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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문물

'띄어쓰기'와 '붙여 쓰기'

 '띄어쓰기'는 독립신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한문으로 글쓰기와 세로쓰기의 글쓰기 방식에서 한글로 글쓰기를 하고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의 글쓰기 방식의 변화는 단절된 소통 방식의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었다. 줄글로 쓰던 방식에서 단어 단위로 띄어씀으로써 가독율을 높여주는 동시에 우리말의 단어를 새롭게 규정하는 학문 연구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전통적인 단어의 파생이나 합성형식의 단어라는 단위에 대한 개념이 고정되지 않으면 하나의 단어를 굳어진 두 세 개의 분리된 단어로 처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소금 꽃', '소금 땅'과 같은 단어를 두 개 단어인 '소금'과 '꽃', '소금'과 '땅'으로 인식하도록 하고 있는 현실의 규범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한국어, 일본어, 불어, 독일어'는 붙여 쓰지만 '바스크 어, 프랑스 어, 도이치 어'와 '동해, 남해, 북해, 서해'는 붙여 쓰지만 '에게 해, 카스피 해'는 띄어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단어와 단어가 결합할 때 한자어 끼리는 붙여 쓰고 한자어나 고유어 또는 외국어와 결합할 때는 띄어쓰기를 한다. 띄어쓰기만큼 어려운 일이 없어서 우리 국민들 조차도 국어가 너무 어렵다고들 한다.

 

 '고가사다리'는 불을 끄는 소방차에 장착된 기구이다. 그런데 이 '고가사다리'를 '소금 꽃'과 같이 한 단어로 인정하지 않고 '고가 사다리'라는 두 단어로 인식하도록 규범에서 규정하고 있다. '고가사다리'를 '고가'와 '사다리'라는 별개의 단어로 만들어 띄어쓰기를 하면 '고가'와 '사다리' 사이에 호흡단락이 주어지기 때문에 구어와 문어의 호흡 단락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이나 다문화 가족은 이 단어의 뜻을 찾을 방법이 없게 된다. 언문일치가 가져다주는 소통의 편리함을 국가의 국어 관리 기관인 국립국어원이 앞장서서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말의 생태 환경을 유지하려면 대상이 분명한 두 개의 단위로 이루어진 단어를 파생형이나 합성형으로 인정하여 붙여 쓰기를 대폭 인정해야 한다.

 

 띄어쓰기 문제는 문어와 구어를 분리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문어와 구어가 불일치하는 그런 오랜 세월을 지내왔다. 우리의 말과 한문의 서사 방식은 완전 불일치한 시대에는 소수 한문 구사 능력이 있는 지배층만이 그런 말과 글이 불일치하는 소통 구조 속에서 문어의 해독 능력과 서사 능력을 갖추었다. 그러한 능력이 없는 많은 사람들은 소통이 불가능하였기에 그런 소통의 차등을 극복하려는 국가적 기획을 한 분이 바로 세종대왕이다.

 

 일반 전문 서적을 출판하는 몇몇 출판사에서는 스스로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리지 않은 단어에 대한 띄어쓰기 규정을 별도로 마련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 책마다 띄어쓰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정부 각 부서의 보고서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보고서 한 장에 수십 군데 띄어쓰기가 틀릴 수밖에 없고 국민들에게 가장 영향력을 가진 신문이나 방송 또는 각종 잡지에서의 띄어쓰기는 뒤죽박죽이다. 물론 신문에서는 지면의 제한과 정보의 신속한 전달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띄어쓰기쯤이야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변화를 선택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변화가 없다면 정체된 단계에서 영원히 머물 수밖에 없다. 늘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행하는 변화에 익숙해온 정부 관료들이나 주요 정책 담당자들의 안이한 선택에 결국 국민들이 애꿎은 고비용의 부담을 떠맡게 된다.

 

 "띄어쓰기"는 붙여 쓰고 "붙여 쓰기"는 띄어써야 하는 자조적이고 해학적인 현실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학계, 언론, 출판 관계자, 정책 책임자들이 함께 이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거쳐 글쓰기 소통에 편리함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이를 기계화하려는 전략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언어정보 기계화를 서둘러 띄어쓰기나 맞춤법 오류에 얽매이지 않고 워드기에 자동 수정 장치를 부착하여 국민이 좀 더 편안하게 글쓰기를 하도록 하는 일이 국가 선진화로 가는 또 하나의 희망이 아닐까?

 

이상규(전 국립국어원장, 경북대 교수)

2009-08-07

경북일보 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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