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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이 만난 사람] 국내 최초 범고래·향고래 촬영한 '고래박사' 손호선

[최보식이 만난 사람] 국내 최초 범고래·향고래 촬영한 '고래박사' 손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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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1.08.29 03:07 / 수정 : 2011.08.29 14:17

"범고래 등지느러미가 물위로 쑤욱 솟아… '고래 발견!' 배 접근시켜"

고래 수컷을 먼저 잡으면 암컷과 새끼는 도망간다 새끼 잡으면 어미는 머물러
브라이드고래 1억원 낙찰 한국계 귀신고래는 사할린에 '모비딕'의 모델은 향고래

서귀포 바다에서 어선 그물에 걸려 죽어 있는 브라이드고래<사진>가 발견됐다. 길이 8m16㎝, 둘레 4m였다. 해경은 불법 포획의 흔적이 없어 선장에게 유통허가 증명서를 발급했다. 고래는 1억원에 경매됐다.

사흘 전, 양양군 해변으로 길이 2m, 둘레 1m인 돌고래가 죽은 채로 파도에 떠밀려왔다. 최초 신고자에게 넘겨져 수협위판장에서 90만원에 거래됐다. 닷새 전에는 주문진 바다에서 밍크고래가 그물에 걸려 죽었다. 길이 4.8m, 둘레 2.4m, 무게 1t이었다. 3800만원에 팔렸다.

"우리 연구원들은 배 타고 고래 조사를 나가서 일주일째 겨우 한 번 고래를 봤는데…."

'고래박사' 손호선(43)씨는 약간 겸연쩍어했다. 그는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의 연구관이다. 국내 처음(2006년)으로 밍크고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래고기 간판을 단 음식점이 즐비한 울산시 장생포항에는 비가 살살 뿌렸다.

―우리 바다에는 고래가 얼마나 많이 살고 있나?

"서해의 상괭이(돌고래의 일종으로 약 1m 길이)가 약 6만 마리로 가장 많다. 하지만 수면 위에 잠깐 나왔다가 물속으로 숨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밍크고래는 1만6000마리로 추정된다. 제주 연안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는 약 110마리쯤 된다. 고래 종류는 80여종 되지만, 우리 바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은 5종 정도다."

고래는 이빨고래류와 수염고래류로 크게 나눠진다. 영화 '프리윌리'에 나오는 범고래와 향고래 등은 이빨고래류다. 밍크고래, 브라이드고래, 귀신고래, 대왕고래 등은 수염고래류다. 입천장에 이빨 대신 빗살 같은 각질(수염)이 있다.

―밍크고래는 어민들 사이에 '바다의 로또'로 불린다. 그물에 걸리면 횡재한다는 뜻이다.

"사실 밍크고래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아무 먹이나 잘 먹어 전 세계 어디서나 분포한다. 회유(回遊) 중에 우리 연안을 거쳐갈 뿐이다. 수염고래류 중에서는 가장 작다."

―고래는 지구상에서 존재해온 가장 큰 동물이 맞나? 공룡보다도 더 크다는데.

"길이로는 더 긴 공룡이 있을지 모르나 무게와 부피로 따지면 고래보다 큰 동물은 지구상에 존재한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큰 놈은?

"대왕고래로 길이 32.5m, 체중 190t으로 보고됐다."

―그런 자이언트 고래가 동해에서는 왜 발견되지 않나?

"이들이 즐겨먹는 동물 플랑크톤이나 수면에 가까이서 떼지어 다니는 작은 어류들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남 홍도 바다에서 범고래(이빨고래류로 강한 포식자임)가 딱 한 번, 포항 앞바다에서는 향고래 무리가 두 번 목격된 바 있다."

손호선 박사는“고래 등지느러미의 사진을 찍어놓으면 모양이나 상처로 개체별 식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장생포항=최보식 선임기자
―소설 '모비딕'의 실제 모델은 1800년대 중반 포경선 '에식스'호를 공격한 향고래다. 원래 청색 계통인데, 심해에서 대왕오징어 등을 잡아먹기 위해 싸우면서 흡판 등에 의해 표면이 허옇게 얼룩덜룩해진다고 나와있다.

"내가 본 향고래는 짙은 청색이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피부에 상처가 생겨 흰빛을 띤다."

―옛날에는 기름을 짜내기 위해 향고래를 잡았다. 고래를 잡으러 나가면 1년 이상 바다에서 보냈다고 한다.

