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스크랩] 2006 신춘문예 당선작 詩부분 모음 wind11 2006. 6. 19. 10:53 2006년 신춘문예 한국일보 詩부문 당선작 거미집 ,김두안 그는 목수다 그가 먹줄을 튕기면 허공에 집이 생겨난다 그는 잠자리가 지나쳐 간 붉은 흔적들을 살핀다 가을 비린내를 코끝에 저울질 해본다 그는 간간히 부는 동남쪽 토막바람이 불안하다 그는 혹시 내릴 빗방울의 크기와 각도를 계산해놓는다 새털구름의 무게도 유심히 관찰한다 그가 허공을 걷기 시작한다 누군가 떠난 허름한 집을 걷어내고 있다 버려진 날개와 하루살이떼 돌돌 말아 던져버린다 그는 솔잎에 못을 박고 몇 가닥의 새 길을 놓는다 그는 가늘고 부드러운 발톱으로 허공에 밑그림을 그려넣는다 무늬 같은 집은 비바람에도 펄럭여야 한다 파닥거리는 가위질에도 질기게 버텨내야 한다 하루 끼니가 걸린 문제다 그는 신중히 가장자리부터 시계방향으로 길을 엮고 있다 앞발로 허공을 자르고 뒷발로 길 하나 튕겨 붙인다 끈적한 길들은 벌레의 떨림까지 중앙 로터리에 전달할 것이다 그가 완성된 집 한 채 흔들어본다 바람이 두부처럼 잘려 나가고 거미집이 숨을 쉰다 2006년 신춘문예 동아일보 詩부문 당선작 개기월식-곽은영 밤의 문이 열렸어요 이 세계를 견디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는 800Cal 가게 문을 열고 누가 왔어요 저녁을 먹다간 입가 훔치며 정육점 여자는 일어섭니다 반쯤 닫힌 문틈으로 둥근 밥상 가장자리가 보여요 오늘은 개기월식이 있겠습니다 어린 딸 리모컨을 눌러요 채널을 바꿔요 여자는 손님에게 웃어보이지요 붉게 물든 장갑을 끼고 비닐장갑을 또 끼고 차가운 살덩어리 하나 척 베어서 저울에 올려요 200g 중력이 달랑 하늘에서는 쓱쓱 사라지는 하얀 달조각 여자는 능숙하게 고기를 썰어요 엄마 나 쉬 마려 칭얼대는 딸 탁탁탁 도마에 칼을 부딪치며 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꾸해요 마지막 한 조각까지 쓸어모아 검은 비닐에 담아 들려 보내요 달랑 떠 있던 마지막 달조각이 사라졌어요 달이 밟고 가는 모든 길에 검은 비단을 깔고 바람은 휙휙 채찍질 구름마저 쫓아버렸어요 이제 무엇을 바치오리까 보셔요 은빛 가면 벗고 강림하신 핏빛 달님 여자는 장갑을 벗고 선지 한그릇 뚝 떠내요 스테인리스 밥그릇 안에 오늘은 핏덩어리 달이 잠겨요 2006년 신춘문예 조선일보 詩부문 당선 나무 맛있게 먹는 풀 코스 법 ,이윤설 비린게 무지하게 먹고팠을 뿐이어요.슬퍼거든요. 울면서 마른 나뭇잎 따 먹었죠,전어튀김처럼 파삭 부서졌죠.사실 나무를 통째 먹기엔 제 입 턱없이 조그마했지만요.앉은 자리에서 나무 한 그루 깨끗이 아작냈죠.멀리 뻗은 연한 가지는 똑똑 어금니로 끊어 먹고잎사귀에 몸 말고 잠든 매미 껍질도 이빨 새에 으깨어졌죠.뿌리째 씹는 순서 앞에서 새알이 터졌나 ? 머리 위에서 새들이 빙빙 돌면서 짹짹거렸어요.한 입에 넣기에 좀 곤란했지만요.닭다리를 생각하면 돼요. 양손에 쥐고 좌-악 찢는 거죠.뿌리라는 것들은 닭발같아서 뼈째 씹어야해요. 오도독 오도독 물렁뼈처럼 씹을 수록 맛이 나죠. 전 단지 살아있는 세계로 들어가고팠을 뿐이었어요.나무 한 그루 다 먹을 줄, 미처 몰랐다구요.당신은 떠났고 울면서 나무를 씹어 삼키었죠.섬세한 잎맥만 남기고 갉작이는 애벌레처럼바람을 햇빛을 흙의 습윤을 잘 발라 먹었어요. 나무의 살집은 아주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죠. 푸른 생선처럼 날 것의 비린 나무 냄새.살아있는 활어의 저 노호하는 나무 비늘들.두 손에 흠뻑 적신 나무즙으로 저는 여름내 우는 매미의 눈이 되었어요.