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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6.01 22:23
- ▲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말라리아는 모기가 옮기는 병이다. 얼룩날개모기 암컷이 사람의 피를 빠는 동안 체내에 말라리아 원충을 주입해 생긴다. 그런데 우리나라 말라리아 환자 발생 추이를 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먼저 환자가 휴전선 접경지역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발생 환자 1721명 중 대다수가 경기(805명), 인천(254명), 강원(183명)에서 발생했다. 서울까지 포함하면 88%가 휴전선 접경지역에서 생겼다. 또 전체 환자의 40%인 674명은 전방에서 근무하는 현역 군인이나 막 전역(轉役)한 사람이다. 이렇게 주로 휴전선 접경지역에서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하는 이유는 아무리 남쪽에서 방역을 해도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계속 북한에서 날아오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남북관계의 상태에 따라 말라리아 환자의 수가 변화한다는 점이다. 국내 말라리아 감염자는 2007년 2192명에서 2008년 1023명으로 크게 줄었다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사망사건 이후인 2009년 1345명으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지난해 1721명으로 늘어났다. 이런 변화는 남북관계가 나빠지면 남쪽의 대북 지원 규모가 줄면서 말라리아 방역 지원도 감소하는 데 원인이 있다.
우리나라의 토착 말라리아는 1970년대 말 사라졌는데, 1993년 이후 휴전선 인근에서 말라리아가 다시 등장했다. 북한 모기 때문으로 밝혀지자, 정부는 2001년부터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에 말라리아 방제를 지원했다. 이에 따라 북한 내 말라리아 민간인 환자는 2001년 30만명에서 2007년 7436명으로 97.5%나 감소했다.
그런데 2008년부터 대북 지원이 줄어들면서 다시 북한에 말라리아가 기승을 부리고, 모기들이 휴전선을 넘어와 우리의 접경지역 주민과 군인들에게 말라리아를 옮기는 것이다. 더구나 질병관리본부는 "올해는 구제역 영향으로 접경지역의 소와 돼지가 급감해 모기가 사람을 물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고 말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인천시와 경기도는 최근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북한에 말라리아 방역 물품을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김문수 경기지사는 "말라리아 매개충인 모기는 국경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휴전선을 넘어오는 것은 모기만이 아니다. 소나무 수액을 빨아먹는 솔잎혹파리도 제한적이긴 하지만 바람을 타고 휴전선을 넘나들면서 접경지역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강원도가 2001년부터 강원도 북쪽 산림에서 북한과 공동으로 솔잎혹파리 방제 사업을 벌이자 남쪽 솔잎혹파리 피해 면적도 줄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해 천안함 사태 후 공동 방제사업을 중단해 다시 접경지역의 피해가 커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주민 건강이나 생태계 파괴는 안중에도 없는 '불량국가' 북한과 접경을 맞대고 있자니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핵무기 개발과 무력 도발 같은 안보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북한의 해충(害蟲) 번식까지 주시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국경 없는 모기와 솔잎혹파리는 적극 개입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는 요즘의 대북 관계를 상징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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