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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초기 미-소 전투기의 모양과 성능이 판박이였던 이유


  • 냉전 초기 미-소 전투기의 모양과 성능이 판박이였던 이유

  • 남도현
    DHT AGENCY 대표
    E-mail : knclogix@yahoo.co.kr
    젊은 시절부타 역사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세계사, 전쟁사 및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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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0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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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베껴서라도 해야 한다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가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어떤 생물이나 물건이라도 환경이 바뀌면 이에 맞춰서 변화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격언인데, 탱자가 귤보다 맛이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본고장을 떠나면 아무래도 품질이 나빠진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이다. 사실 김밥조차도 원조를 내세우며 마케팅을 펼칠 정도이니 농수산물이나 상품에 있어서 원산지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 속담은 반드시 그런 것이라 단정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귤이 강을 건너면 탱자가 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 정반대로 한라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처럼 오리지널보다 나중에 나온 개량형이 좀 더 업그레이드 될 가능성이 오히려 더 많다. 현재 여성들의 필수 화장품이 된 비비크림은 한국에 와서 한라봉이 된 대표적인 케이스다.

무기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대부분 시간이 갈수록 오리지널보다 훨씬 성능이 우수한 후속 작이 나온다. 그 이유는 상대방이 보유하고 있는 무기보다 품질이 좋아야 전쟁에서 이기기 쉽기 때문이다. 만일 상대보다 기술이 부족하다면 자존심을 접고 카피를 해서라도 우선 탱자라도 만들어 사용하지만 그렇게 노하우가 쌓이면 상대를 능가하는 한라봉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독일 의료계에서 피부 보호제로 사용되던 BB크림은 한국에 건너와 대중 화장품이 되었다. 귤이 건너와 한라봉이 되어버린 사례라 할 수 있다.
독일 의료계에서 피부 보호제로 사용되던 BB크림은 한국에 건너와 대중 화장품이 되었다. 귤이 건너와 한라봉이 되어버린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에 부합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제2차 대전 당시 독일이 만든 5호 전차 판터다. 1941년 독소전쟁 시작 당시에 독일은 소련의 기술력을 무시하였다. 하지만 전선에 홀연히 등장한 소련의 T-34 전차는 그때까지 독일이 보유한 모든 전차들을 가볍게 능가하는 성능을 발휘하였다. 경악한 독일은 부랴부랴 이에 맞설 수 있는 신형 전차 개발에 착수하였는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T-34를 최대한 벤치마킹하였고 그렇게 판터 전차를 만들 수 있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자는 전리품 획득에 열을 올리는데 무기 분야에서 상대방이 보유한 뛰어난 기술은 당연한 획득 대상이다. 제2차 대전 말기부터 유능한 독일 기술자들을 미국으로 유치하기 위해 펼친 이른바 페이퍼클립 작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1945년, 동서 양측에서 연합군이 독일 영토내로 진입을 시도하면서 나치 독일의 멸망이 가시화 되자 뛰어난 무기를 개발하였던 독일의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살길을 찾아서 갈 길을 가게 되었다.
독일 5호 전차 판터는 경사장갑을 장착하여 방어력을 증대시켰는데, 이는 소련 T-34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독일 5호 전차 판터는 경사장갑을 장착하여 방어력을 증대시켰는데, 이는 소련 T-34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그렇게 옮겨간 사람들

이들 중 대부분은 자의든, 타의든 어쩔 수 없이 미국이나 소련으로 가게 된 경우다. 적국의 엔지니어지만 차후 패권을 위해 이들을 적극 스카우트하는 데 미국과 소련은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미국 내에서는 나치 전범들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그렇게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 많은 학자나 기술자들이 미국 과학계에 많은 역할을 담당하였던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이들 중 미국이나 소련의 우선 목표가 되었던 엔지니어들은 독일이 독보적으로 앞서있던 로켓과 제트기 관련 종사자들이었다. 이후 각자의 길을 찾아 미국이나 소련으로 넘어간 이들은 전후에 냉전이 개시되자 양측에서 만든 최신무기의 개발자가 되었다. 이들은 백지 상태에서 연구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고 대부분 독일에서 진행하다가 중단되었던 프로젝트를 재개하였기에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페이퍼클립 작전에 의해 미국으로 건너 온 104명의 독일 로켓 과학자들. 이들은 미국 과학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페이퍼클립 작전에 의해 미국으로 건너 온 104명의 독일 로켓 과학자들. 이들은 미국 과학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런 이유 때문에 냉전 초기에 미국이나 소련이 등장시킨 로켓이나 제트전투기들은 유사하게 닮아있다. 개발에 참여한 미국과 소련의 기술진들은 독창적으로 개발하였다고 강변하였지만 기본적인 구조뿐만 아니라 외양까지도 흡사하였다. 특히 이들 중에서 백미라 할 수 있는 F-86과 MiG-15는 형제지간이라고 불러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 하지 못할 만큼 외양이나 성능이 막상막하였다.

F-86과 MiG-15는 패전으로 인하여 개발이 중단 되었던 메셔슈미트의 P.1101프로젝트와 포커울프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였던 Ta-183의 아류작들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후퇴익 주익, 동체에 삽입시킨 인테이크, 그리고 노즐의 형태는 제1세대 제트기들의 기본 모양이 되었다. 따라서 P.1101은 F-86에 Ta-183은 MiG-15의 등장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다.

이처럼 제2차 대전 후에 곧바로 다가온 온 냉전으로 말미암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무기가 세계 시장을 순식간 양분하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독일의 귤은 전쟁 당시의 적들에 의해 다양한 한라봉으로 변화하였다. 그런데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많은 독일의 기술자들이 정치적 이유 때문에 제3국행을 택하면서 미국과 소련 외에 의외의 장소에서 귤이 한라봉이 되었던 경우도 있었다.
종전으로 인해 개발이 중단된 독일 포케울프의 Ta-183. MiG-15, F-86을 비롯한 많은 제트전투기에 영향을 주었다.
종전으로 인해 개발이 중단된 독일 포케울프의 Ta-183. MiG-15, F-86을 비롯한 많은 제트전투기에 영향을 주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