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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문물

“사명감으로 일하는 우리에게 왜 손가락질을 하나요?”(월성 원전 근무 A씨)

⊙ “사명감으로 일하는 우리에게 왜 손가락질을 하나요?”(월성 원전 근무 A씨)
⊙ 정부가 내세운 조기 폐쇄 논리는 모두 반박돼
⊙ “電力이 튼튼해야 남북통일도 할 수 있다”
⊙ “原電에 수명이 있다는 생각은 오해… 원전은 오래 돌리면 돌릴수록 경제적”
⊙ “월성 1호기, 기술적으로는 살릴 수 있으나 정치적으로 불가능”
⊙ 13년 전 盧武鉉 전 대통령은 월성에서 무슨 말을 했나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서 바라본 월성 원자력발전소. 월성 1·2·3·4호기가 나란히 들어섰다.
2020년 10월 20일, 감사원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이라는 감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국회가 감사를 요청한 지 386일 만에, 보고 기한을 233일이나 넘긴 시점이었다.
 
  감사 결과의 요지는 크게 4가지였다. ①월성 1호기 ‘계속 운전’의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 ②즉시 가동중단 결정은 경제성 외에 ‘안전성’이나 ‘지역수용성’ 등을 종합 고려했기에 ‘월성 1호기 즉시 가동중단 결정’은 감사원의 감사 범위에 해당하지 않음 ③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들이 사익을 취득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고, 한수원에 재산상 손해를 가할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 할 수 없음 ④산자부 장관 및 국장 등 실무자, 한수원 사장에 대한 징계 요구.
 
 
  아쉬움이 남는 감사원 보고서
 

월성 원전 1호기. 사진=조선DB
  감사 보고서가 공개되자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정범진 교수는 “경제성 평가가 잘못됐다는 점이 밝혀져 다행”이라면서도 아쉬워했다.
 
  “안전성은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판단합니다. 원안위는 2015년에 이미 월성 1호기가 2022년까지 계속 운전할 수 있도록 운영 허가를 내줬습니다. 감사원이 안전성을 논하는 것은 맞지 않죠.
 


  지역수용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수원이 즉시 가동중단 결정을 내릴 때 경주시민을 대상으로 어떠한 찬반도 조사한 바 없습니다. 오히려 경주시민은 맥스터(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추가 건설에 찬성했습니다. 안전성과 지역수용성만 보면 계속 운전하는 게 맞죠.”
 
  정부가 내세운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이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의 논리는 ①계속 운전 시 경제성 부족 ②안전성 문제 ③지역수용성 부족에 기초한다.
 
  경제성 문제는 감사원의 감사 보고서를 통해 이미 반박됐다.
 
  안전성 문제 역시 2015년 원안위가 월성 1호기에 대한 연장 운영(2022년 11월)을 허가했기에 이를 재론(再論)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정범진 교수. 사진=조선DB
  정범진 교수는 “감사원 보고서에서도 ‘월성 1호기의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지역수용성이 남았다. 정부는 ‘지역 주민들이 월성 1호기를 더는 원치 않기에 조기 폐쇄했다’고 했다. 주민들이 월성 1호기의 계속 운전을 원한다는 것이 밝혀지면, 정부가 내세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의 논리는 모두 무너지고 만다.
 
  주민들의 생각을 듣기 위해 경주로 갔다.
 
  월성 원자력발전소(월성 1~4호기, 신월성 1・2호기)는 ‘동(東)경주(경북 경주시 양북면·양남면·감포읍)’ 일대에 있다. 울산광역시 북구와 인접했다. 월성 1~4호기는 양남면과 양북면의 경계에 자리 잡았는데, 행정구역상으로는 양남면 나아리이다. 신월성 1・2호기는 양북면 봉길리에 있다.
 
  경주 시내에서 양남면까지는 차로 약 1시간 거리이다. 불국사를 품은 토함산을 지나 동해 쪽으로 향했다. 감은사지 석탑을 지나자 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문무대왕릉을 마주하고는 곧장 ㄴ자형의 봉길터널(2.4km)로 들어갔다. 터널을 나오자 돔형 건물 4동이 보였다. 월성 원전 1·2·3·4호기였다.
 
  양남면에는 14개 리(里)가 있고 인구는 6500명이다. 양남면 행정복지센터(면사무소)가 있는 하서리로 갔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니 방앗간과 중국집, 찜질방, 마트, 모텔 몇 개 정도만 보였다. 동네 할머니에게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자신은 잘 모른다면서 철물점에 가보라고 했다. 철물점 주인은 마을 이장이었다. 철물점에는 마침 원전이 있는 나아리 이장 홍중표(52)씨도 있었다. 나아리는 1호기 조기 폐쇄로 가장 큰 손해를 입었다.
 
