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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Leasure I

[스크랩] 섬진강 따라 전북 진안 마이산까지

섬진강 따라 전북 진안 마이산까지

▲ 새벽 섬진강 화개장터 부근.
ⓒ 장준석
새벽 5시 반 섬진강변 어디에서라도 하루를 시작해본다. 꿀잠을 잔 후 서둘러 일어나 맞이하는 강변의 차갑고 상쾌한 공기로도 이미 여비의 본전은 됐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아직 한나절이 끝나려면 멀었다.

슬렁슬렁 강둑을 거닐면서 멀리 아득히 가라앉은 안갯속의 강물과 수초들을 보노라면 풀잎에 맺힌 이슬 탓에 젖어가는 운동화에 신경이 가지 않는다.

▲ 섬진강 하동 부근.
ⓒ 장준석
언젠가 이곳에서 가짜 파리 미끼가 달린 낚싯줄을 잡아당기며 은어와 피라미를 줄줄이 사탕처럼 낚았었는데…. 기깔나는 낚시복, 낚싯대 하나 없이 한가득 잡았었는데…. 별것도 없던 어린 시절의 레저가 내내 입속에 고인다.

내 추억 속 뜨겁게 퍼덕이는 은어와 갯가에 담가둔 수박덩이, 담배 한 대 피우다 노인 같은 상념에 젖다 보면 슬그머니 산등성이 사이로 해가 떠오른다. 바로 이 순간이 하루 중 가장 멋진 순간이고 최고의 특종감으로 넘쳐나는 시간이다.

▲ 새벽 섬진강옆 저수지 쌍계사 입구 부근.
ⓒ 장준석
욕심 많은 어부처럼 모든 장면을 다 잡아내려 안간힘을 쓰며 카메라를 혹사시켜 본다. 은근하게 빛나는 강물 표면과 보석처럼 반짝이는 물결, 그 사이를 장난치듯 오락가락하며 장단을 만들어내는 갈대와 수초들…. 그러나 이도 잠시 산을 넘은 해는 금새 기고만장해져 사정없이 안개를 거두어 가버린다. 마치 이젠 여행객들이 몰려올 시간임을 알려주듯이 '쨍! 하고 해 뜰 날'이 되어버린다.

날도둑놈 같은 해의 심술을 탓할 필요는 없다. 제법 출출해질 시간이 되었고 허기를 달래러 가면 된다. 강변을 따라 널린 게 그 유명한 재첩국 식당이다. 덤으로 민물 참게장까지 얹어 먹을 맛좋은 집만 잘 골라내면 된다.

냉동 재첩을 쓰지 않는 곳이 최고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겨울에 동상 걸려가며 잡을 순 없을 테니…. 적당히 국물맛 하나로 타협할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동과 구례 사이가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다. 그 중간지점에서 멀어질수록 음식의 지방색이 강해진다. 어디 맛이 좋은지는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이른 아침에 문을 연 집은 흔치 않다. 불 켜고 장사하는 집이면 무조건 들어가는 게 낫다. 찾아 다녀봐야 배고픔이 너무 커져 입맛만 떨어질 뿐이다.

▲ 재첩국과 참게장 백반.
ⓒ 장준석
적당히 자리 잡은 식당은 밤사이 심야 보일러로 뜨끈하게 달궈진 온돌방이 있다. 엉덩이 밑에 식은 손을 집어넣고 잠시 아침뉴스를 보노라면 한 상이 차려진다. 부글부글 끓던 재첩국을 숟가락으로 저으면 희뿌옇게 말간 빛깔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덤으로 시킨 참게장 딱지를 박박 긁어 게살을 분리시킨 후 흰 쌀밥 한 숟가락 넣고 비빈다. 한입 넣자 고소함에 진저리가 날 지경이다. 시원한 국물로 목을 씻어주고 다시 또 한입…, 더 뭘 바라는가.

오전 9시. 섬진강변 국도는 시원하게 뚫려있다. 지상 최고의 드라이브코스라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는 길이다. 언젠가는 꼭 이곳에 와서 살겠다고 이야기해본다. 다들 그러고 싶다고 그랬었다.

