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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문물

뇌물받고자살한노무현前大統領에게

뇌물받고자살한노무현前大統領에게


왜?野黨議員.
들은매년인사
하러가는가요?

참말로이상하고 나같은면
부끄러워서
안간다 ㅎ^^


(노무현 정신’이란 무엇인가? )


2009년 5월 23일 뉴스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대한민국 제16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저 뒷산 부엉이바위에서투신자살했다는 급보였다.

 

그는 컴퓨터에 남간 유서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고 썼을 뿐 결백을 주장하거나 혐의를 부인하지 않았다.

 

이렇듯 노무현의 운명적 죽음 뒤에는 아직도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일가족 뇌물수수의혹이다.


 노 전 대통령은 그해 4월 30일 '포괄적 뇌물수수죄’ 피의자로 10시간에 걸친 검찰조사를 받았다. 전직 대통령으로는 세 번째다.

 

검찰은 4월 11일 조카사위 연철호가 기업인 박연차로부터 돈을 받은(뇌물수수) 혐의로 긴급 체포했고, 다음날 부인 권양숙과 아들 노건호를 뇌물수수 관련 혐의로 소환조사했었다. 이에 앞서 노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은 2008년 12월 4일 세종증권 매각비리 의혹과 관련, 농협의 인수 청탁과 함께 29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

 

2009년 5월 13일 노무현의 부인 권양숙이 노무현의 회갑 선물로 받은 1억 원짜리 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검찰에 진술하였다는 언론의 보도에 "부인·아들에 딸까지 돈을 받고 이제는 증거 인멸 시도까지 하느냐"는 비판까지 강하게 형성되자

노무현은 견딜 수 없는 치욕감에 사로잡혔을 것이라는 게 당시의 여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무현은 대선 당시 깨끗한 정치, 낡은 정치 타파를 기치로 내걸어 집권에 성공했으며, 재임 중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도덕성을 강조했다. 참여정부가 내건 제일의 기치 또한도덕성이었다.


 그러나 친형인 노건평을 비롯하여 안희정, 이광재 등의 최측근들이 비리에 연루되었다. 

항상 도덕성을 토대로 정치적 정당성을 주장하던 노무현이었지만 측근과 친인척의 비리를 막지 못한 것이다.

 

노무현의 이른바 포괄적 뇌물수수혐의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 무죄석방 1천만국민운동본부와 대한민국애국연합, 대한애국당 창준위 등은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신수동 노무현재단 앞에서 ‘권양숙의 640만불 뇌물수수혐의 구속수사 및 박대통령 무죄석방 태극기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권양숙 당신은 2007년 7월 초,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천만 단위 반올림 약 11억 원)의 돈을 청와대에서 정상문 총무비서관을 통해전달받았다”고 했다. 


이밖에도 “당신의 아들 노건호 역시 박연차로부터 투자명목으로 500만 달러(약 57억 원)를 받았고, 당신의 딸 노정연도 미국의 호화주택 구입비로 40만 달러(약 5억 원)을 받았다”고 했다.


 이는 위키백과에도 기술되어있는 내용이다.

 

이날 집회 참석자들은 “권양숙은 청와대서 직접 돈 받고도 남편 자살로 수사가 중단됐다”면서 “박근혜는


본인은 물론 측근 아무도 1원조차 안 받고도 ‘살인재판’을 받고 있는데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에 앞장서라”고 외쳤다. 


그러나 이 땅에 과연 양심이란 단어가 존재하는지는 의문이다.

 

대선기간 중이던 지난 4월 20일 정준길 자유한국당 중앙선대위 대변인도 노무현 가족의 뇌물수수 사건을 거론하면서 


“노무현 정권의 명실상부한 2인자이자 노 전 대통령의 변호사이기도 했던 문재인 후보는 과연 이런 사실을 몰랐느냐”고 추궁한 바 있다.

 

노무현 참여정부의 국정과제 기조가 부패 없는 사회봉사였다. 하지만


주변은 온통 부패로 얼룩졌고 그 역시 부절적한 언행으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선관위의 선거중립의무 준수요청을 무시하다 국회의 탄핵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안희정은 저들을 일컬어 폐족이라 했다. 실패한 정권을 자인한 것이다.

 

노무현의 임기 4년차 지지율은 평균 5.7%로 역대 대통령 가운데 꼴찌였다.


5년차인 2007년 서울대 등 서울지역 7개 대학 학생의 노무현 임기 5년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대학생의 65.4%가 노무현이 국정수행을 잘못했다고 답했으며 그 중 14%는 매우 잘못했다고 지적했다. 


아주 잘했다는 평가는 0.9%에 그쳤다.

 그러나 노무현 사망 6개월여 뒤인 12월 이들에게 "멘토로 삼고 싶은 대통령"는 누구냐고 물었더니 노무현을 41.1%로 1위에 올렸다. 

그새 뒤바뀐 연유를 알 길이 없다.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그의 영결식에서도 입증됐다.


 국민장으로 치러지면서 전국에서 500만(봉하 마을 장례 위원회 추산)명이 넘는 인파가 분향소를 찾았다. 하지만 봉변도 당했다.


2010년 11월 14일 정모씨는 노무현 묘소에 인분을 투척하고 유인물 22장을 뿌렸다.


“노무현 그대 무덤에 똥물을 부으며"라는


제목의 유인물에는 "전교조·전공노·민주노총 같은 좌파세력들이 생성되도록 도와 청소년들의 정신을 세뇌시키고, 국가 정체성을 혼돈에 빠뜨렸으며, 국민을 불안하게 했다"고 적혀있었다.

 

소탈한 서민 이미지와 인권 변호사로서의 명성이 국민의 지지를 견인했다. 


그러나 그가 펼친 국정운영은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도 그럴 것이 청와대를 비롯한 최측근 대부분의 경력이 일천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느새 폐족이란 딱지를 지어버리고 ‘노무현 정신’을 들고 나섰다. 

그 거창한 수식어는 적중했다. 

정관계 수장은 물론이고 대통령까지 되었으니 ‘


노무현 정신’은 대단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됐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즉 먼저 자기 몸을 바르게 가다듬은 후 가정을 돌보고, 그 후 나라를 다스리며, 


그런 다음 천하를 경영해야 한다는 뜻으로서 뒤집어보면 ‘가정도 옳게 다스리지 못하면서 웬 국가를 경영한다는 말인가’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먹히지 않는다. 자기가 대주주인 정당조차 추스르지 못해 두 동강냈는가하면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을 북한에 물어보았다는 폭로까지, 여기에 겹친 아들의 인사 청탁 의혹조차도 대권을 저지하지 못했다.

 

필자는 아직도 ‘노무현 정신’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른다. 미문(未聞)의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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