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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코로나가 낳은 황금알 mRNA, 21세기 만병통치 노린다

코로나가 낳은 황금알 mRNA, 21세기 만병통치 노린다

[WEEKLY BIZ] [Cover Story] 암·독감·에이즈까지 정복 나서

입력 2022.01.13 19:05
 
 
 
 
 
mRNA/게티이미지뱅크

신종 코로나 대유행(팬데믹)은 인류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줬지만, 글로벌 대형 제약사(big pharmaceutical company·빅파마)에게는 기회가 됐다. 미국 화이자가 지난해 코로나 백신만으로 올린 매출은 360억달러(약 43조1280억원)로 추정된다. 팬데믹 이전 시가총액 60억달러(약 7조1800억원) 수준의 작은 제약사였던 미국 모더나는 코로나 백신 개발 이후 시총이 한때 1800억달러(약 216조5000억원)까지 뛰며 단숨에 빅파마 대열에 올라섰다. 화이자와 함께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독일 바이오엔테크 역시 시총이 팬데믹 이전보다 7배 뛰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코로나 백신 개발 레이스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이 1년도 안 돼 개발되리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두 회사가 활용한 메신저리보핵산(mRNA)이라는 기술이 백신으로 쓰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백신 개발은 mRNA를 바라보는 빅파마들의 관점을 완전히 뒤바꿨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마이클 초이 생명과학 책임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5년 전만 해도 회사들이 이 분야에 투자하는 데 망설임이 있었다”며 “많은 사람들이 mRNA 백신을 접종받게 되면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했다.

빅파마들은 이제 코로나를 넘어 독감이나 암, 에이즈에 이르는 다양한 질병 예방과 치료를 위해 mRNA를 연구하고 있다. 작년 9월 과학저널 네이처 자매지인 네이처 리뷰 드럭 디스커버리에 실린 보고서는 2025년부터 새로운 mRNA 백신·치료제가 시장에 진입해 2035년까지 전체 mRNA 시장이 230억달러(약 27조554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빠르고 유연한 mRNA

mRNA가 처음 발견된 건 1961년이다. mRNA는 DNA의 유전 정보를 단백질을 만드는 생체공장인 리보솜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론적으로는 mRNA를 이용해 생명체에 필요한 모든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기술의 한계로 오랜 기간 의약품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1980년대 유전자증폭기술(PCR)이 개발되면서 DNA 서열로부터 mRNA를 합성할 수 있게 됐고, mRNA를 이용해 단백질을 만드는 연구가 시작된다.

그러나 그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mRNA가 세포 안까지 들어가는 효율이 굉장히 낮은 데다(분자 1만개당 1개), 세포에 들어가더라도 과도한 면역 반응을 유발하는 부작용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mRNA를 세포 안까지 안전하게 전달해주는 지질나노입자(LNP) 기술이 나오고,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변형 mRNA가 개발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바이오엔테크(2008년), 모더나(2010년)처럼 mRNA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제약 스타트업이 등장했고, 크고 작은 기술 혁신이 이어진다. 이런 가운데 팬데믹이 터지자 가능성의 영역에 머물던 mRNA 기술이 코로나 백신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mRNA 백신의 가장 큰 장점은 신속성과 유연성이다. mRNA 백신은 기존 백신처럼 바이러스 항원을 체내에 직접 주입하는 대신 몸 안에서 항원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 mRNA를 주입하는 방식이다. 바이러스를 대량 배양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제조 기간이 짧아 단기간에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또 바이러스의 유전자 정보만 알면 빠르게 설계할 수 있어 초기 개발을 위한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들고,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하기도 쉽다. 실제로 2020년 1월 10일 중국에서 코로나 유전자 정보가 공개되자 모더나는 48시간 만에 백신을 설계했고, 25일 만에 1상 임상시험에 필요한 백신을 만들었다.

◇다음 타깃은 ‘독감 백신’

빅파마들이 mRNA 백신의 다음 타깃으로 삼고 있는 질병은 계절성 독감이다. 독감 바이러스는 매년 변이를 일으킨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는 매년 각 지역의 바이러스 유행 정보를 종합해 그해 겨울에 유행할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를 예측해 백신 성분에 포함하도록 권장한다. 백신 제조업체는 WHO 권고를 바탕으로 6개월간 유정란이나 동물 세포에서 바이러스를 배양해 백신을 생산한다. 그러나 실제 유행하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예측한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기 때문에 WHO의 예측과 다른 바이러스가 유행하면 백신을 접종해도 독감에 걸리게 된다. 이 때문에 예방 효과가 높지 않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09~2020년 독감 백신의 평균 예방 효과는 43%였다. 2014~2015년에는 예방 효과가 19%에 그쳤다.

