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ssue

[김명환의 씨네 칵테일] ‘레지던트'속 관음증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묘사

[김명환의 씨네 칵테일] ‘레지던트'속 관음증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묘사

  • 기사
  • 입력 : 2011.06.02 10:24 / 수정 : 2011.06.02 14:25

스릴러 영화 '레지던트'의 한 장면

한 여성의 몸을 훔쳐보는 사내 때문에 빚어진 끔찍한 사건 담은 스릴러
악한이 빚어내는 공포가 아니라 ’마음을 다친‘ 불쌍한 남자의 비극

힐러리 스왱크 주연의 스릴러‘레지던트(The Resident)'의 소재는 퍽 자극적입니다. 이성의 몸을 몰래 엿보는 관음증(觀淫症·voyeurism)이나 이성의 물건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는 페티시즘(fetishism)에 빠진 인물 때문에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특히 영화의 첫 번째 화두는 인간의 관음증, 즉 훔쳐보기 입니다. 이건 원래 정신 질환을 가리키는 개념이었으나 ’몰카‘나 ’야동(포르노)'등 관음증적 문제들이 늘어나는 오늘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소재가 됐습니다.

정상적 생활이 어려운 관음증 환자는 극소수이겠지만 이성을 훔쳐보고 싶은 관음증적 호기심은 대다수 사람, 특히 남성들에게 적지 않습니다. 성(性)을 상품화한 영상물을 소비하는 사람들 마음에도 관음증적 심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넓게는 모든 영화 보기의 재미라는 것 자체가 남의 일을 엿보며 쾌락을 얻는 관음증과 닿아있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스릴러 영화 '레지던트'의 한 장면
영화 ’레지던트'의 악한은 중증 관음증 환자라고 부를 만합니다. 다른 스릴러와 다르게 그가 이런 이상 행동에 빠질수 밖에 없었던 동기들이 영화에 설명되고 있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너무 자세한 설명은 스포일러가 될수 있으니 생략합니다.) 많은 영화의 악당들이 물질적 탐욕에 빠졌거나 혹은 그냥 미치광이 싸이코여서 흉악한 짓을 저지르지만 ‘레지던트'의 범인은 ’마음을 다친‘ 사람입니다.

관음증을 악행이 아니라 일종의 질환으로 그리고 있는 점에서 ‘레지던트'는 정신분석학 대가 프로이트의 수제자가 만든 듯한 영화입니다. 은밀한 훔쳐보기나 페티시즘 등 프로이트가 파고들었던 이상 성욕 패턴들이 펼쳐집니다.

주인공인 여의사 줄리엣(힐러리 스왱크)이 뉴욕에 새 집을 얻은 것은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뉴욕 한 구석에 전망도 괜찮은 집을 싼 값에 얻게 됐고, 게다가 집 주인은 친절하고 배려심 많은데다가 혼자 사는 매력남입니다. 수상한 호의를 베풀겠다며 줄리엣에게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집 주인의 할아버지가 조금 신경쓰이긴 하지만, 줄리엣은 운이 좋은 듯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악몽이 시작됩니다. 입주한 직후부터 줄리엣은 밤마다 누군가가 자신을 훔쳐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언가 헤어날 수 없는 이유로 아침에 제 시간에 일어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침입자를 촬영하는 CCTV를 설치한 끝에 범인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 줄리엣은 충격과 공포에 빠집니다.

스릴러 영화 '레지던트'의 한 장면
스토리 라인은 그럴듯하지만 이 영화에 서스펜스 스릴러의 잣대를 들이대면 썩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범인과 피해자의 대결은 너무 상투적인 패턴으로 이어지며, 긴장감도 모자랍니다. 그 대신 이 영화는 스릴러 영화의 일반적 오락성을 안기는게 아니라, 이상 성욕에 빠져버린 불쌍한 남자의 비극을 통해 사람의 행동이 이성(理性)과 얼마나 무관하게 일그러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화면에 펼쳐지는 관음증의 증상은 꽤 구체적입니다. 범인은 매일 밤 콘센트 구멍으로 훔쳐보고, 거울로 훔쳐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여자가 출근한 사이 빈 집에 몰래 들어가 그녀의 칫솔로 이를 닦아보고, 그녀가 쓰던 욕조에 들어가고, 그녀의 옷가지에서 체취를 맡는 페티시즘적 행동도 합니다.

특이하게도 카메라는 두려움에 떠는 여성의 시점보다는 홈쳐보는 범인의 시선을 더 자주 취합니다. 어느 순간,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훔쳐보기의 공범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실제로 어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동안 내가 범인인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걸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조마조마하게 손에 땀을 쥐었다. 훔쳐보는 것에 대한 짜릿함과 환상을 맛 볼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사람들 마음 속 관음증 심리를 스멀스멀 꿈틀대개 하는 묘한 영화입니다.

‘대부분의 이상 성욕은 유년기에 받은 정신적 충격 때문인 경우가 많다'는 정신분석학 이론 그대로, 범인이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쇼킹한 일들도 영화에서 드러납니다. 그걸 알게 되면 범인은 악독한 놈이 아니라 불쌍한 자라는 느낌이 듭니다.
스릴러 영화 '레지던트'의 한 장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배우 힐러리 스왱크가 공포스런 상황에 놓인 여성의 두려움을 잘 표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진짜로 무섭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악의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할수록 무서워지는데 이 영화에선 알 수 없기는 커녕 그 반대이니까요. 이 영화는 폭력성·선정성이 최고 단계라고 하기는 어려운데도 국내 심의에서 다소 이례적으로 ’19세 이하 관람금지‘등급을 받았습니다. 닫힌 공간에서의 훔쳐보기등 성적 이상행동을 정면으로 다룬 것 때문이 아닌가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