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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Leasure I

'한국의 100대 명산' 독자 참여 콘테스트 선정작

[월간山 선정 한국의 100大 명산] '한국의 100대 명산' 독자 참여 콘테스트 선정작

    입력 : 2018.12.17 09:30 | 수정 : 2018.12.18 19:38 [590호] 2018.12

    창간 49주년 기념으로 월간<山>이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을 오른 독자 여러분의 경험과 감동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한 독자 참여 콘테스트에 응모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11월 15일까지 보내 주신 산행기와 사진 가운데 본지의 ‘한국의 100대 명산’ 선정 기준인 ‘역사적 가치로서의 산’, ‘경관적 가치로서의 산’, ‘지리적 가치로서의 산’,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 ‘지정 자연공원으로서의 산’ 5개 부문에서 선정된 작품을 12월호 지면에 싣습니다.

    [역사적 가치로서의 산 - 산신제]

    설악, 서북능선을 가다

    안상길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은 산객을 사로잡아 전율을 일으키게 하는 감동의 권력자다.

    하산한 지 1주일 지난 지금도 놀라움과 두려움(경외)이 가시지 않아 몸이 떨린다.

    여러 차례 만나고 다시 봐도 그들은 여전히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감동의 폭군이다.

    한계령에 섰다. 남설악을 잇는 고갯길이다. 인제와 양양을 가르는 분수령이다. 흘림골이 한눈에 들어온다. 휴게소 전망대 전면에서 우측으로 경이로운 장관이 숨 돌릴 사이 없이 다가온다. 예술혼이 흐르는 흘림이다. 구름이 흐른다. 기묘한 바위 군단이 눈앞을 지난다. 흘린 듯 흐릿하다. 숨이 막힌다. 경외의 대상을 바로 눈앞에 두고 몸이 떨린다. 청정 무욕의 세계 속에서 홀린 듯 살라는 생동의 현장이다.

    귓전에 가요가 흐른다.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버리지 못한 허접한 삶의 욕망 버리라 하네. 잊으라 하네. 우지마라 하네. 내려놓으라 하네. 역경과 고난을 살아내던 시절 위로와 소망의 상징어로 각인된 한계령을, 그리운 이름의 한계령을 그렇게 떠났다. 

    지천이 황태다. 휴게소의 황태해장국 점심은 그러나 밋밋했다. 이전 맛이 아니다. 100여 계단을 올라 배낭무게를 재는 계량기 앞에 섰다. 9kg. 어린 아이를 업은 중량감. 무겁다. 해를 등지고 오르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파란 가을 하늘의 추분이지만 햇볕은 뜨겁다. 땀을 식히며 간식으로 준비한 찹쌀떡과 생수를 덜어냈다. 배낭의 하중이 주는 부담이 한결 가벼워졌다. 한계령삼거리까지 2.3km. 남설악이 온통 단풍으로 불타고 있었다.

    “수박 한 통을 안고 오르자니 얼마나 힘드십니까?”

    “그러게 말일세. 이 노무 수박 깨지지도 않아 더 힘드네.”

    서북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귀때기청봉과 동북 방향의 대청을 잇는 중간지점이 한계령삼거리다. 여기서는 귀때기청봉의 너덜바위 지역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고도를 높여 가는 능선 산길 5.4km. 걷기에 기분 좋은 길이다. 능선의 숲은 뜨거운 한낮의 햇볕을 막아 주고 공기도 서늘하다. 잠시 앉아 쉴 때 춥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러나 지루했다. 한계령삼거리에서 끝청으로 나가는 능선 길은 숲에 가려 하늘이 빠끔하다.

    대청봉 가는 길

    1,300~1,400m 능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작나무와 참나무가 길게 하늘을 가린 숲길을 지났다. 오를수록 식물군의 모습이 달라졌다. 고사목과 침엽수가 자주 눈에 띄었다. 야생화(투구꽃 같다고 했다)를 접사하는 대장의 분주함은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100m 오를 때마다 기온이 0.5℃씩 떨어진다고 했나? 그래서인지 땀은 식고 숨도 덜 차다. 아직은 단풍이 붉게 물들지 않았다. 속도산행이 더 익숙한 전문산악인 수준이지만 일행은 서두르지 않았다. 힘들어 하는 고강한(?) 체력의 멤버를 위해서다. 그런 배려의 산심이 길게 이어졌다.

    대청봉 4.2km와 한계령 4.1km, 중청대피소 3.6km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산객을 반긴다. 이정표가 서있는 이곳은 석고덩골 상단의 너덜지대란다. 남설악 거대한 바위가 쪼개지며 형성된 거친 느낌의 이색 지역이다. 바위가 사방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고 등산로는 돌이 눕지 않고 날을 세우듯 서있는 바위 길이다. 조심스럽고 불편하다. 지대의 능선 위에서 배낭을 벗고 잠시 땀을 식히며 휴식을 취했다. 한계령~대청봉 구간의 중간에 해당되는 위치다. 산행은 리듬을 타면 힘이 덜 든다. 신체적응 리듬을 살리는 페이스 조절이 중요하다. 잦은 휴식, 오랜 머무는 것은 베테랑 산악인이 취하는 쉼 방식이 아니다. 강철체력을 자랑하는 금택 님이 일행에 앞서 이내 가파른 오르막으로 나아갔다.

    “산에서는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는 곳이 막상 걸어보면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하고, 아주 멀리 보이던 봉우리도 20~30분 만에 지나치기도 합니다.”

    끝청에 이르는 길도 그랬다. 오를 때마다 힘들고 오를수록 더 힘들지만 그래도 묵묵히 오르는 것은 오른 후에 만나는 기쁨 때문인지 모른다. 끝청봉의 조망도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서쪽으로 귀때기청봉과 북쪽의 용아장성 그리고 공룡능선이 멀리 한눈에 들어온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장관 앞에서 몸과 함께 마음이 열린다.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건 산을 오르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산을 자주 오르는 등산마니아가 아니라도 호사라는 말이 실감나는 장면이다.