반면 mRNA 백신은 생산 기간이 짧아 유행철에 맞춰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 갑작스럽게 신종 인플루엔자가 유행해도 바로 대응이 가능하다. 스티븐 호지 모더나 사장은 FT에 “mRNA는 여름에 설계할 수 있는 새로운 독감 백신을 가능하게 하는데, 이는 남반구 겨울에 실제로 유행한 바이러스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단순히 추측을 기반으로 한 백신과 다르다”고 했다. 모더나는 지난달 계절성 독감 mRNA 백신 후보물질에 대한 1상 임상시험에서 긍정적인 중간 데이터를 얻었다고 발표했다. 성인 180명을 대상으로 시험된 모든 용량에서 백신 접종 후 29일 뒤 면역반응이 촉진됐고, 안전성 문제도 관찰되지 않았다. 다만 이번 임상에선 고령자 그룹에서 기존 백신인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의 플루존보다 더 나은 효과를 보이지 못하면서 시장에 실망감을 안겼다. 호지 사장은 “이번 임상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독감 백신과 코로나 백신의 결합”이라고 했다. 모더나는 코로나와 독감을 동시에 예방하는 백신도 개발 중이다.

화이자도 바이오엔테크와 함께 작년 9월 독감에 가장 취약한 65~85세 성인을 위한 mRNA 독감 백신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이 밖에 사노피와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각각 미국 트랜슬레이트 바이오, 독일 큐어백과 함께 mRNA 독감 백신을 개발 중이다. 다만 기존 독감 백신을 mRNA가 대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크레디트스위스의 조 월튼 분석가는 “독감으로 인한 사망이 종종 심장 합병증으로 야기되는데, 코로나 백신이 드물게 심근염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mRNA 독감 백신은 코로나 백신보다 훨씬 더 높은 안전성을 요구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암·에이즈 정복도 도전

팬데믹 이전 mRNA 백신은 주로 암 치료용으로 개발되고 있었다. 암세포는 정상세포의 유전자 돌연변이를 통해 만들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정상 단백질과는 다른 돌연변이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면역세포가 정상세포와 암세포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다면, 암세포만을 선별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암을 치료하는 mRNA 백신의 원리는 이렇다. 먼저 암환자의 종양 세포조직을 잘라내 돌연변이를 분석하고, 어떤 특정한 단백질이 가장 강한 면역 반응을 이끌어낼지 예측해 개인 맞춤형 mRNA 백신을 설계한다. 백신이 환자에게 주입되면 mRNA는 종양 세포의 돌연변이를 이물질로 인식하도록 면역체계를 훈련시키는 단백질을 생산하라고 지시한다. 훈련된 면역체계는 몸 전반에 있는 비슷한 종양 세포를 인식하고 파괴한다. 바이오엔테크의 리안 프로이스너 임상 부사장은 미국 NBC에 “백신은 최대 20개의 돌연변이를 목표로 할 수 있고, 종양 조직검사부터 접종까지 전 과정에 약 6주가 소요된다”고 했다.

바이오엔테크는 암 세포를 죽이는 11가지 다른 접근 방식을 사용하는 21개의 mRNA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 mRNA 백신은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며, 작년 11월 미 식품의약국(FDA)의 ‘패스트 트랙(fast track)’ 프로그램에 지정됐다. 패스트 트랙에 지정되면 심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FDA 승인을 받을 확률도 높아진다. 바이오엔테크는 작년 10월부터 대장암 mRNA 백신 임상 2상도 시작했다. 우구르 사힌 바이오엔테크 CEO는 “mRNA 백신으로 암 치료 백신을 개발하게 된 이유는 모든 종양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같은 암 유형을 가진 환자들도 동일한 종양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개인화된 치료법이 단일화된 접근법보다 효과적”이라고 했다. 모더나 역시 미국 머크와 협력해 개인 맞춤형 암백신의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40년 가까이 효과적인 백신 개발에 실패한 에이즈 바이러스(HIV)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모더나와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는 지난달 원숭이를 이용한 HIV mRNA 백신 기초 연구 결과를 과학 저널 네이처 메디슨에 발표했다. 이 백신은 HIV 바이러스의 핵심 단백질 2개를 만드는 mRNA 지시를 전달한다. 백신을 접종하면 근육세포가 두 단백질을 결합해 바이러스 유사 입자(VLP)를 생산해내는데, VLP는 HIV의 완전한 유전자 코드를 갖추지 않아 질병이나 감염을 일으키지 않는다. 최초 접종 이후 14개월이 지나자 모든 원숭이들에게 12가지 HIV 중화 항체가 형성됐다. 이후 13주간 연속으로 바이러스에 노출시킨 결과, 백신 접종군이 HIV에 감염될 확률은 미접종군에 비해 79%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파올로 루소 NIAID 박사는 “VLP의 품질과 양을 개선하기 위해 백신 프로토콜을 정비하고 있다”며 “안전성과 효과가 확인되면 건강한 성인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했다.