"향(香)고래의 영어 표기는 '스펌 웨일(sperm whale)'이다. 해변에 숨진 채 떠밀려온 향고래의 머리 부위에서 흘러나온 기름 덩어리가 정액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석유가 발견되기 전까지 양초·등잔 등에 쓰였다. 고래 뱃속에 들어 있는 '용연향'은 값비싼 향수 원료였고, 고래 수염은 코르셋 재료로 쓰였다."

―70살까지 사는 향고래 어미는 새끼들이 13살이 될 때까지 젖을 물린다고 하는데.

"범고래와 향고래는 모계사회를 이룬다. 어미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무척 길다. 암컷은 어른이 되더라도 어미와 같이 생활한다. 수컷의 경우 4~12살이 되면 어미를 떠나 다른 수컷들과 무리를 이룬다. 13살이라는 숫자는 아마 수컷이 어미를 떠나는 나이일 것이다."

―고래 수컷은 집단 내 경쟁자와의 싸움에서 질 경우 집단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떠돈다고 들었다.

"수컷들은 교미 시기가 되면 암컷 무리로 돌아와 교미를 한 뒤, 다시 방랑 생활을 한다. 이 시기에 수컷끼리의 경쟁에서 밀리면 홀로 떠돌 수밖에 없을 것이다. 늙은 수컷도 혼자서 떠돌아다니는 경우가 많다."

―사자(獅子)도 모계사회를 이루며 수컷은 무리에서 떨어져나간다.

"아, 위엄 있는 포유류는 그런가."

―고래떼를 발견했을 때 새끼를 잡으면 어미까지 모두 잡을 수 있다는데.

"나이든 고래잡이에게서 그런 얘기를 들었다. 수컷을 먼저 잡으면 암컷과 새끼는 도망간다. 새끼를 잡으면 암컷은 머물러 있고 수컷은 그 암컷 때문에 달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래연구소에서는 '한국계 귀신고래'를 찾기 위해 1000만원의 포상금까지 내걸었다고 들었다.

"포상금은 예산 문제로 2008년 한 해 행사로 그쳤다. 우리 연구원들도 찾아다녔으나 지금껏 성과는 없다."

'한국계 귀신고래'를 처음 학계에 보고한 사람은 영화 '인디애나존스'의 모델이었던 로이 앤드류스(1884~1960)다. 고비사막에서 공룡알을 파냈던 탐험가이자 고고학자였다. 그가 1912년 초 울산에 와서 귀신고래 연구를 했고, 골격 표본 하나를 'Korean Grey Whale(한국의 회색고래)' 이름으로 미국자연사박물관에 보냈다.

―한국계 귀신고래는 완전히 사라졌나?

"귀신고래는 북미 대륙연안을 따라 서식하는 '캘리포니아계'와 동아시아 대륙과 일본 연안에 분포하는 '한국계'로 나눠진다. 귀신고래는 유영속도가 느리다. 이 때문에 포획하기가 쉬웠다. 우리나라에서 목격된 귀신고래는 1977년 1월 3일 울산 방어진 바다에서 남으로 내려가던 두 마리가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한국계 귀신고래는 최근 사할린 북부 바다에서 약 130여 마리가 목격됐다.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들이 약 2만마리까지 회복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울산에서는 '고래바다여행선'을 운영해 외지관광객을 끌어들인다. 고래를 볼 수 있는 특정 지점이 있나?

"고래의 이동 길목이거나 서식지, 먹이가 많은 곳이다. 울산 앞바다는 동해에서 대륙붕이 가장 넓은 해역이다.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서 예전부터 고래가 많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올 8월에는 딱 한 번 고래를 봤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연안에 고래 수가 줄어들고 있나?

"비교할 만한 과거 데이터가 없다. 국내에서 고래연구가 실제 이뤄진 것은 10년밖에 안 됐다. 연구소에서 고래를 전공한 인력은 정규직 3명, 비정규직 4명이다."

―고래연구소에서는 연구 목적으로 고래를 잡는 걸로 알고 있다.

"포획 허가는 갖고 있다. 고래 식성(食性) 연구를 위해 몇 마리 잡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연구소가 고래를 죽인다는 여론 때문에 중단했다. 올해부터 산 채로 잡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참돌고래의 도약.
―고래 표본 없이 어떻게 연구를 하나?

