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G의 지배자가 천하를 얻는다… 앞서가는 중국, 쫓아가는 미국
[Mint] [Cover Story] 5G보다 50배 빠른 이동통신 美동맹국과 중국의 패권전쟁
입력 2021.07.02 03:00
그래픽=김의균
삼성전자는 지난달 미국에서 UC샌타바버라 연구진과 함께 6G(6세대 이동통신) 전송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현재 5G(5세대 이동통신)에서 쓰지 않는 140GHz(기가헤르츠)의 밀리미터파(milimeter wave)를 활용, 15m 거리에서 6.2Gbps(초당 기가비트)의 속도로 데이터를 보내 주목받았다. 이는 2GB(기가바이트)짜리 고화질 동영상 한편을 3초 만에 전송할 수 있는 속도다. 삼성전자가 예상하는 6G 서비스의 상용화 시기는 2030년경이다. 이때는 1Tbps(초당 테라비트)에 육박하는 통신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25GB의 대용량 데이터를 단 1초 만에 옮길 수 있는 속도다.
삼성전자는 정확히 1년 전인 2020년 7월 ‘6G 백서(白書)’를 내놓고 6G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한 지 1년 3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면 결코 빠른 시작이 아니다. 중국은 삼성보다 8개월 빠른 2019년 말, 5G 상용화와 동시에 6G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6G 전송 실험 역시 삼성보다 7개월 빠른 지난해 11월에 성공했고, 올해 여름에는 6G 통신 실험용 인공위성도 발사한다. 미국도 2020년 10월 퀄컴과 버라이즌, 에릭슨, 노키아, 삼성전자 등 세계적 통신 기술 기업들을 모아 ‘넥스트G연합(Next G alliance)’을 발족했고, EU(유럽연합) 역시 지난해 말 6G 개발을 위한 산학 연구조직 ‘헥사-X(Hexa-X)’를 만들었다. 올 들어서는 일본과 러시아도 6G 연구 개발 투자를 시작했다. 이른바 6G 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 강국들의 전 지구적 레이스가 벌어지고 있다.
6G는 5G보다 전송 속도가 최대 50배 빠르고, 지연 시간(latency)은 최대 10분의 1로 줄어든다.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기지국 하나에 접속할 수 있는 기기의 개수도 수십 배 늘어나면서, 사물인터넷(IoT)을 뛰어넘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잇는 만물인터넷(IoE)을 가능케 해 인류 사회를 ‘초연결 사회’로 이끌 기술 인프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블룸버그는 “6G 기술을 선점하는 기업과 국가가 다음번(4차) 산업혁명의 승자가 될 것”이라며 6G가 경제·산업은 물론 정치와 국방 영역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큰 틀 속에서 EU와 일본, 한국까지 6G 기술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기술 종속의 굴욕, 5G로 갚은 중국
이동통신 기술은 미국과 유럽, 그리고 한국 등 친서방 국가들이 발전시켜 왔다. 1980년대 초반 미국에서 음성 통화만 가능했던 아날로그 1세대 이동통신이 나왔고, 1996년 문자와 사진 등 데이터 전송이 가능해진 미국과 한국 합작의 CDMA(코드분할다중접속)와 유럽의 GSM 기술로 2G(2세대 이동통신) 시대가 열렸다. 2000년대 초반에는 WCDMA(광대역 CDMA) 기반의 3G 시대가 열리면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됐고, 2010년에는 이를 더욱 발전시킨 4G 기술이 등장, 화상 통화와 실시간 동영상 서비스 이용이 가능해진 4G 시대가 개막했다. 미국과 유럽, 한국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통신 기술을 주도한 시기다.
상황이 바뀐 것은 4G부터다. 중국이 뒤늦게 미국·유럽·한국 등과 다른 독자적 방식(시분할 방식)을 내세워 ‘기술 장벽’을 쌓기 시작하더니, 중국 정부가 나서서 5G 기술과 통신 장비 개발을 지원했다. 중국 화웨이와 ZTE 등이 약진을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 타이틀은 한국과 미국에 내줬지만, 중국은 14억 내수 시장을 앞세워 실리를 취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5G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은 중국 화웨이로 15.4%에 달한다. 삼성전자(13.3%)와 핀란드 노키아(13.2%), 미국 퀄컴(12.9%)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화웨이가 5G 특허로만 올해 1분기에 벌어들인 돈은 6억달러(약 6800억원)에 달한다.
장비 분야에서도 중국은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시장조사 업체 델오로에 따르면 작년 4분기 기준 통신 장비 점유율은 화웨이가 31.4%, ZTE가 10.9%로 중국 기업이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통신업계는 “중국이 그동안 염원해온 통신 기술 자립에 이어, ‘글로벌 통신 기술 패권’ 획득에도 근접했다”고 본다. 1990년대 2G 시대부터 2010년 4G까지 미국과 유럽 주도의 통신 기술에 종속돼 막대한 국부는 물론, 서방제 통신 장비를 통한 정보 유출도 심각했다는 것이 중국 공산당의 시각이다. 따라서 “5G부터 기술 선진국들을 추월하고, 역으로 세계 통신 시장을 중국 기술로 지배하겠다”는 야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픽=김성규
◇中 잡으려는 美, 막대한 투자해야
‘아차’ 하는 순간 5G 기술의 주도권을 중국에 넘긴 미국은 ‘중국 통신 기술 배제’라는 강수(强手)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2019년부터 ‘국방수권법’ 등을 통해 화웨이의 통신 장비를 조달하거나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중국산 통신 장비에 통화 내용과 데이터를 빼낼 수 있는 보안 약점(백도어)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1~2012년 이탈리아의 화웨이 통신 장비에서 백도어가 발견되기도 했다. 통신망은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5G 장비 몇 군데만 뚫어도 5G 기기와 통화하는 4G와 3G 기기의 데이터까지 감청할 수 있다. 미국이 동맹국에 ‘화웨이의 5G 장비를 쓰지 말라’고 요구한 것은 이 때문이다.
