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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문물

정조대도 못 막는 아내의 유혹

정조대도 못 막는 아내의 유혹

정조대를 생각하면 흔히들 중세 유럽을 떠올리지만
사실 정조대는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는 성폭행으로부터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두꺼운 가죽으로 만든 정조대를 여성에게 입혔다.



또한 그리스는 노예 제도가 있었기에 여성 노예를 관리하는 수단으로
여성 노예가 임신을 하지 못하게 정조대를 채워 통제하였다.

중세 유럽에서는 유부남의 외도는 허용되었지만
유부녀의 외도는 법으로 엄하게 금지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만일 여자가 외간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다 들키면
그 자리에서 남편이 죽인다 해도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사랑 앞에선 죽음도 두렵지 않은 것일까.
아무리 겁을 줘도 여자들의 불륜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비밀스럽고 지능적으로 변할 뿐이었다.

그래서 불안해하는 남자들을 위해서 등장한 것이 금속으로 된 정조대였다.

음부를 감싸는 판의 앞 뒤에 생리 해소를 위한 작은 구멍이 두 개 뚫려있고
그 구멍의 주위는 날카로운 가시 모양으로 성행위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아래 인터넷을 검색하여 얻은 다양한 정조대의 이미지이다.



정조대가 생기게 된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지지를 받고 있는 설은
중세 유럽 남자들이 십자군 전쟁에 출정할 때
집에 있는 아내의 외도를 막기 위하여 고안한 것과
전세계를 누비며 무역을 하던 이탈리아 상인이
장기 출장을 갈 때 아내의 바람기를 염려하여 만들었다는 것이다.

십자군 전쟁 기간 중에는 특히 전쟁터에 나가는 기사들이
부인에게 채울 목적으로 큰 수요의 정조대가 만들어졌다.

초기의 정조대는 만드는 기술이 있을 뿐 푸는 방법은 없어
정조대를 한 부인들은 가려움에 은밀한 장소를 문지르다가
피부에 물집이 생기고 심지어 욕창이 나서 고생했다고 한다.

또한 정조대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남편이 전쟁에서 전사하면
부인은 불가피하게 충절을 지키며 살다가 죽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정조대의 자물쇠를 푸는 기술이 비밀리에 퍼졌고
아내에게 정조대를 입히고 튼튼한 자물쇠를 잠근 남편들은
열쇠를 주머니 속에 넣고 안심하며 출장과 전쟁을 떠났지만
아내들은 장인을 불러 띠를 푼 뒤에 맘껏 놀아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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