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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이 그린 키스]

남자와 여자의 가장 숭고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과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영원히 서로에게 변함없이 느끼는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그랬으면 좋겠다. 낭만과 감동, 짜릿함은 바로 진실한 사랑이라는 데에서 오니까. 이런 사랑에 가장 가깝게 한 사람이 [키스를 부르는 그림]에 등장한다. 마르크 샤갈. 색채의 화려한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느끼게 해준 샤갈은 벨라를 평생 그렸다고 한다. 샤갈의 평생 동반자이자 사랑이었던 벨라. 그들의 사랑이 그림속에서는 매우 다양한 아름다움으로 느껴진다. 벨라를 그리지 않은 그림에서는 서커스단의 모습을 많이 그렸던 샤갈의 그림은 꿈속의 세상에 들어간 듯 몽환적이고 들뜬 감정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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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사진>

 

 ( - 이 사진은 샤갈이 여자 곡예사를 그린 그림이다. 마치 판타지를 보는 듯 화려하고 아름답다.)

 

 

 여러가지 사랑이야기를 담았다고 할 수 있는 [키스를 부르는 그림]은 남여만의 사랑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보내는 지극히 열렬한 모성애를 담은 '메리 카사트'의 그림도 있다. 언젠가 귀여운 어린아이의 얼굴을 너무나도 이쁘게 그린 그림을 사진 찍어둔 적이 있었다. 그 그림이 참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화가 이름이 메리 카사트였다. 메리 카사트의 그림에는 어린 아이와 어머니의 키스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특이한 점이 있다면 작품속의 어머니의 얼굴은 항상 화면에서 고개를 돌리거나 불명확하거나 해서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메리 카사트'가 작품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면, 자신의 자식을 둔 적이 없었던 그녀였기 때문에 그림속의 여인의 얼굴이 흐릿한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또달리 생각해본다면 어머니의 모성애를 그렸기 때문에 그림속 여인의 얼굴은 초점있게 그려지지 않은 모든 어머니들의 얼굴일지도 모른다.

 

 

 그림 못지 않게 화가의 인생 또한 많은 흥미를 느끼게 한다.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은 그녀의 비극적인 삶과 매우 연관이 깊다. 그녀는 로댕의 연인이었는데, 그 자신만으론 실력있는 화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로뎅의 그늘에 가려져 그녀가 작품을 내더라도 사람들은 로댕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로댕은 그녀의 작품을 모방하거나 가로채기까지 한다. 기혼자인 로댕과의 사랑 또한 힘겨웠던 카미유는 정신병원에서 30년동안 지내면서 생을 마감했다. 가족에게는 외면당하고 연인에게는 배신당한 카미유. 불쌍한 그녀의 삶이 작품속에는 무척 힘겨운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 예술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지오토 디 본도네의 <유다의 키스>에는 상징적인 부분이 그림 곳곳에 숨겨져 있다. 다빈치코드에서 댄브라운이 모나리자 그림의 상징성과 비밀코드에 대해서 말한 것만큼이나 <유다의 키스>에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 것 같은 그림이다. 왼쪽의 귀를 자르는 남자와 귀가 잘리는 남자의 모습이 그렇고, 그 앞에서 자신의 정면인 모습을 돌려 가리고 어디론가로 왼팔을 뻗은 남자의 모습 또한 심상치 않다. 가장 중요한 장면인 유다가 예수에게 입술을 내밀고 키스를 하려는 모습과 예수의 표정이 매우 인상깊은 이 그림은 선이 가늘고 샤프하게 그린 그들의 모습에서 더더욱 감정이 예민하게 그려져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과의 절묘한 조화와 가는 선의 세밀한 감정의 표현을 더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상징적인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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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그림>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키스>는 정말로 연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재밌고 살콤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졌으면서 남자와 여자의 완벽한 사랑의 형태를 만들어낸 이 작품에서 단순하면서도 가장 이상적인 사랑을 느껴볼 수 있다.

 

 

 시인 단테와 자신을 동일시할만큼 단테를 존경했던 단테 로세티의 <베아트리체가 죽는 순간의 단테의 꿈>도 매우 인상깊다. 천사가 베아트리체에게 건네는 죽음의 키스가 마치 실제 로세티의 아내였던 엘리자베스가 죽는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야기가 있는 그림인 <파울로와 프란체스카>는 그림뿐만 아니라 실존했던 파울로와 프란체스카의 일화가 무척 인상깊다. 