하동에서 구례 쪽으로 가다 보면 강물이 계속 이어진다. 곡성과 압록을 지나 남원까지 가는 옛날 국도로 따라가 본다. 오래된 간이기차역들이 강가에 예쁘게 자리하고 있다. 기차마을이란 곳도 지나쳐간다. 차창을 열자 맑고 깨끗한 강바람이 밀려 들어온다. 약간의 추위는 시원함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남원까지 시속 60킬로로 달려도 얼마 걸리지 않는다.

▲ 마이산.
ⓒ 장준석
바로 남원을 지나 진안, 장수를 향하는 이정표로 들어서면 마이산을 안내하는 팻말이 나타난다. 이리저리 돌고 돌아나가는 길을 가다 보면 드디어 마이산의 놀라운 자태가 보이기 시작한다.

멀리 불쑥 솟은 두 덩이의 산. 말귀(?)랑 달라 보인다. 하지만 비슷하다고 우기면 도리 없을 만큼은 된다. 항상 놀라움을 안겨주는 산이다.

가고 또 가도 그곳에선 기분이 좋기만 하다. 누구는 마이산을 두고 엄청난 양기를 지닌 산인 고로 여인들의 입이 항상 벌어져 있다고 했다. 그래서 여자여행객들을 둘러보니 과연 다들 웃고 있다. 양기를 흡수하고 있는 중이란다. 그럼 남자인 나는? 어쨌거나 입을 다물지 못할 사연이 그곳에 있다.

▲ 이갑룡 처사 동상.
ⓒ 장준석
▲ 마이산 돌탑과 탑사.
ⓒ 장준석
이갑룡 도사의 걸작, 바로 돌탑이다. 태풍이 불어도 꿈쩍하지 않는다는 것의 놀라움뿐 아니라 어떻게 홀로 이 돌탑을 쌓았을까 생각해보면 도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축지법과 진법, 기공법을 동원했다 하는데 사실 본적이 없으니 소문만으로 믿을 뿐이고, 차 보다도 빨리 전주를 왔다 갔다 했다고 하는데…. 벼랑처럼 깎아지른 돌산을 옆에 끼고서 크고 작은 돌탑들이 수도 없이 땅에서 위로 올라와 있다.

▲ 천마탑
ⓒ 장준석
계단 따라 올라가노라면 한노인의 야무진 기개를 느끼게 되고 모종의 영험한 기운까지 찾아오는 듯하다. 사람들 모두 얼굴빛이 빛나고 환하게 웃고 있다. 언제와도 변치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섬진강의 발원지라는 곳에서 약수 한 그릇 배불리 먹고 탑사 꼭대기에 올라서 보면 여행의 마무리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돼지고기를 굽는 모습.
ⓒ 장준석
여기까지 반나절이 지났다. 이제야 위를 바라보며 올라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슬슬 이들과 반대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큰 오르막도 없어 내려가는 길도 아주 완만한 길이다.

저수지가 나오고 벚나무들이 즐비하다. 4월이나 되야 벚꽃들이 휘날릴 거고 그때 또 오고 싶겠지만 사람과 자동차에 치일 생각을 하니 맘속으로만 그때를 그려본다. 이 정도면 됐지 싶다는 맘으로 터덜거리며 주차장을 향해 가면 입구 초입에 근사하게 사람들을 유혹하는 돼지구이집들이 기다리고 있다.

▲ 흙돼지 등갈비구이와 좁쌀동동주.
ⓒ 장준석

참나무장작을 쌓아놓고 그 위에 흑돼지 등갈비를 굽고 있는 식당주인들이 공손하게 허리 숙여 인사한다. "여행 즐거우셨습니까?" 몇 년 전에 비해 많이 세련된 어법이다. 자기네 식당으로 오라는 잡아채기식 호객행위가 아니니 맘도 편해진다.

당연히 등갈비 한 접시에 노란 좁쌀동동주 한사발은 기본이다. 굵은 소금에 풍덩 찍어 뜯어먹는 등갈비구이 맛은 아주 일품이다. 달콤한 막걸리도 차지게 목을 넘는다. 반나절의 여독이 슬슬 올라오면서 기분 좋은 피로감에 자꾸 눈이 감긴다.

발 뻗고, 등 기대어 서너 잔 더 마신 후 차 속에서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낮잠 한두 시간 자둔다. 아직 서둘지 않아도 넉넉하다. 오후 2시경에 출발하면 저녁 즈음 도착해 발 씻고 편안하게 다음날을 맞이할 수 있다.

출처 : 하얀미소가 머무는 곳
글쓴이 : 4철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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