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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2035년 하이브리드카 금지’에 담긴 일본의 위기, 한국의 기회 [최원석의 디코드]

EU의 ‘2035년 하이브리드카 금지’에 담긴 일본의 위기, 한국의 기회 [최원석의 디코드]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입력 2021.07.15 10:47

 

 

 

 

 

※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유럽연합(EU)의 EU집행위원회는 14일 탄소 배출의 대폭 삭감을 위한 포괄안을 발표했습니다.

딱 두 가지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1. 하이브리드카(엔진과 모터를 모두 탑재한 차)를 포함한 가솔린·디젤 등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2035년부터 사실상 금지.

2. 환경규제가 느슨한 국가의 수입품, 즉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나라에서 들어오는 제품에 사실상의 관세를 매기는 ‘탄소국경세(CBAM)’를 2023년부터 도입.

첫번째는 한국 기업에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반면 하이브리드카를 주력으로 하는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기업에는 큰 위기일 수 있겠습니다.

반면 두번째는 한국 기업들에 큰 위기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EU 등에 비해 한국의 탄소배출 감축 수준은 아직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EU집행위원회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지난 1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탄소 배출의 대폭 삭감을 위한 포괄안을 발표했다. /신화 연합뉴스

우선 EU집행위원회의 이번 탄소배출 삭감을 위한 포괄안 내용을 정리한 뒤, 위 두 가지 포인트가 우리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 보겠습니다.

EU집행위원회의 이번 발표는 2030년까지 EU 내 탄소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줄이겠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EU는 2050년에 탄소 배출을 실질 제로(넷 제로)로 할 계획인데요. 이번 발표는 2050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간점검표 같은 것입니다.

특히 203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금지는 너무 가혹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데요. EU집행위원회가 자동차의 탈탄소를 서두르는 것은 자동차가 ‘오래 쓰는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자동차 평균 보유 연한은 15년 정도입니다. 2035년부터 신차 판매분의 CO2 배출 제로를 만들어야만, 2050년에 중고차를 포함한 탄소배출 실질 제로를 실현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지요. 현재 유럽의 국가별 차량 전체 보유대수에서 탄소배출 제로 차량(대부분 전기차) 비율은 아직 낮습니다. 신차 판매의 절반이 전기차인 노르웨이조차 전체 보유대수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14%에 불과합니다.

◇EU 차원의 ’2035년 하이브리드카 포함한 모든 내연기관 신차 판매금지'는 이번이 처음

또 EU집행위원회는 탄소국경세(CBAM)를 2023년 신설할 방침입니다. 우선 철강·알루미늄·시멘트·전력·비료 등 5 개 제품이 대상인데요. 2023년부터 시범 기간 3년 동안에 사업자에게 보고 의무 등을 부과하고요. 2026년에 본격 실시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EU집행위원회는 2030년 시점에서 탄소국경세로 얻어지는 수입이 연간 91억유로(약 12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에 따르면, EU 지역 바깥의 사업자가 환경규제가 충분하지 않은 방법으로 만든 해당 제품을 EU에 수출할 경우, EU의 배출량 거래제에 근거한 탄소가격을 지불해야 합니다. 제조과정의 배출량에 따른 금액을 산출해 사업자에게 부담시킴으로써, EU 내 기업이 역차별 받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겁니다. EU는 산업·전력 등의 대규모 시설을 대상으로 한 배출량 거래제를 이미 운영하고 있지요.

그럼 이 두 가지 핵심조치가 한국 기업 등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겠습니다.

첫번째, ‘하이브리드카(엔진과 모터를 모두 탑재한 차)를 포함한 가솔린·디젤 등 모든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2035년부터 사실상 금지하겠다’에 관한 것입니다.