    “끝청봉 정상부는 분비나무와 잣나무 등의 침엽수들이 자생하는 아고산식생대다.”

    산행도 힘든데 전 과정을 기록으로 담는 대장의 동선은 언제나 산행거리보다 길다. 사진작가는 산행사진과 야생화에 대한 그의 열정이 이뤄낸 결과다. 장비는 무겁고 작품욕은 앞선다. 한 컷을 위해 등산로 전후좌우를 이리 뛰고 저리 휘젓는다. 대가 없이 기록물의 피사체가 되는 행운을 누리면서도 일행은 한 번도 감사를 나타낸 적 없다. 미치지 않고 어찌 이를 수 있겠는가. 그에게서 불광불급不狂不及의 포스가 느껴진다. 처지고 늘어지는 슬로 템포는 그의 편이 아니다. 그는 지칠 줄 모른다. 산이 거기 있는 한 산을 오른다. 일행의 보배임은 산만이 안다. 마음이 시끄럽고 머리가 복잡할 때 산에 오르면 차분해지면서 생각의 가닥이 잡힌다. 숨이 턱에 차고 몸은 주저앉을 듯 무겁지만 오르는 일에만 매달린다. 잡념을 떨치고 단순에 이르는 집중을 산행에서 만나는 것이다.

    끝청을 지나자 멀리 중청봉 정상의 군사시설 보호구역이 눈에 들어왔다. 맑고 파란 하늘이 닿을 듯이 그 위로 내려앉는다. 지척인 것 같은 거리인데도 얼마나 더 걸었던가. 마음은 날아오르고 다리는 천근만근 무겁다.

    마침내 중청대피소다. 주위는 키 작은 관목이 카펫을 깐 듯 산을 덮고 있다. 시야가 탁 트였다. 남동쪽으로는 대청봉, 북서쪽으로는 소청봉, 남서쪽으로는 끝청봉과 이어지는 중간 지점 꽤 너른 개활지 같은 공간에 산장이 아담하게 자리 잡았다. 5시간의 산행 끝에 만난 반가운 쉼터다. 일행은 배낭을 벗어놓고 스틱만 들고 정상을 향했다.

    정상에 서다

    대청봉 정상까지는 600m. 손에 잡힐 듯 빤히 뵈는 그리 높지 않은 거리다. 일몰시간이 가까워 서두른 탓도 있지만, 생각보다 숨차고 힘들었다. ‘대청봉 1708m’ 드디어 정상 표지석 앞에 섰다. 가슴은 벅차고 몸은 가벼워졌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해방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정상엔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다. 인증샷을 남기려는 산객들로 붐볐다. 정상에 오른 기쁨을 만끽하며 우리 일행도 여러 형태의 포즈를 카메라와 휴대폰에 담았다.

    거센 바람과 심한 기온차를 이겨내는 키 작은 눈잣나무가 주위를 지키고 있다. 큰 산의 정상답게 대청은 바다와 영봉을 거느린 위용이 예사롭지 않다. 동쪽으로 동해 바다를 굽어보고, 북쪽으로는 백두대간 허리 부분에서 뻗어 나온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이 우뚝하다. 천불동 등 수많은 계곡과 준봉 등을 가까이 혹은 멀리 그 발아래 두고 있다. 서쪽으로 귀때기청봉과 함께 남쪽으로는 남설악의 오색지역과 점봉산 등이 눈에 들어온다. 동해의 수증기를 머금은 구름이 대간을 넘으며 찬 공기를 만나 안개로 변하면서 영봉을 휘감듯 상공에서 만들어내는 운해는 동양화에서만 보았던 선경을 방불케 한다.

    정상에서 중청을 바라보는 방향 우측으로 영봉 사이에 피어난 구름바다가 바람에 날려 사라졌다가 이내 새로운 형태의 운해로 변모하는 생생한 모습은 가히 신비롭고 몽환적이다. 두둥실 떠서 그 위를 건너는 기분으로 하산을 서둘렀다. 중청대피소에서 다시 배낭을 챙기고 소청으로 떠난 시각이 오후 6시45분. 방금 다녀온 대청을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아쉬운 마음으로 현장을 떠났다. 소청으로 가는 길은 내리막의 하산길인데도 장시간 산행으로 인한 피로 때문인지 몹시 힘들었다. 짧은 거리가 길게 느껴졌다.

    소청에 이르렀을 때 정상에서 만났던 해가 마침 정서 방향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서쪽 하늘 붉은 노을, 말 그대로 자하紫霞가 온통 하늘을 물들였다. 출발과 도약, 시작의 의미가 강한 해돋이와 달리 해넘이는 다른 정서로 산객을 사로잡는다. 낙조에는 우리를 차분하게 하는 황홀함의 매력이 깃들어 있다. 산행 중에 일몰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해가 떨어지자 이내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회고와 반성, 마무리와 준비의 의미를 떠올리며 소청대피소를 향해 산을 내려갔다.

    소청대피소 매점에서 햇반과 식수, 버너용 연료인 가스를 구입, 준비해 간 김치, 양념불고기, 밑반찬 등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산장의 밤은 기온이 떨어져 싸늘했다. 찬 공기 속에 밤하늘의 별은 유난히 빛났다. 오후 9시 소등 이전에 일행은 수면유도제를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전 6시를 조금 넘긴 이른 아침 싸늘한 공기를 가르며 봉정암으로 향했다. 이틀째 산행은 백담사까지 줄곧 내려가는 하산길이다.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형국의 산세에 자리 잡고 있는 봉정암’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적멸보궁으로 유명하다. 암자 경내를 지나 곧장 절에서 가장 높은 곳, 설악의 진수가 내려다보이는 조망대에 섰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지척의 거리에서 공룡과 용아는 산객을 숨 막히도록 압도하며 코앞으로 다가선다. 전율로 몸이 떨린다. 어떤 조각 작품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엄청난 규모에서 뿜어 나오는 장엄미가 계곡을 감싸고 흐른다. 공룡 등뼈 모양의 산줄기가 힘차게 남북으로 내닫고 그 허리 부근에서 용의 이빨을 한 바위들이 열병하듯 병풍처럼 좌우로 길게 펼쳐져 있다. 영봉을 휘감은 운해가 변화무쌍을 연출하며 신비감을 자아낸다.

