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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I

고레츠키 / 교향곡 제3번 ‘슬픈 노래들의 교향곡’

고레츠키 / 교향곡 제3번 ‘슬픈 노래들의 교향곡’




Symphony No. 3 'Symphony of Sorrowful Songs'

고레츠키 / 교향곡 제3번 ‘슬픈 노래들의 교향곡 / 슬픔의 노래’

Henryk Mikolaj Gorecky

 

Zofia Kilanowicz, soprano

Antoni Wit, dyrygent(cond.)

Archikatedra Chrystusa Kr?la w Katowicach -

Narodowa Orkiestra Symfoniczna Polskiego Radia w Katowicach

 

교향곡 제3번 ‘슬픈 노래들의 교향곡’(Symphony of Sorrowful Songs)

 

1악장 Lento - Sostenuto Tranquillo ma Cantabile

 

Where has he gone,
My dearest son?
Killed by the harsh enemy, perhaps,
In the rebellion.
You bad people,
In the name of the Holy God,
Tell me why you killed
My dear son.

Will I have his protection,
Even if I weep
My old eyes away,
Or if my bitter tears
Were to make another River Oder,
They would not bring back
My son to life.

He lies in the grave
I know not where
Though I ask people
Everywhere
Perhaps the poor boy
Lies in a rough trench
Instead of lying, as he might,
In a warm bed.

Sing for him,
Little song-birds of God,
For his mother
Cannot find him.
And God's little flowers,
May you bloom all around
So that my son
May sleep happily.

 

어디로 가버렸느냐,
사랑하는 아들아?
반란이 일어났을 때
잔인한 적들이 죽였겠지.
아, 간악한 인간들아,
가장 성스러운,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게 말해다오,
내 아들은 어디에 있느냐?

이제 다시는
아들의 공양을 받지 못하니,
내 주름진 눈에서
눈물이 흘러
이 비통한 눈물이
또 다른 오데르 강을 만들어도
그들은 결코 나의 아들을
깨어나게 할 수 없겠지.

아이는 땅 속에 누워 있고
이리저리 사람들에게
묻힌 곳을 물어도
나는 그 곳을 찾지 못했구나.
그 가엾은 아이는
땅 속 어딘가에 누워 있겠지.
자기의 따듯한 침대에
누울 수만 있다면.

아, 그 아이를 위해 울어주오,
하나님의 작은 새여.
그 어미가 아이를
찾을 수 없다면.
하나님의 작은 꽃이여,
여기 저기에 피어주오.
나의 아들이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1. Lento - Sostenuto Tranquillo ma Cantabile

Iwona Handzlik, soprano

Dariusz Mikulski, cond.

Thailand Philharmonic Orchestra

"HOLOCAUST - A Music Memorial Film from Auschwitz"

 

2악장 Lento e Largo-Tranquillissimo

 

My son, chosen and loved,
Let your mother share your wounds
And since, my dear son,
I have always kept you in my heart,
And loyally served you,
Speak to your mother,
make her happy ,
Though, my cherished hope,
you are now leaving me.

내 속에서 난 사랑하는 아들이여,
당신의 상처를 내게 나누어주시오.
사랑하는 아들이여,

나의 가슴속에 품고
진실로 보살펴 왔으니.
신의 어미에게

기쁨이 준비되었다고 말해 주시오,
이제 비록 내게서 멀리 떠나갔지만,

나의 간절한 소망이여.

 

이 가사는 폴란드 성 십자가 수도원의 라멘트(슬픔의 노래)이다.

예수의 어머니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며 혹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앉고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현대의 작곡가들도 여전히 옛 시퀀스

Stabat Mater(십자가 아래에 서 계신 마리아)를 가사로 하여 곡을 쓸 만큼

아들을 잃은 어머니

'마리아의 슬픔'은 여전히 인간의 본연적인 감성을 자극하고 있는 듯하다.

고레츠키 역시 Stabat Mater를 폴란드의 서정에 바탕을 두어 곡으로 쓴 것이다.

 

Julie Reumert, soprano

Shattered Glass Ensemble

the 2012 TEDxEAST event at the Times Center in NYC

 

Zofia Kilanowicz, soprano

Sir Gilbert Levine, cond.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Isabel Bayrakdaraian, soprano

John Axelrod, cond.