슬프면 비린 게 먹고 싶어져요,아이 살처럼 몰캉한 나무 뜯어먹으러 저 숲으로 가요. 2006년 신춘문예 세계일보 詩부문 당선작 불가리아 여인, 이윤설 매일 창 여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지만, 매일 창 여는 순간 일정하게 지나가는 이국의 여인. 자줏빛 붉은 함박꽃 모직코트를 여며 입은 그 몸은 뚱뚱하나 검게 불 타는 흑발, 영롱한 흑요석의 눈동자 불가리아 여인, 이라 칭하기로 하자. 가본 적 없는데도 그 여인 볼 때마다 벽력처럼 외쳐지는 불가리아! 정염의 혀가 이글거리는 태양과 열정이 조합된 발음! 가혹하게 태질하는 칼바람을 움츠려 깊이 찔러넣은 함박 핀 꽃은 불길하게도 피붉어 하염없이 걷고 걸어도 불가리아 여인 하염없이 걷고 걸어도 내 창 앞 그 여인 어쩌다 여기에 와 있는 거죠, 겹쳐진 창문으로 지나가는 그 여인 부풀어 터질 듯 꽃핀 몸, 타오르는 흑요석 눈빛은 생각하겠지, 저 이방의 여인 코리아의 여인 창 속의 갇힌 듯 노랗게 뜬 얼굴 부르쥔 손 왜 내가 지나가는 이 시간마다 일정하게 창을 여는 걸까. 어떤 이끌림이 그녀와 나의 눈동자 속 흑점에 맞추어지고 우리 서로 의아해하며 바라본다 왜 하필 나를 선택한 걸까. 하고많은 사람 중에 불가리아 여인 코리아 여인 우연히 다시 만난다면 스치듯 안녕, 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불길하게도 매일 일정하게. 2006년 신춘문예 서울신문 詩부문 당선작 아쿠아리우스,최호일 나는 물 한 그릇 속에서 태어났다은하가 지나가는 길목에 정한수 떠 있는 밤물병자리의 가장 목마른 별 하나가잠깐 망설이다 반짝 뛰어들었다물은 수시로 하늘과 내통한다는 사실을편지를 쓸 줄 모르는 어머니는 알았던 것이다달마다 피워 올리던 꽃을 앙 다물고그이는 양수 속에서 나를 키웠다그 기억 때문에 목마른 사랑이 자주 찾아 왔다지금도 물 한 그릇을 보면 비우고 싶고물병같이 긴 목을 보면 매달리고 싶고웅덩이가 있으면 달려가 고이고 싶다어디 없을까 목마른 별빛물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멎을 때까지아주 물병이 되어 누군가를 적셔주고 싶다아니, 트로이의 미소년 가니메데에게눈물 섞인 술 한잔 얻어 마시고취한 만큼 내 안의 고요를 엎지르고 싶다한밤중의 갈증에 외로움을 더듬거려 냉장고 문을 열면, 그리웠다는 듯반짝 켜지는 물병자리 별 하나 (註) 물병자리 별 : 그리스 신화에는 제우스에게 납치 당해 신들에게 술을 따르는 트로이의 왕자 가니메데의 이야기가 있다 2006년 신춘문예 문화일보 詩부문 당선작 내 친구 야간 대리운전사 ,최 명 란 늦은 밤 야간 대리운전사 내 친구가 손님 전화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꼭 솟대에 앉은 새 같다 날아가고 싶은데 날지 못하고 담배를 피우며 서성대다가 휴대폰이 울리면 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솟대를 떠나 밤의 거리로 재빨리 사라진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또 언제 날아와 앉았는지 솟대 위에 앉아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그의 날개는 많이 꺾여 있다 솟대의 긴 장대를 꽉 움켜쥐고 있던 두 다리도 이미 힘을 잃었다 새벽 3시에 손님을 데려다주고 택시비가 아까워 하염없이 걷다 보면 영동대교 그대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참은 적도 있다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어제는 밤늦게까지 문을 닫지 않은 정육점 앞을 지나다가 마치 자기가 붉은 형광등 불빛에 알몸이 드러난 고깃덩어리 같았다고 새벽거리를 헤매며 쓰레기봉투를 찢는 밤고양이 같았다고 남의 운전대를 잡고 