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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동물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동물과 인간 사이

프리데리케 랑게 지음 / 박병화 옮김

 

'동물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하는 질문은 곧 '동물과 인간 사이는 얼마나 멀까' 하는 것과 같은 질문이다.

독일의 동물생리학자인 프리데리케 랑게가 쓴 '동물과 인간 사이' 는 다양한 동물 실험을 통해 이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개 지능 실험실' 과 '늑대 연구 센터' 등을 설립하기도 했던 저자는 이 책에서 그동안 우리가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능력 중의 상당 부분이 동물에서도 확인된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그중에는 '속고 속이는' 능력도 포함돼 있다.

자리돔은 자신의 몸에 붙은 기생충이나 상태가 좋지 않은 비늘을 제거하기 위해 청소놀래기를 찾는다. 그런데 모든 청소놀래기가 충실한 '청소부'인 것은 아니었다. 일부 악의적인 청소놀래기는 기생충이나 불량 조직 뿐만 아니라 자리돔의 건강한 조직까지 먹어치웠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자리돔은 금세 속임수를 알아채고는 속임수를 쓴 청소놀래기를 잡아먹으려고 하거나 새로운 청소놀래기를 찾아간다.

그렇다면 속임수를 쓰는 놀래기들은 '고객'들이 다 떠나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까? 청소놀래미가 가슴지느러미로 자리돔의 등을 자극하며 환심을 사려는 모습이 관찰됐는데 이는 얻을 것이 많지 않은 작은 고객에게 친절하게 행동함으로써 대기 중인 큰 고객이 안심하고 청소를 맡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야말로 인간 뺨치는 상술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다른 동물이 사냥하고 남은 잔해를 먹고 사는 까마귀는 먹이를 현장에서 먹지 않고 안전한 곳에 숨겼다가 나중에 먹곤 하는데 이 과정에서 꽤 고차원적인 전략이 등장한다.

한 실험에서 연구자들이 한 까마귀가 먹이를 숨기도록 하고 그 모습을 다른 까마귀가 지켜보게 했다. 그리고 지켜보는 까마귀 곁에는 그보다 서열이 높은 다른 까마귀가 지켜보게 했다. 그 결과 까마귀는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까마귀의 시야를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을 노려 다른 까마귀가 숨긴 먹이를 차지했다.

'자기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상대도 알 수 있다는 점'과 '내가 생각하는 것을 남이 알아차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높은 지점에 뒷다리로 꼿꼿이 서서 적의 동향을 살피는 '사막의 보초병' 미어캣의 행동도 꽤 '지능적'이다.

동물행동연구가들은 적이 다가오면 특별한 소리로 동료에게 경고를 하는 미어캣의 '이타적'인 행동에 의문을 품어왔다. 보초병 입장에서는 가장 높은 지점에 있기 때문에 적에게 발견될 가능성이 큰 데다 보초를 서는 동안 음식을 먹을 기회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찰 결과 미어캣의 행동은 그렇게 '값비싼 희생'은 아니었다. 미어캣들은 대부분 배가 잔뜩 불러 먹이를 먹을 필요가 없을 때만 보초병으로 나섰으며 언제나 땅굴 가까운 곳에서 역할을 수행하다 적을 발견하면 가장 먼저 숨기 때문에 잡아먹힐 위험도 더 낮았던 것이다.

저자는 미어캣이 적을 발견했을 때 자신만 재빨리 숨는 대신 경고음을 내는 것은 “아마도 혈연관계에 있는 동료를 생각해서일 수도 있을 것이며 미래의 언젠가 돌아올 수 있는 이익을 기대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와 늑대, 앵무새, 침팬지 등 책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인간만이 지구의 주인은 아님을, 어떤 면에서는 인간이 동물에게 배울 것도 있음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