Sinfonietta Cracovia

"HOLOCAUST - A Music Memorial Film from Auschwitz"

 

3악장 Lento - Cantabile-Semplice

 

No, Mother, do not weep,
Most chaste Queen of Heaven
Help me always.
Hail Mary.

어머니, 안돼요, 울지 마세요,
순결한 하늘의 여왕이시여,
항상 저를 지켜 주소서.
Zdrowas Mario" 

 

이 가사는 짜코파네(Zakopane)에 있던 게쉬타포 본부의 지하실 벽에 남아 있던 기도문에서 얻은 것이라고 하며, 이 기도문 아래에는 '헬레나 반다 블라추지아코프스키'란 서명과 '18세'란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4연의 구절은 'Ave Maia'란 뜻으로 폴란드어 기도문의 머리 구절이다.

 

슬픔의 노래는 2차대전중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당한 폴란드 영혼을 위한 곡이다. 
빌보드 클래식 차트에서 91년 31주 연속 1위에 오르며 대단한 인기몰이에 성공을 했으나, 대중에 덩달아 빠져드는 자기성찰의 부족에서 벗어나 과연 이 곡에 베인 슬픔과 고독을 이해하는 이 얼마나 될까.

 

고레츠키는 단순한 몇개의 음들로 일정한 패턴을 가진채 음색의 높낮이를 폴란드 민요와 섞어 그가 그리는 슬픔을 극대화한다. 아우슈비츠에서의 공포뿐 아니라 그들의절박한 고통과 처참한 삶을 뼈져리게 느끼게 하는 중저음과 고음의 조화로 마음을 울린다.

비통함과 슬픔에 빠진 전개와 그 고통이 극대화 되는 과정과 그 공포와 고통이, 고요하나 크나큰 고통으로 승화된다. 멀리서 들리는 소프라노의 음성에 가슴이 절로 메어진다. 간절한 마음으로 영혼을 달래기 때문이었을까.. 고통 받았던 우리의 정서와 닮았기 때문일까...

 

 

1991년 빌보드 클래식 차트에서 31주 동안 연속 1위를 차지하고 팝뮤직을 포함한 모든 음악 장르에서 6위에 오르며 단기간에 100만 장 이상 팔린 음반이 있다(우리나라에서도 3만5천 장 넘게 팔렸다). 데이비드 진먼의 지휘로 런던 신포니에타가 연주하고 소프라노 돈 업쇼가 노래한, 헨리크 구레츠키의 교향곡 3번 ‘슬픈 노래들의 교향곡’을 담은 앨범이다. 이 곡은 한동안 ‘구레츠키 신드롬’을 낳았을 정도로 전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현대음악이 이처럼 경이적인 판매량을 올린 예는 없다. 무슨 음악이기에 그처럼 날개 돋친 듯 음반이 팔려 나갔을까?

 

▶소프라노 돈 업쇼, 데이비드 진먼 지휘, 런던 신포니에타 연주, 구레츠키 교향곡 3번을 담은 음반.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300여만 장이 팔린 명반으로 꼽힌다.

 

구레츠키(영어식을 따라 고레츠키라 쓰기도 한다)의 교향곡 3번(흔히 ‘슬픔의 노래’라 한다)은 소프라노 독창과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이다. 1악장 26분, 2악장 9분, 3악장 17분 등 연주시간이 50분이 넘는 대곡이다. 삶의 근원을 상징하는 모성(母性)을 주제로 하여, 1악장과 3악장은 어머니의 위치에서, 2악장은 아이의 위치에서 노래하는 이 곡은 하나의 모티브가 재현되는 현대적 선법(旋法) 형식의 아주 간단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기본적인 음형을 큰 변화나 전개 없이 각 악장마다 반복시키지만 음형 자체는 반복이 될지라도 악기 편성과, 템포, 강약을 적절히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50분이 넘는 대곡임에도 단조롭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당한 폴란드인들을 위한 레퀴엠

 

