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인물,문물

역대 대통령 휘호 모음

 
역대 대통령 휘호 모음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휘호를 모아 보았다.

 

역대 대통령의 글씨에는 각각의 특성이 있겠으나 그 사람의 성격과 기질,

 

또 학식과 정신적 수준을 알수 있고 대인의 면모와 품성을 알수 있다고

 

법무연수원 구본진 교수가 펴 낸 "필적은 말한다"의 책에서 기술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뛰어난 글씨를 가진 대통령은 이승만 전대통령이다.

 

어려서 부터 한학을 배우고 평생 서예를 연마했기에 "명인"이라 불릴 만큼

 

글씨의 정교와 기교가 빼어나고 한자 뿐 아니라 한글, 영어 필체도 유려하고

 

필체가 굳세면서 부드러워 의지가 강하고 인간적인 완숙함을 갖추고 있으며

 

반듯한 필체는 원칙을 중시하고 보수적인 성향임을 보여주고 자신감이

 

강하고 용기 있는 성격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한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서예에 능해 서예 작품을 많이 남겼다.

 

윤대통령이 쓴 글씨 중에서 "落山雲表(낙산운표)"는 단아한 기품이 느껴지고

 

꾸밈없고 소박하다는 평이며 정확하고 정사각형을 이룬 것과 선이 다소

 

약한 것은 매우 신중하고 바른 사람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한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인기 있는 글씨의 주인공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는 요즘 경매시장에서 수천만원을 호가할 정도이고

 

특히 1970년 신년 휘호인 "개척과 전진"은 6,300만원에 경매 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대구사범학교 시절 김용하 선생에게서 글씨를 배웠고

 

대통령이 된 후에는 손재형 선생에게서 사사했다고 하나 손재형 선생의

 

필체와는 많이 다르고 모방이 없이 나름대로 독특한 필체로 군인 출신답게

 

군더더기가 없는 담백하고 단정하고 흐트러짐이 없이 부드러우면서

 

굳센 느낌을 주고 있는 박력 있는 필체라는 평가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흡사하게 글씨가 유려하고 필체에 힘이 있다고 한다.

 

또한 박대통령은 강하고 반듯하지만 인간적인 부드러운 면을 지니고

 

있다고 구본진 교수는 박대통령의 필체를 분석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는 지난번에 카페 블로그에 올린 "박정희 대통령 휘호 "

 

중 몇 개만 다시 올리고 빠진 것을 추가로 더 올린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이 짧아서 대통령 시절의 휘호는 많이 남기지는

 

않았으나 할아버지 최재민 어른께서 조선시대에 성균관 박사를 지낸 이름

 

높은 한학자 였기에 3살때 부터 할아버지에게서 선비로서의 훈도와 한학,

 

예절을 배워셨기에 특히 한자 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과 고문학 실력이

 

뛰어났다. 원주보통학교(지금의 원주초등학교) 출신이여서 이학교에 몇점의

 

휘호와 자필 서신을 남기셨으며 전통적인 한문 필체로 평가 받는다

 

 

 

전두환, 노태우 두 분 전 대통령은 서예 필체가 극히 뛰어나다고는 할 수는

 

없으나 나름데로 학원 서예의 필체로서 평가 받고 있다.

 

이 분들 중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중의 휘호가 여러점 있으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의 휘호가 얼마 되지 않는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서법에 따르지 않고 나름대로 독창적인 필체를 구사했다.

 

김 전 대통령이 즐겨 쓴 "大道無門(대도무문)"은 김대통령의 필체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문장 전체는 여백을 거의 두지 않고 굵은 체로 종이

 

전체를 메우고 있는 것에서 "통 큰" 사람임을 드러낸다고 한다.

 

글씨의 기교가 거의 없고 정확한 정사각형 형태로 쓰고 있는 것은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고 올곧은 사람임을 드러낸다는 분석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서예 실력이 훌륭한 편이다.

 

김 전 대통령도 서법을 잘 지켜 썼고 부드러움이 힘에 앞서 기교가 천진함을

 

누르는 필체라고 한다. 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구별된다는 점이라고 한다.

 

"民主 求國의 길(민주 구국의 길)"이라는 김 전 대통령의 필체를 보면

 

육질이 풍부하고 세파에 잘 적응하려는 생각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필체가 정사각형의 형태와 상당히 유연한 것으로 보아

 

사회성, 대중성이 있고 지략이 뛰어난 인물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자를 잘 몰라서 인지 한자 휘호를 찾아 보기 어려워

 

거의 남아 있지 않고 한글 글씨만 남아 있다.

