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ssue

[홍헌표의 암환자로 행복하게 살기] [6] 내게 힘을 주는 가족들

[홍헌표의 암환자로 행복하게 살기] [6] 내게 힘을 주는 가족들

  • 기사
  • 입력 : 2011.06.23 23:40 / 수정 : 2011.06.24 09:10

아내 암 소식 전하던 친구 넋나간 듯 말 잇지 못해
3년 전 암 진단받았을 때 아내와 부모님께 차마알리지 못한 기억 떠올라
그래도 버틸 수 있는 힘은 가족의 격려와 사랑

2주 전 친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지난주에 집사람이 장인·장모님과 함께 생선회를 먹은 뒤 속이 아파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정밀검사를 해봐야겠다고…." 암이라고 했습니다. 간에서 종양 몇 개가 발견됐는데, 대장암이 악화돼 간까지 전이됐다고 합니다. 4기라고 했습니다. 늘 여유가 넘치고 농담을 즐기던 친구는 넋이 나간 듯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당장 수술은 안 되고, 일단 항암치료를 받아 효과가 좋으면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눈앞에 닥친 현실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일단 그를 안심시켜 주고 싶었습니다. "병원에서 말하는 3기니 4기니 하는 암의 기수와 10%, 20% 같은 5년 생존율은 수치일 뿐이야. 일단 암을 이긴 사람은 생존율이 무조건 100%가 되는 거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차분히 찾아보자. 좌절하지도 당황하지도 마라, 친구야!"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의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습니다. 얼마 뒤 그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힘들겠지만 아내의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주변 분들의 기도의 힘을 믿습니다. 믿기에 약해지지 않겠습니다. 강하기에 꼭 이겨내겠습니다. ○○○을 응원하는 남편 올림.'

친구 부부를 위해 기도하는 데 문득 2008년 9월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의사로부터 직접 암 진단 결과를 통보받았습니다. 아내가 그해 봄에 직장의 일본지사로 발령받아 두 딸과 함께 도쿄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텅 비는 듯한 충격이 어느 정도 진정된 뒤, 회사 소속 부서의 부장에게 가장 먼저 알렸습니다. 부장은 뜻밖의 소식에 놀라 어쩔줄 몰라했습니다. 아내에게는 차마 전화를 걸 수가 없었습니다. 몇 번이나 휴대전화 버튼을 눌렀다가 취소하길 반복했습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도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날 밤 형님께만 사실을 전했습니다. 아내에게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 것은 그 다음날 밤이었습니다.

일러스트=오어진 기자 polpm@chosun.com
수술을 앞두고 급히 귀국한 아내는 말이 없었습니다. 울지도 않았고 저를 위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땐 참 서운했습니다. '남편이 암에 걸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당시만 해도 아내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지난 5월 조선일보 사보(社報)에 그때의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충격과 걱정보다는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결혼 전 농담처럼 "바람피우는 건 용서해도 아픈 건 절대 용서 못 한다"고 다짐을 받았는데, 그냥 아픈 것도 아니고 암에 걸렸으니…. 용종 몇 개 떼내는 것으로 알았다가 뒤늦게 암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시골의 부모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나깨나 제 걱정입니다. 자식에게 뭘 해줄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미안해하십니다. "잘 먹고 잘 지내니 걱정 마세요. 100살까지 살 테니…"라며 껄껄껄 웃어도 어머님의 걱정은 여전하십니다. 제가 큰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니 저는 가족과 친지에게 큰 상처를 줬습니다. 제가 받은 심적·신체적 고통이야 그동안 몸을 아끼지 않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니 당연하지만, 가족들은 졸지에 제가 져야 할 짐을 나눠지게 됐습니다. 암환자 동호회나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암환자 가족들의 고통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음식은 제대로 챙겨 먹고 있는지,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는 게 암환자 가족입니다. 환자가 행여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함부로 말도 못합니다. 그런 가족을 대하는 환자의 마음도 편할 리 없습니다.

2년간 휴직을 하고 집안 살림을 맡았을 때 아내와 두 딸은 저를 투병 중인 환자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때처럼 사소한 일로 저와 다투고 반찬투정을 하고 집안일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냥 잔소리 많은 '아빠 주부'였습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불안함이 남아있었겠지만 가족들은 거의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 건강에 대한 걱정, 좋은 먹거리에 대한 걱정도 그냥 가볍게 말 한마디 툭 던지는 걸로 그만이었습니다. 때론 야속하기도 했지만, 암환자라는 부정적인 생각 없이 제 스스로 건강관리를 철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덕분이었습니다.

지난 4월 한 신문에 한광옥 민주당 상임고문 부부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폐암에 걸린 한 고문의 부인이 "암 덕분에 함께 지낼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지요. 그런 게 가족의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친구 부부가 "암 덕분에 우리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게 돼 행복하다"고 말하며 희망찬 삶을 만들어가기를 응원합니다.

최일봉 원장 "암환자가 죽는 이유는 죽음의 공포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