이 교향곡은 일종의 레퀴엠(Requiem, 진혼곡)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폴란드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남서독 방송교향악단(Radio-Sinfonieorchester Stuttgart des SWR)의 의뢰로 작곡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느리고 애절하다. 모든 악장마다 '느리게' 연주하라는 렌토(lento)가 표기되어 있다. 구레츠키는 전쟁과 학살의 비통한 심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프라노 독창과 단순한 선율을 도입했다. 한없이 느린 관현악 반주를 뚫고 나오는 소프라노 독창에는 말할 수 없는 비애와 고통이 담겨 있다. 독창은 음산한 구음(口吟)처럼 낮게 깔리다가 서서히 옥타브를 높여 때로는 절규를, 때로는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듯한 천상의 기도 소리를 들려준다. 여기에 단조로운 음을 반복하면서 흐르는 현악기 선율은 마치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숨죽이며 흐느끼는 소리처럼 들려 더욱 애절하다.

 

콘트라베이스로 시작하는 1악장(너무 저음이라 PC 음향으로는 잘 들리지 않는다)에서 소프라노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오스트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부른 ‘성모애가(성모 마리아의 슬픈 노래)’가 근저를 이루고 있으며, 2악장에서 소프라노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게슈타포에 의해 지하 감옥에 갇힌 18살 소녀가 죽기 전 감옥 벽에 새겨 놓아 어머니에게 전하는 짧은 기도문이다. 3악장에서 소프라노가 부르는 노래는 폴란드 남부 민요로 전쟁에서 잃은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절규에 찬 호소이다.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는 1976년 폴란드의 실레지아 지방에 있는 소도시 카토비체(Katowice)에서 작곡되어 1977년 4월 프랑스의 루아양 페스티발(Royan Festival)에서 초연되었다.

 

1악장: 렌토

현의 저음부에서 아주 작은 음량으로 주제가 제시되고 이 주제가 특별한 변화나 발전 없이 일정한 패턴으로 계속 반복된다. 악기들이 하나둘씩 가세하면서 점점 소리가 풍성해지고. 고음부에서도 주제가 나타나면서 대위법적으로 진행하다가 모든 악기들이 일제히 연주하는 클라이맥스로 이어진다. 중반 이후에 소프라노 독창이 ‘애통의 노래’를 부르며 곡은 정점을 향한다. 이 ‘애통의 노래’는 15세기 후반 폴란드의 성십자가 수도원에서 부른 애가(Lamentation)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바라보는 마리아의 슬픔(스타바트 마테르)이 담겨 있다.

 

▶장 푸케, <성모 마리아와 아들>, c.1450.

 

너의 상처를 이 어미에게 나누어주렴.

사랑하는 아들아, 내 언제나 너를 가슴에 품고 있노니

또 언제나 성심으로 너를 섬기노니

너는 이미 나를 떠나고 있지만, 내 가슴에 품은 희망이여

말을 해 보려무나 이 어미가 기뻐하도록.

 

2악장: 렌토 에 라르고

폴란드 남부 타트라 산맥 기슭에 위치한 자코파네(Zakopane)라는 작은 마을에 2차 세계대전 당시 게슈타포 사령부의 지하 감방이 있었다. 종전 후 지하 감방 3호실 벽에 기도문이 새겨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짧은 글귀와 함께 ‘헬레나 반다 부아주시아쿠브나(Helena Wanda Bła?usiak?wna)’라는 이름과 ‘18살, 1944년 9월 25일부터 수감’이라고 쓰여 있었다. 소프라노 독창이 이 짧은 기도문을 반복해서 부르고 오케스트라는 주로 반주 역할을 하는데, 2악장의 이 소프라노 독창은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의 하이라이트이다.

 

아, 엄마, 울지 말아요

천상의 정결한 여왕께서

언제나 우리를 지켜주실 거예요.

아베 마리아

 

청아할 정도로 아름다운 이 노래는 이 교향곡이 ‘슬픔의 노래’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신비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대목이 우리에게 슬픔과 고통을 뛰어넘어 평안과 위로를 안겨주는 이 곡의 미덕이기도 하다. 또한 인간이 저지른 야만과 폭력에 대해 깊이 성찰하라는 작곡가의 의도도 있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현대음악이면서도 듣기에 거북하지 않은 선율과 심금을 울리는 음악적 메시지가 결합됨으로써 그토록 이 곡이 이례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여기에는 데이비드 진먼의 지휘와 소프라노 돈 업쇼의 역할도 한몫했다.