 

 

 

역대 대통령의 휘호를 수집하면서 다만 아쉬운 것은 좀더 많은 휘호를

 

수집하지 못한 것과 휘호의 설명을 조사하고 검색하였으나

 

찾아 내지 못한 것이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통일부 산하 "통일교육원"에서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통일 의지와 철학이 담긴 휘호를 2012년3월7일 부터 전시 하고 있다.
 
그런데 제4대 윤보선 대통령과 제10대 최규하 대통령의 휘호 액자가 없는 것이
 
이상하다. 재임 기간이 짧아서 빠진 것인지 알수가 없어 궁금하다.
 
 
이승만(李承晩) 대통령
 
(대한민국 초대~3대. 1948년8월15일~1960년4월26일) 
 
 
이승만 대통령의 싸인 
 
1948년8월15일 옛 중앙청 광장에서 대한민국 수립을 선포하는 이승만 박사와
 
초대 대통령으로서 애국 애족을 맹세하며 쓴 "민족애재 종신도보" 휘호이다.
 
("우리 민족을 떠 받들고 죽을 때 까지 보답 하고자 한다" 라는 뜻)  
 
    
 

 

6.25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백선엽 장군에게 "위엄을 안팎에 떨치다" 라고 써 준 휘호 .
 
 
          
"무적해병"-1951년 6월 강원도 양구의 펀치볼 도솔산 전투(1951년6월4일~6월19일)에서
 
15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한 우리 해병대 제1연대를 방문하셨을 때 내리신 휘호. 
 
 
 "부구병강 영세자유"-1957년 새해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사력을 증강해서 영구히 자유를 누리자.
 
 

 

 

"민유방본 본고방녕"-국민으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 

 

"방구명신"-나라는 오래이나 천명은 새롭다.

 

"건민보국"-몸이 튼튼한 국민이 되여 나라 일을 도웁시다.

 

"의치병세"-병든 세상을 잘 진찰하여 다스리라.

 

 

"병천하지도"-나라를 다스리는 길

 

 

  

 이승만 전 대통령의 "勤勞(근로)" 휘호가 경매시장에서 2,300만원에 경매되었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에 있는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의 현판 휘호.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2호인 청간정은 한국전쟁시에 전화를 입고 훼손 된것을
 
1953년5월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보수공사를 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휘호를 받아 현판을 만들어 게시하고 있으며
 
이 정자에는 제10대 최규하 대통령의 휘호 현판이 게시 되여 있는 등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의 휘호 현판이 있어 국내에서는 유일 무이하다. 
 
 
 
한국전쟁시 중공군 2차공세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국군 6사단이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화천발전소를 탈환하기 위해 치열한 공격을 가하여 중공군 3개사단 약 30,000명을
 
북한강 화천댐 발전용 호수인 "대붕호"에 수장 시키는 대승을 거뒀으며
 
이 전투의 승리로 아군은 북진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전투 승전보를 보고 받고 직접 이 "대붕호"를 방문하여 국군을 치하하고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는 뜻으로 "파로호 (破虜湖)"라고 호수 이름을 개명하게 된 것이다.
 
해발 826m 의 미시령은 강원도 설악산 북부  인제~속초를 연결하는 도로로서
 
6.25 한국전쟁시에 군사도로로 개설하여 1959년 개통하였으며
 
이승만 대통령의 휘호를 받아 비석을 세웠다. 
 
지금은 미시령터널이 개통되여 이고개를 넘나는 차량들이 많지는 않다.
 
 
한국전쟁시 1950년 9월15일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무렵
 
 국군장병에게 보낸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메세지 일부이다. 
 
1953년10월10일 우리 기술로 만들었던 최초의 국산 경비행기에 "부활"이라는 휘호를
 
쓰 준 것을 2009년4월 부터 대량 복원된 비행기에 이름이 부쳐졌다. 
 
이승만 대통령은 현지 시찰 때 휘호를 많이 써 주셨다.
 
 
윤보선(尹潽善)  대통령
 
(제4대.  1960년8월12일~1962년3월23일)
 
 
윤보선 대통령의 싸인 
 
윤보선 대통령의 "낙산운표"는 2004년12월 휘호 경매 시장에서 400만원에 경매 되었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북한 땅이였던 백령도를 우리나라 땅으로 만들기 위해 황해도 지방에서
 
피난 온 장년들 8,000여명이 반공유격대 8240부대(동키-Donkey 부대)를 창설하여
 
이 섬을 사수하고자 용감무쌍하게 맹열히 싸운 결과 이 백령도가 대한민국의 영토가
 
되었다. 이 전투에서 516명의 아까운 젊은 반공투사들이 산화하였다.
 
