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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문물

<시론>망국 막을 '헌신의 정치' 필요하다

<시론>망국 막을 '헌신의 정치' 필요하다


미국 정치에도 여야 분열 심각

포트먼 상원의원 신선한 충격

차기 불출마 선언 뒤 통합 앞장

文정권은 독주, 야당은 무기력

민주주의 지킬 殺身정치 절실

野 의원직 포기할 결기도 필요

전 세계에 충격을 준 지난달 6일 의사당 난입 사태 후 미국 정치가 전직 대통령 탄핵 등으로 블랙홀로 빠져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상원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신선한 파장을 던진다. 공화당 소속 중진인 로버트 포트먼 상원의원은 지난달 25일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남은 임기 2년을 선거모금 캠페인 대신 미국의 당면 도전 극복에 필요한 법안을 만드는 데 쓰겠다”며 2022년 선거 불출마 뜻을 밝혔다. 온건하고 실용적인 상원의원으로 신망이 높은 포트먼의 폭탄선언에 워싱턴 정가는 놀라는 기류다.

그는 65세다. 미 상원의원 대다수가 60∼70대라는 점을 고려할 때 아직 은퇴할 때는 아니다. 하원의원 12년에 재선 상원의원인 그는 신망이 높아 3선은 따놓은 당상과도 같다. 포트먼은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세상이 미친 듯 비정상적으로 돌아가지만, 나는 진지하게 정상적으로 판단해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면서 “국민을 위한 초당적 협력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불출마는 배수진을 친 채 정치 개혁에 헌신하기 위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포트먼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지난 2006년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때 한국과의 경제동맹 필요성을 제기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 선언을 한 주역이다. 초강력 대북금융제재법인 ‘오토 웜비어법’ 제정을 2019년 주도하기도 했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풀려난 뒤 숨진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지역구인 오하이오주 출신인 것이 인연이 됐지만, 북한의 핵·인권 문제는 미국이 강력한 제재와 국제 공조를 통해 풀어야 한다는 지론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포트먼이 ‘살신(殺身)의 정치’에 나서게 된 것은 도널드 트럼프의 분열정치 유산을 치유하지 않는 한 1·6사태 재발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선되는 순간 다음 선거용 모금에 나서야 하는 숙명에서 벗어나 초당파적 입장에서 개혁 법안 마련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다.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으로 미국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출마 선언 1주일 후 포트먼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서신을 보냈다. “저를 포함한 공화당 상원의원 10명은 대통령께서 취임사에서 역설한 미국의 통합 문제를 초당적으로 논의하고 싶다”는 제안을 담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일 이들을 초청해 2시간 토론한 후 “포트먼 의원 등과 초당적 협의를 지속해나가겠다”고 발표했다. 포트먼과 함께한 공화당 상원의원은 밋 롬니, 리사 머카우스키, 수전 콜린스 등 중도파 중진들이다.

포트먼의 ‘모험’이 성공할지는 불투명하다. 공화당은 트럼프주의 청산이냐 계승이냐를 둘러싸고 내분 상태이고, 9일 상원이 개시한 트럼프 탄핵 심판에 대해서도 대다수가 회의적이다. 그렇지만 포트먼이 이념·정책 중심의 공화당 재건 깃발을 올린 것은 의미가 크다. 포트먼이 동료 상원의원들과 ‘상원 초당파그룹’을 구성한 뒤 통합의 정치에 나선 것은 미국 민주주의에 남은 시한이 길어야 2024년 대선까지라는 위기의식에 기초하고 있다. “지금은 나라를 하나로 모으고 치유해야 할 때”라는 그의 말에선 통합의 정치를 하지 않으면 트럼프식 포퓰리즘 늪에 빠져버릴 것이란 절박감이 느껴진다. 더구나 ‘정당의 공적 역할 회복’을 위해 자신을 던진 포트먼에게 바이든 대통령이 협력하겠다고 화답한 것을 보면 아직 미국 민주주의엔 희망이 있다.

포트먼의 워싱턴 ‘살신 정치’를 보며 여의도 ‘당파 정치’를 생각한다. 제1야당 국민의힘에는 100명이 넘는 의원이 있지만, 모두 좁은 이해관계에 갇혀 있을 뿐 자신을 던지며 당을 혁신하고 여당의 독주를 저지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문재인 대통령의 외골수 정치와 청와대 돌격대로 전락한 더불어민주당 때문이지만, 국민의힘도 방조자다. 미국 민주주의는 바이든 대통령 당선으로 회복 시한을 벌었고, 포트먼 덕분에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는 이대로 가다간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죽음의 길로 접어드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우리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민주주의를 어떻게 회생시켜야 할지 설 연휴를 맞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