이게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는 EU차원에서 이런 선언을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노르웨이가 2025년, 네덜란드가 2030년, 영국이 2035년, 스페인이 2040년에 ‘탄소배출 제로의 자동차(대부분이 전기차)만 판매한다, 즉 하이브리드카를 포함한 모든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한다’고 발표했지만, 어디까지나 각국 차원의 조치였습니다. 게다가 영국·스웨덴은 2030년, 프랑스는 2040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금지를 발표하면서, 하이브리드카는 허용한다는 취지의 조항을 넣어놓기도 했지요.

이렇게 같은 EU 혹은 범 EU 국가 내에서도 금지 연도가 다르고, 또 국가에 따라 하이브리드카를 예외로 해주기도 했지만, 이번에 ’2035년 EU 내에서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하이브리드카도 금지'라고 못박음으로써, 유럽 내 내연기관차의 종식이 한층 분명해졌고, 시기도 앞당겨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번 EU집행위원회안이 효력을 가지려면 원칙적으로 EU 가맹국과의 조정이나 유럽의회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 이번 안 자체가 자동차산업 등에 강한 충격을 줌으로써 탄소배출을 크게 줄이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조정 과정에서 방침이 크게 바뀔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오히려 내연기관 신차 판매의 유럽 내 시효가 앞으로 15년 밖에 남지 않았음을 밝힌 효과가 앞으로 점점 커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조치는 내연기관차의 발상지이자 100년 넘게 엔진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유럽 자동차산업의 근본적 변화를 더 앞당길 것입니다. 2019년 EU의 신차 판매 대수는 1300만대였습니다. 영국 등을 포함한 유럽 전체는 1600만대 시장인데요. 1600만대 선진 시장에서 내연기관차가 퇴출된다는 의미입니다. 소비자와 공급망,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당연히 클 겁니다.

반면 전기차 배터리나 전장, 전동파워트레인을 만드는 한국 기업엔 호재입니다. 물론 EU는 이번 조치를 EU 내 산업 발전·보호와 연동하려 들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2035년 모든 내연기관 신차 퇴출까지 시간이 촉박합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앞으로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유럽 최대 자동차회사인 독일 폴크스바겐을 예로 들어볼게요. 폴크스바겐은 2030년 유럽에서 신차 판매의 60%를 전기차로 채울 계획인데요. 이를 위해 2030년까지 6개의 배터리 공장을 세울 예정입니다. 배터리 내재화를 통해 전기차 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춰 보급을 앞당긴다는 전략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 유럽의 자동차 부품공급망에 일대 혼란이 일어날 겁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내연기관 중심 공급망을 전기차 중심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요타의 대표적 하이브리드카인 프리우스. 2035년부터 유럽 판매가 금지될 전망이다. /도요타