1961년8월15일에 윤보선 대통령의 휘호를 받아 이 전적비를 세웠다. 
 
충남 아산시 응동면 동천리의 윤보선 대통령 선대 묘역 입구의 비각에
 
윤보선 대통령이 쓴 2편의 휘호 현판이 걸려 있다.
 
1960년12월13일 경남지방 시찰시 방명록에 친필 휘호를 남겼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제5대~9대. 1963년12월17일~1979년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싸인 
 
 
 1964년 초가을에 쓴 "殉國忠魂(충국충혼)"은 나라에 대한 충성과 절의를 다한 순국열사를
 
기리는 애국심을 호소한 작품으로 2010년 2월 경매시장에서 2,500만원에 경매되었다.
 
 
 1970년 신년 휘호로 쓴 "개척과 전진"은 필체가 힘이 있으면서도 강직 함이 느껴진다.
 
1970년 경제분야에서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남해고속도로를 기공 하고 인천 화력발전소를 
 
준공 하는 등 짧은 기간에 많은 경제 성과를 이루어서 박력 있는 필체로 평가하고 있다.
 
2004년 12월 경매시장에서 6,300만원에 낙찰돼 역대 대통령 휘호 중에서 최고가를 기록. 
 
 
 
   
 
 
              
 
 
 
     
1965년에 쓴 휘호  
   
 
                                                                     
  
1957년 화천 주둔 7사단장 시절에 쓴 휘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민총화 총화전진" 휘호가 2003년 2월 서울옥션 68회
 
경매시장에서 6,200만원에 경매되었다.
 
 
 
 
 
 6.25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서울의 광화문이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복원 되면서
 
광화문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 친필 현판이 내 걸어 있었다.
 
2005년에 콘크리트로 건축된 광화문을 약간 위치를 변경하여 목조로 다시 복원하면서
 
한문 현판으로 걸면서 이 현판이 없어지게 되었다. 말썽이 많다.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도강리 해발 154m 고지에 새워져 있는 애기봉전망대는 북한 개성의
 
판문군 조강리 까지 18km 거리에 있는 가장 가까운 전망대이다.
 
1636년 조선 인조 14년의 병자호란시에 평양감사가 애첩 "애기"를 대리고 한양으로 피난
 
오다가 청나라 군대에 잡혀 가고 애첩 애기는 이곳에서 평양감사를 기다리다가 병사하였
 
다는 애절한 옛 예기를 박정희 대통령이 1966년 10월에  이곳을 순시 할때 들어시고
 
이 이야기가 우리 1천만 이산가족의 한과 같다고 하여 "애기봉" 이라고 이름 지어시고
 
친필 휘호를 내려 주셨다.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면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당시의 4대강유역 종합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한강의 수자원을 확보하고 농업용수, 생활용수, 공업용수, 홍수조절 등의

 

다목적으로 개발하기 위하여 춘천시 동면과 신북면의 소양강을 가로 질러 건설된 댐이다.

 

1967년에 한국수자원공사가 현대건설의 시공으로 착공하여 1973년 10월에 완공하였다.

 

댐 높이 123m, 길이 530m 인 한국 최초의 중앙 차수벽식 사력토(砂礫土)댐으로 중앙에

 

진흙으로 심지를 박고 그 양쪽에 모래와 자갈 만 쌓아서 올렸다.

 

이 댐은 세계 4위의 규모로서 동양에서는 최대로 큰 댐이다.

 

시설 용량 20만㎾의 발전기로 년간 3억5,300㎾h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고 수도권을 포함한

 

한강 하류의 홍수 조절 능력이 5억ton으로 계획 홍수량의 52%를 조절 할 수 있으며

 

농업, 공업 및 생활용수 12억1,300만ton을 공급 할 수 있다.

 

이 댐을 준공 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를 받아 기념탑을 새웠다.

 

 
 
춘천시 동면과 신북읍 사이에 "소양강다목적댐"을 건설하면서 생긴 인공 호수이다.
 
이 소양호는 만수위 때 수면 면적이 70㎢, 총저수량이 29억톤, 유역 면적이 2,703㎢이다.
 
 
  
             

의암 유인석 선생은 1842년 1월 27일 춘천시 남면 가정리에서 태어나서

 

조선 말기 대유학자로 유생들로 부터 존경 받는 위정척사론자이며 13도 의군 총재로

 

한말의 대표적인 의병대장으로 활동하다 1915년 1월 29일 74세의 나이에 사망한

 

춘천이 낳은 역사적인 인물이다.