    “험준한 봉우리가 줄지어 솟아 있는 공룡능선은 전국 국립공원 대표 경관 100경 가운데 경관이 가장 빼어난 ‘국립공원 제1경’으로 꼽힐 정도로 최고의 능선이다. 마등령에서 시작해 남쪽 신선암까지 이르는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설악산의 등뼈다.”

    구름이나 안개가 자주 발생해 그 경치를 제대로 볼 수 있을 때가 흔치 않다는데 일행은 이날 운해의 조화로움까지 목도했으니 여간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나이 70에 다시 마주한 공룡 용아의 경관을 언제 또다시 대할 수 있을까 싶은 심정으로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을 때 이번 산행 최대의 명언이 일행의 가슴을 파고든다.

    “이 멋진 경관을 눈에 담아요.”

    “다시 눈을 감고 마음에 새겨 봐요.”

    경관 감상에 일가견이 있는 베테랑 산악인의 조언이다. 에베레스트 5,800m 고지 등반일정을 잡아 놓았다는 ‘마고 성님’. 그는 머리와 가슴에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필요할 때 불러내 듯 형상화해 생동하는 경관으로부터 힐링 받는지도 모른다. 눈 감으니 현장에서 보았던 공룡 용아가 생생하게 살아나 파노라마를 펼친다.

    일행은 백담사를 향해 이번 산행의 마지막 구간인 구곡담계곡을 내려갔다. 봉정암에서 용아장성의 능선이 시작되는 수렴동대피소까지의 5.9km 하산 길은 지겹도록 지루했다. 계곡의 맑은 물과 담을 수없이 건넌 일행은 다시 감동의 경관 앞에 섰다. 두 물줄기가 만나서 ‘Y’자 모양의 폭포를 이루는 쌍폭(쌍룡폭)이다. 웅장하고 시원스런 후련함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두 갈래 거센 물줄기가 낙수를 이루어 한곳으로 합류하면서 힘찬 낙차를 이룬다. 아름다운 물거품이 신비와 꿈을 간직한 채 포말처럼 사라진다.

    얼마를 더 걸었을까 걷고 또 걸어 마침내 수렴동대피소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백담사에 이르는 계곡에는 염원과 소망을 담은 크고 작은 돌탑들이 바위나 모래톱을 가리지 않고 줄지어 늘어서서 하산에 지친 산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백담사 주위는 간절함이 이렇게 모이고 쌓여가는 염원의 이색 지역 같았다.

    “눈에 담아요.”

    “다시 눈을 감고 마음에 새겨 봐요.”

    귀경 버스에서도 이 말이 길게 여운을 남기며 폭풍감동을 안긴 장면들을 떠올리게 했다. 대청봉, 공룡능선, 용아장성에 감사한다. 함께 산행에 나선 병헌, 금택, 계은 님에게 감사한다.

    [지리적 가치로서의 산 - 지형·지질적 가치제]

    8세 손자와 함께 한라산을 오르다

    허봉희

    [월간山 선정 한국의 100大 명산]
    한라산에 오른 필자 가족.

    오랜만에 남편과 아들, 딸, 손자, 손녀, 사위, 며느리 총 10명의 대가족이 제주도 여행길에 나섰다. 주목적은 8세 외손자인 성빈이와 한라산 정상을 오르는 것이 목표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에 도전해서 4개월 20일 만에 100대 산을 완주하고, 6개월 만에 100대 산 어게인again을 완주했다. 산에 미쳤다고 할 만큼 매일 매일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매료되어 산에 빠져 살았다. 월간 산에서 100대 명산을 선정했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이다. 월간 산 100대 명산을 도전해 보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설렌다.

    우리 손주들이 어쩌다 나를 만나면 “할머니 산에 갔다 왔냐?”며 첫 인사가 ‘산’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다는 제주도 한라산. 외손자 성빈이는 할머니와 100대 명산 중 제일 높은 한라산을 가겠다고 오래 전부터 나를 조른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한라산이 얼마나 높고 얼마나 긴 거리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손자는 한라산 가자고 하며 새벽 4시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기상한다. 우리는 컵라면으로 요기하고 간식을 챙겨 오전 5시 30분에 숙소를 나섰다. 숙소를 나서자 ‘후드득’ 비가 온다.

    오전 6시 성판악에 도착하자 비는 더 굵어지고 안개까지 끼어 바로 앞도 잘 안 보인다. 잠시 갈등과 생각에 잠긴다. 나 혼자라면 이 정도 비는 장애가 안 되건만 어린아이가 이겨 내기에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손자 녀석이 더 앞장서서 가겠다며 나선다. 성판악에서 구입한 우비는 너무 커서 내 우비를 입히니 그런대로 비를 막아 준다.

    우리 가족, 우리 손자와 한라산에 왔으니 비와 구름을 걷어 달라고, 백록담을 볼 수 있게 도와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하느님, 부처님, 조물주 신님, 산신령님~ 간절하고 애절하게 기도하며 산을 오른다.

    신기하게도 종일 내릴 것 같던 비가 멈추고 하늘이 보인다. 우비를 벗어 조금 더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산행을 다시 시작한다. 두 번째 휴식처인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했을 때는 파란 하늘과 반짝이는 햇빛이 우리 가족을 반겨준다. 우리는 간단하게 준비해 간 간식을 먹고 커피 한 잔씩 나누어 마시며 몇 시간 전 성판악 출발점을 되돌아본다. 검은 비구름 속에 장대비를 맞으며 목표를 향해 진행한 것에, 손자에게 감사하며, 서로를 챙겨 주며 올라온 우리 가족이 뿌듯하고 대견하다.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 싶어 슬그머니 손자의 손을 꼬옥 잡으며 백록담을 향한다. 폴짝폴짝 가벼운 걸음으로 걷는 성빈이. 우리는 그 뒤를 따라 걷는다.

