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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斗煥 반론, “이게 과연 판사가 쓴 판결문인가” (上)

全斗煥 반론, “이게 과연 판사가 쓴 판결문인가” (上)

1심 재판부 ‘헬기 사격의 실체는 모르지만, 좌우간 사격은 있었다’ 판단

李知映(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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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헬기 사격설 유죄판결에 분노하다!
 -“지방의 민심에 영합한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개인적 화(禍)를 면하게 되었지만, 그로 인하여 이 나라는 역사 왜곡이라는 큰 화를 입게 되었다.”

2년 5개월을 끈 전두환(全斗煥) 전(前) 대통령의 사자(死者)명예훼손 1심 재판이 2019년 11월 30일 막을 내렸다.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판결문을 입수해 세 번을 읽었는데도 도무지 판사의 논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기자의 독해력·문해력·지력(知力)에 문제가 있어 이해를 못 하나 자책도 해보았는데 전 전(前) 대통령 측 변호인의 항소이유서 초안을 보니 과연, 문제는 판사였다.

 

 전 前 대통령 변호인 정주교 변호사는 항소이유서를 쓰면서 “원심 판결은 ‘이것이 판사가 쓴 판결인가’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편파적이고 자의적 판단을 자유심증주의(自由心證主義)로 포장하고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목격자의 거짓과 착오를 철벽 방어했다”고 개탄했다.

 

 이 재판은 광주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이정현)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기소하면서 시작되었다. 전 前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광주사태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했었다. 검찰은, ‘조비오 신부와 5·18 희생자, 그 유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기소하였다. 기소의 주된 근거는 ‘5·18민주화운동 헬기 사격 및 전투기 출격 대기 관련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이하 국방부 특조위)’의 ‘5·18 당시 국군의 야만적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조사결과였다. 그렇다면 국방부 특조위의 조사결과는 믿을 만했나?

  

  ‘헬기 사격의 실체는 모르지만, 좌우간 사격은 있었다’고?

  

 월간조선 지면을 통해 수차례 지적한 바와 같이 국방부 특조위는 과거 국가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지도 못했지만 비약적 논리 구조로 ‘5·18 당시 국군의 야만적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엄청난 결론을 도출해냈다. 헬기 사격을 했다는 사람도 총탄에 맞은 사람도 확인되지 않았다. 헬기 사격 지시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사격이 있었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는데도 국군을 ‘양민 학살범’으로, 국가를 야만적 존재로 공인하는 보고서를 냈던 것이다.

 

 <계엄군은 5. 21. 헬기를 이용하여 일반시민에게 위협사격을 하였고, 무장을 하지 아니하고 시위를 하는 시민들에 대하여 직접사격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5. 21. 헬기 사격은 무차별적이고 비인도적인 것으로서 계엄군 진압작전의 야만성과 잔학성 그리고 범죄성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또한 시민들과 물리적 충돌을 하고 있는 과정에서 실시되었던 지상군의 사격과 달리 헬기 사격은 사전 계획적·공세적 성격을 띠고 있다. (중략) 대량살상 능력을 갖춘 무장헬기까지 동원하여 사격을 하고 시민을 살상하는 행위는 집단살해 내지 양민학살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국방부 특조위 보고서 中

 

 전두환 재판은 단순히 ‘거짓말쟁이’라고 지칭된 사자(死者)의 명예훼손 문제가 아니라 ‘광주사태 당시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판가름하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런 중요한 재판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판결을 한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는 헬기 사격의 실체에 대해 113페이지의 판결문에서 단 한 줄의 설명으로 갈음한다.

 

 <1980. 5. 21.경 광주천 불로교 및 양림동, 대의동, 학동시장, 기독병원 일대 등에 헬기 사격이 있었고…> ―전두환 前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판결문 中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헬기를 타고, 어떤 무기로, 어디를 사격했고, 그 사격으로 누가 죽고, 누가 다쳤으며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지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국방부 특조위 조사보고서와 대동소이하다. 전 前 대통령 변호인은 이렇게 반문한다. “‘헬기 사격의 실체는 나도 모르지만, 좌우간 사격은 있었다’는 식의 판단을 누가 납득할 수 있나?”

  

 사실 인정의 이상한 논리

  

 전 前 대통령 측은 원심 판결이 ‘목격자 진술’만으로 헬기 기총소사가 증명되었다고 판단했다면서 “원심의 사실 인정에 관한 판단이 너무나 자의적이어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며 조목조목 짚어냈다.