 
  주민 동의 없이 지어놓고는 묻지도 않고 폐쇄
 

양남면 나아리 이장 홍중표씨.
  홍중표 이장은 “2018년 6월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할 때 정부나 한수원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물은 적이 없다”고 했다.
 
  — 1호기 조기 폐쇄로 지역 경제가 많이 나빠졌나요.
 
  “당연하죠. 원전 1기당 매년 40~50일간 유지보수를 합니다. 여기에 유지보수 인력이 200명 정도 투입되죠. 연인원 1만명이에요. 이 사람들이 지역에서 점심·저녁을 해결했어요. 1호기를 폐쇄하니 그만큼 손님이 줄었죠. 거기에 1호기가 발전을 멈췄으니 지원받을 예산도 줄겠죠.”
 
  — 발전소 6개 중 1개에 불과한데요.
 
  “아닙니다. 1호기 폐쇄 전에는 현상 유지라도 했는데, 이제는 유지조차 안 되는 거죠.
 
  1호기를 폐쇄한다고 해서 바로 철거하는 것도 아니에요. 해체 전까지는 수십 년간 방치해놓습니다. 그런데도 지역에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는답니다. 월성 1호기를 지을 때도 동의 없이 지어놓고 조기 폐쇄할 때도 자기네 마음대로 했어요. 지금은 또 방치해놓고 있잖아요.”
 
  — 한수원에서 어떤 지원을 받습니까.
 
  “월성 원전이 지지난해(2018년)에 생산한 발전량(kWh)에 0.25를 곱한 금액을 마을별로 나눠 받아요. 또 전기세 보조, 자녀 학자금 지원, TV 수신료 지원, 건강검진 지원 등이 있습니다.”
 
  ‘발전소 주변 지역에 관한 법률(발지법)’에 따르면, 발전소 주변 지역(발전기로부터 5km 이내의 육지 및 도서 지역이 속하는 읍·면·동)은 발전사업자(한수원 등)로부터 사업자지원사업비와 기본지원사업비, 특별지원사업비 등을 받는다. 동경주 지역이 여기에 해당한다.
 
  경주시는 최근 5년간 한수원으로부터 373억원을 지원받았다. 연도별 금액은 2016년 77억원, 2017년 82억원, 2018년 75억원, 2019년 73억원, 2020년 66억원이다(다시 경주시와 동경주가 5대 5로 나눈다).
 
  — 4인 가족으로 치면 1년에 얼마나 받습니까.
 
  “개인에게 돌아가는 현금은 없어요. 한수원에서 경주시에 기본지원사업비를 주면, 그 예산을 경주시가 다시 동경주에 나눠줍니다. 이 돈으로 마을 단위 사업을 합니다. 동네 도로를 포장하거나 농로(農路) 보수를 하죠. 마을회관도 짓고요. 협동조합을 만들어 수익 사업도 합니다.”
 

한수원 월성 본부가 지원한 특별지원사업비 83억원을 포함 150억원을 들여 지은 지상 4층 지하 1층 규모의 양남면 복지회관. 헬스·사우나 시설, 펜션 등이 있다. 사진=경주시청
  월성 1호기 조기 폐쇄가 거론되자 동경주에서는 대책위원회를 꾸려 산업자원부에 ‘조기 폐쇄에 따른 지역 경제 피해 등을 책임져 달라’고 요구했다.
 
  홍 이장은 “당시 산업부 에너지정책실장이 ‘예산과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답이 없다”며 “산업부가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그는 월성 1호기 폐쇄 전만 해도 나아리에 약 170개의 점포가 있었지만, 현재는 70~80곳만이 남아 있다고 했다. 이어 “환경단체 사람들은 여기에 살지도 않으면서 데모만 해대는 바람에 동네가 혐오 지역이 됐다”면서 “서너 명이 와서는 만날 데모했는데 이들의 주장이 지역 의견인 양 비쳐 답답하다”고 했다.
 


  —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위험하잖아요.
 
  “우리보다 더 똑똑하고, 서울대·연대·고대 나온 사람들이 뭐가 아쉽다고 여기서 일하겠습니까? 한수원 발전소 직원들도 한동네에 같이 삽니다. 안전하니까 여기서 일하는 거죠. 위험하면 돈 2억원 준다고 해도 일하겠습니까?”
 
  — 원전에서 일하는 사람은 뭐라고들 합니까.
 
  “허파가 디비진다고 하죠. 지금 한수원 사장이 정권 낙하산 아닙니까. 그러니 이사회니, 뭐니 다 무시하고 가짜로 (경제성을) 계산해서 조기 폐쇄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