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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문물

영웅 박정희 배알記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따라 연풍인터체인지를 접어들어 10여 분간 위용을 자랑하는 백두대간의 웅장한 모습에 도취하며 이화령터널을 지나면 아주 작고 아담한 M읍이 나타납니다. 이곳이 지난날 영남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갈라치면 꼭 거쳐야할 관문과 새재(鳥嶺)가 있는 문경(聞慶)입니다.

 

문경읍에 들어서자마자 읍 소재지치고는 제법 큰 초등학교의 교정이 나타납니다. 문경초등학교랍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저렇게 큰 초등학교에 학생들이 꽉차있을까? 하는 생각이 미치며 갑자기 발칙하고 엉뚱한 상상을 합니다. ‘썰’제목“영웅 박정희 배알記”와는 전혀 무관한 얘기 한 토막부터 먼저 하고 넘어 가겠습니다.

 

사실 저토록 큰 초등학교를 보면 추억이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가 인근의 S시에 소재하는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짐작컨대 학교교정이나 교사(校舍)가 딱 그만 했습니다. 당시 저만한 교정에 저만한 교사가 있었을 때, 간단한 계산으로 한 학급에 6-70명의 학생이 있었고, 한 학년에 6개 반이 형성 되었으니 그것을 다시 6개 학년으로 곱하면 대충 따져도 2천명이 훨씬 넘는 초대형 초등학교였던 것입니다. 아침 조회시간이나 운동회 때 보면 정말 어마어마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죽했으면 제가 상급학년에 올라갈 즈음 과밀학급 때문에 저학년들은 2부제 수업을 했었습니다.

 

이런 추억들은 다시 더 엉뚱한 기억으로 몰입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반도 유사 이래 우리 부모 세대 때가 자녀(해방둥이를 비롯한 625둥이)대량 생산기가 아니었나 생각 됩니다. 보통 한 가정에 5명 또는 6-7명이었으니, 가가호호 생산 활동이 왕성하지 않았다면 절대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당시는 피죽 한 그릇도 제대로 먹기 힘든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자녀 양산체제에 돌입한 우리 부모님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세력’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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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점에 짠 하고 나타난 구국의 영웅이 계셨으니 바로 박정희 장군 이십니다. 그렇지만.....

 

만약 진정한‘애국세력’이었던 우리 부모님이 아니 계시고 양산체제(量産體制)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산업화가 이루어 졌더라도 초창기 노동집약산업의 부흥이 이루질 수 있었겠으며 수출입국(輸出立國)을 내세울 수도 또한 그것을 근간으로 하여 중공업을 내세울 수 있었겠습니까? 박정희 대통령이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일지라도 용병술을 펼칠 군사가 없었다면 조국의 근대화니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었겠는가? 이겁니다. 요는 영웅 박정희와 우리 부모님들의 인연이 맞아 떨어진 거죠. 암튼 애 많이 낳아 애국합시다!‘썰’이 많이 엉뚱한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저렇게 큰 초등학교에 학생들이 꽉차있을까? 하는 걱정은 잠시고, 불과 50m(어림짐작으로...)아래로 청운각(靑雲閣)이라는 작고 아담한 초옥(草屋)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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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각 현판 옆으로"이곳은 박정희 대통령께서 거처하시던 곳입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가 문경을 꼴방구리 쥐 드나들듯 하며 꼭 들려 보고싶은 바로 그곳입니다. 다행히도 그날은 충분한 시간의 여유가 있기에 마누라와 함께 그곳에 차를 세우고 민족의 영웅을 뵙기를 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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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각을 들어서기 전 그 유래에 대한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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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고 아담한 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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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증맞기까지 한 아래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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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넓지 않은 마당이지만 간결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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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옆에는 디딜방아와 우물터가 그대로 보존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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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박정희 곁에는 이런 고사(故事)가 있습니다. 범인(凡人)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고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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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곁으로 측간(厠間:중국 사람들도'측간 또는 厠所'로 표기 한다)과 아담한 텃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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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부엌)가 깔끔하게 정비 되어 있고 좌측에 있는 것이 찬장입니다. 또한 정면에 보이는 문이 곳간 문인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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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의 자취와 숨결을 흠모하다 안방에 다달으니 영부인과 함께 나란히 걸려있는 영정 앞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향을 사른 뒤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나왔습니다. 

 

끔찍한 상상이지만, 만약 저런 구국의 영웅이 아니 계셨드라면 오늘날 우리의 국운이 어땠을까? 그런 생각에 몸서리까지 쳐졌습니다. 그리고 청운각을 나오는 발길이 정말 가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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