  

 (전두환 측) 같은 장면을 목격했다는 두 사람의 말이 서로 다르다

 → (1심 재판부 판단) 오히려 두 사람이 말을 맞추어 허위로 진술하지 않았다고 볼 근거

 (전두환 측) 목격자가 매번 진술을 번복하였다

 → (1심 재판부 판단) 시간의 경과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정이므로 오히려 신뢰할 수 있는 근거

 (전두환 측) 목격자는 UH-1H 헬기를 봤다고 진술했다

 → (1심 재판부 판단) 목격자가 500MD 헬기를 UH-1H 헬기로 잘못 보았을 것

 (전두환 측) 목격자는 502항공대 헬기를 목격했다고 했다고 진술했는데 그 헬기는 사격이 불가능한 가스살포기 탑재

 → (1심 재판부 판단) 목격자가 본 헬기가 502항공대 헬기라고 단정할 수 없다

 (전두환 측) 목격자가 증거로 제시한 사진 속 헬기의 불빛은 충돌방지등 불빛으로 밝혀졌다

 → (1심 재판부 판단) 목격자가 촬영한 사진은 헬기의 사격 장면이 아닐 것

  (전두환 측) 목격자는 헬기의 왼편에 있었기 때문에 오른편을 볼 수 없었다

 → (1심 재판부 판단) 반대편이라고 하여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전두환 측) 10만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 있던 광주 시내 상공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면 그것을 본 사람이 불과 8명뿐이냐

 → (1심 재판부 판단) 모든 목격자를 전부 조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두환 측) 군인들이 전부 헬기 사실은 없었다고 진술하였다

 → (1심 재판부 판단) 군인들이 부인한다고 하여 헬기 사격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전두환 측) 사람들이 밀집한 광주 시내 여러 곳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하면서 왜 피해자가 한 사람도 없느냐

 → (1심 재판부 판단) 위협사격을 배제한 채 조준 사격만을 전제로 한 주장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전두환 측) 광주 시내 여러 곳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하면서 왜 헬기 사격의 흔적이 하나도 없느냐

 → (1심 재판부 판단) 현장이 원상태로 보존되지 않았기 때문

  

 1심 재판부는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판단한 직접증거로 ‘진술증거’ 이외에는 제시하지 못했다. 진술증거에는 입증의 대상이 되는 조비오 신부의 진술도 포함되어 있다. 변호인은 “조비오 신부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진술의 진위(眞僞)여부를 가리는 재판에서 조비오 신부의 진술로써 조비오 신부의 진술을 증명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한가?”라고 반문한다. 조비오의 진술은 증명의 대상이며 논증되지 않은 전제일 뿐인데 이를 근거로 조비오의 진술이 참이라고 증명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라는 것이다.

  

 원심 판시 논리에 따르면 ‘헬기 사격 없었다’도 성립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사실의 부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사회통념상 불가능”하므로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헬기 사격이 없었다’를 증명하는 것은 논리학적으로 불가능하므로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는 정도’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위 1심 재판부의 판단이 그에 부합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나 흥미로운 부분은 ‘군인들이 전부 헬기 사격이 없었다고 증언했다’는 진술에 대한 판단이다. 재판부는 ‘목격자가 헬기 사격을 봤다고 진술’했기 때문에 ‘군인들이 부인한다고 하여 헬기 사격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논리를 세웠는데, 전두환 측 변호인은 이 논리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그 반대의 경우에도 논리가 그대로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원심 판시 논리에 의할 경우 ‘목격자가 사격이 있었다고 진술하더라도 군인들이 사격은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기 때문에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명제도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재판부는 “모든 군인들, 특히 제1항공여단 소속으로서 헬기에 탑승한 조종사, 부조종사 및 무장사들의 모든 진술이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으므로 그들(편집자 注-일부)이 헬기 사격을 부인한다고 하여 곧바로 헬기 사격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의 이 논리 역시 ‘광주사태 시위 참가자의 모든 진술이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으므로 그들(일부)이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하여 곧바로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뒤집어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전 前 대통령 측은 “어느 집단에 발생한 사건의 경우 그 집단 구성원 전원을 조사하지 아니하더라도 그 진실을 알 만한 위치에 있는 일부의 사람들에 대한 조사를 통하여 그 진술을 규명할 수 있다는 것이 보통의 상식”이라면서 “구성원 전원을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실이 규명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말싸움을 위한 억지 주장”이라고 비판했다.