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도쿄의 여름
▲ 사이토 아케미
한림대 일본학과 교수
얼마 전, 제사 때문에 일본에 잠시 귀국한 일이 있었다. 하네다(羽田)공항에 도착하니 평소와 다름없는 기내방송이 흘러나왔으나 “여러분, 절전중인 더운 여름입니다만 도쿄(東京) 여행을 즐기세요.”라는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날 도쿄는 30도 이상이나 되는 더운 날이었으며, 장마철이라는 점까지 가세하여 무더웠으나,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절전중인 더운 여름’의 의미가 와 닿지 않았다.
필자는 하네다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귀가 길에는 언제나 버스와 전철을 이용하므로 버스에 올라타자 이내 ‘절전중인 더운 여름’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작년까지는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버스에 올라탄 순간, 서늘하여 춥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올해는 분명 아니었다. 버스 안 온도계는 30도 전후를 가리키고 있었고 너무 더운 지경은 아니었으나 시원하다는 느낌도 없었다. 이런 것은 여태껏 없었던 경험이었다. 또한, 전철 속 풍경도 달라져 있었다. 맨 먼저 밝기가 달랐다. 절전을 위하여 형광등의 절반 정도가 떼어져 있었고 냉방도 28도 설정으로 이전보다 약했다.
그 탓인지 작년까지만 해도 지나치게 강한 냉방 대책으로 가디건, 혹은 얇은 스카프를 두르고 있는 여성이나 긴 팔 재킷에 넥타이 차림의 샐러리맨도 많이 있었으나 올해는 그런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으며 그 대신 여성은 시원한 복장을, 샐러리맨은 반소매셔츠에 노-타이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레스토랑이나 커피숍에 들어가 장시간 있다 보면 추워질 정도로 냉방을 틀어주었던 작년까지의 상황이 거짓말 같았다. 백화점도 절전을 위해 주 1회 정기휴일을 부활시키거나, 도쿄도청처럼 서머타임을 도입하고 각 과별로 냉방 사용시간이 겹쳐지지 않도록 하고 있는 곳도 있다. 또한, 회사에 따라서는 토, 일요일에 업무를 보거나 본거지를 관동(關東)지방에서 관서(關西) 지방으로 옮기는 곳도 있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친구 이야기에 의하면 교실냉방을 28도로 설정하거나 시험주간을 없애고 수업시간에 시험을 실시하는 등, 서둘러 여름방학에 돌입하는 학교가 많다고 한다.
가정에서도 에어컨 설정온도를 높여 절전에 협력하고 있다.
이러한 예는 ‘절전중인 더운 여름’의 일부분에 불과하나, 이는 지난 3월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 재해에 의한 원전사고의 영향에 기인한 것이다.
도쿄전력(東京電力)에서는 오후 1시부터 3시를 냉방사용 피크로, 특히 그 시간대의 냉방사용에 대한 자제를 호소하고 있다.
아시는 바와 같이,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재해 후, 지진과 해일에 의한 원전사고로 인하여 전력부족에 빠지자 도쿄전력 관내에서는 계획정전을 실시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10일 정도로 끝났다.
그러나 그 후, 여름철 전력부족에 대한 염려로 ‘절전’이라는 두 글자는 사람들에게 큰 과제가 되었다. 아침 NHK 뉴스에서는 ‘전력예상’되는 것이 등장하여 그 날의 전력의 수요와 공급 예상 량이 발표된다.
이렇듯 절전중인 도쿄에서는 또한 여러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도 출시되고 있다. 가령, 물에 적셔 목에 감으면 장시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상품, 와이셔츠나 블라우스 위에 간단하게 스프레이만으로 시원해지는 상품, 땀 흡수가 좋은 속옷, 요 위에 깔기만 해도 아침까지 시원하게 잘 수 있는 시트 등, 새로운 상품개발이 한창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여행자에게 있어서는 솔깃한 이야기도 있다.
고급 호텔이 요금을 내리거나, 햄버거의 체인점에서는 더운 여름맞이 아이스 음료를 사이즈에 관계없이 싸게 판매한다는 정보 등이다.
이 여름 도쿄에 가시는 여행자 분은 간편하고 시원한 복장으로 ‘절전중인 도쿄’를 부디 즐겨 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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