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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문물

소음은 야만의 척도

http://blog.chosun.com/the_civilized/4195376

(12) 소음(騷音)은 문화(文化)의 척도(尺度): Noise is a barometer of civi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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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erners: Talk softly and gently in the restaurant.

Asians: Talk & laugh loudly like they own the restaurant.


60년대 초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행맹공약(革命公約)"을 되뇌이던 시절 대구 동성로에서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으로 이사를 했다. 어느 날 통금 시간이 지나 잠자리에 들었는데 우리집 담벼락에 기대서서 뭐라고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혹시 도둑들이 털기 전에 작전회의(?)라도 하는 것 아닌가 해서 신경을 곤두세워 들어보았다. (당시엔 도둑들이 많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도둑은 커녕 이웃 신혼부부가 시어머니 문제로 집에서 나와 부부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갱상도' 학생으로서는 싸우면서 목소리가 저렇게 작게 소근대듯 싸울 수가 있을까 하는 점이 몹시 신기하기만 했다. 정말 '서울 양반'은 다르구나 하는, 나로서는 생전 처음 문화적 충격(cultural shock) 이라고 할 만한 경험이었다.


당시로서는 '행맹공약(革命公約)'과 '궁민교육헌장(國民敎育憲章)'을 조회 때마다 악을 쓰면서 외워야 했던 학교 시절뿐만 아니라, 대학 졸업 후 군대 생활에 이르기까지 '소리 지르기'만 배워 온 사람이 목소리를 낮추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평소에도 보통 사람들 보다는 엄청 소리가 큰 갱상도 토종 남자로서는! 조금만 열 받거나 상대가 잘 못알아듣는다고 여겨지면 나도 모르게 소리가 커져 버린다. 서울 사람들은 내가 별거 아닌 것 가지고 무척 열을 잘 받거나 걸핏하면 화를 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느 날 내 첫 직장의 보스로 있던 독일 양반이 점심을 사겠다고 조선호텔로 가자고 했다. 식사 후에 개인적으로 tip (가벼운 충고나 조언)을 하나 줄게 있는데 받을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보스가 그러는데 안 받겠다는 바보는 없겠지만, 그래도 부하인데도 불구하고 먼저 양해를 구하는 매너가 멋져보였다. 전통적으로 엄하기 짝이 없는 가부장적인 집안과, 철들면서 일제의 잔재를 그대로 따르는 교육 시스템과, 사회적으로는 독재정권 아래서 모든 것을 싫어도 목구멍으로 집어넣어야만 하는 top down의 환경에서 자란 이에게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막 서른이 될 무렵 얘기다.


그 양반 말씀이 "소리를 질러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일만 더 그르칠 수 있고 주위 사람들을 더 화나게 만든다." (Raising your voice does not solve anything. on the contrary, it may complicate the problem and antagonize others around you.)는 요지였는데, 당시로선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난 그런대로 소리를 많이 줄였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원래 소리는 어느 정도로 컷을까!) 세 번째 충격이었다.


