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남과 북> 주제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평화의 댐 "자유의 종"
평화의 댐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 영화 "남과북" 주제가 -
작사 : 한운사 / 곡 : 박춘석 / 노래 : 곽순옥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에 빛나는 눈 고운 마음씨는 달덩이같이 이 세상 끝까지 가겠노라고 나하고 강 가에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부드런 정열에 화사한 입 한번 마음주면 변함이 없어 꿈 따라 님 따라 가겠노라고 내 품에 안기어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 권성희 [곽순옥,1964]
故 한운사 (韓雲史) : 본명 (한간남)韓看南
(1923. 1. 15. 출생 ~ 2009. 8. 11. 작고)
충북 괴산에서 출생, 일본 중앙대학, 제국대학에서 수학, 서울대학교 문리대 불문
학과 중퇴, 1948년 중앙방송국에 방송극 「날아간 새」로 데뷰하여 한국일보 문
화부장, 방송문화연구원장, 방송작가협회이사장 역임. 방송작가로 활동하면서 방
송문화상, 대종상, 청룡상, 한국연극영화상 등 수상. 「빨간 마후라」,「현해탄은
알고 있다」,「남과 북」,「 하얀 까마귀」,「잘 돼갑니다」등이 있으며, 가요 ,
'빨간 마후라',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등을 작사해 작사가로도 활동하였다.
1966년부터 방송작가 이사장 5차례 역임, 2002년에는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의
방송인 명에인 전당에 헌정되었으며, 2006년에는 한국 최고의 영화인 35인 속에
스태프 분야 8인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생전에 드라마, 영화, 소설 등 100여편을 남기고 2009. 8. 11.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향년 86세.
출처 : 다음영화 및 네이버 백과
영화 <남과 북>의 한 장면
- 6.25 전쟁으로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과 재회의 아픔을 그린 영화 -
천만 이산가족 찾기 방송
1983. 6. 30. 밤 10시 15분 KBS방송국은 휴전 30주년 기념 이산가족찾기 2시간짜리
특집방송으로 50여쌍의 이산가족을 찾아줄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천여명의 신청자
가 몰려오고 첫 상봉자 신영숙, 동숙자매를 찾으면서 수많은 이산가족들은 물론 일
반인들에게 대단한 호응과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동안 전쟁후 접어 두었던 가족의
상봉을 고대하던 이산가족들의 열화와 같은 상봉의 꿈을 갖게 하여 방송국 주변은
사람을 찾는 인파가 넘치고 건물 벽은 물론, 사람이 볼 수 있는 장소는 이산가족을
찾는 벽보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였다.
당시 사회자 이지연씨를 비롯하여 많은 아나운서 등 방송인들은 하루 14 ~16시간
을 연 138일간 방송하여 약 10여만명의 신청인 가운데 1만 1백 80여명이 이산가족
재회의 기쁨을 찾게 되었다. 당시 허현철, 현옥 남매 등 30 여년간 헤어진 슬픔이
복받혀 통곡하는 모습은 많은 이 들의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게 하였다.
지금 북한과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관계의 사정에 따라 중단되거나 짧은 만남뒤의
긴 이별이 더욱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무쪼록 이산가족 재회와 함께 살 수
있는 날이하루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
★ 그리고 20년후 2003년 허현철.현옥남매 취재. 다시보기를 하면 그 때의 감동을
다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아래주소 클릭 → 영상팝업▶ 클릭
http://news.kbs.co.kr/society/2003/06/30/455073.html#//
1983년 흩어져 생사를 모르는 가족들을 찾기 위하여 KBS방송국 사옥 벽을 도배하다시피 붙인벽보. 사람들 !
방청객에 앉아 자기소개 순서를 기다리는 이산가족들
이산가족찾기에 관한 신문보도
이산가족찾기 기념우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하여 북으로 가는 버스행렬
오랜 이별뒤의 짧은 만남
그리고 다시 기약없는 이별..
긴 기다림! 짧은 만남! 그리고 또 이별과 기다림..
1945. 9. 9. 조선 총독이 미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모습
1947. 5. 25. 개성인근 미군초소. 당시엔 철조망이 없었다.
폭격과 기총소사로 집이 불타고 죽은 양민들의 전쟁 참상
북한군 공격지체를 위하여 폭파된 한강대교
국군의 최후 방어선인 낙동강 격전지 창녕 남지철교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꽁꽁 언 한강을 건너는 피난민 행렬
피난의 와중에서도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정
위 글 중 전쟁 전.후 흑백사진은 퍼온 글 편집입니다.
원글보기 http://blog.joinsmsn.com/media/folderlistslide.asp?uid=gtkbest&folder=8&list_id=8178694
1950.12월 중공군의 엄청난 병역의 참전으로 미군, 육군등의 후퇴로 흥남부두에 철수하는
미 함대 수송선인 LST에 승선하려고 수많은 피난민이 자유를 찾아 영하 30 ~ 40도의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흥남부두로 몰려드는 행렬의 끝이 없다.
당초 후퇴하는 미군철수를 위한 LST에 1만여명의 피난민이 배에 오르고 있다.
이로 인한 실향민과 이산가족이 많이 늘게 되었다.
배가 출발하면서 부두에 모아진 수많은 군수물자를 적의 수중에
넘기지 않기 위하여 폭파하고 있는 광경
철책선 너머 두고 온 북녘땅 고향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는 이산가족
비무장지대 철책선 너머 무심한 강물만 유유히 흐르고 있다.
민족의 한이 된 휴전선 비무장지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동물에게는 천국이 되었다.
어미와 새끼가 함께 비무장지대에서 한가롭게 산책?하는 고라니
비무장지대 고라니들이 사람을 빤이 바라보고 있다.
비무장지대 폭설에 먹을 것을 찾아 내려 온 산양들
휴전선의 봄(민들레는 피어 씨앗은 북녘으로 날아가는데...)
비무장지대에 찾아 온 여름, 숲만 무성한데...
임진강 적벽에서 숭의전까지 6.1Km의 DMZ 평화누리길
분단의 비극을 보여주는 장단역의 철마
충북 괴산군에 지어진 <한운사 기념관> 건축가 : 한만원
이 노래를 섹소폰 등 연주로 감상하시려면 아래 동영상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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