 

1976년 12월 춘천시 근화동 (현 경찰 서부지구대)자리에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를 받아

 

동상을 제막하였으나 도로 확장으로 춘천시 삼천동 시립도서관 광장에 임시 이전하였다가

 

2003년에 현 위치인 의암공원으로 이전 설치하였다.

 

유인석 선생의 동상은 춘천교육대학교 이길종 교수(조각가)의 작품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귀중하고 값진 많은 휘호를 남겼지만

 

모든 휘호를 찾을 수가 없어 안타깝다.

 

 
최규하(崔圭夏) 대통령
 
(제10대. 1979년12월7일~1980년8월16일)
 
 
 최규하 대통령의 싸인
 

유근유공-“오직 부지런한 것만이 성공을 이룰 수 있다.”

 

대통령 사임 후 1993년10월에 모교인 원주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보낸 휘호  

 

 

1980년 초여름 대통령 재임시에 영동지방 순시시 고성군 토성면에 있는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에 들린 다음 한시의 휘호를 주셨다.

 

이 정자의 이름 "청간정“의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의 휘호이다. 

 

 
 
 

교육입국-“교육을 통하여 나라를 튼튼하게 세운다”

 

대통령직 사임 후 1986년3월에 모교인 원주초등학교에 두 번째 보내신 휘호이며

 

이보다 먼저 1979년 국무총리 재직시에도 원주초등학교 개교 70주년 기념으로 같은 휘호를

 

보내 주어서 (이 휘호는 소실되었음) 이 휘호로 학교에서는 충효탑을 만들어 세웠다.

 

 
 
 
 

소년이노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

 

“소년은 늙기 쉽고 배움은 이루기 어려우니 일초의 시간인들 가볍게 여기지 말어라.”

 

(주희의 우성(偶成)시의 한 구절로 학문을 권하는 내용)

 

이 휘호도 개교 70주년을 기념해서 “교육입국” 휘호와 같이 보내 주신 것이다.

 

           

원주초등학교는 개교 70주년을 맞아서 최규하 대통령이 보내 주신

 

“소년이노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 휘호로 두개의 기념 지주탑  세웠다.

 

 
 

1986년2월에 모교 원주초등학교 학생도서 구입비로 50만원의 성금을 내면서 보낸 친필서신

 

 

“교육입국”과 “소년이노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 친필 휘호 2점을 보내면서

동봉한 서신과 봉투.

 
 

1995년12월에 원주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 찬조금으로 500만원을 내면서

 

보낸 친필 서신.

 

 
전두환(全斗煥) 대통령
 
(제11대~12대. 1980년9월1일~1988년2월24일)
 
 
전두환 대통령의 싸인  
 
 
 
                
 
 
 
 
 

충천남도 논산시 강경읍과 부여군 세도면을 연결하는 교량으로

 

황산벌을 지나 가는 의미를 담아 황산대교라 하였다.

 

길이 1,050m. 폭 12m 인 교량으로 1984년3월에 착공하여 1987년6월에 준공하면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휘호를 받아 기년탑을 세웠다.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제13대. 1988년2월25일~1993년2월24일)
 
 
 노태우 대통령의 싸인
 

노태우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인 1992년2월2일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최전방

 

오두산통일전망대를 방문하고 방명록에 남긴 글.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건설한 “울진원자력발전소”는

 

고리, 월성, 영광에 이어 우리나라 네 번째로 건설되었으며

 

이 원자력발전소에는

 

1981년1월에 착공하여 1988년에 준공한 1호기와 1989년에 준공한 2호기.

 

1999년에 준공한 3, 4호기와 2005년에 준공한 5, 6호기가 가동되고 있다.

 

우리나라 총 발전량 4,031억kwh 중 원자력발전량이 1,488억kwh 이며 이 중 13%를

 

울진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 공급하고 있다.

 

1989년 1, 2호기가 준공되었을 때 노태우 대통령의 휘호를 받아 기념비석을 세웠다.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제14대. 1993년2월25일~1988년2월24일)
 
 
 김영삼 대통령의 싸인
 
 
 

1992년12월18일 자신이 대통령으로 선출될 제14대대통령 선거일에 투표를 마치고

 

통일전망대를 방문해 방명록이 남긴 휘호.

 

 

  
                 
                           

김영삼 대통령은 “대도무문” 휘호를 여러번 썼는데

 

그중 하나가 2004년6월의 경매시장에서 560만원에 경매되었다.  

 

 
 

“호연지기”는 1999년에 280만원에 경매 되었다.

 

       
 
 
 
 
 
 
 
  *.6.8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