홍콩에서 근무하던 시절이다. 지금은 Lippo Tower라고 불리는 꽤나 그럴싸하고 제법 high class 회사들이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출근 시간에 엘리베이터 안은 그야말로 돗떼기 시장을 방불케 한다. 엘리베이터 안은 네 면과 위, 아래 모두 6면이 쇠나 유리로 되어 있어 소리는 빠져 나갈 데가 없어 서로 반사할 수 밖에 없는데도 시끄러운 광동말로 떠드는 중국애들 때문에 28층에서 내릴 때까지 견디는 일은 고문과도 같았다. 비 오는 날에는 그들 떠드는 소리와 잘 씻지 않는 중국 사람들의 땀 냄새 그리고 여자들의 비에 젖은 머리 냄새가 합쳐서  완전 접입가경(漸入佳境) - 정신이 혼미(昏迷)해질 지경이 되곤 한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여행객들은 외국에 가면 백화점 같은 데서도 그 넓은 층에서 반대편에 있는 친구 부르느라고 악을 쓴다. 여기 싸고 좋은 물건 있으니 빨리 와보라는 소리다. 옆에 누가 있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 동포들이 고급 백화점에 들이닥치면 그곳은 완전한 아수라장으로 바뀌고 현지인들은 무슨 사고 난 줄 알고 모여들기도 하는 꼴을 자주 보았다. 골프장이든, 공항이든, 성당 안이든 어디든지 상관 않고 그저 막무가내로 소리지르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문화적 수준이 높은 나라 사람들은 조금 멀어서 소리가 커져야 할 경우에는 절대로 소리를 키우지 않고 걸어가서 말을 걸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상대가 자기를 볼 수 있게 동작을 크게 해서 주의를 끌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딜 가나 아파트 공사에 다리 공사, 도로 공사......주야간을 막론하고 공사로 인한 소음도 끔찍하지만 모두가 찍소리 않고 어떻게 그렇게까지 참아주는지 그저 놀랠 뿐이다. 한창 "잘살아 보세, 우리도 잘 살아보세~"하고 새벽마다 확성기로 노래를 틀고 따라 불러야만 했던 시절은 아닌데도 말이다. 그 우라질 노조인가 뭔가 하는 단체는 큰 도시에는 어디나 확성기에 호르라기 소리, 고함으로 소음공해를 일으켜도 공권력은 그들을 에워싸고 강강수월래만 한다. 우리 동네에 노인회에선 새벽 6시에도 노인들 오후에 공짜 밥 드시로 오라고 확성기로 방송을 해댄다. 온 동네 사람들이 아직도 자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건 안중에도 없고 그까짓 것 좀 참으면 될 것을 그런다고 오히려 역정을 낸다. 지금까지 시비 건 사람은 단지 나 하나라니....할 말을 잊는다.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선 주차 잘못된 차들 빼라고 시도 때도 없이 방송하는 데도 많다.


지하철 안이나 KTX 안에서 자기 사생활을 만인에게 큰소리로 공개하는 것은 자기 자유지만, 그 소리를 듣고 싶지 않는 사람에게까지도 들린다는 점도 좀 고려되었으면 좋겠다. 애들이 식당에서 큰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 다니고 맘에 안든다고 귀가 찢어질 정도로 고음으로 악을 쓰는 데도 뭐라 하지 않는 젊은 부모들을 보면 과연 우리나라의 미래는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에 빠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경음기를 울리지 말아야 하는 학교 앞에서도 뭐가 마음에 안드는지 계속 울려대는 멀쩡하게 차려입고 나이깨나 든 인간들을 보면 어떻게 교육받고 어떤 부모 아래서 컷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자기 새끼들에게는 뭐라고 교육할까? 조용한 산으로 쉬러 왔는데 두 시간마다 불경을 확성기로 틀어대는 종교단체는 이젠 득도는 커녕 아예 체면마저도 깔고 앉아버렸다. (좋은 장소는 그들이 수 백 년째 하나도 빼놓지 않고 알알이 선점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Privacy 즉 사생활을 보호한다는 뜻은 남이 내 것을 들추어내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하지만 동시에 내가 다른 사람의 평온을 깰만한 일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포함 된다. 소리는 한 번 내지르면 사람 가리지 않고 퍼져 나가고, 더 크게 지르면 되돌아오는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우리 모두가 배워서 알고 있는데도 실생활에서는 적용이 되고 있지 못하다. 그만큼 우리의 교육이 실생활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지식으로만 남기는 것도 큰 문제다. 독일에서는 자동차 문을 밤중에 세게 닫으면 그 소리로 인해 발생한 민폐에 대해 벌금을 내야한다는 사실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공감이 가는 날은 언제쯤이나 올까?


요즘 우리 주위에는 극단적으로 자기만 알고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인간들이 많아졌다. '우리'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지구상의 여러 나라를 다니다 보면 소리에 관해서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잘 사는 나라, 문화 국민일수록, 또 상류층으로 올라갈수록 소리의 크기는 작아진다는 점이다. 


자신이 소음에 얼마나 민감하고 남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게 신경을 쓰는지 자가진단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소음을 참아내고 안 참고는 tolerance 문제이고  sensitivity와는 별개이다. sensitive 할 수록 문화적인 성숙도가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음에 관해서는 순전히 배려의 차원에서 좀 심각하게 음미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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