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인물,문물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관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뻐서가 아니라 호남의 지지만으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김종필과 박태준을 끌어들일 때 김종필이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한다면서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터파기 공사를 하다 만 곳이 상암동 한 구석탱이의 쬐끄만 땅덩어리라고 한다!!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관이 용산의 한가운데 자리잡아 이미 세워진 전쟁기념관과 가족공원 그리고 국립박물관과 함께하는 명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용산을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접근하기 쉽다는 것만을 고려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상당한 의미가 있고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선 왕조가 지금의 서울을 한양이라 명하며 도읍으로 삼았을 때의 한양은 고양군 아니면 양주 땅이었을 것이다!! 이후 서북쪽의 고양군과 동북의 양주 그리고 동남의 광주 서남쪽의 시흥군 남쪽의 과천현을 잠식하면서 지금과 같은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서울이 된 것이다!! 용산은 아마 오래도록 광주나 양주 땅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용산이라는 곳은 우리 민족에게 참으로 서러운 땅이다!! 한 때는 백제의 수도였던 지금의 하남시나 서울의 강동구와 인접해 있고 남경으로도 불리며 군사적 지정학적으로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양주 땅의 넓은 벌판이었기에 삼국시대부터 많은 전투가 치러지던 곳이고 전쟁시 군사가 주둔하기에 용이한 지역이었다!!

 

우리 민족끼리 싸우던 시절이고 장소일 뿐이라면야 용산에 군사가 주둔했던 룸싸롱이 들어섰던 상관할 바가 아니고 서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왜넘덜이 한양을 함락하고 북진하면서도 일부 군대를 남겨두어 주둔했던 곳이 용산이고 청태종이 인조에게 삼전도의 치욕을 강요할 때도 주력이 주둔하던 곳이며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의 조선군이 주둔하며 그 사령부가 있던 곳이었다!!

 

그 치욕스러운 비극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일본으로부터 우리 민족을 해방시켜 준 미군이 주둔한 곳이 바로 그 용산이고 이제는 서울의 한복판이 되어버린 용산 미군기지는 서울의 맥을 끊고 있다!! 동작대교가 북단에서 끊겨 도로가 우회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땅속의 지하철 조차 한강을 건너자마자 이촌으로 또 갑자기 용산역 쪽으로 급히 좌회 우회하며 지하철의 쇠 바퀴가 급커브에서 레일을 갉아먹는 요란한 소리는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다!!

 

미군이 점령하고 있다는 것은 미국이 그나마 우리의 우방이요 과거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 이전의 치욕들에 비해서야 그런대로 참을만은 하지만 그래도 마음의 한 구석에 항상 용산의 설움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용산을 비롯한 전방의 많은 미군 기지들이 평택으로 이전을 하게 된다!! 이는 좌파 대통령들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한 것이고 미국의 전략개념에 변화가 생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 커다란 기여를 한 것이 또 김정일인데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수의 방사포가 용산까지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고려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민족을 세계 속에 우뚝 일으켜 세운 위대한 인물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세운 기반위에서 성장한 지금의 대한민국을 위도가 비슷한 이탈리아 옆에 옮겨 놓아 유럽의 일원이 된다고 해도 국방력 경제력 기술력 등등이 유럽의 주변 국가들에게 하나도 밀릴 것 없는 강국이다!!

 

우리의 비극은 주변의 나라들이 너무나 크고 강하다는 데에 있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민족에게는 싸가지 없고 힘센 동생뻘인 일본과 북한의 한 구석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 그리고 태평양을 격하고 있는 지구 반대편이지만 우리를 둘러 싸고 있는 힘 중 가장 강력한 미국...!!

 

지금과 같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경제력보다 더 강한 군사력 그리고 힘들게나마 선진국의 문턱을 밟고 있는 수준인 현실 속에서도 주변 4강과의 관계는 참으로 굴욕적일 때가 많다!! 그러니 박정희 대통령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이 나라를 상전벽해 같이 바꾸어 놓은 과정은 참으로 뼈를 깎는 고난의 세월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다른 약소국들의 희생을 비료로 삼아 성장하고 열매를 거두며 지들끼리 배를 불려 왔지만 우리 민족이 성장하는 과정은 스스로의 뼈를 깎아내는 듯한 처절한 노력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중국을 쳐들어가 식민지로 삼아 수탈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일본을 침략해 노예들을 잡아올 것인가?!