 

3악장: 렌토

1악장과 마찬가지로 오케스트라는 같은 음형을 계속 반복하는데, 클라이맥스로 이어지는 점층 수법은 나타나지 않는다. 피아노가 타악기 역할을 해주고, 소프라노의 애절한 노래가 등장하는데, 폴란드 남쪽 오폴레(Opole) 지방의 민요로, 전쟁에 나간 아들이 돌아와 쉴 따뜻한 침대를 마련했건만 아들의 시신조차 거두지 못한 가련한 어머니가 울부짖는 내용이다. 가사는 민요답게 정제된 표현보다 비통하고 혼란스러운 화자(어머니)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반면, 음악은 슬픔과 분노의 표출보다는 진혼이나 위령에 가까운 정화되고 평온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사를 추려 옮긴다.

 

사랑하는 아들아, 어디로 갔느냐

반란이 일어났을 때

잔인한 적들이 너를 죽였겠지

아, 너희 나쁜 인간들아

신성하신 분 하느님의 이름으로

내게 말해보아라.

왜 죽였느냐 내 아이를

내가 통곡에 통곡을 하여

내 늙은 눈에서 비통의 눈물이 흘러내려

오데트 강이 하나 더 생긴다 하더라도

내 아들은 되살아오지 못하리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내 아들 묻힌 곳 알 수 없네

불쌍한 내 아이

차갑고 험한 도랑에 누워 있지는 않으려나

하느님 곁에서 노래하는 너희 새들아

내 아들을 위해 노래해 다오

이 어미는 그 아이를 찾을 수 없구나

하느님 곁에 핀 너희 작은 꽃들아

내 아들 묻힌 곳에 고운 꽃을 피워 주렴

내 아이가 행복하게 잠들 수 있도록

 

카도비체 음악원. 구레츠키는 1968년부터 이곳에서 강의를 했다.

 

작곡가 헨리크 고레츠키. 1976년에 작곡한 교향곡 ‘슬픔의 노래’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중세음악, 민요, 가톨릭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찾았다.

 

‘극치의 쾌감’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설마 엊저녁에 얻어먹은 한우 등심구이 맛 정도를 떠올릴 리는 없고…. 두말할 것 없다. 암사슴?수사슴 간의 끈적끈적한 상열지사 한판을 떠올리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쾌감의 소재가 때론 엉뚱한 곳, 불경한 감흥에서도 찾아온다. 쾌감을 느끼는 것이 불경스러운, 그런 경우가 있다.

 

폴란드 출신 현대음악 작곡가로 펜데레츠키, 루토스와프스키, 헨리크 고레츠키 세 사람이 우뚝하다(감상하기 어지러운 순서다). 펜데레츠키는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로 큰 명성을 얻었고, 루토스와프스키는 뛰어난 교향곡·협주곡들도 남겼지만 공산체제 붕괴 과정에서 보인 비타협적 행동으로 같은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못지않은 존경을 누린 인물이다. 문제는 헨리크 고레츠키인데 다음의 기록을 보자. 미국 빌보드 차트 클래식 부문 31주 연속 1위, 75주간 차트 등재. 영국 베스트 음반 차트에서 팝록을 포함한 모든 장르에서 전체 6위. 단기간에 음반판매 100만 장, 한국에서도 3만5000장 판매. 모두 1990년대 초반의 야단스러운 기록인데 현대음악 사상 전무후무한 일대 사건이었다.