    우리는 무사히 정상에 올라 한라산의 야생화들과 제주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보너스까지 받았다. 백록담 속에 고여 있는 파란 물. 이렇게 백록담의 속살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감사, 감사, 정말 고맙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100대 명산의 첫 발을 한라산으로 선택한 우리 손자.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우리 손자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흐림이 있으면 맑음이 있고, 오름이 있으면 내림도 있고, 힘듦이 있으면 편안함도 있다는 것을 산을 통해 체험하는 유익한 하루가 되었기를 바란다.

    이렇게 한라산의 현장을 체험했다. 나는 또 다른 도전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산을 찾는다. 100대 명산 파이팅!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

    가을이 지나는 도봉산

    장인산

    [월간山 선정 한국의 100大 명산]
    도봉산 주능선.

    오랜만에 나서는 산행 길은 녹록하지 않고 더구나 범상치 않은 기품과 위세 있어 보이는 산과 마주할 때면 작고 초라한 ‘나’와 마주하기 일쑤다. 멀지도 않고 그리 가깝지도 않은, 그래서 가까이 하지 않아도 그다지 마음 불편하지 않고 다가가기엔 쉽지 않던 그 ‘산’, 가을이 한창 지나가고 있을 ‘도봉’이 문득 마음에 와 닿았다.

    회룡, 망월, 사패, 송추, 자운봉, 포대능선, 오봉 그리고 크고 작은 많은 사찰을 품은 도봉은 범접하기 쉽지 않은 기품과 함께 두루 포용하는 가슴 넓고 속도 탁 트인 큰 산이다. 그래서 길을 나섰다. 그 도봉 속으로.

    친구들과 만난 망월사역 길 건너 신한대학 교정 호랑이 조형물이 멋있어 보인다. 그 앞에서 포즈를 한 번 취하고 덕천사 대원사 원각사를 차례로 스쳐 지나고 계곡을 끼고 가파른 비탈에 자리 잡은 원효사에 들러 잠시 숨을 골랐다. 원효사에서 도봉의 주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심해 녹록치 않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지만 중간 중간 붉게 물든 단풍에 정신을 빼앗기다 보니 어느덧 포대능선에 올라섰다.

    송추계곡 쪽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연신 옷깃을 여몄다. 포대능선을 반쯤 지나 해골바위 부근에서 망월사를 거쳐 지나는 길을 택해 칼바람을 피하고 사찰도 구경하기로 했다. 망월사 무위당無爲堂에는 1885년 총리교섭통상대신으로 조선에 부임한 청국 원세개가 쓴 ‘망월사望月寺’ 현판이 걸려 있다. ‘광서 신묘년 중추’라는 글귀로 보아 1891년 가을에 쓴 것이리라. 아마 그도 나처럼 이마 위 저 멀리 우뚝 솟은 도봉의 준봉들과 아래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에서 한창 무르익었을 도봉의 가을 풍광에 감탄하지 않았을까?

    여의하면 이곳 산사에서 한나절쯤 머물면서 찬 공기를 가르며 부서지듯 내리비추는 햇살 아래 시시각각 변해 가는 도봉의 만추 풍경에 푹 취해도 보고픈데…. 아쉬운 마음을 다독이고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해 다시 포대능선으로 올라서니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등 도봉의 주봉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대가 산객을 기다리고 있다.

    자운봉으로 발길을 옮기려니 도끼로 내리친 듯 능선이 갑자기 뚝 끊기며 수십 길 깊이로 좁게 패인 Y계곡이 나타나 앞길을 막아섰다. 직강하했다가 다시 수직에 가까운 경사의 바위를 오르내려야 하는 Y계곡, 산객들은 감히 길을 재촉하거나 조급해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자운봉은 거대한 바윗돌이 층층이 쌓여 거인처럼 웅장한 자태로 앉아 있다. 산객에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고 맞은편 신선대에서 그 위용을 감상하게 할 뿐이다. 도봉 주능선으로 내려오면서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이좋은 오누이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은 오봉이 숨바꼭질하듯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있다. 우이암을 우회해서 보문능선으로 내려가는 길은 힘든 코스가 없어 산책로처럼 평탄하다. 동행한 친구 H의 고모가 한때 머물렀다는 능원사를 비롯해 굽이마다 크고 작은 사찰들을 포근히 품고 있다.

    도봉유원지 쪽 날머리에는 산행을 마무리하기 아쉬운 사람들이 노란 은행과 붉은 단풍을 배경으로 끼리끼리 카메라에 추억을 담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동부간선도로는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섰다. 쉬지 않고 하루를 달려온 태양은 서녘으로 붉은 노을의 바다를 펼치며 천천히 내려앉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

    호남 제1의 명산 월출산 산행

    안성수

    [월간山 선정 한국의 100大 명산]
    천황봉 정상석에서 기념촬영을 한 필자.

    문과나무산악회는 매월 둘째 주 토요일이 정기산행일이다. 근무 관계로 많이 참석을 못 했지만 이번에는 날짜가 잘 맞아떨어져서 월출산은 조건 없이 다녀오리라 마음을 다졌다. 10월 13일 오전 6시40분 안양 복개천 주차장으로 나갔다.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인지 35명 참석 예정자 중 24명만이 리무진버스로 출발했다. 내심 걱정이 되었다. 내가 회원 중 나이가 많은 편이고, 회원 대부분이 40~50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많은 산을 타본 경험이 있는지라 담담한 마음으로 동참했다.

    월출산月出山은 1988년 2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호남정맥의 거대한 암류가 남해바다와 부딪치면서 솟아 오른 화강암이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지금과 같은 월출산이 만들어졌다. 월출산의 면적은 56.22k㎡로 비교적 작지만 다양한 동·식물이 분포하며, 국보를 비롯한 수준 높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월출산의 정상은 천황봉(809m)이며 신라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천황봉을 중심으로 북쪽과 동쪽은 큰 바위가 굵직한 능선 줄기 위에서 웅장한 풍경을 만들어 내며, 남쪽과 서쪽 지역은 크고 작은 바위들이 마치 탑을 이룬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그 이름만큼이나 유명세를 떨치고 있어 전국 각지에서 찾아 나선다.

