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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인물화




◈ 이중섭의 인물화

▼ 자화상

종이에 연필, 48.5×31cm, 1955년 
1955년 초 서울에 이어 5월 대구에서도 개인전을 열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해 보려던 의도는 산산이 부서진다. 
밀항을 해서라도 가족이 있는 일본으로 가겠다는 계획도 실패로 돌아가자 
자포자기에 빠져 그토록 열심히던 그림도 그리지 않고 밥도 먹지 않겠다고 하자, 
정신 이상이라는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이에 전람회를 열기 위해 대구에 머물 당시 친구에게 
자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그린 그림이다. 
사실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 이중섭만큼 많은 화가도 드물 정도다. 
가족을 그린 그림에는 꼭 자신이 등장한다. 
하지만 자기만을 그린 것은 한 점도 없다고 여겨졌는데, 
이 작품이 발굴됨으로써 또 다른 면모를 알 수 있다. 
▼ 활을 쏘는 사람들

   종이에 펜과 수채로 그림,9×14cm 1941년 말 
▼ 세사람

  18.2×28cm, 종이에 연필, 1942∼5년
8. 15직후에 열린 해방기념 미술전에 내기 위해서 원산에서 들고 왔으나 
늦어서 미수에 그쳤다는 바로 그 그림들이다. 
1943년 이래 그 때까지는 거의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1942년에 그렸던 것을 다시 손 봐 출품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소년>은 화면의 거의 다를 차지하는 헐벗은 둔덕 가운데 난 길에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다. 
상단에는 가지만 벌린 나무가 있고 
아래 구석에는 베어져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가 있다. 
무대는 어느 산등성인 듯 그림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와 아이,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의 그림자가 스산함을 더해주고 있다. 
그가 나타내고자 한 것은 스산한 정감이다. 
이러한 느낌을 하늘에는 가로줄을, 헐벗은 땅 부분에는 
무수한 세로줄을 그었다가는 지우거나, 
바탕재인 종이가 패일 듯 힘주어 그음으로써 더욱 강화했다. 
<세사람>에서도 두드러진 것은 스산한 감정이다. 
현실을 외면하고 숨으려 드는 심리를 묘사한 것으로 보여 
단말마와 같은 일제의 등살에 못살게 된 식민지 민증의 내면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 구상네 가족

   종이에 연필과 유채, 32×49.5cm, 1955년
자전거를 타는 아이를 어른 남자가 잘 탄다고 칭찬하는 듯한 광경을 중심으로 
어른 여자와 한 아이가 이를 쳐다보고 있고 
화면 앞에 있는 다른 한 남자는 이를 부러워하는 듯 하다. 
이 설정은 대구서 개인전을 열고자 작품을 준비하던 이중섭이 
친구인 구상의 호의로 그 집에 머물면서 구상이 그의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사주어서 
모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부러워했다는 증언대로다. 
자신은 가족과 헤어져 있었으며, 자신의 아들에게 자전거를 구해서 가겠다는 약속을 
편지에서 여러 번 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부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구상과 이중섭이 서로 손을 조응하고 있는 것이 특이한데, 
서로의 우정에 대한 표시라 여겨진다. 이중섭이 입고 있는 옷은 
이즈음 그려진 연필로 그린 자화상에 나오는 바로 그 옷으로 보인다. 
▼ 가족

   종이에 유채, 41.6×28.9cm
▼ 여인

  종이에 연필, 41.3×25.8cm, 1942년 
우리가 볼 수 있는 이중섭의 초기그림 가운데 하나이다. 
소를 그린 연필화로 전 해에 그려 지유텐에 출품한 것이 엽서그림을 제외하면 유일하다. 
굵직한 연필선이 특징인데 훗날 특장이 되는 굵고 거친선을 감안한다면 
이중섭의 개성이 벌써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랫도리에 걸친 옷은 고갱이 자주 그린 태평양 연안지역에서 입는 사롱이라는 치마와 흡사한데, 
이것으로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 
대향이라는 서명은 이 그림에서 처음 쓰였다. 훗날 아내가 된 여성을 그린 것으로 보여진다. 
▼ 소년

   26.4×18.5cm, 종이에 연필, 1942∼5년
▼ 가족도

▼ 가족

▼ 아버지와 두아들

▼ 춤추는 가족

▼ 이중섭의 미공개 작품들
 
화가 이중섭(1916-1956)의 미공개 작품들. 사진 위부터 `가지', `사슴', `아이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