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정보

소음사회, 입을 다물면 머리가 열린다

소음사회, 입을 다물면 머리가 열린다

  • 기사
  • 입력 : 2011.08.27 03:07

"증기탕 문을 열면 증기가 빠져나가듯,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미덕이 빠져나간다"

침묵의 추구
조지 프로흐니크 지음|안기순 옮김|고즈윈|359쪽|1만3800원

"심오한 침묵의 경험이 생활에 어떤 이익을 줍니까?" 저자의 질문에 미국 수도원의 한 연로한 신부가 답한다. "침묵하지 못하면 서로 이해하는 능력을 갖출 수 없지요." 각 교구의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이 신부는 "최근 들어 토론으로 결정하는 방법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소음이 결정을 좌우할까 봐." 대신 구성원들에게 명상을 권한다. 한참 후, 다시 모인 사람들의 생각은 대개 바뀌어 있다. "신부님, 밖에 나가서 농장을 이리저리 거닐며 생각해 봤어요. 내가 다른 사람이라면 내 주장대로 일이 결정되었을 때 얼마나 기분이 언짢을까 하고요." 침묵은 우리에게 지혜를 준다.

미국 원주민 아파치족에게는 색다른 관습이 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가 매우 어정쩡한, 구혼이라든가 오랜 별거 후의 재회 같은 상황에서는 대화 대신 침묵을 택한다. 침묵은 어정쩡한 상황을 인정하는 표시다. 침묵을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시간을 회복한다. 하지만 현대인은 모호한 상황에서 대부분 말로 덮어 버린다.

뉴욕 브루클린 도심의 소음 속에 사는 저자의 침묵 찾기 보고서다. '고양이가 소파에서 살포시 내려앉는 소리를 좋아하고' '아침 일찍부터 작업을 서두르는 건설업자를 고발'할 정도로 소리에 민감한 저자는 어느 날 문득 세상은 왜 이리 시끄러운지, 내가 과민한 것인지, 고요함은 과연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자문한다. 그리고 그 길로 극한의 정적(靜寂)과 소음의 전문가들, 그러니까 우주비행사, 의사, 신경과학자, 진화학자, 음향 전문가, 청각장애 예술가, 수도승, 전투병, 교육자, 카레이서, 마케터 등을 찾아 나선다.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비행선 30종으로 2700시간 이상 비행한 여성 우주비행사는 '우주의 침묵을 느꼈던 순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마치 안경을 쓴 것 같았어요. (…) 만물이 순식간에 무척이나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거든요. 사나운 비바람이 그치고 날이 활짝 갰을 때처럼 말이에요."

예전에도 침묵을 찾아나선 이는 많았다. 명상 수도승의 선구자는 4세기에 고향을 떠나 사막에 살았던 이집트인들. 5세기 포티키의 주교 압바스 디아도쿠스는 "대중 증기탕 문을 열어 놓으면 증기가 빠져나가 장점이 사라지듯,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열린 입으로 미덕이 빠져나간다"고 했다. 어떤 은둔자는 3년간 입에 돌을 물고 지낸 기록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세상은 소음의 문화로 요란하다. 매장들은 음악으로 분위기를 조작한다. 반향과 메아리, 증폭과 공명은 인간의 감정을 끌어올리고 이성을 되도록 억제한다. 쇼핑몰에서 고객들은 빠르고 경쾌한 음악에 따라 바삐 움직인다. 식당에서도 느린 음악이 깔렸을 때 식사 시간은 평균 56분. 보통 때의 45분과 대조를 이룬다. 음식점들은 식탁 회전율을 음악의 박자와 음량으로 조정한다.

소음은 '사회적'이다. 소음 방지 운동가인 데오도르 레싱은 "경제적·사회적 약자들은 종종 소음을 만들어서 세상에 대한 물리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애쓴다"고 봤다. 아르헨티나의 '냄비 시위대'는 양철 냄비, 프라이팬, 국자 등을 두드리며 구호를 외친다. 히틀러의 권력 장악 비결을 화술에서 찾는 이도 있다. 분노를 야기하는 주파수가 220dB인데 '히틀러 음파'는 228dB이었다.

그럼에도 침묵은 애써 추구할 만한가. 인류의 조상은 일찍이 침묵을 선호했다. 위협을 간파하고 먹잇감의 소리를 좀 더 잘 듣기 위해서였다. 고요 속에서 평정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환경에 반응하는 능력을 최적화할 수 있다. 오늘날 신경과학은 침묵이 생산성 풍부한 휴식이라고 본다. 명상을 실천하는 사람의 두뇌 작용은 보통 사람보다 효율적이다. 신경과학자 비노드 메논은 "소리 사이에 침묵이 흐르면서 두뇌가 다음 소리를 예측하려 애쓸 때 두뇌 활동이 절정에 이른다. 시의적절한 침묵은 금과 같다"고 했다. 저자는 현대인이 이런 침묵 능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고요함은 희귀 자원 신세가 되었다고 개탄한다.

침묵이란 주제를 두고 이리도 긴말이 필요할까. 묵직한 책을 펴들 때만 해도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읽고 나면 한동안 말 없이 자문하게 된다. 나는 주변의 소란스러움과 너무 쉽게 타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원제 'In Pursuit of Sil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