    문과나무산악회 버스가 4시간 남짓 가을 속을 꿰뚫으며 천황사 주차장에 당도했다. 저마다 버스에서 내려 등산화 끈을 조이고 옷매무새를 고치며 산행 채비가 활기차다. 그리고 월출산을 배경으로 산악회 인증사진을 찍었다. 오전 11시 20분부터 산행이 시작되었다. 5년 전에 종주해 본 경험이 있었지만, 힘이 부치면 2진으로 갈 각오였다. 회원 24명 중 A조는 정상 정복조 11명, B조는 13명 구름다리까지만 산행하기로 한바, 나는 영암까지 먼 걸음을 했으니 정상 정복조로 편입했다. A조에서 60대 중반인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전날 밤 찬 이슬에 흠뻑 젖은 맨살의 조각상이 차갑게 느껴지는 자연 관찰로를 따라 깊은 산 속으로 점점 흡입되어 갔다. 천황교 삼거리에서 구름다리 방향으로 오르는 길은 바위산답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파른 돌길이라 몸 밖으로 배출되는 많은 땀방울은 그만큼 정상에서의 환희와 비례할 것이라는 생각에 다리에 힘을 다진다.

    사자봉 아래 자리 잡은 천황사를 지나 월출산의 명물이라 일컫는 구름다리에 올라섰다. 월출산 구름다리는 2006년 5월에 완공한 다리로 매봉과 사자봉을 연결하고 있다. 해발 510m  지상에서 높이 120m, 길이 54m, 폭 1m 크기로 내려다보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아찔한 고도감을 자랑한다. 협곡을 건너는 그 아슬아슬함은 행여 목숨을 내걸고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과 다름없다. 구름다리 정면으로 보이는 장군봉의 암릉들은 수십 폭의 진경산수화 병풍이며 마치 금강산의 만물상 같다.

    구름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월출산의 장엄한 기암괴석과 바위들은 연신 감탄사를 외치게 한다. 그리고 층층 올려놓은 듯 능선을 따라 산자락이 즐비하고, 바둑판처럼 보이는 영암의 가을 들녘은 노란 옷으로 갈아입은 채 농부의 피땀 어린 풍성함이 담겨 있다.

    천황봉을 향하는 오름길은 철계단과 암릉을 밟고 올라가는 길이라 체력 소모가 심한 구간이다. 어느 산이든 깔닥고개가 있는 법. 다른 어느 산보다 경사가 심했다. 구름다리를 지나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사자봉은 그 용맹스런 이름답게 등산객의 발길을 절대 허용하지 않고 있다. 날카로운 송곳니처럼 하늘로 치솟아 뒤편으로 우회하며 한참을 다시 내려가야 하니 맥이 빠진다. 다시 깔닥고개를 넘어야 비로소 통천문을 갈수 있으니 힘든 발걸음을  내딛는다. 

    월출산의 앞모습만 보지 말고 뒷모습의 구석진 곳도 둘러보란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역시 뒷마당에서 바라보는 월출산의 위용도 만만치 않다. 사자봉을 돌아 암릉으로 접어 오르니 다시 월출산의 앞자락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인다.

    2개의 계단길은 하늘과 통하는 중후한 통문답다. 거친 숨소리를 내지 않고서는 이를 수 없는 가파른 시험대요, 월출산의 최고봉인 천황봉에 오를 수 있는 지름길이다. 숨소리 턱에 차오를 즈음 통천의 석문을 맞는다. 한 사람 겨우 빠져 나갈 수 있는 비좁은 통로에 들어서니 북서쪽 능선 계곡 아래에서 불어 올라오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이름 그대로 선계仙界에서 천계天界로 들어가는 문 같다. 이 문을 지나면 시야가 확 트이면서 천황봉 정상이 나타난다.

    정상은 천황天皇이 사는 곳답게 널찍한 바위 마당이 있고 표지석이 서 있다. 정상에 올랐다는 희열감에 배낭을 던져놓고 사방의 경치를 둘러보니 지평선이 우리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보였다. 모처럼 보는 지평선이다.

    영암 고을의 광활한 들판과 영산강 물줄기가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면서 다가오는데 이것이 바로 천상의 낙원이리라. 호남의 끝자락에 우뚝 서 있고 겹겹이 쌓인 주릉의 바위 바위마다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그 장엄하고 오묘함이 가히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월출산의 내면 전체가 거추장스러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 되어 산객을 현혹시키고 있다.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찍어도 그것을 담을 수 없을 것 같아 사진 찍는 것을 포기하고 눈과 마음으로만 새기고자 노력했다. 이를 두고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치라 하는 걸까. 그래도 표지석에서 인증 사진을 찍었다. 정상에서 맛보는 쾌미는 흘린 땀만큼이나 그 보상을 톡톡히 보고 즐기고 맛보게 했다.

    기념사진을 가슴에 담고 바람폭포로 내려선다. 천황봉의 뒤통수 또한 오를 때와는 또 다른 형상으로 나타나 시선을 되돌려 연신 돌아서게 한다. 좌측으로 눈길을 돌리면 바위 위에 집채만 한 바위가 후덕한 부처님의 얼굴처럼 서 있는데 강한 바람에 넘어질세라 조마조마하고  위태하다. 곧이어 거대한 스핑크스 모습의 6형제봉이 다정하면서도 위용이 당당하다. 바위 덩어리가 월출산의 행운을 뿜어내고 있는 듯 부드러운 자태로 영암들을 지켜보고 있다.

    멀리 또는 가까이 그리고 앞뒤로 들쑥날쑥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바위 능선이 줄 서 있다. 바위들은 갖가지 모양을 하며 수억만 년의 세월에 닳고 닳아 둥글넓적한 모습으로 구성지게 놓여 있다. 그들은 앞으로도 살아온 만큼의 삶을 더 살아가며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보이는 산릉마다 웅장한 바위와 기암괴석들이 갖가지 형상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균형을 이루며 쌓아 놓은 것 같아 더욱 경이롭다. 자연의 신비함에 다시 한 번 감동하며 주변의 풍광에 흠뻑 젖어든다.