◇작년 하이브리드카만 191만대 팔아 세계시장 71% 차지한 도요타에 큰 위협

PSA(푸조·시트로엥)와 FCA(피아트·크라이슬러)가 합쳐진 신생회사 스텔란티스도 최근 전기차 전략을 발표했는데요. 이들도 내재화를 하겠지만 폴크스바겐보다도 더 쉽지 않을 겁니다. 이미 일본 최고의 모터 경쟁력을 가진 일본전산이 스텔란티스에 공급하기 위한 e파워트레인 공장을 유럽에 짓고 있는 중이고요. 삼성SDI가 스텔란티스의 핵심 서플라이어로 부상할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어쩌면 자동차가 전자제품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전장 등 관련 부분의 세트 경쟁력을 가진 한국 기업들이 (그들이 하기에 따라서는) 유럽 자동차산업의 핵심 서플라이어로 부상할 기회를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럽 최대 자동차회사 두 곳이 아무리 배터리 내재화를 노리고 지금부터 준비해도 시간이 모자랄 뿐 아니라 원가 측면에서도 매우 쉽지 않은 일입니다. 폴크스바겐 등 유럽 자동차회사들이 외부 배터리업체와의 단가인하 협상을 위해 배터리 일부를 자체 조달할 순 있겠지만,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자사 전기차에 쓰일 배터리는 외부에서 조달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따라서 한국의 3대 전기차 배터리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에는 앞으로도 유럽을 중심으로 더 큰 수요가 이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2035년이면 살짝 먼 얘기 같지만, 자동차 신차 개발 사이클로 보면 차차기 모델이나 그 다음 모델 나올 때 쯤입니다. 별로 여유가 없습니다. 가혹한 탄소배출 규제에 맞추기 위해 전기차 생산을 빨리 늘려야 하는 유럽 자동차 회사들 니즈를 잘 맞출 수 있다면, 한국 배터리기업의 성장은 이제부터일 겁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전기차 시대에는 내연기관차의 엔진 중심 플랫폼 구조가 더 이상 무적의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겁니다. 충분히 발전된 전기차의 구조는 사실 플랫폼이랄 것도 없습니다. 각각의 핵심 부품을 레고블럭처럼 갖다 붙이는 구조로 바뀔겁니다. 한국이 배터리, 열관리, 디스플레이, 반도체, 카메라센서, e파워트레인(모터·인버터·기어박스 등을 일체화한 것), 공조 등의 통합 세트 경쟁력을 높일 수만 있다면, 유럽 시장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고, 미래에 더 큰 기회와 충분한 먹을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의 유일한 글로벌 자동차회사인 현대차그룹에는 이미 예고된 위협입니다만, 이 과정에서 유럽 내 현대차의 브랜드력을 더 끌어올리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유럽에 앞으로 더 많이 판매될 전기차의 품질과 성능입니다. 현재로서는 전기차에 자율주행이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한 앱마켓·IT서비스 등이 실현되기 전이기 때문에, 전기차 주행·관리의 품질과 성능을 확실히 높혀야 합니다. ‘현대·기아의 전기차를 샀더니 유럽 전기차보다도 더 믿을만하더라’라는 이미지만 구축할 수 있으면, 유럽에서 현대차는 계속 생존하고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과도기적인 것이긴 하지만, 아직 전기차 완전 보급까진 시간이 꽤 있으니까요. 유럽에서 현대·기아가 브랜드 파워를 높이기 위해, 내연기관이지만 고성능 브랜드 ‘N’ 등을 필두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것도 좋은 시도로 보입니다. 고성능차의 판매량은 높지 않더라도, 전기차 시대를 대비해 현대·기아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유럽인에게 더 각인시키는 것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현대·기아차, 전기차 초기 신뢰도 높일 수 있다면 유럽의 주요 메이커로 성장할 수도

이게 기회인 것은 지금까지는 현대차가 내연기관 파워트레인의 본질적 경쟁력에서 독일차는 물론, 일본 톱클래스 수준도 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기차에서는 더 이상 기존의 것들이 장벽이 되지 않을 수 있고, 현대차가 하기에 따라 자동차산업 역사상 처음으로 차량의 성능이라는 본질적 가치 측면에서 독일·일본차를 넘어설 기회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내연기관차에서는 영원히 불가능해 보였던 일 말입니다.

 

현대차 내부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원가관리이겠지요. 전기차의 핵심부품은 배터리를 포함해 상당수가 외부에서 조달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지금까지 현대차는 대부분의 핵심 부품을 자체 공급망 사슬 내에서 관리하면서, 강력한 가격 협상능력을 발휘해 원가를 억제해 왔는데요. 전기차에선 이게 안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시 말해 경쟁사보다 더 낮은 원가에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해 시장에서 이긴다는 지금까지의 전략을 전기차에서 어떻게 계속 이어갈 수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현대차의 전기차 제조원가는 시장에서 보조금을 100%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몇퍼센트의 이익을 남기는 정도로 추정됩니다. 다시 말해 보조금이 없으면 팔 때마다 큰 적자라는 얘기입니다. 즉 보조금을 받지 않아도 이익을 낼 수 있는 원가구조, 그러면서도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얼마나 빨리 만들 수 있느냐가 전기차 시대에 현대차가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지를 규정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일본차에는 한층 더 큰 위협이 될 것입니다. 일본 제조업 가운데 기강과 경쟁력이 살아있는 자동차산업은 아직까지 내연기관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최강의 제조기업 도요타는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카 보급으로 친환경차 대응을 해왔지요. 작년 도요타는 세계시장에 190만6000대의 하이브리드카를 팔았지만 순수 전기차는 고작 3000대를 파는데 그쳤습니다. 자신들이 하이브리드카 다음으로 밀었던 수소연료전지차는 일본 정부의 전폭 지원에도 불구하고 연간 글로벌 판매량이 2000대에 불과했습니다.

