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페론'(1919-1952)
남미 알젤틴의
'페론' 대통령의 부인인 '에바 페론'은 애칭인 '에비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1919년 '알젤틴'의 대초원(팡파스)의 시골 마을 로스 톨도스(Los Toldos) 에서
농장 주인과 농장의 요리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에바의 어머니는 자신이 일하던 농장주의 사이에서
사생아 다섯을 낳았는데 '에바'는 그중 네번째 아이였다.
15세 때 옷 가방 하나만을 달랑 들고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무작정 상경했다.
1960년대의 영자가 서울역에 갓 내렸을 때 그러했듯이
이 시골 처녀'에바'에게도 낯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생활은
그녀의 고향집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는 곳이었다.
그녀는 하루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옷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지닌 강점이 무엇인지를 먼저 깨달아야했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가 강한 무기임을 알았다.
그녀는 삼류 배우나마 배역을 따기 위해 남자들의 품을 전전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녀의 나이 25세 때
그녀보다 나이가 2배 가령 많았던 육군 대령 '후안 페론'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한 동안 밀회를 즐기다가
곧 두 사람만의 은밀한 방을 구해 장기적인 동거 생활에 들어갔다.
'후안 페론'과 결혼하기 전 그녀는 삼류 연기자 였지만,
'페론'과 결혼하고 남편이 '알젤틴'의 대통령이 되면서
'에바'는 '알젤틴' 공화국의 첫 번째 영부인이 되었다.
'에바'는 일생 동안 가난한 자와 고아와 병자들을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알젤틴'의 국모' 라는 칭호도 얻게 되었다.
그러나 하늘은 '에바 페론'의 영광을 시기했을까,
1952년 '후안 페론'을 만난지10년이 되던해 '에바 페론'은
척추백혈병과 자궁암으로 쓰러지고 만다. 이때 그녀의 나이 34세였고
그녀의 장래식은 국장으로 한 달간 성대히 치러졌다.
그후 '페론'이 카톨릭교회를 섣불리 탄압하다가,
1955년 군부에 의해 쫓겨 망명길에 오름에 따라,
그녀의 시신도 그를 따라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녀가 서거하고 몇십 년 동안 그녀의 시신은 모진 풍파를 겪었다.
이후 '페론'의 죽음으로 대통령직을 승계받은 둘째처'이사벨
페론'은 '에바'의 관을 대통령 관저로 옮겨와 자신에 대한 지지를 확대하고자 했으나,
21개월만에 다시 쿠테타로 물러나고 말았다. 새정부가 들어선 뒤에,
'에바'의 시신은 '레콜레타' 공동묘지의 가족 묘역으로 옮겨졌다.
죽은 지 24년 만의 일이었다.<자료출처: 네이버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