 

그나마 미국의 도움을 좀 받으며 우리끼리 지지고 볶아가면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국의 국민보다는 약소국의 국민에게 전가하던 희생도 고스란히 우리 민족의 누군가가 그 쓴맛을 봐야 했지만 그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당시의 아픔을 감내한 결과 지금 이 자리에 우뚝 서 있다!! 경제 성장 과정에서의 희생의 열매도 당사자가 노년에나마 직접 맛볼 수 있을만큼 짧은 기간 안에 그 희생을 마무리 지었다!!

 

우리 국민들은 가난하던 지난 시절에도 타국과 비교하면 지적 수준이 높았고 평등의식이 상당히 강했었다!! 조선시대가 왕국이라고는 하지만 그 왕이 전제군주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만치 신권이 세었고 죽을 죄를 지은 평민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죽일 수 없었을 만큼 당시의 타국과 비교할 때는 인권이 상당히 존중 되었으며 당파 싸움으로 비하되고 있지만 정당정치를 한 유일한 나라는 조선 왕조 뿐이었다!!

 

다른 나라는 논쟁을 하고 토론을 하다가 몇명이 죽은 사화 정도가 아니라 내전으로 일관했었지 사화 이후에도 당파가 살아남아 비록 약화되기는 해도 여전히 벼슬을 하며 여당을 견제하는 것과 같은 체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영국 최초의 근대적 정당이라는 휘그당과 토리당이 17세기에 벌인 내전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한민족이 나름대로 우수한 민족이라는 것은 이제 세계가 인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나라가 잘 된다는 것은 쓰레기 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면서 육이오를 취재하러 부산에 상륙하여 하루를 둘러보고난 소감을 본사인 워싱턴 포스트에 타전한 어느 도꾜 주재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의 눈에 비치듯이 대한민국은 참으로 보잘 것 없던 나라였다!!

 

그는 26년 후인 1976년에 은퇴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옛 근무지를 돌아보는 세계여행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다시 왔다!! 그가 며칠 동안 한강의 기적이라던 우리나라를 둘러보고나서 자신이 이미 반납한 워싱턴 포스트지의 텔렉스 번호로 기사를 송고했는데 그 머리가 이렇다!! "내가 26년 전에 한 말을 취소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깊은 사과를 하며 또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이다!! 그 기사가 워싱턴 포스트에 실려 우리나라까지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 "한강의 기적"을 박정희 대통령 혼자 이룬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상당히 우수한 우리 민족이지만 잠자고 있던 그 힘을 이끌어내고 결집시킨 것은 분명 박정희 대통령이었고 가난의 사슬을 끊기 위한 그의 결단은 독재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면서도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하며 고독한 길을 걸은 지도자의 각오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의 독재를 통해 가난의 사슬은 물론 쿠데타나 독재의 사슬마저 끊게 된 것이다!!

 

그러니 수백 년간을 외세의 군대가 번갈아 주둔했고 백 년이 넘도록 일본군과 미군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용산 땅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인 박정희 대통령의 영기가 서린 기념관이 자리할 최적의 땅이요 다시는 치욕을 되풀이 하지 않을 만큼 국력을 신장시킨 위대한 영웅의 기념관이 자리할 땅인 것이다!! 왜넘을 막겠다면서 동해의 바닷속에 장사지내 달라고 한 전설의 문무대왕 수중릉처럼 말이다!!

 

그래서 상암동의 한 구석탱이보다는 좀 늦어지더라도 용산의 미군부대 부지야말로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관이 들어서야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고 또 꼭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그런 방침과 규모 그리고 활용계획만 세우고 실천은 박근혜 차기 대통령이 하면 되는 것이다!!

 

왜 이명박 정권이 방침을 세워야 하느냐고?! 박근혜 전 대표에게는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을 대통령인 딸이 기획부터 건립까지 한다면 크게도 못하고 작게도 못하며 화려하게도 못하고 초라하게도 못하기 때문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기념관이 될 것이고 그 의미도 퇴색되기 때문이다!!

 

미래의 어느 휴일 용산의 국립박물관에 들러 우리의 역사를 고찰하고 전쟁기념관에서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깨달은 뒤에 가족공원에서 피로한 다리를 쉬고나서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관에서 그 분을 추모하고 오늘의 우리가 있게 한 초석을 놓은 그 분의 위대함을 마음에 새기며 돌아가는 하루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