◇하이브리드카 고집하던 일본, IT산업에 이어 ‘자동차 갈라파고스화’되나

현재 하이브리드카는 전세계 전동차(하이브리드카, 플러그인, 순수전기차 등) 판매에서 비중이 가장 높습니다. 작년 하이브리드카는 269만대, 플러그인은 96만대, 전기차는 220만대가 팔렸거든요. 하지만 269만대의 하이브리드카 판매에서 도요타·혼다 등 일본 2개 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88%이고요. 도요타 혼자 차지하는 비중이 71%입니다. 즉 하이브리드카는 거의 일본만 만들뿐, 유럽·미국은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대로 가면 IT산업에 이어 자동차산업에서도 일본의 갈라파고스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유럽이 2035년부터 하이브리드카 신차 판매 금지를 밝히면서, 사실상 하이브리드카가 15년 뒤면 용도폐기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물론 이번 유럽의 발표는 하이브리드카로 치고 나간 일본자동차의 견제 성격도 포함됐지만, 하이브리드카의 구조적 한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이브리드카는 지금까지 전기차의 충전 한계, 비싼 가격 등을 보완할 최적의 제품으로 평가돼 왔지만, 내연기관 구동계통와 전기 구동계통을 동시에 넣는다는 비용 면의 비효율이 상존해 왔습니다. 그리고 시스템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원가 인하 여지가 많지 않고, 범용 제품으로의 대량 보급이 어렵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따라서 전기차 제조원가가 빠르게 내려가고 있는 추세를 볼 때, (주행 단계에서라면) 탄소배출 제로를 바로 구현할 수 있는 전기차 쪽으로 개발·보급이 급격히 쏠리게 되는 계기가 이번 유럽의 발표를 통해 만들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즉 도요타는 전기차 시대가 더 늦게 올 것이라고 보고 하이브리드카로 시장 표준을 만들려 했지만, 결국 자신들 이외엔 만들지 않는 기술로 끝을 보게 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도요타는 EU의 이번 조치가 나온 뒤 “전략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말했습니다.

◇유럽 당국자들의 최대 걱정은 ‘중국 전기차의 역습’

마지막으로 중국인데요. 중국은 유럽의 전기차 급선회로 더 큰 기회를 맞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중국도 2035년 자국 신차 시장을 탄소배출 제로 자동차(대부분 전기차) 50%, 하이브리드카 50%로 채운다는 로드맵을 발표한 상태입니다. 중국은 내연기관차 시대에 독일·미국·일본차를 따라가지 못했지만, 전기차에선 충분히 해볼 만하죠. 유럽의 당국자들이 전기차 시대에 가장 두려워하는 상대도 중국입니다. 중국이 높아진 제조품질, 규모의 경제, IT·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바탕으로 저가 전기차 공세를 해 올 경우, 유럽의 자동차 산업이 크게 위협받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지요.

중국이 2035년에 신차 절반을 하이브리드카로 채운다는 것도 중국 입장에선 꽃놀이패를 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하이브리드카 기술력을 갖고 있는 도요타는 앞으로 자사 핵심기술인 하이브리드카를 대량으로 팔기 위해 중국 눈에 들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이미 도요타나 혼다는 중국에서 연간 200만대 가까운 신차를 팔고 있지요. 전략적으로 볼 때 중국에 하이브리드 기술을 다 주고라도 시장을 얻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중국 입장에선 2035년까지 연간 3000만~4000만대 자국 시장을 무기로 국산 전기차와 자율주행 플랫폼을 보급하면서, 일본에 시장을 일부 내주더라도 하이브리드 등 과도기 기술을 충분히 습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기차 시대의 자동차 주요 수출국 부상을 노리겠지요. 일본도 이런 중국의 전략을 잘 알겠지만, 당장 전기차로 전면적인 전환이 어려운 상황에서 하이브리드카를 충분히 더 팔아 수익을 내야 하니, 중국과의 공조를 강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한국의 배터리·공조·열관리·모터 등 세트 경쟁력이 빛 발할 것... EU 수출에 걸림돌 안되도록 국내 탄소배출 감축 서둘러야