 

이른바 ‘고레츠키 신드롬’을 낳은 그 음반은 데이비드 진먼 지휘로 소프라노 돈 업쇼가 성악파트를 맡은 교향곡 제3번 ‘슬픔의 노래’다. 1976년 작품이니 신곡도 아니고 신드롬이 벌어진 91년에서 93년 사이 영미권에 특별히 더 슬픈 사건이 벌어진 것도 아니었다. 다들 ‘이게 웬일이지?’ 했건만 그 이유를 찾을 길이 없었다. 당시 사람들이 느닷없이 까닭 모르게 ‘슬프고 싶어라!’ 했나 보다. 예술작품을 의미의 구성물로 받아들이는지 직관적 정서 반응으로 느끼는지는 꽤 까다로운 논제다. 그렇지만 고레츠키의 ‘슬픔의 노래(작은 사진)’는 명확히 의미가 앞서는 교향곡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폴란드인에게 바치는 애가이기 때문이다.

‘슬픔의 노래’에는 소프라노 독창이 세 차례 등장한다. 첫 곡은 15세기 수도원에서 불린 ‘애통의 노래’, 2악장 두 번째 노래는 게슈타포 본부 지하 감방 벽면에 칼로 새겨진 18세 수감자 소녀의 애절한 기도문, 끝 곡은 중세 폴란드 지방 민요를 담았는데 그 가사를 일부 옮겨보자. ‘사랑하는 아들아, 어디 갔느냐? 잔인한 적들이 너를 죽였겠지. 너, 나쁜 인간들아, 말해 보거라. 왜 내 아들을 죽였느냐?’ 이처럼 교향곡 ‘슬픔의 노래’는 비통한 노랫말, 무겁고 느린 진행, 대재앙의 학살극이 불러일으키는 분노와 죄의식 등으로 옷깃을 여미고 듣는 작품이다. 그 시절 대세였던 마이클 잭슨의 뒷걸음 치는 문워크, 마돈나의 야한 란제리룩 따위와는 도무지 어울릴 수 없는 분위기라는 뜻이다.

‘슬픔의 노래’는 우리에게 소설로도 다가왔다. 정찬의 동명 중편이 그것인데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광주’ 당시 진압군 위치에서 학살을 자행해야 했던 청년이 폴란드에서 연극을 하며 그 기억의 고통을 삭이는 내용이다. 소설 주인공이 실제로 고레츠키를 찾아가는데 노경의 작곡가가 이런 말을 들려준다. ‘슬픔의 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끊임없이 흐르고 있지만 그 강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강이 있음을 일깨우는 사람이 바로 예술가이다.’ 음악 못지않게 소설 역시 매우 무겁고 침중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 괴이한 신드롬, 대중적 인기가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책이든 음반이든 존경심으로 팔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임계점을 넘어 버린 판매량과 끝없는 방송 리퀘스트가 설명되지 않는다. 대중의 문화적 허세가 아닌 실제적 감상물로 소비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왜 너도나도 ‘슬픔의 노래’ 음반을 샀던가. 언젠가 그걸 나는 매우 생뚱맞은 각도에서 이해하게 됐다. 건축가 친구 ‘간디’가 놀러와 ‘그 곡 참 멋지더라’ 하면서 들려달란다. 나치학살, 광주비극과 결합된 묵지근한 곡을 두고 ‘웬 멋?’ 하는 기분으로 음반을 걸었다가 중간쯤에 아, 하는 영탄을 부지불식간에 토해냈다. 의미를 벗어난 사운드 자체의 강렬한 중독성을 체감한 것이다.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장중한 저음부 합주로 느리게 진행된다. 렌토-아주 느리게 표시가 전 악장에 걸쳐져 있다. 중간중간 바이올린 파트가 강조되는 대목도 있지만 콘트라베이스의 무거운 사운드가 전체를 압도한다. 반복 또 반복의 악절은 절묘한 아티큘레이션으로 강조되면서 조금씩 변용되어 나간다. 그리고 온몸을 섬뜩하게 만들며 등장하는 소프라노의 귀기 어린 음색. ‘슬픔의 노래’는 점층적으로 점점 세게 리스너를 어떤 황홀경, 최면상태에 가까운 엑스터시로 몰고 가는 힘이 있다. 그걸 극치의 사운드 쾌감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숱한 사람들이 같은 체험을 했을 텐데 어찌 불경스럽게 그 무거운 슬픔의 의미 앞에서 ‘쾌감’ 운운할 수 있겠는가. 나는 고레츠키 신드롬의 숨은 이유가 여기 있으려니 짐작해 본다. 가을 깊은 계절에 심중한 곡의 의미를 벗어 던지고 소리의 황홀경에 푹 빠질 만한 곡이다.

