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의 환경칼럼] 알이백은 수단의 하나일 뿐 목표는 카본프리
태양광·풍력은 온실가스 감축 수단의 하나일 뿐
에너지 정책 목표는 ‘카본프리’로 설정해야
대통령이 편향되게 알면 그것이 진짜 위험
지난주 대선 후보 토론에서 ‘알이백(RE 100)’ ‘블루 수소’ ‘택소노미(taxonomy)’라는 낯선 용어들이 등장했다. 대통령이 전문 용어까지 꿰고 있다면 의사소통에 도움이 될 것이다. 모르고 있더라도 전문가들 보좌를 받아 균형 잡힌 의사 결정을 할 시스템을 갖추면 문제될 것은 없다. 섣부르게 알거나 편협한 관점이 입력돼 있다면 그것이 더 위험하다. 탈원전을 고집하면서 ‘8년 내 온실가스 40% 감축’을 국제적으로 약속해버리는 것이 그런 경우다.
토론에서 이재명 후보가 “알이백에 어떻게 대응할 거냐”고 묻자 윤석열 후보는 “알이백이 뭐냐”고 되물었다. 알이백은 태양광·풍력 등만 쓰자는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 캠페인의 구호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가 기발한 비유로 이것의 맹점을 짚은 적이 있다. “성적을 올리는 것이 목표인데, 나는 학원 열심히 다녔으니 할 일 다했다면서 학교 수업, 자기 공부를 소홀히 해도 되느냐”는 것이다. 학원 수강은 성적 올리기의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대학 입시에서 학원비 영수증을 제출해놓고 합격시켜달라고 할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좋은 성적표다.
알이백은 온실가스를 감축시키는 다양한 방법의 하나에 불과하다. 다른 유력한 수단들도 있다면, 그것들도 최대한 다 활용해야 한다. ‘오로지 재생에너지만’은 원래 목표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것을 까먹고, 수단인 재생에너지를 목표로 착각하는 것이다. 진짜 목표는 ‘카본프리(Carbon Free·탄소 제로)’가 맞는다.
구글은 그것을 정확히 알았다. 구글은 알이백에도 참여하면서 ‘카본프리 100′를 밀고 나갔다. 태양광, 풍력, 원자력 할 것 없이 무탄소 에너지라면 뭐든지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알이백은 바람이 잠잠하고 태양이 가려지면 무력해진다는 허점이 있다. 구글 데이터 센터는 바람과 태양이 없어도 가동해야 한다. 그래서 구글은 24시간, 1주일 내내, 365일 전력 공급이 가능한 무탄소 에너지(24/7 carbon free energy)를 지향했다.
이 후보는 윤 후보에게 “미래 산업 핵심은 수소 경제가 될 텐데 블루 수소와 관련한 어떤 비전이 있는지 말해달라”는 질문도 했다. 수소 경제의 관건은 수소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에 있다. 가장 일반적으로는 천연가스를 고온-고압 수증기로 반응시켜 만들어낸다. 이것을 그레이 수소(회색 수소)라고 하는데 세계 수소의 76%가 이 방법으로 만든다. 값이 싸게 먹히지만 이산화탄소를 다량 발생시킨다. 블루 수소는 그레이 수소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걸러내 심지층에 분리 저장시키자는 아이디어다. 그러면 온실가스 배출 없이 수소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블루 수소가 사실은 온실가스를 굉장히 많이 뿜어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코넬대와 스탠퍼드대 전문가들이 작년 8월 과학저널에 ‘블루 수소는 얼마나 환경적인가(How green is blue hydrogen)’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천연가스는 채굴~운반~저장~연소의 전 과정에서 강력한 온난화 작용력을 갖는 메탄을 일부 누출시킨다. 이 효과에다 온실가스 포집·저장 과정의 에너지 소모까지 모두 계산해봤더니 블루 수소는 천연가스를 그냥 연소시켜 에너지를 얻는 것보다 배출량이 20% 많았다. 천연가스에서 직접 에너지를 꺼내 쓰는 것이 낫지, 수소로 변환시켜 에너지로 쓰면 온실가스를 포집하더라도 지구 기후에 되레 나쁘다는 것이다.
에너지 분석기관인 BNEF도 작년 12월 ‘블루 수소는 유지비만 많이 들 테니 포기하라’는 취지의 글(Blue Hydrogen could become White Elephant)을 올렸다. 블루 수소를 생산하려면 거대 설비를 갖춰야 하는데,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경합 기술(그린 수소)과의 경쟁에서 밀려 퇴출될 수밖에 없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블루 수소에 기대를 걸었다면 꿈 깨라는 것이다.
이 후보는 또 “EU 택소노미가 중요한데 원자력 관련 논란이 있다.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라고 물었고, 윤 후보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가르쳐달라”고 했다. 택소노미란 어떤 기술이 친환경인가를 판정하는 녹색 분류 체계를 말한다. 한국은 작년 연말 녹색 분류 체계에서 원전을 배제시켰다. 반면 EU는 원자력발전이 탄소 중립에 필요하다며 녹색 분류 체계에 포함시켰다. 한국은 극도의 토지 부족 국가여서 될수록 토지를 적게 차지하는 에너지 기술에 환경 점수를 더 줘야 하는데 완전히 거꾸로 갔다.
전문 용어를 구사하면 지식의 우위를 과시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전문 용어에는 함정이 있다. 전문가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이라는 권위로 포장돼 본질을 가릴 수 있다. 멋진 말처럼 들려 맞겠거니 하고 그냥 넘어가 버리는 심리적 나태를 초래한다. 국가 정책에선 실증적 판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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