두번째는 환경규제가 느슨한 국가의 수입품 측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나라에서 들어오는 제품에 대해 사실상 관세를 매기는 ‘탄소국경세(CBAM)’를 2023년에 도입한다는 겁니다. 제3국에 EU 수준의 기후변화 정책을 요구하는 제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첫 대상 품목으로 볼 때, 당장 영향이 큰 나라는 러시아·중국·터키 등입니다. EU의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시멘트에서는 터키가 37%, 비료에서는 러시아가 36%, 철강에서는 이들 3개국이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철강이나 시멘트 업계는 이미 엄격한 환경 규제로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를 환영하고 있죠. 한편 중국·러시아 등은 이에 대해 반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앞으로 탄소국경세 대상 품목이 확대될 우려가 있어 한국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장래에 한국이 EU에 물건을 수출할 때, 한국이 EU 수준의 탄소배출 감축 정책을 취하고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페널티를 물게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한국은 탄소배출량 거래제 등을 아직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EU와 동등 수준의 환경대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EU에선 배출량 거래에 근거해 탄소 배출 권리의 가격이 발표됩니다. 데이터로 나타낼 수 없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지요. 한국 기업들이 EU발 탄소국경세에서 결코 유리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알기 쉽게 자동차를 예로 들어 볼게요. 유럽은 신차 탄소배출이 주행거리 1km 당 95g을 넘어가면 벌금을 내야 합니다. 이 기준이 얼마나 가혹하냐 하면, 한국에서 팔리는 경차나 하이브리드카조차 이 기준을 맞출 수 없을 정도입니다. 유럽 기준으로는 한국에서 현재 팔리는 차량 대부분(전기차 제외)이 벌금 부과 대상이라는 것이죠. 게다가 EU집행위원회의 2030년 신차 CO2 규제에 따르면, 주행거리 1km 당 CO2 배출량을 2021년 대비 55% 삭감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연비로 환산하면 휘발유 1L당 54km를 달려야 하는 셈입니다. 내연기관 신차 금지를 5년이나 앞둔 시점이지만, 이 상황에서도 전기차를 빼고는 하이브리드카를 포함해도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차가 없습니다.

한국이 조만간 유럽과 같은 수준의 자동차 탄소배출 규제, 혹은 국가 차원의 탄소배출 감축을 시행하지 않는다고 당장 수출에 문제가 일어나진 않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어떤 형태로든 압박이 들어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간접적으로라도 그것이 한국의 선진국 수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지금처럼 대형차, 연비 안좋은 차가 엄청나게 팔리는 국내 상황을 개선하고, 국가적으로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실질적 조치가 이어져야만, 선진국 수출에서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가지 더 중요한 얘기를 하고 마치겠습니다. 유럽의 2035년 하이브리드카를 포함한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는 ‘모두가 전기차로 간다’는 타임라인에 쐐기를 박는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전기차의 구동장치가 엔진에서 배터리·모터로 빠르게 바뀌어 감에 따라, 전기 동력원을 기반으로 자동차가 스마트폰처럼 바뀌어가는 속도도 한층 가속화될 것입니다. 이에 따라 구글·애플 등 소프트웨어·AI·데이터에 강한 거대 IT 기업들의 자동차 진출도 곧 발표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동차의 스마트폰·컴퓨터화에 따른 글로벌 업계의 거대한 변화와 부가가치 창출에 촉각을 세우고 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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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