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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 달수씨는 이혼하고 싶다

[아침논단] 달수씨는 이혼하고 싶다

  • 김수진 변호사·평화합동법률사무소

입력 : 2011.06.29 23:20

김수진 변호사·평화합동법률사무소

결혼 관계 오래 전에 깨졌어도 파탄 책임 있으면
이혼하고 싶어도 이혼할 수 없어…
파경 부부는 이혼할 권리 주고, 배우자·자녀
보호할 수 있도록 재산분할·양육비 현실화해야

요즘 결혼이 인생의 필수 코스가 아닌 것처럼 이혼도 과거처럼 창피하거나 숨기고 싶은 일이 아닐 정도로 흔하게 됐다. 물론 이혼은 여전히 사람의 일생에서 배우자의 사망 다음으로 큰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이다. 결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혼인관계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남녀 간의 애정에 기초한 부부관계의 형성과 유지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애정은 전혀 없이 한쪽 당사자가 이혼을 거부하면서 허울뿐인 부부관계가 유지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70세가 되어가는 김달수씨(가명)가 그랬다. 농촌에서 장손(長孫)으로 태어난 그는 스물한 살 때 마음 깊이 좋아하는 이웃 마을 처녀가 있었지만 부모는 그를 동네 이장 딸과 억지로 혼인시켰다. 혼인 후 아내에게 정을 붙여보려고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들까지 낳은 아내를 끝내 사랑할 수 없었던 김씨는 무작정 도시로 나와 갖은 고생을 겪으며 살다가 최순이씨(가명)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김씨는 30년 이상 최씨와 함께 살아오면서 2남2녀를 두었지만, 본처가 이혼을 거부하는 바람에 최씨는 '첩(妾)', 그 자녀들은 '사생아'로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김씨의 소원은 최씨와 자녀들에게 법률상 처(妻)와 자녀의 지위를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58세의 송규진(가명)씨도 부인과의 이혼을 원했다. 직장 거래처 일로 친해진 여성과 잠깐 바람을 피웠고 그 관계는 곧 정리됐지만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아내에 의해 집에서 쫓겨났다. 송씨는 1년간 밖을 떠돌다가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내는 물론 자녀들까지 외면했고, 송씨는 다시 집을 나가 8년간 혼자 생활하고 있다. 송씨는 아내에게 이럴 바에야 차라리 이혼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아내는 자녀의 혼사가 끝나면 이혼해 주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김달수씨나 송규진씨는 이혼소송에서 흔히 말하는 '유책(有責)배우자'다. 혼인관계가 파탄되게 된 데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라는 뜻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김씨나 송씨 모두 아내들이 협의이혼에 응하지 않는 한 재판을 통해 이혼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어렵다.

이와 같이 이혼소송에서 유책주의(有責主義)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유례가 드물다. 유책주의는 원래 부당하게 남편에게 쫓겨나 이혼당하는 여성을 보호하려고 만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경제발전과 사회변화, 여성의 높아진 사회적 위상 등으로 인해 유책주의의 필요성은 많이 퇴색됐다. 서구의 많은 나라는 책임의 소재에 관계없이 혼인관계가 파탄에 빠진 경우에 이혼을 허가하는 파탄주의(破綻主義)의 입장을 채택하고 있고, 우리와 비슷한 혼인제도를 가진 이웃 나라 일본 역시 이혼만큼은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김달수씨와 송규진씨는 각자 아내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그들의 아내들은 모두 이혼을 거부했지만, 재판 결과는 달랐다. 법원은 송씨의 이혼청구는 받아들이고, 김씨에 대해서는 아직 혼인관계가 파탄된 상태로 볼 수 없고 유책배우자의 청구라는 이유로 이혼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렇다고 김씨가 법률상 배우자에게 돌아가 정상적인 부부로 살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첫 아내와의 사이에 애정이라는 혼인의 본질적 요소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잠시 애정관계였다고 볼 수 있는 임신 및 출산도 너무 오래된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30년 이상 다른 여성과 살아왔다. 그럼에도 법원은 김씨의 이혼청구를 기각했으니, 이는 국가가 김씨 부부에게 결혼생활을 계속하라고 강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0년 이혼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이혼건수는 11만7000건으로, 전년보다 7000건 감소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혼율 1·2위를 다투고 있다. 현재의 높은 이혼율을 보더라도 엄격한 유책주의는 더 이상 가정이나 여성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최근에는 하급심 법원에서도 적극적으로 파탄주의 입장에 선 것으로 보이는 판결을 선고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제는 아무런 애정이 없는 상태로 오랜 세월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른 부부에 대해서는 이혼할 수 있는 길을 더 적극적으로 열어주되, 그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되는 배우자와 자녀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경제적 약자인 배우자와 자녀가 이혼 전과 비슷한 정도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재산을 분할하거나 양육비를 현실화하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유대교 사상을 집대성한 탈무드에 "결혼을 위해서는 걸어라, 이혼을 위해서는 뛰어라"라는 말이 있다. 결혼할 상대방을 정할 때에는 지극히 신중해야 하지만, 부부가 노력해도 파경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면 서둘러 불행을 떨쳐버리는 것이 낫다는 뜻인데, 오늘날에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