◇투자도 과열...“과도한 기대는 금물”

mRNA 발전 가능성에 눈뜬 빅파마들은 기술 및 생산시설 확보를 위해 mRNA 기업 인수·합병에 나섰다. 글로벌 백신 시장의 전통 강자이지만 mRNA 기술 부족으로 코로나 백신 개발에서 밀렸던 사노피는 지난해 미국 타이달 테라퓨틱스와 트랜슬레이트 바이오를 잇따라 인수했다. 사노피가 총 4억7000만달러(약 5636억원)에 사들인 타이달은 종양학과 면역학 및 기타 질병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mRNA 기반 연구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 트랜슬레이트 역시 mRNA 기술 플랫폼을 보유한 회사로 인수금액은 32억달러(약 3조8374억원)에 달한다. 트랜슬레이트는 2018년부터 사노피와 협력해 계절성 독감 mRNA 백신을 개발해왔다. 폴 허드슨 사노피 CEO는 “진행 중인 연구에 mRNA 플랫폼 기술을 추가해 동급 최고의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가속화할 수 있게 됐다”며 “백신 외에도 면역학, 종양학, 희귀질환 등의 영역에서 mRNA의 잠재력을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독일 머크도 작년 1월 독일의 mRNA 위탁생산기관 앰프텍을 인수했다. 미국 헬스케어 기업 다나허는 지난해 6월 미국의 mRNA 위탁생산기관 알데브론을 96억달러(약 11조5142억원)에 사들였다.

mRNA 백신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나오면서 기술 특허를 둘러싼 법적 분쟁도 치열하다.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는 코로나 백신 출시 전인 2020년 10월 미국 바이오 벤처기업 앨리얼 바이오테크놀로지로부터 특허 침해 소송을 당했다. 화이자가 코로나 백신 임상시험 중 중화항체 테스트를 하면서 앨리얼이 특허를 보유한 단백질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화이자 등은 해당 테스트는 특허법에 규정된 침해면제 행위에 속해 특허 침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반박했고,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이다. 모더나는 mRNA를 세포 안까지 안전하게 전달해주는 지질나노입자(LNP) 기술 특허를 놓고 아버터스 바이오파마와 다퉜다.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지난달 아버터스의 손을 들어줬고, 이 결과가 나오자 모더나 주가는 당일 11% 급락했다. 코로나 백신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 중 일부를 아버터스에 로열티로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mRNA가 의약품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도 뜨겁다. 최근엔 이 분야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ETF(상장지수펀드)도 출시됐다. 지난달 미국 자산운용사 디렉시온은 ‘디렉시온 mRNA ETF(MSGR)’를 뉴욕 증시에 상장시켰다. 바이오엔테크, 모더나를 비롯해 미국 다이서나 버텍스, 중국 베이진 등 mRNA 관련 기업 24곳에 투자한다.

다만 mRNA 기술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코로나 백신은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11개월 만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지만, 다른 백신이나 치료제의 경우 임상시험부터 승인까지 몇 년이 걸릴지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바이오협회 연구에 따르면 1상 시험에 들어가는 약이 시장에 출시되는 비율은 10%를 밑돌았다. 3상 시험까지 가더라도 60%는 시장에 출시되지 못했다. 종양학자 데이비드 브라운은 “과거에도 열정과 훌륭한 아이디어가 과장된 약속이 되는 실수가 여러 차례 나왔다”며 “mRNA가 전염병을 넘어 사용될 가능성은 많지만, 큰 도약이 필요하다”고 했다.

☞mRNA(메신저 리보핵산)

세포핵의 유전자에서 특정 단백질에 대한 정보를 복사해서 세포 내 단백질 합성 공장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mRNA 백신은 체내에 mRNA를 주입해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단백질을 만드는 방법을 세포에 가르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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