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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용량 1000배! 반도체 최후의 저장기술의 발견

메모리 용량 1000배! 반도체 최후의 저장기술의 발견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bluesky-pub@hanmail.net

 
▲ 반도체 메모리 용량을 1000배 높일 물리 현상을 발견한 울산과학기술원 이준희 교수팀. photo 울산과학기술원

지금보다 반도체 메모리 용량을 1000배 높일 물리 현상이 발견돼 화제이다. 이준희 울산과학기술원 에너지·화학공학부 교수팀이 연구의 주인공들. 이들은 전압만 가해서 원자 하나하나에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의 원리를 발견했다. 더구나 기존 반도체 소재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상용화 가능성도 높다. 연구팀이 발견한 원리는 과연 어떤 것일까.
   
   불과 50년 전만 해도 초등학교 교실을 가득 메울 정도로 거대했던 컴퓨터는 노트북 크기로 줄어들었다. 심지어 휴대전화에서 음악과 영화를 재생할 수 있고, 이제는 ‘입는 컴퓨터’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입는 컴퓨터가 상용화할 시점에는 손톱만 한 크기에 대용량 정보를 저장하고 소비전력을 획기적으로 줄일 기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메모리 소자의 집적도를 높여야 한다. 집적도를 높이려면 소자에 쓰이는 박막의 두께도 얇아져야 한다. 또 도체와 반도체, 전도체, 초전도체, 자성체, 강유전체 등 전기와 자성을 띠는 메모리 소재의 개발과 특성 연구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지난 7월 1일 이준희 교수팀이 현재 메모리 반도체 소재로 흔히 사용하는 산화하프늄(HfO2)의 메모리 저장 용량 한계를 뛰어넘을 기술을 발표했다. 손톱 크기의 산화하프늄 반도체에 500Tb(테라비트)의 정보를 저장하는 일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했다는 것. 이는 지금보다 저장 용량을 1000배 늘릴 수 있는 기술로, 고화질(HD) 영화 3만편을 담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이 연구는 7월 2일(미국 현지시각)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사이언스에 순수 이론 논문이 게재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사례이다.
   
   
   차세대 F램의 비밀
   
   연구팀이 주목한 저장 매체는 ‘강유전체 현상’을 이용한 F램이다. 강유전체란 전류를 흘리면 내부가 양극, 음극으로 갈라진 뒤 전류를 흘리지 않아도 이 상태를 유지하는 물질을 말한다. 마치 건전지가 양극과 음극으로 분리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F램인 강유전체 메모리는 현재의 D램이나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대체할 차세대 후보로 꼽힌다.
   
   보통 전기가 흐르는 도체는 외부에서 전기를 계속 공급해야만 전기적 또는 자기적 성질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메모리나 하드디스크 같은 저장 매체들은 이 성질을 이용해 정보를 읽고 쓴다. 반면 강유전체로 불리는 일부 물질은 외부 전기 없이도 스스로 전기적 분극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F램은 플래시 메모리처럼 전원이 꺼져도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다. 수백만 번 읽고 쓰기를 반복하면 정보가 손상되는 D램과 달리 F램은 정보를 반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비휘발성 메모리 소자이다. 또 구조가 단순해 D램처럼 집적하기 쉽다.
   
   반도체 기업들은 메모리 소자에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전기 이용량을 줄이기 위해 선폭(단위 셀 크기)을 계속 줄이고 있다. 하지만 선폭이 좁아질수록, 다시 말해 반도체 소자가 수십㎚(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로 내려갈 경우 정보를 저장하는 능력이 약해지다가 아예 그 능력이 사라지는 ‘스케일(scale) 현상’이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반도체의 기본 작동원리인 0과 1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선폭을 줄이는 연구는 한계에 부딪혀 왔다.
   
   F램의 예를 들어 보자. F램에서 0과 1의 정보, 즉 1bit(비트)의 데이터를 저장하려면 강한 탄성으로 연결된 수천 개의 원자 집단인 ‘도메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1bit를 저장하는 데 원자 수천 개의 집단(도메인)이 동시에 위치를 움직여서 통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개별 원자에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원자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제어할 수 없어 선폭을 줄이기 어렵다. 현재 플래시 메모리의 선폭은 10㎚인 반면 강유전체 메모리는 이보다 훨씬 큰 20㎚ 이상의 선폭에서 멈춰 있다. F램이 플래시 메모리보다 상용화가 더딘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이준희 교수팀이 산화하프늄 물질에서 그 한계를 극복할 돌파구를 찾았다. 상온에서 산화하프늄 반도체에 3~4V의 특정한 전압만 가하면 수천 개의 원자를 스프링처럼 강하게 묶어주던 탄성 상호작용(힘)이 순간적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새로운 물리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전압이 원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끊어주는 자연 차폐막을 형성하는 셈이다.
   
   

▲ 울산과학기술원 이준희 교수가 지난 7월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메모리 용량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산화하프늄(HfO₂)의 새로운 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원자 4개당 1bit 저장, 개별 원자 제어 가능
   
   상온에서 특정한 전압만 가해 원자와 원자 사이의 강한 탄성 상호작용을 없애는 방법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험 없이 이론과 계산으로 알아낸 현상이다. 연구팀이 발견한 이 현상을 이용하면 반도체 안의 원자 하나하나를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다. 또 산화하프늄의 독특한 물리적 특성 때문에 상온에서도 강유전성을 띤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산화하프늄에 전압을 가했을 때의 모습을 수퍼컴퓨터를 통해 분석했다. 그 결과 산화하프늄 속 산소 원자 4개가 짝을 이뤄 위치를 바꾸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산소 원자 4개 묶음에 데이터(1bit) 저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한편 일반 반도체에서도 단일 원자 수준의 메모리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또 산소 원자 4개 묶음의 길이는 0.5㎚에 불과했다. 이는 이론상 선폭을 0.5㎚까지 줄일 수 있음을 뜻하고, 그럴 경우 메모리 용량(집적도)을 기존보다 약 1000배 이상 높일 수 있다.
   
   지난 4월 인하대 전기공학과 권대웅 교수와 미국 버클리대 전자공학부 사이프 살라후딘 교수팀은 국제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산화하프늄의 두께를 1㎚까지 줄여도 이 박막이 상온에서 강유전체 성질을 그대로 갖는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는 산화하프늄의 선폭을 0.5㎚까지 줄여도 강유전체 성질은 변함없다는 이준희 교수팀의 연구와 일맥상통한다.
   
   이번 연구팀의 연구는 데이터 저장을 위해 적어도 원자 수천 개 이상이 모여 만든 수십㎚ 크기의 도메인이 필요하다는 반도체 업계의 통념을 뒤집어놓은 결과다. 이준희 교수는 원자 하나하나에 정보를 직접 저장할 수 있는 연구팀의 기술은 원자를 쪼개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고의 집적기술이자 반도체산업의 마지막 저장기술이 될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연구팀의 기술을 활용할 경우 스마트폰, 태블릿 등의 메모리 성능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다. 특히 산화하프늄은 기존의 실리콘 기반 반도체에서 흔히 사용하는 물질이라 상업화 적용 가능성이 매우 높고, 산업계에 미치는 파급력 또한 클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개념의 정보 저장기술을 통해 반도체의 소형화가 더 가속화하길 기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