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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보

쇼핑몰 아닙니다, 병원입니다… 의사가 직접 지었어요

쇼핑몰 아닙니다, 병원입니다… 의사가 직접 지었어요

성공하는 병원 건축 노하우

이지은 땅집고 기자
입력 2022.03.22 03:00
 
 
 
 
 
2018년 인천 계양구에 준공한 ‘인천세종병원’은 건물 외관을 유리와 알루미늄 패널로 마감해 위생적이고 깔끔한 느낌을 준다. 1층 로비(오른쪽)는 3층까지 천장을 높여 개방감을 확보했다. 건물 사이에 환자를 위한 작은 정원(왼쪽)도 만들었다. 병원 내부는 단순함과 청결을 콘셉트로 꾸몄다. /더건축사사무소

평소 병원을 짓고 싶었던 의사 A씨. 수도권에 근린생활시설용지 300평을 사서 건축에 나섰다. 하지만 인허가를 받으러 관할 구청을 찾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구청 관계자는 “건축법상 병원은 의료시설용지에만 지을 수 있다”면서 “근린생활용지를 의료시설용지로 바꾸는 것은 안된다”고 했다. 결국 A씨는 울며겨자먹기로 땅을 처분했다.

경기도 부천시에 지상 6층짜리 병원을 지은 의사 B씨도 난감한 상황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건축사사무소에 설계를 맡겼는데 사달이 났다. 미적 감각을 중시한 건축사가 외관 마감재로 녹슨 철판 느낌이 나는 붉은 코르텐강을 사용한 것. 신축 건물인데 마치 폐업한 병원처럼 보인다. B씨는 “병원 첫 인상이 좋지 않으니 환자가 안 오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메디컬빌딩을 직접 짓고 싶어하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 문제는 의료 분야에선 전문가라도 건축에선 완전 ‘초짜’인 의사들이 주먹구구식으로 건축에 나서고 있다는 것. 건축 문외한인 선배 의사에게 도움을 받거나 병의원 설계를 모르는 건축사를 찾았다가 실패해 폐업하는 경우도 있다.

땅집고는 오는 4월 병의원 건축을 준비하는 의료인 등을 대상으로 ‘메디컬빌딩 건축 마스터클래스 1기’를 개설한다. 병의원 건축 기획·컨설팅 경력만 30년 넘는 이용균 병원이노베이션연구소장, 건국대병원·중앙대병원 등 국내 굵직한 병원 설계·감리를 진행한 원형준 더건축사사무소 대표 등이 멘토로 나선다. 이 소장과 원 대표를 통해 병의원 건축 성공 노하우를 미리 들어봤다.

◇”상주 인구 많고 노령화 지수 높은 곳 유리”

병의원 건축시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하는 것은 ‘규모’다. 병상 규모에 따라 매입해야 할 땅 용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상 30병상 미만은 ‘의원’, 30병상 이상은 ‘병원’으로 각각 분류한다. 100병상 이상이면서 진료과목 8개가 넘으면 종합병원이다. 이 때 의원은 근린생활시설로 분류해 도심에 짓기가 쉽다. 병원은 다르다. ‘도시계획상 병원 부지’에만 지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각자 진료과목이 다른 의사들이 힘을 합쳐 근린생활시설용지에 병상을 최소한으로 줄인 지상 10층 안팎 메디컬빌딩을 많이 짓고 있다. 규모는 병원급인데 법적으로는 의원을 짓는 방식이다.

위부터 건물 내 에스컬레이터, 정문 입구, 입원 병실. /더건축사사무소

메디컬빌딩은 어디에 지어야 할까. 이용균 소장은 해당 지역 상주 인구 수와 노령화 지수를 확인하라고 했다. 그는 “의료 서비스는 수요를 의도적으로 만들 수 없어 상주 인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국가 공식 인구 통계 바탕으로 수요를 계산해야 한다는 것. 나이에 따라 의료 서비스 빈도도 큰 차이가 나 노령화 지수도 중요하다. 이 소장은 “의료 서비스 이용 빈도는 10대보다 60대가 6배 정도 많다”면서 “해당 지역의 노령화 지수는 절대적인 지표가 된다”고 했다.

 

◇깔끔한 외관이 중요…치유 공간 조성이 새 트렌드

메디컬빌딩은 일반 근생빌딩이나 오피스와 설계부터 달라야 한다. 원형준 대표는 “일반 건물은 예술적 완성도와 독창성이 중요하지만 메디컬빌딩은 깔끔한 인상을 주면서 위생 관리가 편한 자재를 사용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2018년 인천시 계양구에 원 대표가 설계해 완공한 ‘인천세종병원’은 매끈하고 청소하기 쉬운 유리와 알루미늄 패널로 외관을 꾸몄다. 석재처럼 우툴두툴한 질감이 나는 자재로 마감하면 먼지와 때를 타기 쉬워 병의원 건물에 적합하지 않다.

내부를 꾸밀 때는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 동선을 효율적으로 분리해야 한다. 자칫 동선이 겹쳐 충돌하면 사고 우려가 있다. 각종 안내 표지판 글자는 크고 깔끔해야 한다. 원 대표는 “진료 과목별로 공간 구획도 다르다”고 했다. 예를 들면 정형외과는 각종 의료기기 설치가 필요해 공간이 넓어야 한다. MRI 12~15평, CT 10평, 엑스레이실 5평 정도는 배정해야 한다. 반면 피부과라면 환자 침대가 들어갈만한 레이저 기계실 5평 정도면 족하다.

메디컬빌딩 새 트렌드 중 하나는 치유 환경 조성이다. 대기실 등 환자가 오래 머무는 공간을 호텔급으로 꾸미면 진료실 방이 작아도 만족감이 높아진다. 부산 부민병원의 경우 옥상에 200평 규모로 자스민·페퍼민트 등 허브를 심어 ‘그린 루프’를 만들었다. 입원 환자와 보호자들이 산책하면서 답답한 병원 생활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된다.

이 소장은 “병원은 진료가 가장 중요하지만 수요자인 환자는 병의원 건물을 보고, 내부를 경험하면서 의료 서비스의 차이를 느끼는 측면도 크다”며 “최소한 메디컬빌딩에 필요한 원칙과 요소를 갖춘 건축을 할 수 있도록 의료인도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