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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일광공영이 뻥튀기한 장비로 훈련한 공군조종사들의 울분

입력 : 2015.04.03 14:13 | 수정 : 2015.04.03 18:49

"추악한 방산비리 때문에 헛된 훈련하다가 개죽음 당하고 싶지 않다"

이해가 안된다고 했다. 북한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주력 지대공 미사일은 SA-2이고, 새로 배치되고 있는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은 SA-5인데, 왜 우리는 엉뚱한 미사일을 피하는 훈련만 하고 있을까. 기자의 공군사관학교 선배이자 현역 전투기 조종사인 A소령은 이런 의문을 품고 있었다.

우리 공군과 미군은 2010년부터 5년째 강원도 영월에 있는 S 사격장에서 '전자전 훈련장비(EWTS)'로 훈련을 하고 있다. 이 장비는 실제 비행 중인 전투기에 가상의 미사일 발사 신호를 보내 조종사들이 이를 피하는 훈련을 하는 장비다. 조종사들이 표적에 사격을 하면 그 점수도 매긴다.

	작년 12월 공군 F-15K 전투기 편대가 비행하는 모습. /뉴시스
작년 12월 공군 F-15K 전투기 편대가 비행하는 모습. /뉴시스
방위사업청은 2009년 1100억원을 주고 터키 방산업체 하벨산으로부터 이 장비를 구입했다. 하지만 최근 검찰 수사를 통해 이규태(64) 일광공영 회장이 장비 도입 사업을 중개하면서 가격을 부풀렸고, 실제 가격은 580억원 정도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성능미달 장비가 납품된 사실도 함께 확인됐다.

A소령 말대로 북한의 주력 미사일은 SA-2와 SA-5이다. 하지만 이 장비에는 SA-3, SA-6, SA-8 그리고 Gun Dish 미사일 프로그램만 탑재돼 있다. 가장 위협적인 미사일에는 대처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훈련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항공기 중등 훈련 교관 출신인 현역 조종사 B소령은 "이름은 비슷하지만 미사일마다 목표 고도와 속도, 움직임, 회피 방법 등이 모두 다르다. 훈련을 통해 접해보지 못한 미사일 화망 속으로 들어가면 살아남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예컨대 유효사거리가 13~35㎞ 정도인 SA-3 미사일 회피 훈련으로는 실전에서 만난 최대사거리 47㎞의 SA-2 미사일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 모두 전투기 조종사로서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하늘을 지켜야 하고 전쟁 중에 필요하다면 목숨도 기꺼이 버려야 한다고 배운 정예 조종사들이다. 하지만 추악한 방산비리 때문에 헛된 훈련만 하다가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B소령은 이렇게 털어놨다. "이 정도 장비가 1100억원이라니 기가 막힌다. 고장도 잦고 정비도 자주 해서 훈련을 못할 때도 많다. 한 달 전에도 훈련하러 왔더니 29전대(정비전대)로 정비 들어갔다고 해 훈련을 못했다. 북한은 매년 새로운 미사일을 쏘고 있는데 우리는 5년째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훈련하고 있는 것도 솔직히 불안하다."

	지난달 11일 검찰이 방산비리 혐의로 서울 성북구 일광공영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지난달 11일 검찰이 방산비리 혐의로 서울 성북구 일광공영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전자전 훈련장비의 여러 구성품 가운데 조종사들이 가장 황당하게 생각하는 건 채점기다. TOSS(TV Ordnance Scoring System)라고 불리는 이 장비는 감시 카메라 2대와 채점 카메라 6대, 녹화·전송장비로 이루어져 있다. 조종사들이 미사일을 쏘는 사격장 표적판을 비추고 있다가 촬영해 전송하고 얼마나 정확하게 사격했는지 자동으로 채점한다. 방위사업청은 이 장비를 70억원에 사들였다. 하지만 이규태 회장이 싱가포르 업체에서 40억원에 구입해 국산화한 것처럼 속여 가격을 부풀린 장비였다.

이 채점기를 관리했던 한 정보통신장교는 "70억원은 터무니없고, 40억원도 비싸다. 카메라 8대로 녹화하고 채점하는 게 이 장비 기능의 전부"라면서 "그렇다고 녹화나 채점이 정교하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사견을 전제로 "국내에 이런 장비를 전문적으로 만들거나 기준이 되는 가격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런 말도 안되는 값이 매겨지는 것"이라며 "채점기 뿐이겠느냐"고 탄식했다.

최근 예비역 공군 장성이 연루된 전투기 부품 납품 비리에 이어 전자전 훈련장비 관련 비리까지 터져 공군의 사기는 크게 저하된 상태다. A소령은 "나의 노력이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런 비리 때문에 결국 전쟁에서 이기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전자전 훈련에 상당한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또다른 조종사도 "북한의 미사일을 피하지 못하면 적진에 기총 한 번 쏴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사격을 할 때마다 참 무의미한 훈련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공군은 이에 대해 “SA-3가 SA-2의 업그레이드형 지대공 미사일이기 때문에 SA-3 대응 전자전 훈련을 하면 SA-2는 충분히 피할 수 있다”며 “전자전 장비는 이규태 회장으로부터 부풀려진 가격에 산 것은 맞지만, 이것 때문에 성능 미달 장비를 납품받은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