    이번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내려오니 모두 박수로 환호해 주었다. 명육룡 고문께서 멀리 신안에서 산낙지와 간재미무침을 배로 공수해 와 막걸리와 소주파티를 하면서 오늘 산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산악회 회원들 간의 돈독한 우의를 다지는 대화합의 장이 되었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행복한 등산을 무사히 마쳤으나 두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하나는 도갑사 코스로 가 보지 못한 것이고, 또 하나는 월출산月出山에서 달이 뜨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미련이 있어야 또 오지 않겠는가. 회장님을 비롯해 회원님들께 감사와 고마움을 전한다.

    [지정 자연공원으로서의 산]

    선암사~송광사를 잇는 숲길, 조계산 ‘천년불심길’

    김종성

    [월간山 선정 한국의 100大 명산]
    송광사의 가을 빛.

    예부터 사람의 도리와 하늘의 순리를 거역하지 않고 살아온 백성들의 고장이었다는 도시 전남 순천順天에 가면 꼭 들르고픈 곳이 있었다. 올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천년고찰 선암사仙巖寺. 이 절은 결혼한 승려들인 대처승들이 속한 태고종의 본산 역할을 하고 있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사찰 매표소 입구부터 눈 호강을 했다. 선암사 입구에 이르는 1.5km의 아름다운 숲길에는 참나무, 팽나무, 밤나무, 단풍나무 등 우거진 숲길이 이어져 있다. 가을 운치로 가득한 숲길을 사부작사부작 걷다 보면 선암천 계곡 위에 들어선 아름다운 돌다리 승선교昇仙橋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조선 숙종 39년인 1713년 호암대사가 6년에 걸쳐 완공한 아치형 무지개다리다. 이음새 없이 커다란 돌을 맞물려 쌓은 석교로 나라의 보물(제400호)이기도 하다. 계곡과 석교 사이로 보이는 2층 누각 강선루降仙樓 모습이 정취를 더한다. 강선루에 앉아 아름다운 승선교와 아늑한 계곡을 바라보면 굳이 절까지 가지 않아도 좋겠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절에 들어서면 천연기념물 매화나무, 하늘을 찌를 듯 높다란 측백나무 등 노거수들이 반기고, 근심과 번뇌가 사라진다는 ‘뒷간(화장실)’까지 있는 등 세계인의 유산이 될 만했다. 흔히 해우소라 부르는 선암사 뒷간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14호로 지정된 곳이라 볼일이 없어도 들르게 된다. 이곳 해우소는 2층 구조인 탓에 깊기로도 유명하다. 송광사 스님이 자기 절 솥이 크다고 자랑하니까, 선암사 스님이 자기 절 뒷간이 얼마나 깊은지 어제 눈 거시기가 아직도 떨어지는 중이라고 허풍을 떨었다는 옛날이야기가 전해 올  정도라고 한다.

    가장 좋았던 건 오래된 한옥마을에 온 기분이 드는 고즈넉한 절집 풍경이다. 키 낮은 담장을 한 절집들이 빈칸을 메우듯 자연스럽게 옹기종기 모여 있다. 순천의 또 다른 명소 낙안읍성 마을에 온 것 같은 푸근한 마음이 드는 곳이다. 선암사를 일컬어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한 절집’이라고 하는데, 이는 가람의 규모나 건축의 기법을 말하는 게 아니지 싶다.

    점심시간 공양간에서 후식으로 흰떡이 나오는 절밥을 먹었다. 볶은 김치와 여러 나물에 맵지 않은 고추장을 넣어 비벼먹는 절밥이 맛있어 두 번이나 주방을 오갔다. 옆에서 같이 밥을 먹었던 중년의 여성 불자님이 점심은 아침(밥)이나 저녁(밥)과는 달리 한자어란다. 마음에 점을 찍듯 먹는 밥이 점심點心이라고.

    절로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산사 산책을 하다가 호기심을 끄는 나무 팻말을 보았다. 절 옆으로 이어진 숲길을 향해 서있는 나무 팻말에 ‘송광사 6.8km’라고 적혀 있었다. 알고 보니 순천시에서 이름 지은 ‘천년불심길’이라 하여 선암사에서 송광사까지 이어진 조계산 숲속길이다.

    예전엔 ‘굴목재길‘이라 불렀는데, 울창한 숲이 기나긴 굴을 이룬다 하여 굴목재라 했단다. 마침 공양시간에 절밥도 배불리 잘 먹었겠다 송광사까지 숲속 산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3시간여 오르락내리락 아늑한 숲속을 걸어보니 불자가 아닌 내게 없는 불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 천년불심길은 선암사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송광사보다 선암사에서 이어지는 숲길이 더 완만하고 걷기 좋다.

    산자락에 한국 불교의 양대 산맥이라는 선암사와 송광사를 품은 조계산은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해발 889m의 높지 않은 산이다. 험하지 않고 아늑한 산세를 지니고 있다. ‘좋은 산은 좋은 절을 품는다’는 옛 말이 있는데, 이 산의 경우엔 ‘좋은 절은 좋은 산을 품는다’는 말이 더 어울리지 싶다.

    천년불심길로 들어서자 마치 도시에서 골목으로 들어서듯 길은 좁아지고 사위가 한껏 고요해졌다. 간간이 들려오는 산새소리를 음악 삼아 묵묵히 숲속을 걷다 보니, 산행은 절에서 하는 108배 수행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언 속에서 단순한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문득 어떤 깨달음이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헉 헉~’ 가쁜 숨을 내뱉으며 언덕길을 걷다보면, 학창시절 교과서에 나왔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란 말에 왜 수심修心이 아닌 수신修身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조계산 숲길은 유난히 낙엽이 많아 푹신푹신하다. 잎이 무성하게 나는 참나무 활엽수가 군락을 이룬 대표적인 산이라고 한다. 참나무는 어느 한 가지 수종이 아니라 신갈나무·떡갈나무·졸참나무·상수리나무 등 여러 형제가 있는 나무다. 한국의 대표적인 수종인 소나무를 찾기 힘들 정도다. 곧이어 안내판과 함께 드넓은 편백나무 숲이 기다리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정화되는 것 같은 울창한 원시림이다. 하늘을 가릴 듯 빽빽하고 높다랗게 자라는 편백나무는 건강에 좋은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오는 수종이다. 나무숲속 벤치에 앉아 쉬다보니 편백나무 향이 은은하게 코끝을 스친다.

