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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미국과 프랑스의 정의

[만물상] 미국과 프랑스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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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5.18 22:03

34년 전, 40대 중반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미국 배우 잭 니컬슨 집 파티에 갔다. 그는 거기서 패션모델인 열세 살 소녀 사만다에게 마약을 먹이고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피해자 가족 고발에 따라 그는 즉각 체포됐다. 폴란스키는 42일간 구금돼 있다 혐의를 인정하고 감형을 약속받는 '플리바게닝'에 합의하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러다 최종 선고를 앞두고 프랑스로 '도주'했다. 그는 폴란드와 프랑스 국적을 함께 갖고 있다.

▶32년이 흐른 재작년, 76세 폴란스키는 취리히영화제에 갔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혐의는 '사만다 성폭행'이었다. 프랑스 문화장관은 "과거사 때문에 그가 느닷없이 사자굴에 던져졌다"고 했고, 외무장관은 "미국 정부에 사면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겠다"고 했다. 반면 미국 언론은 "누구든 법 앞에 평등하게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했다. 미국 검찰은 범죄인 인도를 별렀지만 스위스 당국은 두 달 뒤 폴란스키를 석방했다.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의 '성폭행 미수 사건'이 미국·프랑스 사이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 법원은 어제 피의자 변호인들이 낸 보석 신청을 기각했다. 풀려날 경우 프랑스로 달아날 우려가 있다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였다. 검찰이 한마디 덧붙였다. "폴란스키 사건의 교훈을 우리는 결코 잊지 않고 있다."

▶프랑스인들이 미국인을 얕잡아 말할 때 흔히 "하여간 카우보이들이란…" 하고 혀를 찬다.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은 회고록 '권력과 인생'에 G7 정상회담장의 카터 대통령이 '얼마나 교양없이 굴었는지'라고 썼다. 그가 휴양지 해변에서 퍼스트레이디들 앞을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어제 엘리자베스 기구 전 프랑스 법무장관은 수갑 찬 스트로스칸 사진이 공개된 것을 두고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라고 했다.

▶'야만'이란 말에 발끈한 뉴욕 신문들은 스트로스칸이 지난달 28일 가진 인터뷰를 인용하고 있다. 자신의 3가지 문제가 "돈, 여자, 그리고 유대인이라는 점"이라며 "그래, 나 여자 좋아한다. 그게 어쨌는데?" 하고 반문했다는 것이다. IMF 간부로 일했던 미국인도 "도대체 그는 룰이 없다. 고위직이 아니라면 시베리아로 보내졌을 사람"이라고 했다. 미국이 '세계 경제 대통령'도 법 앞에 평등하다는 '카우보이의 정의'를 어떻게 보여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