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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날 尹 옆 여성 ‘친일파 후손’ 논란에…보훈처 “독립유공자 증손녀”

광복절 날 尹 옆 여성 ‘친일파 후손’ 논란에…보훈처 “독립유공자 증손녀”

 

입력 2022.08.23 17:52
 
 
 
 
 

지난 광복절 경축식에 독립유공자 장성순(張成順) 선생의 증손녀가 초청돼 윤석열 대통령 옆자리에 선 데 대해, 한 인터넷매체가 장 선생의 일제 귀순 이력을 거론하며 ‘가짜 독립유공자 전수조사’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국사편찬위도 장 선생의 ‘귀순’을 ‘친일활동’ 사례로 분류해 소개한 만큼, 보훈처가 해명해야한다는 주장이었다. 국가보훈처는 “귀순 의사를 밝힌 것만으로 친일 행위로 판단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국가보훈처는 23일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당시 역사적 상황, 일제 귀순 과정, 이후 행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장 선생 서훈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장성순 선생과 관련한 1922년 4월 25일 동아일보 보도. 장 선생에게 사형이 선고되자, 장 선생 가족이 일본군 19사단에 가서 받아왔다는 '보증서'가 실려 있다. 이 매체는 '귀순자를 사형선고'라는 제목으로 이 소식을 전하면서 "군대에서는 생명을 보증하고 사법관청에서는 사형을 선고"했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따르면, 장 선생은 1919년 4월 북간도에서 조직된 대한국민회에 가입, 제1남지방부 경호부장에 선임됐다. 수하에 20여 명을 두고 군자금 모집, 독립군 모집, 밀정 사살 등의 독립운동을 했다. 1920년 6월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에서 독립군 40여명을 모집하여 국민회본부로 보내고, 동년 7월 일제 관헌의 밀정으로서 독립운동을 방해하던 이덕선(李德善)을 권총으로 사살했다. 같은해 8월에는 부하들을 직접 지휘하여 간도의 각처에서 6차례에 걸쳐 군자금을 모집하면서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밀정들을 사살했다.

그러나 그해 10~11월 일본군이 간도에서 독립군 소탕을 위한 대규모 한국인 학살극(간도참변)을 벌이던 상황에서, 장 선생은 12월 천도교도인 양모씨의 권유로 일본군 19사단 사령부에 귀순했다. 그는 귀순증을 받은 뒤 자택에서 머물다 경찰에 붙잡혔다. 1922년 4월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지만, 이후 감형을 거듭해 12년6개월 징역을 살다가 가석방됐다. 그리곤 4개월만에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1990년에 장 선생에 대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오마이뉴스는 장 선생에 대해 “독립운동을 뒤로 하고 일제에 귀순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일본군 19사단에 투항해 ‘귀순증’까지 받은 이를 보훈처가 어떻게 독립유공자로 인정했는지 의아하다”라고도 했다. 이 매체는 그러면서 이런 장 선생 증손녀를 윤 대통령 옆에 배석시킨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국가보훈처는 “1990년 최초 서훈 당시에도 공적 논란이 있었지만, 애국장 추서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있었다”며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올해 4월에도 독립유공자 공적검증위원회가 장 선생에 대한 서훈의 적절성을 재검했지만, 결과는 같았다”고 했다.

국가보훈처는 “장 선생이 일군 제19사단에 귀순 의사를 밝힌 것과,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고 감형된 건 사실”이라면서도 “일제에 귀순 의사를 밝힌 것만으로 친일 행위로 판단할 수는 없고, 경신참변의 성격, 귀순 과정, 귀순 이후의 행적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친일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조선인에 대한 대학살이 있은 뒤 공포를 조장한 상황에서 귀순이 이뤄진 것”이라며 “참변 뒤 살아남은 소수 조선인 생존자에게 천도교 등 친일 세력을 통해 회유를 요청한 정황이 있다”고 했다. 장 선생이 일제에 적극적으로 귀순 의사를 밝힌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귀순의사를 밝힌 후 곧바로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은 점 ▲사망 얼마 전까지 12년여 간 옥고를 치른 점 ▲일제에 협력하여 독립운동 관련 정보제공 등을 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 등도 고려됐다고 한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귀순하고 나면, 곧바로 풀려나 일제 밀정으로 활동하는 게 보통인데, 장 선생은 그런 정황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