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를 휩쓰는 팝페라의 열풍, 그 원조는?
1980년대 중반 우리나라의 김홍희가 "키메라(Kimera)"라는예명으로 오페라 아리아를 대중적으로 편곡하여 '잃어버린 오페라(The Lost Opera)'라는 앨범을 출반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바 있다.
이를 전후로 성악가와 팝 뮤지션들이 앞을 다투어, 오페라 아리아를 편곡하여 부른 여러 음반들을 출반하였다.
키메라는 서울 동덕여고 졸업후 프랑스로 유학, 1984년에 프랑스 파리 제7대학을 졸업하여 유학중에 만난 레바논의 거부 레이몬드 나카치안씨와 결혼하였다.
그녀의 음악스타일은 비록 시기가 매우 빠르긴 했지만 오늘날과 같은 새로운 음악시장의 가능성을 미리 예측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는 1985년에 키메라의 '더 로스트 오페라' 라는 오페라 아리아 모음앨범이 발매되면서 프랑스 전역을 강타하였고 프랑스 유력지 르몽드지가 1면 톱으로 내보낸기사에 헤드라인 " 한국에서 온 팝페라의 여왕" 이라면서 오늘날 팝페라라는 칭호가 가장 먼저 사용되었다.
당시 그녀의 인기는 유럽을 강타하여 골든,플레티넘을 넘을 정도였으며 실제 당시 유럽 성악가들은 잊혀져가는 오페라를 다시 살렸다고 키메라에게 공공연히 감사를 표했을 정도였다.
그녀의 음반은 팝페라임에도 불구하고 런던 심포니와 함꼐 작업을 하는등 여러가지면에서 음반 자체의 완성도를 높인것을 볼 수 있는데 재미있게도. 이것은 상업적인 음반 출반의 목적이 아니라, 엄청난 거부였던 그녀의 남편이 그녀의 대학졸업과 딸 멜로디의 출산에 대한 축하선물이었다.
원래 정통 오페라 집을 녹음말 계획이었으나 남편이 락 애호가였기에 이에 맞춰 편곡했고 그녀는 별로 맘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녹음에 착수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거물급의 지휘자와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정통클래식이 아닌 락음악을 연주했다는 것은 금세 언론의 뉴스거리가 되고 곧이어 밀려드는 상업적 출시 요청에 따라 음반을 내놓았고 결과는 말 그대로 대박~
프랑스 음반차트의 톱을 단숨에 거머쥐고, 온유럽이 온통 락오페라 열풍에....
그리고 키메라는 계획에도 없었던 가수활동을 시작했고, 3장의 음반을 내며 연속 대박..;
...
키메라의 음반을 국내에서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지만 팝페라의 창시자로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그녀의 이름을 우리는 기억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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