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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문물

시인 김지하가 작가 박경리의 사위가 된 사연

입력 : 2016.01.04 18:41

[문갑식 기자의 기인이사(奇人異士)(37):박경리와 동양의 나폴리 통영(中)]
 

上편에서 계속

김지하씨는 이후 신명난듯 박경리 선생과의 만남을 설명했는데 이것도 당시 인터뷰 기사를 원문대로 인용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글이 교차하니 주의해서 읽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문학청년 시절 김지하는 서울 정릉 박경리 집에 가끔 갔다고 한다. 한번은 김동리(金東里)의 집에 갔다 허탕친 후 박경리 집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유현종(劉賢鍾), 김국태(金國泰)와 함께 그는 맥주를 얻어먹었다. 1972년 10월 유신(維新) 선포 때도 그곳에 갔다. “기관원들이 잡으러 올 게 분명하니 며칠만 숨겨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박경리는 딱 부러지게 거절했다. 딸 김영주는 어머니에게 “매정하다”고 했다. 터덜터덜 뒤돌아 나가는 그에게 김영주가 달려왔다. “어머니가 혼자 살다 보니 성격이 그렇다. 이해해 달라”며 대신 사과한 것이다. 소설(小說)의 산맥(山脈)과 시의 거봉(巨峯)이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친구 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설악산으로 숨기 위해 새벽 골목길을 나서다 친구 집 앞 담벼락에 백묵으로 뭔가를 썼다. ‘민주주의 만세.’ 그 문구가 훗날 절편(絶篇)으로 탄생했다. ‘타는 목마름으로’다.
‘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오직 한 가닥 있어/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박경리론’이란 평론이 꽤 어렵더군요.
“제 전공이 미학(美學)이잖아요. 박 선생 문학을 정리하려고 벼르다 이번에 그 글을 썼습니다.”

―장모의 문학을 평하는 게 쉽지는 않지요.
“장모가 돌아가신 후 기념행사가 많았어요. 매번 그런 자리 나가기도 그렇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궁리하다 그분의 기념비(紀念碑)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아시아권에서 상(賞)을 만들 계획도 있고요.”

박경리선생과 외동딸 김영주 관장의 모습이다.

―‘시장과 전장’ ‘김약국의 딸들’ ‘토지’ 소설 세 편을 분석했습니다. '흰그늘의 미학'으로 시작되는데 무슨 뜻입니까.
“게로니모스 하이로미에라는 15세기 이탈리아 시인이 ‘흰 눈부심을 거느린 검은 악마들의 시위'라는 시를 썼습니다. 윤리적 타락이 극에 달했을 땝니다. 종교 지도자의 사생아 30명이 여자를 끼고 거리를 활보할 정도였어요. 정신 질서가 붕괴될 때 나타난 게 옛 희랍 인문학입니다.”

―희랍의 인문학이 흰색, 윤리적 타락은 검은색이라는 건가요.
“검은색을 다 부정할 순 없지요. 죽여 없앨 수도 없고. 어스름 저녁 물빛을 보면 반짝하고 흰빛이 순간적으로 비쳐요. 융합되는 것, 그게 바로 흰그늘입니다.”

―일전에 칼럼에서는 ‘욕이 많아지는 게 르네상스가 온다는 증거’라고도 했습니다.
“오늘 ‘측천무후(아내)’가 절대 욕하지 말라고 했는데, 피렌체나 베네치아의 귀족, 귀부인들이 당시 쓴 욕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심했어요. 우리도 남자 성기(性器)를 가리키는 말이 PC방 상호(商號)가 될 정도잖아요. 그게 네오(Neo) 르네상스가 올 징조지요.”

―박경리 선생의 ‘시장과 전장’에서 시인은 '경제적 삶의 흙탕물 속에서 끝내 삶의 신조를 버리지 않는 젊은 여인의 하얀 이미지'를 흰그늘이라 했습니다.
“그건 서세동점기(西勢東漸期), 근대문명의 변화와 압력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 서사(敍事)의 압권이지요. 여성이 미래를 어떻게 개척해나갈 것인가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아시안 네오(Neo) 르네상스를 위한 미학’이 바로 흰그늘이란 말에 숨어 있습니다. 박 선생은 대단한 분이었어요.”

―수년 전부터 아시안 네오 르네상스가 온다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올까요.
“미국 국가정보위원회나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미 세계가 다극(多極)체제가 됐다고 선언했습니다. 중국 해남성(海南省)에서 열린 포럼에서도 자본의 중심이 동아시아에 와있다고 했습니다. ‘예수 가는 데 마음 간다’는 말 알죠?”