물 위를 달리는 소금쟁이 같았다고 길게 연기를 내뿜는다 아니야, 넌 우리 마을에 있던 솟대의 새야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솟대 끝에 앉은 우리 마을의 나무새는 언제나 노을이 지면 마을을 한 바퀴 휘돌고 장대 끝에 앉아 물소리를 내고 바람소리를 내었다 친구여, 이제는 한강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물오리의 길을 물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물새의 길을 함께 가자 깊은 밤 대리운전을 부탁하는 휴대폰이 급하게 울리면 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솟대를 떠나 밤의 거리로 사라지는 야간 대리운전사 내 친구 오늘밤에도 서울의 솟대 끝에 앉아 붉은 달을 바라본다 잎을 다 떨군 나뭇가지에 매달려 달빛은 반짝인다 2006년 신춘문예 강원일보 詩부문 당선작 여행, 스무살의 열차 ,이병철 너는 차창 위로 그림을 그리다 새벽보다 축축한 잠에 빠졌다 그림자 같이 어둡게 기운 어깨 아래 네 손은 얇은 책장처럼 떨렸고 나는 첫 장을 넘기듯 조심스레 작은 네 손에 뜨거운 지문을 새겼다 밤바람 달리는 녹슨 철로는 별빛 스러지는 안개의 통로이자 누군가 밟고 지나간 질척한 눈길 열차는 흐릿한 눈을 뜨고 쓸쓸한 어둠을 향해 주행을 재촉했다 무서운 꿈이 가슴을 짓누르는 밤 너는 엷은 숨을 내쉬는 어린아이처럼 내 어깨에 피곤한 머리를 기대고 잠들었다 열차가 기억의 간이역을 지나자 하늘의 뒷면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눈을 뜬 아침은 죽음 같은 잠을 깨부숴 어둔 너의 그림 위에 밝은 물감을 덧입혔다 열차가 멈춰 서자 우리는 아지랑이 같은 입김을 일으켜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갈색 언덕을 향해 달려갔다 우리의 숨결을 잠재울 계절이 오기 전 벌써 내일의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2006년 신춘문예 부산일보 詩부문 당선작 바뀐 신발 ,천종숙 잠시 벗어둔 신발을 신는 순간부터 남의 집에 들어온 것처럼 낯설고 어색했다 분명 내 신발이었는데 걸을 때마다 길이 덜커덕거렸다 닳아있는 신발 뒤축에서 타인의 길이 읽혔다 똑같은 길을 놓고 누가 내 길을 신고 가버린 것이다 늘 직선으로 오가던 길에서 궤도를 이탈해 보지 않은 내 신발과 휘어진 비탈길이거나 빗물 고인 질펀한 길도 거침없이 걸었을 타인의 신발은 기울기부터 달랐다 삶의 질곡에 따라 길의 가파름과 평탄함이 신발의 각도를 달리 했던 것이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은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걷는 길, 나는 간신히 곡선을 직선으로 바꾸었다 2006년 신춘문예 영남일보 詩부문 당선작 봉제동 삽화,김성철 천둥 번개가 치자 공장엔 정전이 찾아왔다소나기의 망치질 소리가 시작되면 둥 번개가 치자 공장엔 정전이 찾아왔다 늙은 배선이 어김없이 누전 빙자한 어둠을 불렀다 여공들의 환한 치아가 깜빡깜빡 불 밝히고 재단사 김씨는 하늘위로 쌓아올려진 회색원단 눈길로 만지며 납품기일 손꼽는다 창틀 등지고 불어오는 바람 미싱 선반 위로 펼쳐진 꽃길타고 달려간다 손 맞잡은 여공들 바람의 허리춤을 잡고꽃길 위로 걸어 들어간다피지 못한 꽃들이며 줄기 오르지 못한 실밥들이보푸라기 흔들며 반긴다페달 밟는 미싱공 꽃들에게 먼저 수인사 건네자웃자란실꽃들 서둘러 뿌리 걷으며손에 핀 봉제선 위로 올라탄다때 묻은 손목, 손목들산수유열매처럼 붉게 흔들린다 재봉중인 꽃술이 실밥을 흔들었으나접근금지를 알리는 도안선이 유난히 날을 