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신문
- 2011-06-1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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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이 폭로한 베이징 비밀회담의 요지는 이렇다. 대북업무에 종사하는 남쪽의 몇몇 실세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따라 이 비밀접촉을 주관하는 현인택 통일부장관, 국가정보원장, 대통령 비서실장, 현지에 파견된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막중한 사명을 띠고 북쪽의 대남 담당자들을 만났다. 남북회담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을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되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이라도 만들어 세상에 내놓고, 올 6월과 8월, 내년 3월 세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갖자고 남측이 제안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이 폭로의 파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돈봉투'설까지 흘렸다. 이로써 북측은 그 동안 남북문제에 강경입장을 취해 오던 MB정권의 이중적 성격을 폭로, 남남갈등에 기름을 부었고 과거의 정부가 '돈 주고 바꾼 정상회담'을 했다며 맹공을 퍼붓던 MB정권의 '도덕성'에도 치명타를 가했다.
북측의 폭로의도는 십분 성공한 듯하다. 정부는 당혹감이 역력했고 무책임한 폭로 공세에 황당하고 어이없어했다. 침묵하는 청와대를 대신하여 그 동안 역주행만으로 기억되는 통일부가 설거지를 자임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새삼 입증해 보였다. "우리의 진의를 왜곡한 일방적 주장으로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남북관계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은 지금이라도 책임있는 자세를 갖고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한 것은 진정성만 있다면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지 않겠다는 인내심의 발로라고 생각된다.
시간이 MB정권의 미숙성을 드러내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정치권의 공세가 시작되자 정부는 북측의 폭로 내용을 부인하게 되었고, 북측의 반발을 다시 불러왔다. 북측의 폭로가 남측의 진의를 왜곡한 일방적인 주장이라 하더라도, 남측의 주장대로 비밀협상의 내용은 어떤 경우에도 공개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고수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그 사실관계의 정확성 여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어야 했다. 북측이 '사과 애걸'과 '돈봉투' 등을 폭로, 남측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자 남측은 엉겁결에 그 문제를 부인함으로 NCND(긍정도 부정도 않는)의 자세에서 벗어나 결과적으로 비밀협상의 내용을 일부나마 확인해주는 자기모순을 범하게 되었다. 그 결과 북측은 2차 폭로를 감행했고 나아가 "남측이 비밀접촉을 왜곡하면 녹음기록도 공개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섰다.
보름간의 '폭로와 기싸움'은 남북관계에 무엇을 남겼는가. MB정권은 북측의 폭로 내용에 관계없이 비밀회동 자체로 꼼수와 부정직을 드러냈다. 북의 폭로가 근거없는 것이 아니라면 이 정권은 종래의 자기주장을 희화화했고 또 일반국민은 물론 자기를 지지해준 우파세력과 '가스통 할배'들마저 뻘쭘하게 만들었다. 북측도 마찬가지다. 폭로와 위협을 통해서 그 동안 MB정권에 대한 원한은 어느 정도 카타르시스 했겠지만, 그들이 상투적으로 주장하는 '우리 민족끼리'와 '통일'의 대의는 저버렸음이 분명하다. 더구나 '역도', '역적 패당','불한당' 같은 말은 협상대상에게 던질 말이 아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역적패당'과 협상하고 도움을 구했던 자신의 행위는 어떻게 평가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은 남북관계에서 바늘구멍 같은 한줄기 빛이라도 찾아야 할 때다. 꽉 막힌 대화의 채널을 찾는 데는 꼼수나 부정직, 욕설과 폭로로는 안 된다. 하물며 경색된 남북관계를 돌파하는 데에 가장 유효한 남북정상회담에서랴. 만신창이가 된 남북관계를 회복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진정성있는 대화와 포용력있는 신뢰다.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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