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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Leasure I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힐링도시 영주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힐링도시 영주

무섬마을 외나무다리...짧지만 강렬했던 무아의 순간

글·사진 홍헌표 기자  2019-07-08




영주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다리에 걸터 앉아 물 소리, 바람 소리를 듣다가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온갖 시름은 다 사라진다.

경북 영주에는 무섬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멀리서 보면 ‘물 위에 뜬 섬’ 같다고 해서 물섬마을로 불렸는데, 언젠가부터 ㄹ 받침을 떼고 무섬마을이 됐다고 한다.

이 마을에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드는 곳이 있다. 무섬마을 전체를 태극 모양으로 에워싸고 돌아가는 낙동강 지류의 내성천 위의 외나무 다리다. 전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던 지난 6일 이곳 외나무다리 위를 걸었다. 폭염으로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은 덕분에 호젓하게 다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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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 밖에 지나갈 수 없는 저 다리 위에서 누군가 마주친다면?

 한 사람 밖에 다닐 수 없는 다리 위에 잠시 멈춰 사방을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숨이 막혔다. 더위 탓이 아니었다. 구불구불 정감 넘치게 흐르는 맑디 맑은 강물과 깔끔하고 넓은 백사장, 진초록 숲과 대조를 이루는 여름 하늘, 그리고 하늘 끝과 맞닿은 태백산맥의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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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마을의 고택. 낮은 담장 위로 살짝 솟은 어사화에 눈길이 간다. 텃마루에 누우면 금방이라도 단잠에 빠질 것 같다.

 지난 2주 동안 일에 치여 잔뜩 굳었던 근육이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었다. 잠시 멍 때리는 시간. 조금 있으니 발 아래로 물 소리가 들리고, 스치듯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들리고, 백사장 건너편 무섬마을 카페에서 이름 모를 가수가 통기타에 맞춰 부르는 유행가 소리가 들렸다. 다리에 걸터 앉아 강물에 발을 담그고 하염없이 힐링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사이 좋은 젊은 연인에게 그 자리를 빼앗겨 버렸다.

차가 다닐 수 있는 수도교, 무섬교 2개의 다리가 지어지기 전까지는 무섬마을과 외지를 이어주는 유일한 길이었던 이 다리에 붙여진 특별한 이름은 없다. 그저 외나무 다리일 뿐이다.
350년 역사의 무섬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힐링에는 최고다. 만죽재, 해우당 등 조선시대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집과 야트막한 담장, 어사화가 반겨주는 골목길을 유유자적 걷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무섬마을은 조선 현종 7년(1666년)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조성한 반남 박씨(입향조 박수)와 그의 증손녀와 혼인한 선성 김씨(입향조 김대)의 집성촌으로, 현재 남아 있는 43채의 전통가옥 중 26채에 주민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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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 입구의 소나무 숲 '학자림'. 올곧은 선비 정신이 소나무에서도 풍기는 듯 하다.

 힐링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보고, 피부로 감촉을 느끼는 동안 일어난다. 또 하나가 있다면 지적 욕구의 충족이다. 그런 점에서 영주만큼 힐링 자원을 두루 갖춘 곳도 드물다. 소백산, 태백산의 수려한 자연 풍광과 풍기 인삼, 영주 사과를 낳은 비옥한 토양과 물, 그리고 유교 불교 문화의 절묘한 어우러짐까지 두루 갖춘 곳이 영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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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 원장의 집무실 겸 숙소였던 직방재.오른쪽에 교사들의 집무실 겸 숙소였던 일신재가 있다.

 7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된 ‘한국의 서원’ 9곳 중 형님 뻘 되는 소수서원이 영주에 있다. 풍기군수 주세붕이 조선 중종 38년(1543년) 백운동서원을 지었는데, 나중에 퇴계 이황의 요청을 명종이 받아들여 1550년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직접 내렸다.

수령 300~1000년의 적송(赤松)의 그윽한 솔향을 맡으며 학자림을 걷다가 경렴정, 죽계천, 취한대,강학당 등을 기웃기웃 둘러보다가 이곳에서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고, 참된 인간의 도리를 따지던 선비 정신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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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끝자락 봉황산에 자리 잡은 부석사. 맨 뒤 건물이 현존 최고(最古) 목조건물인 국보 제18호 무량수전이다.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이 만나는 지점, 봉황산 기슭에는 영주의 또 다른 힐링 스팟 부석사가 있다. 소수서원이 유교 문화의 정수라면, 부석사는 불교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다. 676년 신라 의상대사가 세운 국내 최고(最古) 목조 건물(무량수전), 국보 5점이 있는 곳, 의상대사와 선묘 아가씨의 설화 등 수많은 이야깃거리에 마음은 한껏 풍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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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에 가면 놓쳐선 안되는 장면.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바뀌는 장면인데, 해질 무렵 낙조는 평생 잊을 수 없다.

 이곳에 가면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장면이 있다. 바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 남서쪽을 향해 바라보는 일몰이다. 촉박한 일정 때문에 나는 그 장면을 놓쳤지만, 튀는 곳 하나 없이 부드럽게 펼쳐지는 소백산맥 능선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문화해설사가 들려준 비밀(?) 하나. 국보 17호인 무량수전 앞 석등 안쪽에는 ‘無’(무)자가 새겨졌다는 소문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 몰래 석등까지 다가가 안쪽에 글자가 있는지 확인을 했더니 글자가 없었다고 한다. 과연 無 자는 없는 걸까?
문화해설사는 부석사 입구부터 무량수전 앞마당까지 이어지는 108계단의 104번째 되는 지점을 찍어줬다. “여기에서 보면 무자가 보입니다." 진짜였다. 석등 안에 새겨진 無는 아니었다. 바로 뒤 무량수전의 無자가 한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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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산림치유원(다스림)에서는 어디로 눈을 돌려도 이런 경관이 펼쳐진다. 파란 하늘과 숲이다. 그리고 바람 소리, 벌레 소리, 새 소리가 있다.

 영주에는 자연이 준 힐링스팟이 또 있다. 몇 년 전 소백산 기슭에 들어선 국립산림치유원(다스림)이 산림 치유를 위해 조성한 치유숲길이다.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솔향기치유숲길부터 3시간30분 코스인 문화탐방치유숲길까지 발길 닿는대로 걸으며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곳이다. 국립산림치유원에서는 편백나무 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숙박시설에 묵으며 다양한 숲치유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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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산림치유원 데크로드의 쉼터. 데크로드는 휠체어를 밀고도 갈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나무 데크여서 누구든 힐링 걷기 코스로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