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亡國)시대, 고종이 보여 준 매국 행각
2월16일 '조선일보'에 게재된 박종인 기자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짝사랑한 고종'편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한다. 박종인 기자는 연속기획 '땅의 역사'를 기획, 연재하며 그동안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1909년 비 내리던 여름날 '대한제국' 황제였던 고종(高宗)이 보여 준 매국행각의 통탄할 '덕수궁'의 기이한 풍경이다.
"1909년 7월6일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일본으로 돌아가며 '고종'을 알현했다. 고종은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강제 퇴위되고 덕수궁에 살고 있었다. 비가 내렸다. '고종'이 人(인), 新(신), 春(춘)의 세 글자로 운(韻)을 내리니 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부통감 '소네 아라스케(曽祢荒助)',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오노리(森大來)',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이 이어가며 시를 썼다. 먼저 '이토 히로부미'가 "단비가 처음 내려 만인을 적셔주니(甘雨初來霑萬人:감우초래점만인)로 읊었다. 이어서 '모리 오노리'가 "함녕전 위 이슬빛이 새로워지고(咸寧殿上露華新:함녕전상로화신)이라고 화답했다. 이어서 '소네 아라스케'가 "부상(일본)과 근역(한국)을 어찌 다르다 하리오(扶桑槿域何論態:부상근역하론태)라고 썼다. 이완용이 이어 받아 "두 땅이 하나 되니 천하가 봄이로다(兩地一家天下春:양지일가천하춘)"로 마무리지었다. 1935년 덕수궁 정관헌 옆에 이 시를 새긴 시비(詩碑)가 건립됐다. 비석 뒷면에는 "태황제께서 크게 기뻐하였다(대가가상:大加嘉賞)"고 적혀 있었다.(오다쇼고 '덕수궁사(德壽宮史)'. 이왕직 1938, p73ㅡ74쪽). 나라 땅이 군화 자국으로 도배되던 순간 '이토 히로부미'를 '비스마르크'에 비견하던 고종, 충신들이 자결하며 상소를 올릴 때 검은 수염을 자기를 위해 써 달라고 부탁하던 황제 이야기다. 문제의 시비는 해방 후 땅에 묻혔다. 지금도 묻혀 있을 것이다." 대한제국의 국권을 일본에 빼앗긴 것을 지지 찬양한 글짓기를 고종이 직접 지휘하고 크게 기뻐했다는 것이다. 이런 천하역적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박종인 기자가 지적한 대로 나라가 사라지는 비통하고 처참한 역사적 순간에도 한때 대한제국 황제였던 고종은 일말의 뉘우침이나 속죄도 없이 '나라 잃은 슬픔'을 서러워하기보단 한 줄의 시로 읊조리게 하며 자축을 하였다니 슬프고도 슬픈 일이 아닌가? 정권 말기의 대통령 문재인이 야당 대통령 후보가 말한 '적폐청산 발언'에 대해 격분하였다는 보도가 고종의 이같은 기이한 행각과 연결, 연상되기도 한다. 나라가 사라지던 망국의 순간에도 고종이 보여준 파렴치, 철면피, 몰지각한 매국 행각이 후대의 젊은 한 기자에 의해 소상하게 파헤쳐지고 있음은 역사 바로세우기를 위한 정도(正道)라고 본다. 박종인 기자는 고종의 역적행위를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하기도 했다. 1904년 2월23일, 일본에 군용지 제공을 위한 '한·일 의정서' 2월28일, 일본에 18만 엔 군자금 기부. 3월18일, '이토 히로부미'에게 '나를 보필하라' 3월20일, '이토는 동양의 비스마르크' 3월22일, 천황 하사금 30만 엔 수령. 3월24일, '이토'에게 제국최고훈장 수여. 3월25일, 일본인 전원에게 훈장 수여. 3월25일, '이토의 보필을 기대한다' 당부. 7월22일, '이토 보내달라'고 천황에게 전문. 1905년 외교권 박탈당한 '을사조약 체결. 11월11일 일본공사 접대비 2만 엔 상납. 11월15일 일본사절단 65명에게 훈장 수여. 11월17일 을사조약 체결. 11월28일 '이토' 고종 알현. 고종은 아직 검은 수염이 남았으니 짐(朕)을 위해 공헌해 달라. 이토는 미소로 대답 11월30일 민영환 자결. 12월1일 조병세 자결. 박종인 기자는 '매국노 고종'이라는 저서도 발간했다. 용기있고 정의감에 불타는 박종인 기자의 투철한 역사인식은 사료(史料)를 근거로 부끄러운 비극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땅의 역사'를 천착(穿鑿)하고 있다. 어리석고 못난 군주(君主)가 저지른 매국의 부끄러운 역사적 기록을 제대로 밝혀내고 있다. 일신과 가족들의 부귀영화만을 지키려고 몸부림친 미련한 군왕(君王)의 비극적 역사를 통찰하는 것은 앞으로의 국가적 비극을 예방하는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박종인 기자가 파헤치는 역사 바로알기 작업은 감동과 감명을 넘어 분노와 전율을 느끼게도 한다. |
[ 2022-02-17, 04: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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