세운다작업반장의 기침소리와 함께 기지개 다시 피는 형광등주파수 맞추는 고물전축, 후후 바람 불어 목청 가다듬고여공들은 와 하며 공장안으로 퉁긴다 봉제동 수출공장 시동 거는 미싱들 서역 향한 길을 재촉한다실크로드 사막의 모래처럼 날리는 보푸라기 봉제동 여공들은 실크로드를 걷고 있다 2006년 신춘문예 전북도민일보 詩부문 당선작 바람 들어 좋은 날,김광희 도마 위에 퍼덕이는 순풍씨는요 한 마리 바다여 입이 댓 발 나온 분녀가 단칼에 기절시키고 바닥만 긴 미주구리* 아랫도릴 올려쳤거든요 성난 파도로 일어서던 비늘이 날 무딘 칼날에 힘없이 쓰러지데요 두터운 파고를 한 숨에 쓰윽 떠냈어요 대추씨 만한 부레 저렇게 작은 꿈 가지고 태양 향해 펄떡였던가 봐요 물컹한 가문에 뼈대라도 세우려는지 발라낸 뼈에서 활시위처럼 탱탱한 시간이 꽉 찼어요 가실 삼켰던지 살 속 깊이 박혔네요 바람 부는 데로 출렁였던 것은 고통의 몸부림이었던가 천 날 만 날 바람 들락였을 허파는 다 녹아 없어지고 참빗 같은 아가미에 그 바람 걸렀던 것 같아요 어딜 쏘다녔던지 얼룩진 상처 비릿한데 바다 깊은 심장 속에서 헤엄치는 분녀 꼬들꼬들 바다를 씹는 달디단 성찬 차려 황홀한 순풍씨, 쇠주 한 잔 받으셔 *미주구리: 물가자미의 경상도 사투리 2006년 신춘문예 전북일보 詩부문 당선작 북어, 기명숙 살점이 뭉텅 빠진 들쑥날쑥한 몸 하나 허공에 걸려있다 쾡한 눈알을 바람이 핥고 지나가자 파르르 눈가의 잔주름이 흔들린다 헤쳐가야 할 길을 또렷이 바라볼수록 굳은살처럼 딱딱한 몸은 야위어간다 그 해 누군가 억센 손으로 그의 내장을 파내고 그 속에 단단한 뼈대를 세웠다 그의 몸 바깥에서 느닷없이 아카시아꽃이 펑펑 지고, 군화자국이 지나간 자리마다 비늘 같이 꽃잎이 소복하게 쌓였다 바람 불어 허공이 저 혼자 우는 밤, 그는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뻣뻣해졌다 스물다섯 해, 맷집 하나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사는 북어가 있다 상한 지느러미 곧추세워 풍향계처럼 헤엄치려 하는데 아무도 그에게 길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우리 큰오빠……떠나야 한다, 떠나야 한다 입술을 달싹이는데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날아다니는 꽁치,기명숙 접시 위에 잘 구워진 채 퍼덕거린다 물때가 채 가시지 않은 맑은 눈을 또랑또랑 뜨고 꽁치는 지금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다 꽁치가 다시 날아가지 못하도록 젓가락들이 날렵하게 접시 주변을 들락거린다 그러다 보니 꽁치의 살과 살 사이 흰 머리카락 같은 가시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참 성가시게 달라붙어 있다 용케도 힘을 나란히 모으면서 촘촘히 박음질한 무명 천 조각처럼 가시는 끄떡없다 이 가시는 바다에서 꽁치의 몸을 찌르던 바늘이었다 바다를 벗어나고 싶은 꽁치가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물을 때마다 가시는 단단해졌다 가시 때문에 아파서 푸른 물결을 뚫어야 했다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고 도망치다 보니 꽁치는 길쭉해졌다 그러다가 꽁치의 몸에 청회색 바다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길게 들어와 박히게 되었다 젓가락들이 바다를 뜯어먹게 놔두고 지금 꽁치는 다시 날아가려고 기우뚱 몸을 한번 뒤집고 있다반대쪽 살이 통통하다 2006년 신춘문예 국제신문 詩부문 당선작 조각보를 짓다, 이은규 그믐, 공명 쟁쟁한 방에 외할머니 앉아 