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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빗물터널 뚫어 한강으로 배수… 사당·이수엔 지하 도로 같이 만든다

19㎞ 빗물터널 뚫어 한강으로 배수… 사당·이수엔 지하 도로 같이 만든다

[최종석의 뉴스 저격- 대심도터널 6개, 어떻게 만드나]
최근 수해로 11년 만에 다시 추진
현재는 양천 신월배수시설 1곳뿐
강남역·광화문·도림천 우선 건설
내년 설계 착수, 2027년 완공키로
공사비는 총 1조5000억원 추산
5년 이상 걸려, 교통혼잡 감수해야

입력 2022.08.26 03:00
 
 
 
 
 
지하 40m에 32만t 빗물 저장 가능한 '신월 터널' - 서울시가 2020년 5월 완공한‘대심도 빗물터널’인 양천구 신월빗물저류배수시설의 모습. 지하 40m 깊이에 지름 10m 규모로 만들었다. 서울시에서 가장 큰 배수 시설로 시간당 95~100㎜의 폭우가 쏟아져도 버틸 수 있다. /연합뉴스

서울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지 2주가 지난 24일 국내 유일의 ‘대심도 빗물터널’인 서울 양천구 신월 빗물터널을 찾았다. 3.6㎞ 길이 터널의 끝 부분에 있는 목동펌프장 지하 유수지에는 발목 높이로 물이 찰랑였다. 폭우로 지름 10m짜리 터널의 물이 가득 차면 이곳을 통해 안양천으로 물을 내보낸다. 지름 7.5m짜리 연결구를 통해 빗물터널 안을 내려다보니 아직도 진흙과 시커먼 빗물이 차 있었다. 강종구 양천구 배수시설팀장은 “서울에 시간당 100㎜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진 지난 9일에는 빗물터널이 70%까지 찼다”며 “잠도 못 자고 시설을 지켰지만 덕분에 양천구가 큰 침수 피해 없이 지나가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0일 폭우 피해를 막기 위해 신월 빗물터널 같은 대심도 빗물터널을 상습 침수 지역 6곳에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10년간 1조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오 시장은 2011년 7월 우면산 산사태 직후 강남역, 광화문 등 상습 침수 지역 7곳에 대심도 빗물터널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오 시장이 물러나고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뒤 이 계획은 대폭 수정돼 양천구 한 곳에만 대심도 터널을 만드는 것으로 바뀌었다. 당시 박원순 시장 측은 7곳에 대심도 터널을 짓는 것을 과도한 토건 사업으로 봤다. 이번 폭우 피해를 계기로 오 시장이 11년 전 대심도 터널 계획을 다시 추진하기로 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지을지 주목된다.

◇지하 40~50m 깊이에 총 19㎞ 길이 빗물터널 6개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25일 “2011년 당시 세운 사업계획을 바탕으로 현장 조사를 해 올해 안으로 새 사업계획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본지가 입수한 2011년 당시 사업계획과 환경부가 23일 발표한 ‘도시침수 및 하천홍수 방지 대책’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강남역과 광화문, 도림천, 사당·이수, 용산 한강로, 강동구 길동 등 6곳에 대심도 빗물터널을 지을 예정이다. 모두 상습 침수 지역이다.

서울시가 2020년 완공한 ‘대심도 빗물터널’인 서울 양천구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의 내부 모습. 지하 40~50m 깊이에 지름 10m 규모로 지었다. 시간당 95~100mm의 폭우가 쏟아져도 버틸 수 있다. 이 터널 덕분에 양천구는 지난 8~9일 기록적인 폭우에도 큰 침수 피해를 보지 않았다. /서울 양천구

서울시는 이 중 강남역과 광화문, 도림천 등 3개 사업을 우선 추진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설계에 착수해 2027년 완공한다는 목표다. 지난 8~9일 폭우로 침수 피해가 특히 컸던 강남역 일대에는 3500억원을 들여 강남역~신사동~한강 구간 3.1㎞ 길이의 빗물터널을 만들 계획이다. 터널이 완공되면 저지대인 강남역 일대에 모인 빗물을 한강으로 뽑아낼 수 있게 된다. 강남역 일대는 지하 시설이 많아 복잡하지만 강남대로 아래에 40~50m 깊이로 뚫으면 문제가 없다는 게 서울시 판단이다.

광화문 일대는 종로구 효자동에서 청계천으로 3.2㎞ 길이의 지하 터널을 만드는 방식으로 추진한다. 광화문 일대는 인왕산과 북악산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집중돼 침수 피해를 자주 입는 지역이다. 구체적으로 2500억원을 들여 효자동 백운동천과 옥류동천으로 내려오는 하천의 물을 받아서 바로 청계천으로 흘려 보내주는 터널을 지을 계획이다.

도림천 사업은 동작구 신대방동 보라매공원 인근 도림천에서 여의도 샛강까지 3㎞ 물길을 내는 것이다. 동작구 장승배기역에서 샛강까지 2.2㎞ 구간에도 터널을 짓는다. 서울시 관계자는 “3000억원을 들여 두 개 터널을 만들면 도림천과 대방천이 지나는 신림동, 신대방동, 대림동 일대의 침수 피해가 크게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은 2011년 집중호우로 3327가구가 침수됐고, 올해도 신림동 반지하 집에서 3명이 숨졌다.