 

박경리선생이 직접 쓴 시가 남아있다.

―무슨 뜻입니까.
“마음이 가치잖아요. 자본 중심이 옮겨왔으면 가치 중심도 동아시아로 오게 됩니다. 박경리 선생의 소설을 읽으면서 새삼 놀라요. 예지자(豫知者)의 면모를 느꼈습니다.”

―그런 소설을 왜 평론가 백낙청은 멜로 드라마적 조작이라고 평했을까요.
“크게 잘못한 거지요. 하버드대에서 엘리어트나 좇던 사람이 6·25를 어떻게 제대로 알겠어요. 깊이 새긴 뒤에 평필(評筆)을 들어야지.”

―박경리 선생이 생전(生前)에 시인의 분석에 동의하던가요.
“사위와 장모가 작품을 놓고 논할 수는 없지요.”

박경리론은 ‘흰그늘’에서 ‘검은 암소(牝牛·빈우)’ ‘검은 구멍(玄牛·현우)’과 ‘화엄개벽(華嚴開闢)’으로 확장된다. 검은 암소는 주역(周易)에 등장한다. 모성(母性), 생산력, 포용력, 부드러움을 총괄하는 개념이다. 여성의 힘이 되살아날 때 도래할 새 문명사가 불교(佛敎)와 동학(東學) 용어를 합친 화엄개벽이다. 시인은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과 ‘토지’에 이 암시가 숨어 있다”며 “표는 안 냈지만 장모는 주역의 대가”라고 했다.

―하필 여자가 ‘검은 암소’나 ‘검은 구멍’입니까.
“복희씨(伏羲氏)가 동굴 속에서 여자, 아이들과 7년을 보냅니다. 거기서 인류 최초의 문자인 ‘결승’을 만들어 가르치지요. 검은 굴 속에서 깨달음의 흰빛이 나오는 거지요. 영화 ‘워낭소리’ 봤어요?”

―못 봤습니다.
“그 영화 세 번 봤는데 사람들이 숨죽여 우는 대목이 있어요. 농부가 아끼는 소가 늙어 병이 드는데 시커먼 우리 속에서 웁니다. 그 눈물이 하얘요. 시커먼 구멍 속에서의 흰빛, 그게 숨은 모성입니다.”

박경리선생의 토지는 만화로도 출간됐다.

―여성이 세상의 주도권을 잡는 시대가 온다는 건데.
“이미 왔어요. TV 드라마나 영화에 유독 ‘어머니’란 단어가 많이 등장하잖아요. 영화 ‘마더(Mother)’, ‘엄마를 부탁해’, 이미 어머니가 아이콘(icon)이 됐습니다. 아버지의 시대는 간 거지요.”

―시인께서 이런 주장을 하기 전에 페미니스트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다르죠. 3000년 전 세상은 모계(母系)사회였어요. 그 위치가 주(周) 문왕 이후 상실됩니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자를 철천지원수, 부르주아 대(對)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처럼 봅니다. 헤겔, 칸트부터 다윈까지 가세한 남성 가부장제 권위라는 반동만 자초했지요.”

―검은 암소, 검은 구멍 다음에 황상(黃裳)이란 말이 나옵니다. 중국 한대(漢代)의 노장(老莊) 학자 왕필(王弼)이 한 말인데요.
“황상은 '여성 왕통(王統)'을 뜻합니다. 여성 임금을 들어올려야 혼돈이 극복되고 개벽기의 전환적 대안이 된다는 거지요. 조건은 있어요. 여성 왕통을 보완해주는 남성 지혜자가 꼭 필요합니다. 지금의 이원집정제(二元執政制)나 재상총권(宰相總權)이 배합돼야 합니다. 이건 과학적으로도 증명돼요.”

―과학적으로 증명된다고요?
“태양(陽) 위주의 사고체계가 변하고 있어요. 요즘 기후현상을 온난화로만 설명하지만 실제 태양열은 식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태양열이 아닌 태양빛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됐습니다. 달(陰)은 새롭게 조명됩니다. 미국 NASA의 이탈리아 과학자 에밀리아노 포플러가 달에 물이 존재할 뿐 아니라 아예 물의 벨트가 있다고 했어요. 우주의 변동이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게 경제현상입니다.”

下편에 계속

Photo by 이서현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