 

Henryk Mikolaj Gorecky 1933-2010

 

고레츠키는 그의 교향곡 제3번 "슬픔의 노래"를 통하여 잘 알려진 20세기 후반의 폴란드 출신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1933년 12월 6일 폴란드의 체르니카(Czernica)에서 다양한 악기를 다룰 줄 아는 한 기관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레츠키는 1951년부터 한 초등학교의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1952년부터 1955년까지에 걸쳐 리브닉
(Rybnik) 음악학교에서 음악선생과 교육자로서의 교육을 받았다. 1955년부터 1960년까지 그는 카토비체 국립음악학교에서 스짜벨스키(Boleslaw Szabelski)에게 작곡을 배웠다.
고레츠키의 음악은 다양한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과 클러스터(cluster)기법을 사용하다가 단순화된 어법과 소위 작곡기법적 요소를 최대한 줄이는 작품으로 발전한다.

음악학교 재학시절인 1958년 고레츠키는 "바르샤바의 가을" 음악제에서 혼성합창과 기악앙상블을 위한 『에피타피움』(Epitaphium)을 발표하며 데뷔하였고, 이어서 현악오케스트라와 타악기를 위한 『교향곡 제1번 '1959'』 소프라노와 기악앙상블을 위한 『모놀로기』(Monologhi, 1960), 오케스트라를 위한 『레프렌』(Refren, 1967), 오르간 독주를 위한 『칸타타』(1968), 그리고 소프라노 솔로와 혼성합창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위한 『Ad Matrem』(1973) 등의 작품들을 가지고 각종 국제콩쿠르를 입상하면서 폴란드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부상하게 되었다.

1965년부터 고레츠키는 자신의 모교인 카토비체 음악학교에서 독보법과 악기론 그리고 작곡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며, 1975년 같은 학교에서 정식교수로 발령받았다. 이후부터 그는 폴란드의 음악계를 주도하는 작곡가로서 자신의 모국의 음악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그는 피아니스트인 야드비가(Jadwiga)와 결혼하여 1남1녀를 두고 있다.

고레츠키의 음악적 경향은 초창기인 1955년부터 1961년까지에는 자유로운 무조음악에서부터 음렬기법과 점묘음악에까지 걸쳐 나타난다.
당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5대의 악기와 현악4중주를 위한 협주곡』(1957)이나 『교향곡 제1번 '1959'』(1959)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리듬과 다이내믹 그리고 아티큘레이션과 연관시킨 총렬음악을 시도하였는데, 그 예는 1960년에 발표된 오케스트라를 위한『스콘트리』(Scontri)에서 찾을 수 있다. 나아가 고레츠키의 관심은 음색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는 다양한 방법의 아티큘레이션이나 클러스터기법, 소음 등을 통해 음색적 효과를 추구하게 된다. 이때의 음색작곡에 의한 대표작으로는 『Trilogie Genesis』를 들 수 있다.

고레츠키 음악에 있어서 발전된 단계의 음악적 경향은 1963년이후부터 찾을 수 있는데, 이때부터 그는 단순화된 어법과 더불어 작곡기법적 요소를 최대한 줄인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그는 이러한 경향을 특히 교향곡이나 교향악적 작품들을 통하여 시도하였으며, 당시의 대표작으로는 『칸티쿰 그라두움』(Canticum graduum, 1969)이나 『교향곡 제3번 - 슬픔의 노래』(1976)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고레츠키는 단지 몇 개의 음들을 옥타브관계 속에서 겹치게 하며 음색적 효과를 얻고 있으며, 이 작품들이 갖는 형식은 매우 단순하며 음악은 내부적인 구조와 표현은 잘 일치되도록 시도하였다.
『교향곡 제3번』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고레츠키는 자신의 작품에 폴란드의 옛 민요를 적절히 인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렇게 특히 교향곡을 통한 고레츠키의 작업은 아방가르드로서 인식되는 면이 있지만 이제 그의 음악은 더욱
단순해지고 이해도가 높아지며 많은 젊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