6G에서 중국을 추월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는 확고하다. 미국은 지난해 동맹국 기업을 중심으로 한 ‘넥스트 G연합’을 만든 데 이어, 지난 4월엔 일본, 5월엔 한국과 ‘6G 동맹’을 체결하고 각각 45억달러(약 5조원), 35억달러(약 4조원)를 공동 투자키로 했다. 이 동맹에는 협력 대상을 확대할 수도 있도록 했다. ‘반중 전선’을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중국이 이미 한발 앞서 있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한다. 우선 인프라 측면에서 압도적 우위다. 올해 5월 기준 중국의 5G 기지국 수는 82만개에 달한다. 2019년 말 13만개였던 것이, 2020년 한 해에만 59만개가 새로 생겼고, 올해는 60만개 이상을 더 만들 예정이다. 6G 상용화가 예상되는 2030년 1500만개의 5G·6G용 기지국을 보유하리란 예상도 나온다.
반면 미국의 5G 기지국 수는 지난해 말 기준 5만개로, 중국의 1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남윤 포항공대 교수(전기전자공학과)는 “5G 기지국망은 6G 통신 인프라의 바탕으로 활용될 수 있어 중국이 (6G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더 유리한 상황”이라고 했다. 5G든 6G든, 통신 인프라 확충부터 해야 하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기술만 개발하면 된다는 것이다. 기지국이 많으면 6G용 초고대역 전파인 밀리미터파를 이용하기도 더 쉬워진다. 6G에선 5G보다 주파수가 더 높은 테라헤르츠(0.1~10THz)급 전파를 활용한다.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하고도 한국에서 여전히 5G의 최대 속도 20Gbps를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는 밀리미터파로 구분되는 28Ghz 대역을 이용할 수 있을 만큼 기지국이 충분치 못해서다. 반면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5G 기지국을 기반으로 20Gbps급 28Ghz는 물론, 100Ghz 이상의 6G 주파수도 수월하게 활용할 수 있다.
미국 정치 매체 더힐(The Hill)은 “앞으로 10년 안에 중국이 6G를 통제하고 표준 개발을 주도할 수 있다”면서 “다른 나라들이 중국 모델을 채택할 것이고, 지정학적으로 분리된 ‘디지털 철의 장막(Digital Iron Curtain)’이 확장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정부에 “통신 인프라에 대규모 정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기 투자를 놓치면 승패는 볼 것도 없다는 것이다.
◇“中 6G 패권 막을 한·미 협력 필수”
미국과 중국은 벌써 6G 시대를 대비한 콘텐츠와 응용 기술 개발에도 나섰다. 가장 기대되는 분야는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을 뛰어넘는 XR(확장현실·eXtended Reality) 기술로, 이른바 ‘홀로그램’을 현실화하는 기술이다. 서울과 뉴욕, 런던 등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6G에 연결된 스마트 안경을 쓰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의 3D(3차원) 영상이 마치 눈앞에 있는 듯 펼쳐진다. 빠른 데이터 전송 속도와 낮은 지연 시간 덕분에 ‘물리적 거리’라는 방해물이 사라지는 것이다.
6G는 지상의 기지국 외에도 인공위성을 이용, 하늘과 해저까지 포함한 지구상 어디서나 빠르고 안정적인 통신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따라서 자율주행차에 이어 자율 선박과 자율 비행 기술이 본격화된다. 또 낮은 지연 시간과 초고화질 3D 영상을 이용, 뇌 수술 같은 정교한 수술도 원격의료로 가능해지리란 예상이 나온다. 다만 이는 모두 차질 없는 기술 개발과 안정적인 통신 환경에서 가능하다. 4G보다 20배 빠르다던 5G도 주파수 문제로 인해 아직 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의 통신 산업은 어떤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할까. 우선은 한·미가 상호보완적 관계로 6G 시대를 맞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남윤 교수는 “미국은 네트워크 자원을 관리하는 ‘코어네트워크’ 등 소프트웨어에 강점이 있고, 우린 5G 장비 등 제조 능력이 강점”이라며 “두 가지 모두 가능한 중국에 맞서려면 한·미가 협력해야만 하는 구조”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5G에 이어 6G마저 중국 기업에 잠식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연구 인력 부족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신 기술 연구 인력이 AI(인공지능) 등 인기 분야로 유출되는 현상이 심해서다. 정부도 최근 “연구·산업 현장의 네트워크(5G 등) 전문 인력 부족은 향후 6G 기술·시장 경쟁력 확보에 장애물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까지 대학원생 이상 네트워크 분야 전문 인력 부족 인원이 4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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