 

 - 다 폴렌타 가문과 말라테스타 가문은 두 집안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정략결혼을 추진한다. 이에 따라 다 폴렌타 가문의 딸이었던 프란체스카는 말라테스타 가문의 상속자 잔초토와 결혼을 하기로 되었는데, 잔조토는 추남에 절름발이인 데다 성격도 포악해 프란체스카가 결혼을 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선보는 자리에 동생인 파울로를 대신 보낸다. 정략결혼이 싫어 고집을 부리던 프란체스카는 잘생기고 매력적인 파울로에게 첫눈에 호감을 느끼고 그를 잔초토로 잘못 안 채 결혼을 승낙한다. 나중에 사실을 안 프란체스카는 파울로와의 사랑을 막을수 없게 되고, 아내와 동생의 사이의 관계를 알게 된 잔초토는 질투심에 불타 그 둘을 함께 죽이고 만다. - 126p 참고

 

 

 뭉크의 <질투>에서 뭉크가 자신이 사랑했던 다그니와 가까운 친구였던 프시비지예프스키와 눈이 맞아 사랑을 나눈 모습을 담은 그림의 비극과는 대조된다. 뭉크의 이야기에선 그저 당혹감을 넘어선 상실감을 담은 표정이 그가 보낼 수 있는 감정분출의 전체였기 때문이다. 뭉크 대신 다른 남자의 총에 의해 비극적인 삶을 맞이하긴 했지만 말이다.

 

 

 번존스의 <피그말리온과 조각상>과 장 레옹 제롬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는 함께 비교해볼만 작품인데, 특히 제롬의 그림에선 의문점이 하나 있다.


 159p의 이 그림인데,
 

피그말리온.jpg

 

 

 오른쪽 탁자위의 흉측하게 입을 벌린 두 얼굴은 무엇인지. 탁자앞에 방패가 있는 걸 보면 전쟁에서 이겨 가지고 온 전리품 같은 것인지. 이 그림에 왜 그 두 머리가 등장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 으스스한 머리에 못지 않게 섬찟한 느낌이 드는 오브리 비어즐리의 <살로메>도 기억에서 떨쳐지지 않을 그림인데, 욕망의 대상을 무척 흥미롭게 그려낸 다소 기이하고 격정적인 그림이다.

 

 

 안토니오 알레그리 다 코레지오(이름이 길기도 하여라. ㅡㅡ::)의 <제우스와 이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도둑맞은 키스>에서 나온 여인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잊혀지지 않는 눈부신 그림이다.

 

 

 내게 엽서가 있는 구스타프 클림프의 <키스>도 빼놓을 수 없는 화려한 금색빛을 자랑

한다. 툴루즈의 <키스>는 이와 정반대의 어두운 색채의 힘겨운 삶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삶을 견디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의 진실한 면을 담아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가장 충격적인 그림은 아무래도 피카소의 <키스>다. 결코 아름답지도 않은 이 그림은 무척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본능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 하다. 그림속 인물의 모습은 짐승의 모습처럼 눈코입이 큼직만하게 오버되어 있으며 그런 모습이 불안정하고 초조감을 느끼게 한다. 밤에 보면 무서울지도. 그러나 그런 그들의 모습이 성에 대해 전혀 내숭떨지 않아 까발린 진실같아 보이기도 한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키스>는 원색적인 만화를 보는 느낌이다. 상업예술을 지향한 이 그림에선 새로운 종류의 예술을 엿볼 수 있다.  앤디워홀이 상업예술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았듯이.

 

 

 그림속의 키스와 사랑과 이야기와 인물들과 화가들과 함께 한 [키스를 부르는 그림]은 미술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다. 또 그림을 보는 해석과 시각도 무겁지 않게 배울 수 있다.

 

 

 툴루즈 로트레크는 유명한 귀족 가문의 직계 후손으로 태어나 열네 살 무렵 두 번의 골절상으로 하반신이 자라지 않는 장애인이 되고 그 덕에 불균형적이고 볼품없어진 몸에 비정상적으로 커진 코와 두툼해진 입술을 본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가진 적이 없다는 듯 무시했고 집안에서조차 이방인 취급을 했다. 그런 툴루즈의 숨통을 터주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림이었고, 그에게 살아 숨쉬는 인간들의 참 세계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은 파리의 밤문화, 술집과 매음굴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64,65참고

 

 

 이것이 예술가의 정신이다. 딱히 특별해야 하지도 않는 그들의 생의 고통에서 예술은 태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이 스며든 예술은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얻은 완전함은 내 것이 아니야
 당신이 만들어낸 것이지
 나는 당신이 들여다보며 몸단장을 하고 우쭐해하는 거울일 뿐이야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당신을 경멸하지

                                                

            - 클라리벨 알레그리아의 <거울 앞의 갈라테이아> - 164p

 

 때론, 이 시처럼 화가들은 현실과 완전히 다른 환상의 세계를 그림에서 표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진실되게 그림속에 삶의 단편을 묘사해 곰곰히 생각에 잠기게 한다.

 

 이런 단편적인 사랑의 모습을 [키스를 부르는 그림]에선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