕의 서법사부로 임명되는 등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그는 행서와 초서, 특히 손수 만든 큰 붓으로 쓰는 대필서(大筆書)에서 특출한 필력을 발휘하였고, 그림은 힘차고 거침없이 표현하는 사군자 등의 문인화에 치중하였다. 그의 묵죽도는 수묵만으로 호쾌하게 그린 것이 가장 전형적인 것인데 비해, 이 작품은 화려한 채색을 써서 아름답고 세밀하게 그린 것이다.

 

  


춘작희보(春鵲喜報)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
조선, 1796년
종이·담채
26.7×31.6cm
보물 782호

김홍도 만년의 대표작인 『병진년화첩(丙辰年畵帖)』중에 들어 있는 작품이다. 이 화첩에 그려진 그림들은 일상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재들을 산수 배경 속에 그리되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도록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대나무 몇 그루와 함께 이리저리 휘어져 자란 매화나무에 네 마리의 까치가 앉아 우짖고 있는 이 작품은, 그림 공부 지침서인 화보(畵譜)의 구도를 본 뜬 것이지만, 미묘하게 농담을 조절하여 풀어낸 필묵과 따뜻하고 서정적인 담채(淡彩)의 표현이 김홍도의 독자적 개성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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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철화매죽문호(白磁鐵畵梅竹文壺)
조선, 17세기
고36.9, 구경14.0, 저경14.1cm

조선 중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조선시대 선비의 곧은 기개를 보듯 기운차게 그려진 그림 맛이 일품인 항아리이다. 대나무와 매화를 따로 나누어 그렸는데, 수묵화(水墨畵)를 그리듯 대담한 필치로 능숙하게 그렸으며, 철화 발색이 자연스러운 농담에서 속도감과 생동감이 느껴진다. 마치 한 폭의 문인화(文人畵)를 보는 듯 하다.

 

 


청화백자사군자문각병(靑華白磁四君子文角甁)
조선, 18세기
고22.9, 구경3.7, 저경9.8×9.8cm

사각병(四角甁)은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새롭게 등장하는 형태로, 그 위에 사군자(四君子)나 풀꽃을 그려 장식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 작품은 그 대표적인 예로, 형태도 깔끔하지만 각 면에 능숙한 솜씨로 그려진 매난국죽(梅蘭菊竹)의 그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엄정하면서도 깔끔한 형태와 그림과 배경의 선명한 색 대비는 강직과 충성을 상징하는 사군자(四君子)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호암 미술관 제공(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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