있네요 오롯한 자태가 새색시처럼 아슴아슴 하네요 쉿, 그녀는 요즘하늘에 뜬 저것이 해이다냐 달이다냐, 세상이 가물가물 한다네요 오늘따라 총기까지 어린 눈빛, 오방색 반짇고리 옆에 끼고 앉아 환히 열린 그녀, 그 웃음자락에서 꽃술 향이 피어나기는 어찌 아니 피어날까요 시방 그녀는 한 땀 한 땀 시침질하며 生의 조각보를 짓고 있네요 허공 속에 자투리로 남아있을 어제의 어제들 살살 달래며, 그 옆에서 달뜬 호명을 기다렸을, 아직 色스러움이 서려있는 오늘의 오늘들을 공들여 덧대네요 때마침 그믐에 걸린 구름이 얼씨구 몸을 푸는데, 세상에서 제일 바쁜 마고할멈 절씨구 밤 마실 나왔나 봐요 인기척도 없이 들어와선 그녀 옆에 척하니, 그 큰 궁둥이를 들이대더라고요 그러더니 공든 조각보가 어찌 곱지 않으랴, 조각보에 공이 깃들면 집안에 복인들 왜 안 실리랴, 이러구러 밉지 않은 훈수를 두네요 마치 깨진 기와조각으로 옹송옹송 살림 차리던 소꿉친구 모양새로 앉아서는 말이지요 마고할멈의 넓은 오지랖이야 천지가 다 아는 일, 그 말씀 받아 모신 그녀는 손끝을 더욱 맵차게 다독이네요 한때 치자빛으로 터지던 환희들이 어울렁, 석류잇속 같이 아린 화상의 점점들이 더울렁, 쪽빛 머금은 서늘한 기원들까지 어울렁더울렁 바삐 감침질 되네요 生의 감칠맛을 더하던, 갖은 양념 같은 농지거리들도 착착 감기며 공글리기 되더니, 이내 그 色들色들 어우러져 빛의 시나위 휘몰아치네요 드디어, 우주를 찢고 한 장의 조각보가 첫 숨을 탔네요 금방이라도 선율 고운 장단이 들썩이며 펄럭일 것 같네요 저만치 아직 조각보에 실리지 않은 시간들은 羽化登仙이라 적힌 만장을 펄럭이며 서있네요 어느새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마고 할멈, 다 빠져버린 이빨 설겅설겅한 잇바디 내보이며 방짜유기빛으로 쨍하게 웃고요 외할머니야 그 조각보를 가슴에 안고 어린애처럼 좋아라, 술렁술렁 일렁일렁 거리네요 마침 장지문 밖에서 그믐달이 막 玄牝之門으로 드는 때 말이지요. 2006년 신춘문예 불교신문 詩부문 당선작 눈발 날리는 마당, 김운영 눈발 날리는 마당을보고 있으면요 마른 저녁도 입을 다물어버리고 마는데요발목 잃어버린 눈발은요땅에 닿지도 못하구요약한 한숨처럼 담벼락 위아버지의 여윈 어깨 위에도 말이지요 관절절룩거리면서 아버지 뒤란으로가시더니요 불쏘시개 송구나무가마솥 물 끓이는데요 등겨같은 닭털이 공중에몇 날아다녔나요? 오래오래 눈발이 아버지빈 어깨에 배꽃처럼 쌓이면요오래오래 가마솥 연기 마음의 暴政(장작불) 몸 밖으로서서히 증발되고 있으면요아버지 사발에 담아안방에 어머니에게요아버지 붉은 동맥 모세혈관 풀어어머니에게 비는 견고한 용서닭백숙의 용서를 말이지요살과 뼈 허물어지는 解産처럼 맑은 국물 눈물 말이지요어머니가 밤새 소리없이우시는 날에는요 다음날말없는 닭백숙 한 그릇 눈발 날리는 마당에서 말이지요. 출처 : 2006 신춘문예 당선작 詩부분 모음글쓴이 : susyya 원글보기메모 : 공유하기 게시글 관리 wind '자유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움의 바다 (0) 2006.06.23 [스크랩]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 김남조 (0) 2006.06.22 [스크랩] 성명의 영문표기 (0) 2006.06.15 [스크랩] 삶이 힘들 때 이렇게 해보세요 (0) 2006.06.15 [스크랩] 마음을여는 행복편지 (0) 2006.06.13 '자유게시판' Related Articles 그리움의 바다 [스크랩]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 김남조 [스크랩] 성명의 영문표기 [스크랩] 삶이 힘들 때 이렇게 해보세요 티스토리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