"바다에 나가 '목시(目視) 조사'를 통해 개체수와 생태를 파악한다. 해 뜨기 30분 전부터 해 지고 30분 후까지 조사하는데 허탕치는 날이 많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물 보러 간다'고 한다. 고래가 보이면 등지느러미를 찍어 카탈로그를 만든다. 등지느러미의 모양이나 상처로 개체별 식별이 가능하기 때문이지만, 사실 고래에서 포착할 수 있는 것은 그 부위밖에 없다."

―불법 포획 혹은 그물에 걸린 고래를 사 와서 연구할 수 있지 않나?

"연구보다 표본을 구하는 게 일이다. 1년에 약 100마리쯤 고래가 혼획된다. 연락이 오면 고래 해체 작업을 기다려 표본을 구한다. 올해부터는 거래되는 고래의 표본을 우리 연구소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지만 제도 시행 초기라서…."

―연구를 위해 고래 배설물을 채취한다고도 들었다.

"고래의 먹이 습성이나 장(腸) 내 세균 종류를 파악할 수 있다. 또 호르몬 변화를 측정해 교미 시기를 추정한다. 우리 연구원 중에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여름마다 사할린 연안에 조사를 나가 한국계 귀신고래의 배설물을 채취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고래연구소의 통산 연구 실적은?

"…우리 고래연구는 바다에는 고래 수가 잡아도 될 만큼 많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시작됐다. 하지만 국제사회 흐름으로 상업적인 포경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요즘 시절에 먹기 위해 꼭 고래를 잡아야 하나?

"일제강점기부터 고래를 먹기는 했지만…. 어민들은 고래 때문에 피해가 많다고 한다. 오징어배는 집어등(集魚燈)을 켜 오징어를 모은다. 이때 돌고래가 오징어떼를 보고 나타난다. 그러면 오징어는 다 흩어지고, 그날 밤 공친다. 같은 먹이를 두고 어민과 고래가 경쟁을 하게 된 것이다. 또 돌고래들이 연안에 쳐놓은 그물을 망쳐놓는다."

―1986년 이래 전 세계에서 고래를 잡는 것은 금지됐다. 하지만 노르웨이·아이슬란드· 일본은 포경을 한다. 그런 예외는 왜 있나?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는 포경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인근 해역에 워낙 고래가 많아 일정 숫자를 잡아도 영향이 없어 인정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고래를 잡은 뒤에는 보고서를 제출한다. 일본은 '과학조사포경' 명목으로 매년 수백 마리 잡는다. 연구 종료 후 시장에 내다팔아 비판받는다. 미국과 러시아는 에스키모인 같은 '원주민 생존포경' 이름으로 한다."

―서울대공원에서 '쇼'를 하고 있는 돌고래가 불법포획된 것이라 말들이 많다.

"이는 제주도의 남방큰돌고래로 110마리밖에 안 돼 적극 보호해야 할 종이다. 다만 서울대공원이 불법 포획 사실을 몰랐을 수는 있다."

―바다로 다시 풀어줘야 하나?

"포획된 지 100일 이내라면 야생적응 훈련 없이 방류가 가능하다. 1년 이상 갇혀 있었다면 놓아주는 것 자체가 문제 있다."

―고래 종류에서 돌고래만 사육 훈련이 되는 이유가 있나?

"대부분 고래는 사람의 접근이 어렵다. 큰돌고래가 사람과 가장 친한 편이다. 돌고래를 잡아서 야생에서 일정기간 지켜보다가 온순한 놈만 수족관으로 옮긴다. 수족관에서 성격 좋은 돌고래를 우리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고래는 덩치와 먹이 비용 때문에 사육이 어렵다."

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범고래와 향고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신화(神話)처럼 숨을 쉬는 고래가 현실로 다가온 것처럼.

"2001년 전남 홍도 앞바다에서 범고래의 등지느러미가 물위로 쑤욱 솟아오르는 것을 봤다. '고래 발견!'하고 외치며 그쪽으로 배를 접근시켰다. 큰 수컷은 멀리 떨어져서 가까이 오지 않는데 호기심 많은 새끼가 배 근처로 다가오자 어미가 따라왔다. 범고래가 우리 연안에서 목격된 게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2004년에는 파도가 심한 날인데 향고래가 물을 뿜는 장면을 처음 사진찍었다. 새끼까지 데리고 있는 무리였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가장 신나는 순간이었다. 결혼하던 날을 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