    ‘천년불심길’ 중간 즈음에 조계산의 명물 보리밥집이 나온다. 이 보리밥집이 좋아 일부러 조계산을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란다. 산행 중 먹는 음식은 뭐든 맛있기도 하지만, 보리밥 1인분에 6,000원으로 저렴한데다 후식으로 큰 가마솥에서 나온 숭늉도 먹을 수 있다. 

    단백질이 풍성하다는 보리밥의 도움인지 720m의 굴목재까지 가뿐하게 오르면 이제 송광사를 향해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이 길부터는 참나무 군락이 서서히 적어지고 소나무가 제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송광사가 가까워질수록 기품 있는 소나무들이 눈에 자주 띈다. 송광松廣이란 이름도 소나무가 널려서 유래했다고 한다.

    늠름한 소나무가 많아선지 절 분위기도 웅장하다. 계곡 청류와 그 곁에 흐르듯 자리한 누각 침계루가 아름답다. 이 절엔 크고 아름다운 나무들과 어우러진 풍광이 좋아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사찰이다. 선암사가 고즈넉하고 고요했다면, 송광사는 화려하면서도 웅장함이 묻어난다.

    [경관적 가치로서의 산 - 생태적 가치]

    희양산, 날갯짓을 준비하는 봉황

    신상대

    [월간山 선정 한국의 100大 명산]
    희양산의 멋진 바위 능선.

    원추형의 흰 빛 거암巨巖은 여전히 원북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수천 년을 그렇게 세상을 내려다보는 바위 얼굴에는 견훤과 왕건의 싸움도 있었고, 나라를 넘겨준 경순왕의 조촐한 행장도 있었다. 바위 얼굴과 똑같이 생긴 위대한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설을 전해 듣고 성실히 삶을 산 어니스트는 호손N. Hawthorne의 소설에만 있지 않았다. 저 아래 마을사람들은 희양의 바위 얼굴을 닮기라도 하듯 정직하고 성실하게 척박한 삶을 일궜을 것이다. 그중에는 위태로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킨 운강雲岡 이강년 선생도 있었고, 두문불출 용맹 정진하던 많은 선승들이 있었다. 수십 년째 산문을 닫고 1년에 단 한 번 초파일에만 개방한다는 봉암사가 있어 더욱 신비스런 희양산으로의 걸음은 부득불 정면이 아닌 뒷면과 측면으로 해야 했다.

    시작은 이화령에서부터였다. 짧은 시간에 희양산을 느끼려면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을 들머리와 날머리로 삼아 구왕봉과 희양산을 다녀오면 된다. 그러나 긴 걸음과 흠뻑 젖은 땀, 그리고 지친 얼굴에서 묻어나는 환희를 얻으려면 이화령에서 대간길을 따라 희양산에 오른 후 은티마을로 하산해도 좋다. 오늘 우리는 고단함 속에 가슴 벅찬 희열을 맛보기로 했다.

    이화령 고갯마루에서 시작한 걸음은 장장 20km를 걸어야 하는 장거리 산행이다. 조봉, 황학산, 백화산, 이만봉, 희양산, 구왕봉으로 이어지는 이곳은 1,500리 대간 길 중에 유일하게 갈지之자로 꺾어 도는 특이한 곳이다. 이런 특별함에 더하여 조용하고 울창한 숲이 좋고, 굽은 듯 휘어 도는 대간 줄기의 헌걸찬 모습도 좋다. 트인 능선에 서면 햇살이 부서지는 산자락에 올망졸망 모여 있는 산골 마을의 정감어린 모습이 어느 이국에서 맞은 신선함에 못지않다. 부드럽되 심심하지 않고 요철이 있되 날카롭지 않은 산길은 키 높은 나무들이 만들어낸 시원한 그늘도 있고, 지난 역사처럼 층을 이룬 낙엽도 있다. 그 틈 외줄기의 좁은 산길은 묵묵히 삶을 살아가는 무수한 소시민처럼 단정하다. 마음도 몸도 가벼워진다. 절로 나오는 콧노래. 감성은 메마른 사막의 샘물처럼 솟구친다. 적어도 이 숲을, 바람을, 공기를 맞을 땐 말이다.

    평전치를 지나고 다시 몸을 세운 산길을 탐하자니 힘이 부친다. 해는 머리 위를 지나 서쪽으로 각도를 낮추고, 곰틀봉에 이르는 급한 경사의 능선에 호흡은 거칠어진다. 스틱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다. 고난 끝에 산정에 닿으니 능선의 느린 흐름 속에 세상은 고요하다. 시원한 바람을 붙잡아 한껏 여유를 부려 본다. 혼돈의 마음은 무아지경으로 변해 간다. 오가는 이 없는 적막의 산길. 이럴 땐 다른 고행이 없어도 절로 득도할 것만 같다. 여전히 이만봉까지의 걸음은 힘겹다.