◇사당·이수에는 차도 다닐 수 있는 복합터널로

이외 나머지 세 곳은 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완공할 계획이다. 사당·이수 사업은 남태령에서 이수역을 거쳐 한강으로 지하 터널을 뚫을 계획이다. 저지대인 사당·이수도 강남역처럼 빗물이 모이는 ‘항아리 지형’이다. 사당·이수 사업은 민간투자(민자) 사업으로 추진 중인 복합터널 건설 프로젝트와 함께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롯데건설컨소시엄은 2017년 이 구간에 국내 최초로 지하도로와 빗물터널을 결합한 복합터널을 짓겠다는 제안서를 내 서울시와 협의 중이다. 과천~서울 간 교통 체증을 완화하기 위해 남태령에서 이수교차로까지 왕복 4차로 지하도로를 뚫으면서 그 밑에 빗물터널도 함께 짓는다는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 복합터널은 시간당 최대 처리 용량이 부족해 추가로 저류 시설을 건설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동구에는 상습 침수 지역인 길동에서 천호동 빗물펌프장 쪽으로 터널을 내 한강으로 물을 흘려보내는 방안을 추진한다. 한강로에는 삼각지역~한강 구간 2㎞ 길이의 터널을 짓는다.

6개 빗물터널 중 강남역 터널은 시간당 최대 110㎜ 비를 견딜 수 있도록 짓기로 했다. 나머지 터널은 시간당 최대 100㎜의 비를 소화할 수 있는 규모로 지을 계획이다.

서울시는 사업에 속도를 내기 위해 하천관리과를 치수안전과로 바꾸고 TF팀도 구성했다. 이달 말 ‘대심도사업팀’을 정식 출범할 예정이다. 환경부도 “대심도 빗물터널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추진해 내년부터 바로 설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사업 늦어지면서 건설비 2배로 증가

대심도 빗물터널 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지만 실기(失期)한 대가로 1조원 가까운 직·간접적인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1년 당시 사업계획을 보면, 대심도 빗물터널 6곳을 짓는 데 드는 비용은 총 6690억원이었다. 11년 전 6700억원 정도면 할 수 있었던 사업에 1조5000억원을 쓰게 된 셈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원자재 값이나 인건비 등 상승 요인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부지 확보 비용, 지하 시설물 이전 비용도 불어났다.

대심도 터널 공사가 예정대로 2021년 완공됐다면 덜 입었을 수해 피해까지 더하면 사회적 비용은 더 커진다. 서울시 관계자는 “최근 수해로 인한 피해액이 500억원을 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인프라 투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타이밍을 놓쳐 직접 건설 비용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사회적 비용도 늘어난 사례”라고 했다.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도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심도 터널 공사는 아무리 속도를 내도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며 “지하철 공사처럼 교통 통제 구간이 있을 수 있고 한강이나 청계천 쪽에 펌프장도 설치해야 해 시민 민원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예산 조달도 관건이다. 서울시는 50% 이상 국비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환경부는 국비를 25%만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외국은 대심도 터널을 방공호와 車道로도 활용]

3m 크기 하수관이 ‘지방도’라면 대심도 빗물터널은 ‘고속도로’

”도심 상습침수 막을 근본 대책”

대심도 빗물터널은 폭우에 대비하기 위해 지하 40~50m 깊이 땅속에 지름 10m 정도 크기로 만든 대형 터널이다. 서울 강남역 일대에 설치되어 있는 하수관이 보통 가로 3m, 세로 3m 정도 크기인데 이보다 훨씬 큰 배수 시설이다. 보통 하수관이 지방도라면 대심도 빗물터널은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다.

주로 빗물이 몰리는 저(低)지대의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저지대 지하와 인근 하천을 연결한다. 저지대로 집중되는 물을 받아서 하천으로 내보내는 통로 역할이다. 규모가 커 터널 안에 빗물을 저장했다가 하천으로 천천히 내보내는 저류(貯留) 기능도 한다. 습지처럼 물을 머금는 일종의 ‘버퍼(buffer·완충제)’인 셈이다.

빗물터널은 인구 밀도가 높고 빗물이 땅으로 잘 흡수되지 못하는 도심 지역에 많이 설치한다. 도심 지역은 지하철이나 기존 하수관 등 지하 시설이 많아 그보다 깊은 지하에 터널을 짓는데 그래서 ‘대심도(大深度)’라고 한다.

대심도 터널은 치수(治水) 전문가들 사이에서 도심의 상습 침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 대책으로 통한다. 하지만 여름 한 철 수해에 대비하기 위해 목돈을 들여 시설을 지어야 한다는 점, 장기간 건설 과정에서 주민 민원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은 점 등이 논란 거리다.

우리나라에는 2020년 완공된 서울 양천구 신월빗물저류배수시설(32만t 규모) 한 곳이 있다. 여름철마다 태풍과 집중호우 피해를 겪는 일본에도 도쿄 도심에 저류 용량 54만t 규모의 대심도 터널이 있다. 일본은 빗물 터널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방공호로 쓸 수 있게 만들고, 비가 안 올 때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내부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스콜(열대성 소나기)이 쏟아지는 말레이시아는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지하도로와 빗물터널을 결합한 ‘스마트 터널’이란 복합터널을 지었다. 지하 터널을 절반으로 나눠 윗부분은 차가 다니게 도로로 만들고 아랫부분은 하수관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비가 많이 쏟아지면 상단 도로 부분까지 하수관으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