    시루봉 갈림길을 지나면서부터는 산중 평원이다. 이리저리 제멋대로 자라는 다래넝쿨 밑에는 산돼지들의 흔적이 또렷하고, 잔돌 깔린 길을 요리조리 걷다 보면 산성의 흔적이다. 희양산성은 축조연대가 명확하지 않으나 후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희양산 일대는 후백제 견훤의 세거지였다. 인근 고을엔 견훤과 그의 부父 아자개에 관한 많은 지명과 얘기들이 전한다. 가은 아차산, 왕릉리, 성저마을 등과 농암 연천리의 말바위, 궁터(궁기리) 등은 그런 지명들이다. 또한 지척의 속리산 인근에 견훤산성도 있다. 암튼 희양산성 또한 견훤이나 그의 주변 세력들에 의해 만들어졌거나, 아니면 이곳 역시 신라와 백제·고구려의 접경지대였던바 군사적 목적으로 축성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지금은 무너진 돌무더기가 전부이지만 그 옛날엔 국경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산성의 흔적을 따라 걸음을 재촉해 드디어 희양산에 닿는다. 이름처럼 햇볕이 빛나는 흰 바위봉에 속리산 너머 서쪽으로 기우는 태양빛이 찬란하다. 조심스럽게 거대한 바위들을 딛고 지나다보면 좁은 틈새를 비집고 바위채송화들이 자라고, 때늦은 철쭉들이 분홍빛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윽고 도달한 표지석 앞에 서면, 이제 작은 몸뚱이는 세상을 벗어나 다른 별세계에 닿은 듯한 착각에 빠진다. 기실 희양산은 이전부터 신들이 사는 특별한 곳으로 여겨져 왔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이루며 우뚝 솟은 희양산은 정상부부터 산허리까지 거대한 바위 암괴로 이뤄진 좀체 보기 드문 경관의 산이다. 동·서·남 3면이 모두 바위인 터라 해가 뜨면 질 때까지 종일 햇볕을 받아, 그 신비감을 더한다. 이러한 까닭에 조선조 선비인 권벌은 희양산을 ‘신선이 사는 선경’이라 했으며, 주세붕 또한 ‘신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희양산을 찾은 선인들은 특이하고 신비한 산세에 신선의 세계로 표현한 것이다.

      희양산 일대를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회자되는 것은 신라 최치원이 봉암사를 세운 지증대사 비문에 적은 글이다. 그는 희양산 일대를 봉황이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형국이라 해서 ‘봉황등천’이라 명했으며, 봉황새 바위와 용의 계곡이 서로 어우러져 있다 해서 ‘봉암용곡’이라 했다. 실제 희양산을 중앙에 두고 서쪽 구왕봉과 동쪽 이만봉을 바라보면 봉황이 날갯짓 하는 형국이다. 희양산을 중심으로 북쪽의 남한강, 남쪽의 영강이 굽이쳐 흐르는 모습은 꿈틀거리는 용의 형상으로 보인다. 이러한 신령스런 지형 탓에 지증대사는 “승려의 거처가 되지 않으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다”고 하여 봉암사를 창건했으며, 강한 지세를 누르기 위해 철불을 주조, 사찰을 호위케 했다는 얘기도 있다.

    단 1m의 모자람으로 인해 1,000m 고산 목록에 끼지 못하는 희양산이라 해서 아쉬움을 가질 것은 아니다. 최치원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희양산 일대를 오갔고, 조선조에 들어 특이한 산세와 최치원의 흔적, 그리고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봉암사를 보기 위해 많은 선비들이 찾고 남긴 무수한 기록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중환은 <택리지>에 “문경의 가은, 봉생, 청화에는 승경이 있다. 북쪽으로는 선유동계곡이 있어 산천수석이 기이한 승경이다. 주위 100리가 모두 병란을 피할 복된 땅이니 참으로 은자가 살 만한 곳”이라 했다. 정경세는 희양산을 유람하고 지은 시에서 ‘햇볕이 빛난다’는 뜻을 담아 ‘혁희봉’이라 명했다.

    현대에는 은둔의 명찰 봉암사로 인해 더욱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우람한 바위봉 아래 숨은 듯 자리한 봉암사는 쉽게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폐쇄성 때문에 많은 이들이 한 번쯤 가봐야 할 버킷리스트에 꼽고 있다. ‘봉암용곡’으로 지칭되는 깊은 계곡 곳곳의 백운대, 마애불, 야유암 등은 최치원이 남긴 ‘고산유수명월청풍’이란 각자가 결코 허언이 아님을 알게 해 준다. 인근에서 나고 자란 탓에 산문 폐쇄 전 자유로이 오갈 수 있었던 나의 유년시절은 어쩌면 복된 것이었을 수도 있다.

    구왕봉 지나 속리산 너머로 해가 진다. 이제 지친 걸음도 거둘 시간. 그러나 희양산에서 지름티재로 내려가는 직벽길은 인간세상에서 선계로서의 진입이 얼마나 거친 것인가를 단박에 알게 해준다. 족히 100m 넘는 벼랑에 드리워 놓은 밧줄을 잡고 두려움에 떨려 한 걸음 두 걸음 내려서다 보면 가끔은 근육 경련이 일기도 하고 현기증을 느끼기도 한다. 건너편 구왕봉의 우람한 자태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오직 밧줄을 잡은 손과 발 디딜 장소에 집중해야 한다. 가까스로 직벽을 벗어나면 그제야 내려온 길을 되돌아볼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희양의 우측 날개에 해당하는 구왕봉의 흰 바위가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

    지증대사가 희양산 자락에 절집을 세운 것은 도적의 소굴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지만 봉황의 날개에 불심을 얹어 삶의 고통에 허덕이는 민중을 구하자는 애국 충정이 있지 않았을까? 어둠이 내리는 지름티재에 멈춰 서서 금단의 땅 봉암사계곡을 내려다본다. 높은 희양의 머리엔 여전히 남은 햇볕이 황금처럼 빛나고, 우측 날개인 구왕봉은 날갯짓을 하려는 듯 바람이 인다. 퍼뜩 정신을 수습하니 세상으로 들어가는 걸음이 빨라진다. 여전히 나는 근심 걱정을 안고 사는 필부匹夫다.

    [경관적 가치로서의 산]

    한라산 사라오름

    김종남

    [월간山 선정 한국의 100大 명산]
    맑은 하늘과 어우러진 사라오름의 평화로운 풍광.
    [경관적 가치로서의 산 ]

    함백산 주목 군락지

    박성욱
    [월간山 선정 한국의 100大 명산]
    살아서 천년, 죽어야 천년을 산다는 함백산 주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